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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시티 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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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의 프로농구팀. 서부 컨퍼런스 노스웨스트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오클라호마시티.
한국 팬들에게는 러셀 웨스트브룩과 케빈 듀란트가 뛰었던 팀으로 가장 잘 알려졌다.[2] 2016년 오프시즌 케빈 듀란트의 충격적인 이적 이후 포기하지 않고 폴 조지, 카멜로 앤서니 등을 영입하며 지속적으로 대권에 도전했으나, 러셀 웨스트브룩의 기량하락[3] 과 주전들의 잦은 부상으로 3년 연속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을 당하게 되었고, 카와이 레너드의 충격적인 리쿠르팅에 의해 순식간에 리셋버튼을 누르게 된 비운의 팀. 하지만 이후 모은 수많은 1라운드 지명권 및 새로운 코어 때문에 여전히 현재와 미래가 기대되는 팀이다.
팀명인 '썬더'는 구단주 클레이 베넷이 공모전에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름을 주고 싶었다."는 뜻으로 고른 이름이다.
1967년에 창단한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기원으로 해 선수단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위키백과나 Basketball-Reference에서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가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계승한 팀으로 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시애틀과 관계없는 완전한 신생팀이다.[4]
스타벅스의 회장이었던 하워드 슐츠는 2001년에 시애틀 슈퍼소닉스 구단을 배리 액클리에게서 사들였다. 하지만 1979년 파이널 우승, 1990년대 초~중반 켐프-페이튼 콤비의 '소닉 붐' 등으로 화려한 영광을 누렸던 소닉스는 2000년대 들어서는 예전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며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상황을 타개해 보고자 했던 슐츠 구단주는 2006년에 홈구장인 키 아레나를 보수하겠다며 시애틀 시 당국에 2억 5천만 달러를 요구했다. 그러나 시 의회가 이를 거절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때 시애틀 시 당국은 무리한 요구라며 일축했고, 이로 인해 찬반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소닉스의 편은 많지 않았다. 주민투표로 결정해도 소닉스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5] 도 나온 나머지 슐츠는 구단을 운영한 5년간 순손실만 600만 달러를 남기고 오클라호마 지역 사업가 클라이 베넷에게 구단을 팔았다.
새 구단주가 된 베넷은 한 술 더 떠서 새로운 구장을 짓고자 했다. 그는 시애들 당국에 신규 구장 건설에 필요한 5억 달러를 부담해 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만약 요구가 묵살된다면 연고지를 옮기겠다."며 최후통첩 의사까지 밝혔다. 이에 시애틀 시 당국은 "그래, 갈 수 있으면 가봐라"는 식으로 배째라를 시전했다. 만약 소닉스가 불스나 레이커스와 같은 빅클럽 또는 인기팀 레벨이라면 들을 수 없는 답변일 것이다.
