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라테라노 조약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목차] == 개요 == [[http://www.vatican.va/roman_curia/secretariat_state/archivio/documents/rc_seg-st_19290211_patti-lateranensi_it.html|라테라노 조약 전문 (이탈리아어)]] 라테라노 조약은 [[이탈리아 왕국]]의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와 [[교황]] [[비오 11세]]가 [[1929년]] [[2월 11일]] 체결한 조약이다. 이 조약의 결과로 [[바티칸 시국]]이 탄생했다. [[바티칸]]의 독립과 [[교황령]] 재산 문제에 관한 것이 이 조약의 골자이다. == 내용 == 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황]]은 신생 [[이탈리아 왕국]]을 승인해주고 기존 [[교황령]]을 포기하는 대신, 이탈리아 정부는 [[바티칸]] 및 [[라테라노 궁전]], 그 부속령을 포함하는 독립국가([[바티칸 시국]])를 인정한다. 바티칸은 교황령 포기 대가로 보상금 7억 5천만 [[이탈리아 리라|리라]]를 일시금으로, 또한 연간 5% 수익을 보장하는 이탈리아 [[공채#s-2]] 10억 리라를 받고 향후 모든 [[세금]]을 [[면세|면제]]받는다. [[무솔리니]]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하고 [[처형]]되었지만 교황령의 독립이라는 대의는 양국이 지지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1947년]] 제정된 [[이탈리아 공화국]] [[헌법]] 7조에 따라 다시 추인됨으로써 이 조약은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 다만 이 협정을 위해 [[비오 11세]]가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는 건 후세의 비판거리가 되고 있다. 이 조약에 의해 바티칸 국적자가 돌아갈 곳이 없을 경우,[* 예를 들어 출신국가가 망해서 [[무국적자]]가 되었다거나] 이탈리아 국적을 자동 취득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1983년]] [[이탈리아]]에서는 [[세속주의]] [[중도좌파]] 정당인 [[이탈리아 사회당(1892년)|이탈리아 사회당]]을 이끄는 [[베티노 크락시]]가 집권했고,[* 의석 자체는 [[기독교민주당(이탈리아)|기독교민주당]], [[이탈리아 공산당|공산당]]에 이은 제3당이었지만, 기민당과 공산당이 이전에 비해 부진한 반면, 사회당이 이전에 비해 약진했기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연립정부|연정]]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크락시와 [[교황청]] 간의 협상이 [[1984년]]에 타결됨으로써 조약이 일부 수정되어 [[가톨릭]]이 [[이탈리아]]의 [[국교]] 지위를 상실하고, 이탈리아 측에서 바티칸에 지급하던 [[국고보조금]]이 폐지되어 [[개인]]이 직접 납부하는 [[종교세]]로 대체되었다. [[분류:1929년 협정]][[분류:바티칸 시국의 역사]][[분류:이탈리아의 역사]][[분류:전간기]][[분류:이탈리아-바티칸 관계]]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