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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칼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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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2대

토머스 칼라일

3대

제임스 몬크리프
남작


4대

윌리엄 스털링맥스웰
준남작


5대

에드워드 스탠리
백작


6대

스펜서 캐번디시
공작


7대

아치볼드 프림로즈
백작


8대

스태퍼드 노스컷
백작


9대

숌버그 커
후작


10대

조지 고셴
자작


11대

제임스 로버트슨
남작


12대

알렉산더 브루스


13대

프레드릭 해밀턴템플블랙우드
후작


14대

로버트 핀리
자작


15대

리처드 홀데인
자작


16대

조지 윈덤

17대

길버트 엘리엇머레이키닌먼드
백작


18대

허버트 키치너
백작


19대

데이비드 비티
백작


20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백작


21대

스탠리 볼드윈
백작


22대

존 길모어
준남작


23대

윈스턴 처칠


24대

이언 해밀턴


25대

에드먼드 알렌비
자작


26대

허버트 그리어슨


27대

존 도널드 폴록


28대

앤드루 커닝엄
자작


29대

앨러스터 심

30대

알렉산더 플레밍


31대

시드니 알프레드 스미스


32대

제임스 로버트슨 저스티스

33대

조 그리몬드
남작


34대

제임스 로버트슨 저스티스

35대

맬컴 머거리지

36대

케네스 올솝

37대

조너선 위트니 개리옥 윌즈

38대

고든 브라운

39대

마그누스 마그누손

40대

앤서니 로스

41대

데이비드 스틸
남작


42대

아치 맥퍼슨

43대

뮤리얼 그레이

44대

도니 먼로

45대

맬컴 매클라우드

46대

존 커훈

47대

로빈 하퍼

48대

토머스 디엘
준남작


49대

마크 밸러드

50대

이언 맥워터

51대

피터 맥콜

52대

스티브 모리스

53대

앤 헨더슨

54대

데보라 카옘베







토머스 칼라일
Thomas Carlyle


파일:xpaHB91.jpg

출생
1795년 12월 4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클페찬[1]
사망
1881년 2월 5일 (향년 85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직업
역사학자, 작가
서명
파일:Signature_of_Thomas_Carlyle.svg
1. 개요
2. 일화



1. 개요[편집]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으며. 철학자, 사학자 및 비평가로 이름을 남겼다.

대자연은 의 의복이고 모든 상징, 형식, 제도는 가공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경험론 철학과 공리주의에 도전했다. 에든버러 대학교 명예총장이었으며, 유명한 저서로는 《영웅숭배론》, 《프랑스 혁명》 등이 있다. 전기 작가로는 프리드리히 대왕올리버 크롬웰을 다룬 책도 알려져 있다.

역사학자로써 역사가 몇명의 영웅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그들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영웅사관을 19세기 동안 널리 퍼트린 장본인이다. 이런 영웅사관은 20세기에 허버트 스펜서에게 비판받을 때까지 주요 역사학 조류로 받아들여졌다.

당대의 세습귀족을 비판했다. 그는 귀족을 "하는 일이라고는 잉글랜드가 낸 세를 마음껏 소비하고 잉글랜드의 자고사냥이나 한다"고 비아냥거리고 혈통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귀족을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

일반인들에겐 그의 이름이나 작품보다도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혹은 인도는 포기할 수 있으나 셰익스피어는 포기할 수 없다.)" 란 말로 유명하며, 이 유명한 구절은 바로 《영웅숭배론》에 나온다.

하지만 이 문장은 약간의 의역이 가미된 형태이다. 원 문장은 다음과 같다.

'Indian Empire will go, at any rate, some day; but this Shakspeare does not go, he lasts forever with us.'

(직역)-'인도 제국은 어쨌든 사라지겠지만,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2. 일화[편집]


  • 《프랑스 혁명》[3]이란 작품을 쓸 때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그리 넉넉치 못한 형편에서도 수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프랑스 혁명》이란 책의 초고를 완성했다. 그리고 친구이자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에게 보내 이 방대한 양의 원고의 감수를 맡겼는데, 밀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하녀가 그 원고를 쓰레기인 줄 알고 몽땅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친구 밀에게 이 사건을 전해 들은 칼라일은, 물론 심정이야 증오의 말로 책 한권을 가득 채워도 분이 풀리지 않았겠지만, 그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편지를 보내고, 새로이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다.

3년이 지난 후 1837년, 마침내 완성된 프랑스 혁명을 선보이고,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져 성공하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 악필인 것으로 유명해 관련 일화가 있다.

토마스 칼라일의 책을 맡은 런던의 인쇄소에서 악필로 유명한 그의 원고를 작업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베테랑 문선공을 스카웃하였다. 그 문선공은 자기가 작업할 원고를 받아들고는 소리쳤다.

"젠장! 팔자 한번 사납군! 이 인간 원고 피하려고 런던까지 도망쳤는데!"||

위의 <프랑스 혁명> 일화와 연결하면, 밀의 하녀는 칼라일의 악필을 보고 도저히 원고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쓰레기로 여긴 걸 수도 있다.

[1] #[2] Alain de Botton,'불안',정영목 역,은행나무,2011,p105[3] Charles Dickens는 1859년 11월에 쓴 프랑스대혁명을 다룬 작품 《두 도시 이야기》의 저자 서문에서 "칼라일의 훌륭한 책이 보여준 철학에 뭔가를 더 보태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만, 그 무시무시한 시절을 이해하는 데 쓰이는 대중적이고 생생한 매체들에는 뭔가를 보태고 싶었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