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아수르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이라크의 옛 수도]][[분류:이라크의 유적]][[분류:이라크의 세계유산]][[분류:아시리아]] [include(틀:이라크의 세계유산)] ||<-3>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width=160]] || ||<|4> 이름 || 한국어 || 아수르(칼라트 샤르카트)†[*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 || 영어 || Ashur(Qal'at Sherqat) || || 아랍어 || (آشور (قلعة الشرقاط || || 프랑스어 || Assour(Qal'at Cherqat) || |||| 국가·위치 ||<-2> [[이라크]] 살라딘 주 || ||<-3> [include(틀:지도,장소=قلعة آشور, 너비=100%, 높이=224px)] || |||| 등재유형 || [[세계유산#s-3.1|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03년]] || |||| 등재기준 || (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 지정번호 || [[https://whc.unesco.org/en/list/1130|1130]] || [[파일:ancient-gate-old-assyrian-town-of-ashur-assur-unesco-world-heritage-site-iraq-middle-east-RHPLF20481.jpg]] [[아카드어]]: Aš-šur[* 아카드어 [[쐐기 문자]] 표기는 지원되지 않는지 위키피디아에도 이미지로 대체되어 있다.] [[수메르어]]: 𒀭𒊹𒆠 [[영어]]: Assur, Ashur [[아랍어]]: آشور [[히브리어]]: אַשּׁוּר [목차] [clearfix] == 개요 == [[아시리아]]의 첫번째 수도이자 가장 오랫동안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수도였던 기간을 총합하면 '''1500년'''이 넘는다. 아시리아라는 이름도 아수르의 땅이란 의미이다. [[티그리스강]]의 서쪽에 위치하며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또 다른 도시인 [[님루드]]와는 65km, [[니네베]]와는 100km 떨어져 있다. 아수르, 아슈르, 앗슈르, 앗수르 등 표기가 다양한데 표기가 일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은 편인 [[메소포타미아]]권의 지명 중에서도 유독 일관적이지가 않은 편이다. == 역사 == 아수르는 기원전 2500년경에 형성된 오래된 도시이며 기원전 24세기 [[아카드]] 시대에도 이미 도시국가라고 할 수준의 규모를 갖추고 있었지만 초창기의 정치, 사회, 역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기원전 2000년 이전에는 [[아카드 제국]], [[우르 제3왕조]]의 속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수르는 [[티그리스강]]을 건너는 요지에 위치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교역으로 번성할 수 있었다. 특히나 메소포타미아 북부는 남부만큼 비옥하지도 않고 비도 잘 내리지 않는지라, 아수르인들은 일찌감치 국제무역에 눈을 떴다. 그들은 '카룸'이라는 상업구역을 외국에 여러 곳 설치해 부를 축적했으며, 관세, 채무, 결제, 중계, 위탁, 대부 등 상업과 관련된 용어와 관행도 발달했고 교역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협상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아수르는 중계무역의 중심지로서 멀리 동쪽의 [[엘람]] 등에서 주석을 들여오고, 남쪽 [[바빌론]]에서는 직물을 수입해 [[아나톨리아]] 반도에 수출했다. 이들은 아나톨리아의 카네쉬에도 카룸을 설치해, 그곳에서 주석과 직물을 은과 금으로 바꾸어 돌아왔다. 이러한 무역은 상당히 위험했지만, 막대한 수익을 남길 수 있었기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아수르 상인들은 아나톨리아에 상업식민지를 운영했고, 이를 통해 아나톨리아 반도에 문자 시대가 시작되었다. 고아시리아 시대에도 아수르는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은 거의 없는 도시였으나 상업이 발달하여 [[자그로스 산맥]]부터 [[아나톨리아]] 중부 지역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무역로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경제적으로는 중요한 위상을 지녔다. 기원전 18세기~기원전 13세기 동안은 몇 번 수도를 옮겼다가 다시 아수르로 환도했는데 기원전 879년 신아시리아 시기 아슈르나시르팔 2세가 수도를 아수르에서 [[칼후]]로 완전히 옮기면서 수도의 지위는 잃었지만 아수르는 여전히 제국의 종교 중심지로 남아 있었고 아시리아의 주신 [[아슈르(신)|아슈르]]의 사원으로 인해 계속 번영했다. 그러나 기원전 614년 [[메디아]]와의 전투에서 함락되면서 몰락했다. 함락되면서 아수르는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몇년 뒤 당시 수도였던 [[니네베]]마저 [[신바빌로니아]], [[메디아]] 등의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아시리아]]는 멸망했다.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때 도시가 재건되어 회복되면서 계속 존속하고 있었고 [[파르티아|파르티아 제국]] 시대에는 아시리스탄 지역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4세기 [[티무르]]에 의해 주민들이 학살되면서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아수르 유적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 되어있으며, 당시 고대 고고학 유적지를 물에 잠기게 할 대규모 댐 건설 계획으로 인해 유적이 위협을 받았다. 댐 건설 계획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직후 보류되어 거의 취소에 가까운 상태지만 현재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의 활동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2017년 이후에는 IS의 쇠퇴로 위험이 그나마 줄어 장소를 특별히 통제하지는 않지만 아직 충분히 안전하지는 않다고 평가받는다. == 발굴 == 아수르는 1898년에 독일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탐사되었다가 발굴은 1900년 프리드리히 델리츠시에 의해 시작되어 1903~1913년까지 계속되었다. 16,000개 이상의 [[쐐기 문자]] 점토판이 발견되었고 그중의 다수가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옮겨져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페르가몬 박물관]]에는 [[신바빌로니아]]의 성문이었던 [[이슈타르의 문]]이 전시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 여담 == 아수르는 아시리아 주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슈르(신)]] 문서 참조. 아시리아의 발상지인 만큼 현대 [[아시리아인]]들에게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며 아시리아 관련 행사를 이곳에서 개최하기도 한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