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주니치 드래곤즈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의 프로 야구단. 연고지는 아이치현 나고야시. 소유주는 주니치 신문사 (
1936년 일본프로야구 원년부터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4개 팀[11] 중 하나로 주부 지방을 대표하는 센트럴리그의 강호이자 인기 팀이었고 한때는 리그에서 요미우리와 더불어 유이하게 비밀번호를 기록하지 않은 팀이었다.
1990년대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일본프로야구 구단이였다. 이유는 선동열, 이상훈, 이병규[12] , 이종범[13] 등 많은 한국인 선수가 이 팀을 거쳐갔기 때문. 그리고 1982년, 한국에서 MBC 청룡이 창단하자 같은 '드래곤팀' 이라는 이유로 서로 자매구단 결연을 맺기도 했으며, 이는 MBC가 LG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인연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1987년부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도 제휴 중. 당장 본 문서에 나와있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로고도 다저스의 로고와 같은 영어 폰트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2. 팀 컬러[편집]
원래 팀 컬러는 일명 '공룡타선' 이라고 불리던, 나고야돔에 비해 작은 구장인 나고야 구장에서 홈런을 양산하는 스타일이었다. 당장에 구단 레전드만 보더라도 에토 신이치, 오시마 야스노리, 야자와 켄이치, 우노 마사루, 오치아이 히로미츠, 타이호 야스아키 등 강타자들이 다수 떠오를 정도.
그러나 1997년에 현재의 홈 구장인 나고야 돔[14] 을 홈 구장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이후 1년의 조정기간을 거친 뒤 팀을 순식간에 수비적인 투수 중심으로 재편하였다. 현재는 일본프로야구 12구단 중 가장 수비적인 야구를 하는 팀이 되었으며, 이러한 수비적인 팀 컬러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정립한 이래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을 거쳐 완성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내에서는 간간히 FC 주니치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때문에, 2010년대 이후로는 고질적으로 투신타병이 팀 컬러로 자리잡아[15] 2022년에는 26경기 영봉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우고, 타카하시 히로토, 오가사와라 신노스케 등 에이스 투수들의 승리가 막장 타선 때문에 날아가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으며 주니치 투수들이 대표팀에 꼽히면 타자들이 주니치보다 점수를 잘 내줘서 행복야구를 하고 왔다는 소리가 나온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오치아이 감독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투수진의 경우 다른 팀에 갈 경우 못해도 3, 4선발쯤은 할 것 같은 선수들이 중계 혹은 2군 대기 중일 수준으로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야수진은 전 포지션이 골든글러브 후보로 꼽힐 정도로 야수진 또한 막강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그 당시의 중심선수들의 대체 선수 육성 미흡과 드래프트 실책 등의 이유로 세대교체에 대실패했고[16] , 그 여파로 과거에는 압살했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게도 밀림과 동시에 최약체 자리까지 물려받는 신세로 내려앉았다. 더불어서 과거와는 달리 그 투수친화 구장을 홈으로 끼고도 요미우리, 히로시마, 요코하마, 세이부, 소프트뱅크 같은 팀들에게 밥먹듯이 10실점 이상을 내주는 경기가 속출하고 있다.
또한 굉장히 보수적인 경영을 하는 팀인데, 지방지 신문사가 모기업인 특성상 자회사인 드래곤즈도 상당히 보수적인 경영과 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원래 언론사는 기업문화가 경직되고 보수적인 편인데 더군다나 오랜 세월 나고야에서 확장도 축소도 잘 안 해오며 지내온 팀이라 굉장히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 좋게 말하면 연공서열인 거고 나쁘게 말하면 공무원스러운 문화. 그래서 확실히 타 팀보다 장기근속하는 선수가 많은 편으로 일본프로야구 최고령 등록선수였던 야마모토 마사를 비롯 30대 후반~40대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베테랑들이 타 팀보다 많은 편이며, FA역시 FA로 나가는 선수도 들어오는 선수도 적은 편이다. 한번 뽑은 선수를 가족처럼 오래오래 가는 문화로 코칭스탭이나 감독도 교진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자팀 선수 출신을 선호하는 편이다. 또한 드래프트에서 신인을 뽑을 때도 구단의 영향권인 지역(아이치, 기후, 미에현 동부, 시즈오카현 서부) 출신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초특급 신인의 경우에는 당연히 추첨을 불사하고 지명을 하지만 그 추첨에서 떨어지거나 그런 스타 후보 선수들이 드래프트에 나오지 않을 때는 팔이 안으로 굽는 지명을 다른 구단보다 두드러지게 하는 편이다.