애초에 키 아레나는[6] 1962년에 지어져 두 번 보수를 거친 바 있는 체육관으로 지은지 40년이 넘었다. 이는 최근에 지어진 스테이플스 센터, 뱅커스 라이프 필드하우스, 필립스 아레나, 토요타 센터와 비교해봐도 비교적 허름했고, VIP 고객을 모시기 위한 스카이박스도 규모나 양적인 면에서 타 구단에 처지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시애틀은 2005년의 짧은 성공 이후에 쭉 내리막길을 걷던 상황이었고, 이 와중에 시민들의 세금을 들여서 새로운 경기장을 짓기에는 미국의 경기 상황이 썩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관중들을 오게 만들기 위해 구단이 노력한 것도 솔직히 없었다. 좋은 선수 영입에 늘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애시당초 시애틀 시 측은 구단측에 2009/10 시즌까지 기다려 보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키 아레나에서도 충분히 많은 문화 행사가 치뤄지고 있기에 당장 큰 돈을 들여 구장을 지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플레이오프조차 못 나가고 1년에 전국방송 채널을 타는 일도 거의 없는 소닉스를 위한 투자가 급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소닉스는 31승 51패에 그쳤던 2006/07 시즌에 평균 15,955명만이 입장해 NBA 관중동원 순위에서 28위를 기록했다. 창단 4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친 걸 생각해보면 결과는 참담했다. 총 관중수만 보면 인디애나 페이서스가 기록한 29위보다 겨우 2만명 많은 수치였다. 당연히 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보다 더 아쉬운 점은 소닉스가 스타 영입을 통해 성적을 올리기보다는 구단 수익과 직결되는 시설 보수만으로 해결코자 했다는 점이다. 시애틀 시가 야속해 보일수도 있지만, 시애틀 시 역시 시민의 세금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있었기에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런저런 원인들로 인해 키 아레나를 대체하거나, 대대적으로 보수하기 위한 공채 발행은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베넷은 이에 대응하여 원래 자신의 사업 기반인 오클라호마로의 연고 이전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연고지 이전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소극적인 데이비드 스턴 총재도 시애틀의 낙후된 시설을 지적하면서 "구단을 돕지 않겠다면 우리가 떠날 것"이라며 "우리가 싫다면 언제든 짐을 싸겠다. 우리를 받아줄 곳은 많다."며 강경 입장을 밝히자 오클라호마로의 연고 이전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마침 처음으로 4대 메이저 스포츠의 연고지를 가질 기회를 잡은 오클라호마 쪽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키 아레나의 사용권 계약이 아직 2년 더 남았던 것. 시애틀 시 당국에서 그 '괘씸죄'를 물어 키 아레나의 계약금과 동시에 계약 기간이 끝나는 2009/10 시즌까지 떠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여 구단주와 시애틀 시 간의 법적 소송으로 번졌다. 결국 이 법적 분쟁은 양측이 합의를 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합의 내용은 우선 위약금으로 구단에서 시애틀 시에 4,500만 달러를 지급하고, 시애틀에 향후 5년간 새로운 NBA 팀 입성은 허용되지 않으며, 시애틀 시가 키 아레나 보수를 위한 조례를 만든다면 추가로 3,000만 달러를 물어주는 것이 하나였다. 참고로 이 조항 중에서 키 아레나 보수 조례는 여전히 제정되지 않아서 3,000만 달러는 물어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제일 중요한데,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권리, 로고, 색상, 팀의 트로피와 기념품, 영구결번 배지 등의 소유권은 시애틀 시가 갖는다는 것.[7] 대신에 오디오 스피커나 운영 장비들은 이전하는 구단의 소유였지만, 중요한 역사가 시애틀로 넘어가면서 사실상 오클라호마 시티로 이전하는 구단은 새롭게 재창단하는 결과를 낳았다.[8] 그리고 이를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 팀은 공모전을 거쳐 전혀 다른 색상과 로고를 가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탈바꿈했다. 이 절차가 마무리된 것은 2008년 여름이었다.
여담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는 1995/96 시즌 그분의 불스 왕조와 결승에서 맞붙었던 숀 켐프, 게리 페이튼, 데틀레프 슈렘프, 샘 퍼킨스 등으로 유명한 팀이었기 때문에 이전 소식에 한번 놀라고 팀명이 썬더라고 하자 국내 팬들 사이에서 삼성 썬더스가 NBA 진출했냐고 또 한번 놀랐다. 그렇다. 비록 복수형 s가 붙지만 KBL 산하 팀이 무려 NBA보다 팀명을 먼저 사용한 경우다.[9]
원래 오클라호마 주는 프로스포츠가 아예 없던 깡촌중 깡촌이다. 오죽하면 캔자스, 네브라스카처럼 사람보다 소가 많은 주 취급을 받을 정도. 흔히 이 지역에 프로스포츠가 발을 못 붙인 게 대학 스포츠의 강세 때문이라고 하나 그건 원인과 결과를 뒤집은 이야기다. 프로스포츠가 발을 안 들였기에 대학 스포츠가 강세였다.
