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마테우스 헤체나우어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독일 국방군/인물]][[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1924년 출생]][[분류:2004년 사망]][[분류:티롤 주 출신 인물]] [목차] == 개요 == [[파일:external/img842.imageshack.us/l5jp.jpg]] '''Matthäus Hetzenauer''' (1924.12.23 - 2004.10.3)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최고의 [[저격수]]. 최종 계급은 [[육군]] 산악[* 당시나 전후 독일 연방군이나 육군의 산악 병과는 일종의 정예 보병으로 [[대한민국 육군]]의 [[대한민국 육군/특공대|특공대]] 정도에 해당하는 전력이다. 때문에, 유명한 저격수도 이 병과에서 많이 배출됐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독일군 측 저격수인 쾨니히 육군[[소령]]도 산악병과 장교로 설정되어 있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면, 군대에서 지고 다니던 군장을 지고 등산로도 없는 산을 오르내린다고 생각해 보자. 어지간한 사람은 체력적으로 하기 힘든 일이다.][[상병]](Gefreiter). == 활약 == [[오스트리아]] 티롤 출신으로 [[안슐루스]] 후 [[독일군]] 육군 제3산악사단으로 참전해 [[소련군]]을 상대로 동부전선에서 활약하며, 총 345명을 사살했다. [[핀란드]]의 [[시모 해위해]]나 [[소련]]의 [[바실리 자이체프]]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최고 기록으로 1,100미터로 적을 사살한 적이 있으며'''[* 당시 독일 저격수들은 관측병과 저격병을 2인 1조로 운영했으며, 관측병이 적을 사살할 거리를 대략 계산할 수 있다. 사살되면 관측병에 의해 기록이 남는 것이다. 둘이 짜고 친다면 지어낼 수 있는 거라지만, 전적으로 항시 [[기도비닉]]을 유지하고 한 발 한 발에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모두 지어내기란 힘들 것이다.] 다수의 적을 사살하는 듯 여러 일화가 있다. 더욱 놀라운 건 그가 저격수로서 활동한 시기는 겨우 10개월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며, 이 짧은 기간 동안 이 모든 전적을 세웠다는 사실이다. [[1943년]]에는 산악병으로 기본교육을 받다가 사격에 특출나게 두각이 보이자 [[슈타이어마르크]]에서 저격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944년]] [[3월 27일]]에서 [[7월 16일]]까지 저격수 교육을 받은 후 제3산악사단에 배속되어 볼트액션 소총인 [[Kar98k]]과 [[반자동 소총]]인 [[게베어 43|Gewehr 43]]을 사용하였다. 그 후에 [[카르파티아 산맥]], [[헝가리]], [[슬로바키아]]에서 소련군에 대한 맹활약을 보여주었다. 헤체나우어는 특별한 지원 없이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최전선의 은폐된 진지에서 소련군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퍼부었다고 증언했다. “아군 부대가 공격을 개시하기 전날 밤, [[포병]]이 [[공격준비사격]]을 했지만 우리는 수적으로 열세했고 탄약도 부족해 오히려 적의 대 포병 사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단독으로 적 [[지휘관]]과 포병만을 골라 장거리 저격을 가했다. 결국 적은 잠잠해졌고 아군의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1944년]] [[11월 6일]]에 그는 적의 포병 사격에 의해 머리에 부상을 입어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후 3일 뒤에 전상장(Wound Badge)을 받았다. 대전 말기에 당시 [[사단장]]이었던 파울 클라트(Paul Klatt) [[장군]]은 포병의 지원을 받는 소련군의 2개 [[중대(군대)|중대]]의 공격을 헤체나우어가 저격을 통해 물리쳤다는 보고를 해 그의 뛰어난 저격술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후 해체나우어는 [[1945년]] [[4월 17일]]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로부터 [[철십자 훈장#s-1.3.3|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고, [[1945년]] [[5월]]에는 소련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5년간 포로수용소에서 억류당한 후 풀려나왔다. == 기타 == 해체나우어가 주로 사용한 [[소총]]은 [[7.92×57mm]] 마우저탄을 쓰는 [[볼트액션]] 소총인 Kar98k과 [[반자동 소총]]인 Gewehr 43인데 Kar98k는 특유의 정확도와 유효사거리로 스코프를 장착해 저격용으로 많이 사용하였으며, '''"한발로 반드시 한명씩 죽인다"'''[* 말년에 인터뷰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망원경을 단 Kar98k로 700~800m에 서 있는 적을 사살할 수 있다라고 했다. 즉 Kar98k의 유효사거리가 500~1000m 인데 [[바람]]의 영향이나 목표물까지 거리의 계산을 해도 당시의 기술로는 쉽지않음에도 불구하고 저 말을 지켰다는 걸 보면 탄도계산능력이나 조준술이 뛰어나다는 반증이다.]라는 그 만의 스나이퍼 법칙을 고수했다. 한편으로는 진정한 저격수라면 결코 [[반자동]]식 무기가 필요치 않다고 강조하기도 해 Gewehr 43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면에선 [[시모 해위해]]와 전투방식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전투에서는 더욱 꼼꼼하고 생각하고 깊으며, 두뇌가 우수한 사람이 적과 대결해 승리할 수 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저격 기록 2위인 요제프 알러베르거(Josef Allerberger, 1924~2010)[* 이 사람도 정말 대단한 저격수인데 독소전 당시 소련 육군이 노획해 굴리던 [[Sd.Kfz. 251|하노마크 장갑차]]의 [[운전병]]을 관측구(가로 30cm 세로 10cm) 사이로 저격해 전복시키는 기예를 선보인 바 있다. 소련군이 노획한 하노마크를 막기 위해 분석을 한 결과, 하노마크의 구조상 운전수가 죽으면 다른 인원이 바로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운전석 공간이 좁기 때문에 변변한 대전차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하노마크를 막으려면 하노마크가 기동 중인 상태에서 운전수를 죽이는 것 밖에 없다는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관측수의 눈이 보일 정도의 근거리에서 쐈다지만 총알 한 발로 정면에서 달려드는 장갑차를 제압하는 일은 보통 실력과 담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12대의 하프 트랙 중 7대를 관측구 저격으로 정지시켰다.]와 같은 사단 소속이기도 했다. 수용소에서 석방된 후에는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회고록 등을 자주 내놓던 다른 저격수들과 달리 은거하면서 조용하고 평범하게 80세까지 살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자신이 맞서 싸우던 소련이 세월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 우연이지만 소련의 저격수인 [[바실리 자이체프]]는 소련이 무너지기 10일 전에 사망했다.]까지 보고서...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