장점이라면 역시 베테랑들이 잘 해줄 땐 경험많은 베테랑들로 안정된 성적을 낼 수 있고, 또 오래 뛴 선수들은 일종의 브랜드화가 되어 상품도 잘 팔리지만, 2010년대처럼 세대교체에 실패했을 시 베테랑이 오래오래 해먹으니 대체자원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길고 긴 암흑기에 빠질 수가 있다.
또한 2010년대 이후로는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기도 한데, 모기업 경영이 날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신문사와 지방방송국 사업을 하는데 알다시피 종이신문과 TV방송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인해 날로 경영사정이 안좋아지고 있다. 덕분에 가뜩이나 세대교체에 실패해서 암흑기에 빠져 있는데, 이를 돈의 힘으로 타파하기도 힘든 상황. 덕분에 2022년 이후 연봉총액은 그 카프를 제치고 12구단 중 최저액을 찍었을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약팀이 허리띠마저 바짝 졸라매니 이에 불만을 가진 알렉스 게레로, 마타요시 카츠키 등의 뛰어난 선수들 역시 연봉 문제로 이탈하고 그러면 또 이 선수들이 벌어다주는 입장권 수익과 상품판매 수익도 줄어들고 성적 역시 나빠지니 돈은 더 안 벌리고...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 팀.
3. 구단 역사[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4. 관중수 추이[편집]
주부 지방을 대표하는 야구팀답게, 팀이 암흑기에 빠져도 2만 7~8천명대의 평관을 유지하는 반면, 팀이 방어율왕 오노 유다이를 배출하고 시즌 후반부까지 3위 싸움을 벌이며 비밀번호를 탈출하느냐 마느냐로 팬들을 들었다놨다 했던 2019시즌도 3만1천명대로 크게 관중이 늘지 않는다.
일본프로야구 창단부터 주부의 나고야에서 연고지를 한 번도 옮기지 않은 데다가 스폰서도 나고야 지방지인 주니치 신문으로 지역색이 굉장히 강한 팀이라, 아무리 팀이 못 해도 지역을 베이스로 한 콘크리트가 워낙 튼튼해서[17] 관중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반면 반대로 아무리 잘 해도 나고야 이외에는 팬이 생기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어 크게 늘어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세리그 지방연고팀인 한신은 훨씬 인구가 많은 간사이권 전지역+안티 교진 성향의 팬들을 팬베이스 삼고 있어서 밥그릇 자체가 훨씬 큰데다가 확장성까지 있고, 히로시마 카프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같은 경우 인터넷이나 방송 등을 통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지역을 넘어 팬덤을 확장시켰으며, 파리그는 아예 리그가 단체로 뭉쳐 합심해 팬덤을 확장하는 식으로 나가는데 주니치는 경영이 일본에서 가장 보수적인 팀 중 하나로 저렇게 언제나 크게 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줄지도 않는 팬덤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근데 그렇게 운영해도 아이치를 꽉 쥐고 있어[18] 평관수는 일본프로야구 상위권이라 밥그릇 걱정이 없으니 더더욱 보수적인 경영 일변도로 일관하는 구단. 덕분에 일본내에서 주니치 응원하는 사람=100% 나고야 출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19]
5. 홈 구장[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제2구장은 나가라가와 구장, 하마마츠 구장, 토요하시 시민구장이 있다.
6. 유니폼[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7. 응원[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8. 마스코트[편집]
이 팀의 마스코트인 코알라 도아라가 서브컬쳐계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pixiv에서도 도아라의 팬아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심지어 figma브랜드의 액션피규어로 출시되기까지 했다. 말 못하는 마스코트가 TV, 라디오에 나오고.. 광고는 물론 책에 음반까지 냈다. 관련상품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전 구단 통틀어서 상위권의 인기 캐릭터.[20] 4차원적인 행동 등으로 이상하지만 귀엽긴 하다 라는 반응이 대다수. 하지만 그 역시 2013년 오프시즌의 연봉삭감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즌 도중 왼손 중지가 골절되는 바람에 퍼포먼스를 할 수 없게 되어 연봉이 식빵 1kg에서 750g으로(...) 25% 삭감되었다고 한다.기자회견 기사
DJ 도아라라는 명의로 음반도 냈는데... 곡조가 너무 노골적이라 "설마 걔가 만든거 아님??" 생각했고 그 분의 새 앨범에 수록이 되어서 빼도 박도 못하게 이 분 제대로 확정.
인터리그 기간 동안에는 도아라가 퍼시픽리그 팀 상징 동물들을 약올리는 광고를 내기도 한다.
야쿠르트 스왈로즈 마스코트인 츠바쿠로 에이전트(...)이기도 하다.
얘 말고도 샤오롱과 파오롱[22] 이라는 용에서 모티브를 따온 애들도 있다.