프로스포츠가 발을 안 들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워낙 인구수가 적은 주라 시장성이 없어서다. 오클라호마의 인구수는 380만인데 사실 이 정도 인구수라도 특정 도시와 그 주변부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면 시장성은 있다.[10] 하지만 오클라호마의 가장 큰 도시 오클라호마 시티의 인구수는 61만명이다. 메트로 지역으로 인구를 확장해도 131만명 정도이다.
그러나 오클라호마와 비슷하게 390만명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오리건의 포틀랜드는 도시 인구 자체는 오클라호마 시티와 같은 60만명 수준이지만 도시권 인구는 230만명 수준이다. 흑자를 내기 위해서는 인기를 끌어야 하고,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위닝 팀을 만들어야 하고, 위닝 팀을 만들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미국 프로 스포츠 입장에서 61만명 밖에 되지 않는 오클라호마 시티, 주로 단위를 넓혀도 350만명 밖에 거주하지 않는 오클라호마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11]
이런 프로 구단들의 외면 때문에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통칭 수너스라고 하는 오클라호마 대학교 운동부의 스포츠가 가장 큰 스포츠이자 여흥이었고 그중에서도 텍사스 대학교(일명 텍사스 롱혼스)과 미식축구 라이벌관계가 매우 유명하여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매치중 하나인 Red River Shootout이[12] 유명하다. 참고로 이 레드 리버(Red River)는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주를 경계로 흐르는 강이다. 거기에 통칭 카우보이스라고 부르는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역시 오클라호마 대학과 주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다.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홈구장 뉴올리언스 아레나가 피해를 입어 사용불가능 상태가 된 뉴올리언스 호네츠가 임시로 오클라호마로 연고지를 이전해 2년동안 더부살이를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비록 다른 동네팀이 더부살이로 오긴 했지만, 오클라호마주에서 역사상 최초로 4대 스포츠리그중 한팀이 경기를 한다는 사실에 주민들의 관심이 쏠렸고, 뉴올리언스 시절 매년 50만 후반대의 관중동원으로 리그 꼴찌를 달리던 팀이 오클라호마에서는 2시즌동안 리그 8위에 해당하는 70만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성과를 얻었다[13] .
이것에 크게 자극받은 오클라호마 사람들은 "아예 NBA팀을 유치할까?"라는 여론이 일게 되었고 거기에 절묘한 타이밍에 오클라호마 출신 사업가 클레이 베넷이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인수하고나서 구장문제로 마찰이 발생하자, "신생팀 창단이 안된다면 오클라호마로 오라!"라는 지역 여론이 일게 되고 시애틀 시와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클레이 베넷이 연고지 이전을 선언하여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라는 팀을 새롭게 만들게 된다.
이후 안정적으로 오클라호마에 정착하자마자 새로운 스타들과 함께 11-12시즌 파이널까지 진출하면서 강팀으로 거듭나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12-13시즌에도 관객수가 74만을 넘어가며 좌석 점유율 100%를 찍는다. 총관객수로도 오클라호마 밑으로 보스턴 셀틱스 같은 유명팀이 있는 등 유타 재즈처럼 지역 인기팀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황. 이 팀의 독특한 특징으로는 신인선수 발굴능력이다. 20년도 안된 역사인데 듀란트, 웨스트브룩, 하든, 이바카, 셰이 길저스알렉산더 등 수 많은 스타 선수들을 배출했다.
놀라운 것은 수년간 지역TV 시청률이 모든 NBA팀중 압도적인 1위라는 것이다. 오클라호마 썬더의 지역 TV 시청률은 8.6%로 전체 2위인 5.9%인 샌안토니오보다 무려 45% 이상 높다. 물론 좋은 성적 덕분이기도 하지만, 찬밥신세였던 시애틀 시절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성장이라고 할만하다. 결과적으로 이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프로스포츠팀을 갈망했는지 알 수 있다[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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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NBA의 프로농구팀. 서부 컨퍼런스 노스웨스트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오클라호마시티.
