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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슈테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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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슈테멘코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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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소련 국장.svg
소비에트 연방군 총참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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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농적군 사령관
Штаб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ой Красной Армии
초대
제2대
제3대
파벨 레베데프
미하일 프룬제
세르게이 카메네프
제4대
제5대
제6대
미하일 투하쳅스키
보리스 샤포시니코프
블라디미르 트리안다필로프
제7대
알렉산드르 예고로프
노농적군 총참모장
Генеральный штаб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ой Красной Армии
제8대
제9대
제10대
보리스 샤포시니코프
키릴 메레츠코프
게오르기 주코프
제11대
제12대
제13대
보리스 샤포시니코프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알렉세이 안토노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 총참모장
Генеральный штаб Вооружённых Сил Союза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제14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세르게이 슈테멘코
바실리 소콜롭스키
마트베이 자하로프
제18대
제19대
제20대
제21대
세르게이 비류조프
마트베이 자하로프
빅토르 쿨리코프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세르게이 아흐로메예프
미하일 모이셰
블라디미르 로보프
빅토르 삼소노프


명목상 노농적군 사령관부터 총참모장으로 칭할 수 있음.







소비에트 연방 제15대 총참모장

제4대 바르샤바 조약 기구 통합군 총참모장
세르게이 마트베예비치 슈테멘코
Серге́й Матве́евич Штеме́нко
Sergei Matveevich Shtemenko


출생
1907년 2월 7일
러시아 제국 돈보이스코주 우류핀스크
(現 러시아 남부 연방관구 볼고그라드주 볼고그라드 우류핀스크시)
사망
1976년 4월 23일 (향년 69세)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묘소
노보데비치 묘지
재임기간
제15대 총참모장
1948년 11월 ~ 1952년 6월
제4대 WTO 총참모장
1968년 8월 ~ 197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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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소비에트 지상군
1926년 ~ 1976년
최종 계급
대장 (소비에트 지상군)
주요 참전
독소전쟁
주요 서훈
레닌훈장
노력적기훈장
대조국공로훈장 3등급
수보로프 훈장 1등급 (2회)
수보로프 훈장 2등급
적기훈장 (5회)[1]
적성훈장
쿠투조프 훈장 1등급
[1]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부터 2회 수여받았다.






1. 개요[편집]


소련장군.


2. 생애[편집]


가난한 카자크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래 성씨는 슈테멘코프였으나 1916년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가 우크라이나의 전형적인 성씨인 슈테멘코로 개명했다.

1924년에 교구 학교를 졸업한 뒤 모스크바 중앙 전신 건물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했다. 1926년 10월 노농적군에 징집된 뒤 크라신 포병학교에서 교육받았다.

1927년 9월 세바스토폴 방공학교로 전학 간 뒤 1930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세바스토폴의 우크라이나 군관구 제121방공포연대에서 복무했다. 1931년에 정찰소대장, 1932년에 포병포대장을 역임했다. 이후 1937년 12월부터 키예프 특수 군관구 제5전차여단의 전차훈련대대장으로 임명됐다.


2.1. 제2차 세계 대전[편집]



2.1.1. 독소전쟁[편집]


1941년 8월부터 중부전선 부참모장을 역임했으나, 과로를 견디지 못해 남서부 및 서부전선 사령관 보좌관으로 좌천됐다. 슈테멘코는 노력 끝에 1943년 4월부터 제1작전참모장으로 임명됐으며, 독일 국방군일본 제국군 궤멸 계획을 세우는 소련군 최고사령부의 주요 지도자 중 하나로 꼽혔다. 테헤란 회담 당시 슈테멘코도 최고사령관을 따라 참석해 전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1944년 2월부터 3월까지 세묜 티모셴코와 함께 독일 국방군의 약점을 찾아 서부전선 사령관으로서 승리를 쟁취했다.


2.2. 전후[편집]


대장이었던 슈테멘코는 라브렌티 베리야 체포 당시 중장으로 2계급 강등당했다. 당시 국방장관니콜라이 불가닌은 슈테멘코가 베리야와 함께 주요 군사 기밀을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왜곡해서 보고한 게 원인이라고 밝혔다. 1953년 7월 21일, 슈테멘코는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누명을 벗겨달라는 편지를 보냈으나, 완벽하게 위협에서 탈출하진 못했다. 여전히 중장 계급장을 부착한 채 목숨을 부지해서 서시베리아 군관구 사령관으로 좌천된 것으로 끝났다.

1956년 8월부터 상장으로 진급 후 정보참모장을 역임했으나 또 다시 눈엣가시에 들게 됐다. 그나마 자신을 아끼던 게오르기 주코프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흐지부지하게 넘어갔다. 1957년 11월, 그는 강제 해임된 뒤 볼가 군관구 부사령관, 남캅카스 군관구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1968년 2월, 무사히 복권된 슈테멘코는 다시 대장 계급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