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여리(요나라)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요사)] [목차] 女裏 (? ~ 978) == 개요 == 요나라의 인물. 이름은 여리이고 자는 열열곤(涅烈袞)인데, 성씨는 전해지지 않는다. == 생애 == 일찍이 적경궁(積慶宮)의 궁인(宮人)이었다. [[목종(요)|목종]] 때인 응력 연간(951~969) 초에 습마소저(習馬小底)에 임명됐는데 병을 앓던 어머니가 죽는다. 장사지낼 땅을 찾아다니다 아백산(雅伯山)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거인]] 한 명이 여리 앞에 나타났다. 여리는 두려워 도망치려고 했는데 거인은 여리를 멈춰세우며 말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땅의 신령 지기(地祇)다. 네 어머니를 여기에 장사지내면 궁궐에 이르게 될 것이니,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다."[* 勿懼, 我地祇也. 葬爾母於斯, 當速詣闕, 必貴.] 여리는 지기의 말을 따라 어머니를 아백산에 장사지냈다. 여리는 관직이 여러 번 바뀌어 마군시중(馬群侍中)에 임명됐다. [[목종(요)|목종]]이 황제이고 [[경종(요)|경종]]은 아직 변경 지역의 자택에서 살고 있을 때, 여리는 본궁에서 나와서 경종을 따랐다. 경종은 여리를 두텁게 대우했고, 여리 역시 마음을 기울이며 의지했다. 사냥을 갔던 목종이 살해당하자 그 길로 여리는 경종에게 달려갔고, 밤새 금군 5백을 모아 숙위했다. 경종이 목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게 되자 여리는 황제를 추대한 공으로 정사령(政事令)에 임명됐다. 보녕 3년(971) 거란행궁도부서(契丹行宮都部署)에 임명됐고 후한 상을 받았으며 수태위가 더해졌다. [[북한(오대십국시대)|북한]](北漢)의 군주 [[유계원]]이 여리의 공적을 듣고 그 생일마다 예를 치를 정도였다. 경종 즉위에 큰 공을 세운 여리는 사치와 탐욕을 부리며, 마찬가지로 재물을 좋아했던 소아부저(蕭阿不底)와는 서로 친하게 지냈다. 털옷에 도꼬마리 열매[* 뾰족한 가시가 달린 열매로 털옷에 잘 붙는다.]가 달라붙듯 했기에 누군가 희롱하며, "만약 여리, 아부저와 만난다면 반드시 모두 털리고 말 것이다!"[* 若遇女裏·阿不底, 必盡取之!]라고 비웃기도 했다. 그러다가 보녕 10년(978) 사적으로 무기 500속을 감춘 일에 연좌됐고, 또한 여리의 소매 속에서 외척인 추밀사 [[소사온]](蕭思溫)을 죽일 것을 모의하는 글이 나왔으므로 사사당했다. == 여담 == 여리는 말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났다. 여리가 일찍이 교외에 갔는데 땅바닥에 말 발자국이 무수히 난 것을 봤다. 여리는 그 중 하나를 가리키며 "이것은 기이한 준마로다."라고 말하고는 그 말을 바꿔왔는데, 그 말은 정말로 뛰어난 말이었다. [[분류:요나라의 인물]][[분류:978년 사망]]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