한국 팬들에게는 러셀 웨스트브룩과 케빈 듀란트가 뛰었던 팀으로 가장 잘 알려졌다.[2] 2016년 오프시즌 케빈 듀란트의 충격적인 이적 이후 포기하지 않고 폴 조지, 카멜로 앤서니 등을 영입하며 지속적으로 대권에 도전했으나, 러셀 웨스트브룩의 기량하락[3] 과 주전들의 잦은 부상으로 3년 연속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을 당하게 되었고, 카와이 레너드의 충격적인 리쿠르팅에 의해 순식간에 리셋버튼을 누르게 된 비운의 팀. 하지만 이후 모은 수많은 1라운드 지명권 및 새로운 코어 때문에 여전히 현재와 미래가 기대되는 팀이다.
팀명인 '썬더'는 구단주 클레이 베넷이 공모전에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름을 주고 싶었다."는 뜻으로 고른 이름이다.
2.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후신격 구단[편집]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로고)
1967년에 창단한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기원으로 해 선수단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위키백과나 Basketball-Reference에서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가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계승한 팀으로 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시애틀과 관계없는 완전한 신생팀이다.[4]
스타벅스의 회장이었던 하워드 슐츠는 2001년에 시애틀 슈퍼소닉스 구단을 배리 액클리에게서 사들였다. 하지만 1979년 파이널 우승, 1990년대 초~중반 켐프-페이튼 콤비의 '소닉 붐' 등으로 화려한 영광을 누렸던 소닉스는 2000년대 들어서는 예전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며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상황을 타개해 보고자 했던 슐츠 구단주는 2006년에 홈구장인 키 아레나를 보수하겠다며 시애틀 시 당국에 2억 5천만 달러를 요구했다. 그러나 시 의회가 이를 거절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때 시애틀 시 당국은 무리한 요구라며 일축했고, 이로 인해 찬반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소닉스의 편은 많지 않았다. 주민투표로 결정해도 소닉스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5] 도 나온 나머지 슐츠는 구단을 운영한 5년간 순손실만 600만 달러를 남기고 오클라호마 지역 사업가 클라이 베넷에게 구단을 팔았다.
새 구단주가 된 베넷은 한 술 더 떠서 새로운 구장을 짓고자 했다. 그는 시애들 당국에 신규 구장 건설에 필요한 5억 달러를 부담해 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만약 요구가 묵살된다면 연고지를 옮기겠다."며 최후통첩 의사까지 밝혔다. 이에 시애틀 시 당국은 "그래, 갈 수 있으면 가봐라"는 식으로 배째라를 시전했다. 만약 소닉스가 불스나 레이커스와 같은 빅클럽 또는 인기팀 레벨이라면 들을 수 없는 답변일 것이다.