9. 이모저모[편집]
9.1. 일본프로야구 대표 콩라인[편집]
일본에서 주니치의 이미지는 만년 2위팀. 이러한 점 때문에 KBO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와, MLB에서는 LA 다저스와 많이 엮인다.[23]
이는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이 팀은 창단 이후 전체 역사에서 2위만 26번, 1950년에 일본프로야구가 양대(2)리그제가 된 이후의 기간만 따지면 센트럴리그 2위만 무려 24번 을 해먹었다.
사실 세리그 전통의 강호이지만. 맨날 중요할 때 2위만 해대는 통에 리그 우승 경험도 강호의 이미지에 비해서는 매우 적다. 그것이 실제로 실현된 건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 아래 4번 리그 우승을 하기 이전까지 1954년, 1974년, 1982년, 1988년, 1999년의 단 다섯 번 뿐. 숙명의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홈에서 리그 우승을 내준 뼈아픈 기억도 자주 있다.(...). 1994년의 10.8 결전이나, 1996년 10월 6일 나고야 구장 최종전에서 패배하며 요미우리에게 11.5게임차를 뒤집는 역전 우승[24] 을 확정지어주는 등 통한의 순간들이 적잖이 있었다.[25]
거기다 중요한 게임에 상당히 약해서, 일본시리즈 진출 횟수는 10번인데 우승 횟수는 고작 2번 뿐이다. 그나마도 두 번째로 우승했던 2007년 시즌[26] 의 경우 1위로 진출한 것도 아니고 2위로 리그를 끝낸 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1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발라버리고 올라간 것이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연결된 것[27] . 만년 2위 팀의 명성에 걸맞는 행보였다(...). 팀 첫 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이 1954년이었으니 다음 우승까지 5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이런 얘기도 다 잘나가던 예전에 하던 배부른 소리. 2010년대 들어와서는 콩라인, 아니 락라인은 커녕 A클래스 꼴찌선인 리그 3위도 힘겨울 정도로 침체기를 겪고 있다.
9.2. 한국인 선수와의 인연[편집]
1996년 선동열이 입단한 뒤로 지속적으로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선동열은 1년의 적응기간을 거치긴 했지만 다카쓰 신고, 사사키 카즈히로와 맞먹는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말년을 불태웠고, 그의 뒤를 따라 해태 타이거즈 후배 이종범과 LG 트윈스의 좌완 에이스 야생마 이상훈도 주니치에서 함께 뛰게 되었다. 일본프로야구의 외국인 선수 1군 출전제한이 4명인 것을 감안할 때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고, 선동열을 제외하면 사실 완전히 기대에 부응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적이 훌륭하다까진 아니어도 나쁘지 않은 정도였고 1999년 나고야 돔으로 옮긴 뒤 첫 리그 우승을 하는 등 당시 팀 성적과 분위기가 꽤 좋았기에 한국 삼총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이병규 선수가 소속했다. 그러나 주니치 역대 최고의 외야수 중 하나였던 후쿠도메 고스케의 포지션을 차지한데다가, 고액을 받는 외국인 선수 치고는 성적이 신통치 않아 언론과 팬들에게 자주 까였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뜬금포를 날려대는 통에 참 대놓고 까기는 뭐한 미묘한 상태였다. 그래도 2007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나름 공헌하는 활약을 했고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며 일부 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도. 그러나 2009년에는 완전히 말아먹었고, 본인은 주니치와 재계약을 원한다고 했으나 결국 팀은 시즌 종료 후 재계약을 요청하지 않으며 LG 트윈스로 돌아오게 되었다.[30] 여담으로 라뱅쓰리런 드립 역시 주니치 시절에 생긴 것이다.(...)
한국 고교야구 선수인 송상훈이 2012년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 팀에 6순위로 지명되어, 한국 고교야구에서 드래프트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입단 1년만에 육성선수로 신분이 바뀌었으며 2014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후 한국 선수와의 인연은 끊어진 상황.
다만 요다 츠요시 감독이 2019시즌 종료 후 '과거 주니치는 한국 선수들이 도왔다'면서 한국야구에서 새 전력을 찾아보겠다고 언급. 11월에 개최될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을 시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뒤이어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이종범이 주니치에 2군 코치연수를 가게 되면서 인연이 다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31]
9.3. 기타 이야깃거리[편집]
[32]
- 구단의 대표적인 응원가로 "燃えよドラゴンズ"(타올라라 드래곤즈)'가 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홈구장이 불타 없어졌다.(...) 자세한건 주니치 스타디움참고.주니치가 교진군의 센트럴리그 - 일본시리즈 10연패를 저지한 1974년 나고야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금까지도 즐겨 불러지는 응원가로 자리잡았다. 제목은 당시 일본에 개봉해 인기를 끌던 이소룡 주연의 영화 용쟁호투가 일본에서 '불타라 드래곤' 으로 소개된 것에서 따온 것이다. 주니치에도 정식 구단가는 있지만[33] 타올라라 드래곤즈의 인기 때문에 구단가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수준.