애초에 키 아레나는[6] 1962년에 지어져 두 번 보수를 거친 바 있는 체육관으로 지은지 40년이 넘었다. 이는 최근에 지어진 스테이플스 센터, 뱅커스 라이프 필드하우스, 필립스 아레나, 토요타 센터와 비교해봐도 비교적 허름했고, VIP 고객을 모시기 위한 스카이박스도 규모나 양적인 면에서 타 구단에 처지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시애틀은 2005년의 짧은 성공 이후에 쭉 내리막길을 걷던 상황이었고, 이 와중에 시민들의 세금을 들여서 새로운 경기장을 짓기에는 미국의 경기 상황이 썩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관중들을 오게 만들기 위해 구단이 노력한 것도 솔직히 없었다. 좋은 선수 영입에 늘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애시당초 시애틀 시 측은 구단측에 2009/10 시즌까지 기다려 보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키 아레나에서도 충분히 많은 문화 행사가 치뤄지고 있기에 당장 큰 돈을 들여 구장을 지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플레이오프조차 못 나가고 1년에 전국방송 채널을 타는 일도 거의 없는 소닉스를 위한 투자가 급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소닉스는 31승 51패에 그쳤던 2006/07 시즌에 평균 15,955명만이 입장해 NBA 관중동원 순위에서 28위를 기록했다. 창단 4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친 걸 생각해보면 결과는 참담했다. 총 관중수만 보면 인디애나 페이서스가 기록한 29위보다 겨우 2만명 많은 수치였다. 당연히 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보다 더 아쉬운 점은 소닉스가 스타 영입을 통해 성적을 올리기보다는 구단 수익과 직결되는 시설 보수만으로 해결코자 했다는 점이다. 시애틀 시가 야속해 보일수도 있지만, 시애틀 시 역시 시민의 세금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있었기에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런저런 원인들로 인해 키 아레나를 대체하거나, 대대적으로 보수하기 위한 공채 발행은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베넷은 이에 대응하여 원래 자신의 사업 기반인 오클라호마로의 연고 이전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연고지 이전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소극적인 데이비드 스턴 총재도 시애틀의 낙후된 시설을 지적하면서 "구단을 돕지 않겠다면 우리가 떠날 것"이라며 "우리가 싫다면 언제든 짐을 싸겠다. 우리를 받아줄 곳은 많다."며 강경 입장을 밝히자 오클라호마로의 연고 이전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마침 처음으로 4대 메이저 스포츠의 연고지를 가질 기회를 잡은 오클라호마 쪽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키 아레나의 사용권 계약이 아직 2년 더 남았던 것. 시애틀 시 당국에서 그 '괘씸죄'를 물어 키 아레나의 계약금과 동시에 계약 기간이 끝나는 2009/10 시즌까지 떠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여 구단주와 시애틀 시 간의 법적 소송으로 번졌다. 결국 이 법적 분쟁은 양측이 합의를 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합의 내용은 우선 위약금으로 구단에서 시애틀 시에 4,500만 달러를 지급하고, 시애틀에 향후 5년간 새로운 NBA 팀 입성은 허용되지 않으며, 시애틀 시가 키 아레나 보수를 위한 조례를 만든다면 추가로 3,000만 달러를 물어주는 것이 하나였다. 참고로 이 조항 중에서 키 아레나 보수 조례는 여전히 제정되지 않아서 3,000만 달러는 물어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제일 중요한데,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권리, 로고, 색상, 팀의 트로피와 기념품, 영구결번 배지 등의 소유권은 시애틀 시가 갖는다는 것.[7] 대신에 오디오 스피커나 운영 장비들은 이전하는 구단의 소유였지만, 중요한 역사가 시애틀로 넘어가면서 사실상 오클라호마 시티로 이전하는 구단은 새롭게 재창단하는 결과를 낳았다.[8] 그리고 이를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 팀은 공모전을 거쳐 전혀 다른 색상과 로고를 가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탈바꿈했다. 이 절차가 마무리된 것은 2008년 여름이었다.
여담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는 1995/96 시즌 그분의 불스 왕조와 결승에서 맞붙었던 숀 켐프, 게리 페이튼, 데틀레프 슈렘프, 샘 퍼킨스 등으로 유명한 팀이었기 때문에 이전 소식에 한번 놀라고 팀명이 썬더라고 하자 국내 팬들 사이에서 삼성 썬더스가 NBA 진출했냐고 또 한번 놀랐다. 그렇다. 비록 복수형 s가 붙지만 KBL 산하 팀이 무려 NBA보다 팀명을 먼저 사용한 경우다.[9]
3. 오클라호마의 농구[편집]
원래 오클라호마 주는 프로스포츠가 아예 없던 깡촌중 깡촌이다. 오죽하면 캔자스, 네브라스카처럼 사람보다 소가 많은 주 취급을 받을 정도. 흔히 이 지역에 프로스포츠가 발을 못 붙인 게 대학 스포츠의 강세 때문이라고 하나 그건 원인과 결과를 뒤집은 이야기다. 프로스포츠가 발을 안 들였기에 대학 스포츠가 강세였다.
프로스포츠가 발을 안 들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워낙 인구수가 적은 주라 시장성이 없어서다. 오클라호마의 인구수는 380만인데 사실 이 정도 인구수라도 특정 도시와 그 주변부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면 시장성은 있다.[10] 하지만 오클라호마의 가장 큰 도시 오클라호마 시티의 인구수는 61만명이다. 메트로 지역으로 인구를 확장해도 131만명 정도이다.
그러나 오클라호마와 비슷하게 390만명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오리건의 포틀랜드는 도시 인구 자체는 오클라호마 시티와 같은 60만명 수준이지만 도시권 인구는 230만명 수준이다. 흑자를 내기 위해서는 인기를 끌어야 하고,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위닝 팀을 만들어야 하고, 위닝 팀을 만들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미국 프로 스포츠 입장에서 61만명 밖에 되지 않는 오클라호마 시티, 주로 단위를 넓혀도 350만명 밖에 거주하지 않는 오클라호마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11]
이런 프로 구단들의 외면 때문에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통칭 수너스라고 하는 오클라호마 대학교 운동부의 스포츠가 가장 큰 스포츠이자 여흥이었고 그중에서도 텍사스 대학교(일명 텍사스 롱혼스)과 미식축구 라이벌관계가 매우 유명하여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매치중 하나인 Red River Shootout이[12] 유명하다. 참고로 이 레드 리버(Red River)는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주를 경계로 흐르는 강이다. 거기에 통칭 카우보이스라고 부르는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역시 오클라호마 대학과 주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다.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홈구장 뉴올리언스 아레나가 피해를 입어 사용불가능 상태가 된 뉴올리언스 호네츠가 임시로 오클라호마로 연고지를 이전해 2년동안 더부살이를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비록 다른 동네팀이 더부살이로 오긴 했지만, 오클라호마주에서 역사상 최초로 4대 스포츠리그중 한팀이 경기를 한다는 사실에 주민들의 관심이 쏠렸고, 뉴올리언스 시절 매년 50만 후반대의 관중동원으로 리그 꼴찌를 달리던 팀이 오클라호마에서는 2시즌동안 리그 8위에 해당하는 70만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성과를 얻었다[13] .
이것에 크게 자극받은 오클라호마 사람들은 "아예 NBA팀을 유치할까?"라는 여론이 일게 되었고 거기에 절묘한 타이밍에 오클라호마 출신 사업가 클레이 베넷이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인수하고나서 구장문제로 마찰이 발생하자, "신생팀 창단이 안된다면 오클라호마로 오라!"라는 지역 여론이 일게 되고 시애틀 시와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클레이 베넷이 연고지 이전을 선언하여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라는 팀을 새롭게 만들게 된다.
이후 안정적으로 오클라호마에 정착하자마자 새로운 스타들과 함께 11-12시즌 파이널까지 진출하면서 강팀으로 거듭나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12-13시즌에도 관객수가 74만을 넘어가며 좌석 점유율 100%를 찍는다. 총관객수로도 오클라호마 밑으로 보스턴 셀틱스 같은 유명팀이 있는 등 유타 재즈처럼 지역 인기팀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황. 이 팀의 독특한 특징으로는 신인선수 발굴능력이다. 20년도 안된 역사인데 듀란트, 웨스트브룩, 하든, 이바카, 셰이 길저스알렉산더 등 수 많은 스타 선수들을 배출했다.
놀라운 것은 수년간 지역TV 시청률이 모든 NBA팀중 압도적인 1위라는 것이다. 오클라호마 썬더의 지역 TV 시청률은 8.6%로 전체 2위인 5.9%인 샌안토니오보다 무려 45% 이상 높다. 물론 좋은 성적 덕분이기도 하지만, 찬밥신세였던 시애틀 시절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성장이라고 할만하다. 결과적으로 이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프로스포츠팀을 갈망했는지 알 수 있다[14][15] .
4.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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