- 원본인 74년판 이외에도 거의 해마다 새로 녹음되었을 정도로 버전이 많은데, 선동열-이상훈-이종범 한국인 3총사를 데리고 리그 우승을 한 1999년판 중에는 한국삼총사 헌정 버전도 찾아볼 수 있다.# 여담으로 이 곡을 작곡한 야마모토 마사유키(山本正之)라는 사람은 첫 작곡이었던 이 곡이 인기를 얻은 후, 타임보칸의 주제가를 작곡하는 등 애니송 작곡가로서 경력을 이어나갔다. 그래서인지 애니송 가수가 맡는 일이 많아 1987년에는 타이라 이사오(#)가, 2002년 이후로는 미즈키 이치로가 보컬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실제 구장에서 트는 구장합창편에서는 2, 3절에 타팀을 약하게 조롱하는 가사가 들어가 있다. 잘 들으면 상대 팀명이 우회적으로 들어가 있다.[34] 이 때문에 원정경기에서 트는 버전은 1절에서 중간을 싹 건너뛰고 곧바로 마지막 절로 건너뛴다.
- 등번호 관련해서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보통 일본 야구계에서 투수 에이스의 등번호가 18번인데 비해[35] 이 팀은 20번이 에이스 번호로 여겨진다. 스기시타 시게루, 곤도 히로시, 호시노 센이치, 고마츠 다츠오 등이 달았고 선동열도 주니치에서 현역시기에 20번을 달고 활동했을 정도. 게다가 보통 에이스 넘버인 18번의 대우가 매우 나쁜데, 역대 투수들 중 18번을 달고 제대로 활약한 사람이 매우 드물다. 그래서 다른 팀에서 트레이드된 선수나 드래프트 하위 순위에 입단한 신인한테 18번을 냅다 던져준다. 오죽하면 '실력은 없는데 18번을 달고 싶으면 주니치로 가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을 정도. 2019년까지는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이름값으로달고 있다가 결번, 이 후 2023년부터 주니치 유니폼을 입는 와쿠이 히데아키가 달 예정이다.
- 톰 셀렉, 타카쿠라 켄이 주연한 영화 '미스터 베이스볼'의 소재로 다뤄졌다. 톰 셀렉이 분한 강타자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뛰게 된다는 스포츠 영화인데, 영화에서 셀렉이 소속해 뛰는 팀이 주니치. 타카쿠라 켄은 감독 역으로 분한다. 여담으로 영화에서 뉴욕 양키스의 주전 1루수이던 셀렉을 일본으로 밀어낸 신인 거포 역으로 출연한 배우가 바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레전드 프랭크 토마스.
어라 양키스래매...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제외한 모든 팀과 신칸센 원정을 통한 신칸센 시리즈가 가능한 팀이다. 도카이도, 산요 선상의 모든 도시들이 4시간 이내 거리에 있어 신칸센을 이용한 이동이 가능하고, 센다이까지 가야하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원정도 도쿄에서 신칸센 환승을 해도 4시간 이내에 도착이 가능하다.
- 오치아이 히로미츠감독이 팀의 두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선사하지 못했다면 세계 프로야구 역사상 세번째로 오랜 기간 우승이 없는 팀이자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장기간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팀의 첫 우승이었던 1954년도 우승에서부터 두번째 우승을 이룬 2007년까지 걸린 기간이 무려 53년이다. 또한 2007년 우승을 통해 세계 프로야구 사상 최장기간 우승이 없는 팀 리스트에서도 먼저 탈출했다. 이렇게 해서 시카고 컵스와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당시에는 인디언스} 둘만이 남았으나 9년 후에 컵스 마저도 이 리스트에서 나가고 가디언스 만이 홀로 남게되었다. 아울러 2007년 우승으로 인해 일본 프로야구 최장기간 우승이 없는 팀의 지위를 잉어네한테 물려주고 1회 우승이란 타이틀 마저 칸사이의 호랑이한테 넘겼다. 아울러 ‘헤이세이 년간 우승을 못이룬 팀’ 클럽도 탈퇴했다.[* 2023년 현재를 기준으로 일본 프로야구 구단들 가운데 21세기 우승이 없는 구단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두팀 뿐이고 특히 히로시마는 리그 유일의 ‘헤이세이 년간 동안 우승을 이루지 못한 팀’이란 불명예 까지 지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두 구단은 우승을 이루는데 장애가 되는 요소가 많아서 근본적인 개선책이 이뤄지지 않는 한, 현재의 한심한 위치에서 벗어날 방법이 안보인다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10. 선수단[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11. 역대 선수[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