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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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원인
3. 문제가 되는 이유
4. 단어의 남용



1. 개요[편집]


특정 국가의 내정, 혹은 타국과의 대립 등의 정치적 상황에 다른 국가나 민족이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 다양한 원인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다양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그 국가의 장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되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러한 사례가 많다. 특히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고 외세의 개입으로 나라가 아예 타국에 흡수되어버린 역사가 있는 한국에서 이는 더더욱 나쁜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으며 때문에 국내 문제에 타국이 개입하는 일 자체를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다.

외세를 이용해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행위의 경우 형법에서 외환의 죄로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2. 원인[편집]


외세와 엮이게 되는 상황은 외교라는 것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타국과 전쟁을 하게 되어도 서로간에 개입을 하는 것이고, 단순히 외교 관계를 맺고 인사나 물자 등을 교환하는 것도 엄밀히 말해서 외세와의 관계 형성이다. 따라서 외세의 개입을 극히 다양한 원인에 의해 나타나며, 일정한 원인으로 특정짓기도 어렵다.

다만 흔히 생각하는 특정 국가의 내정에 외세가 개입하게 되는 경우는 자의적인 경우와 타의적인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그 국가의 지도층이 자의적으로 타국을 내정에 끌어들였다면 자의적인 것이고, 그 국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끼어들었다면 타의적인 경우라 볼 수 있다. 다만 어느 정도 외교관계라는 것이 형성된 지역이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명백한 내정간섭은 금기시되기 마련이므로, 대개의 개입은 자의적인 원인에 따라 발생하거나, 부분적으로라도 자의적인 측면이 존재했던 경우가 많다.


3. 문제가 되는 이유[편집]


엄밀히 말해 외세의 개입은 외교라는 것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상으로 기록되지 않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사실상 인류 문명들은 서로간에 외교라는 것을 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서로간의 내정이나 외정 전부에 외세라고 여겨지는 세력들이 개입해오는 일은 수두룩하게 벌어졌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의 발발이나 여기에 명나라가 개입한 것 또한 외세의 개입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결과는 외세에 대한 안 좋은 인식과는 달리 결국 일본이라는 침략 세력을 몰아내는 좋은 결과로 끝났다. 또한 삼국통일전쟁이나 나당전쟁의 경우도 삼국을 모두 한민족의 역사로서 인식하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나쁜 결말을 맺은 외세의 개입의 케이스이지만, 정작 당사국인 신라는 오히려 엄연한 외세이자 자국에 대한 위협 대상인 고구려와 백제를 당이라는 외세를 통해 소멸시키고 국가 안정을 불러오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성공적인 결말[1]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즉, 외세의 개입이 언제나 나쁜 결말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세의 개입이라는 상황에 대한 이미지가 최악으로 치달은 결정적인 사건인 경술국치의 경우, 시기적으로 앞선 두 케이스와는 너무나도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명나라의 경우 조선과는 전통적인 우호국이었으며, 개입의 목표 자체가 우방국인 조선이 적대국인 일본에 점령되어 적대국으로 바뀌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조선의 입장에서 나쁘게 나타날 이유는 없었다. 물론 전쟁수행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존재했기는 하지만, 명나라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또 삼국시대의 당나라의 경우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가 끌어들인 또다른 외세인 말갈과 일본까지 당의 힘을 빌려 격퇴하고, 이후 당이 신라까지도 접수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는 외세였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신라까지도 넘어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신라의 나쁘지 않은 전쟁수행능력과 더불어 복잡한 당의 내부 정치적 사정과 토번의 압박이라는 대외적 원인이 중요하게 작용함으로서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반면 강화도 조약 시점의 일본의 경우, 애초부터 조선을 제국주의적 식민국가로서 흡수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는 외세였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당시 일본은 서구적인 제국주의 국가로서 발돋움하기 위해 조선을 흡수하는 것에 국가의 사활을 걸고 있었고, 여기에 당대의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한 당시 조선 수뇌부, 그리고 조선을 두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일본에게 밀려난 청과 러시아라는 대외적 변수가 합쳐져 결국 국가 자체를 외세에 넘기게 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처럼 외세의 개입이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되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외교라는 것의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동서고금 외교의 기본은 서로가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끌어오기 위한 협상과 힘겨루기의 과정이며 따라서 상대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끌어오는 것은 상대 국가에 비해 자국의 국력과 위세가 압도적이거나, 자국에 세기의 먼치킨급 외교관이 존재하거나 하는 케이스가 아니면 존재하기 힘들다. 즉, 외세를 통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려 들거나, 다른 타국과의 마찰을 해소하려는 등의 시도를 할 경우, 상대 국가는 당연히 맨입으로 이러한 요청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댓가로 무언가를 필연적으로 넘겨주어야 하며, 그 댓가는 자국이 가진 것, 즉 국력과 상대 국가와의 세력 균형 등 여러가지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2] 실제로 제국주의 시대에 정복당한 수많은 식민국가들이 근대적 외교관계에 익숙치 못해 열강들과 마찰을 일으킨 뒤 보상이나 이권을 내주는 일을 반복하다 결국 통치권까지 내어주게 되었으며, 조선도 마찬가지로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타국에 지속적으로 이권을 내주었고[3], 결국 경쟁자들을 모조리 물리친 일본에게 최종적으로는 통치권이라는 마지막으로 가진 것까지 빼앗기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가진 게 없으니 아예 몸으로 때우게 된 셈이다. 만약 이를 거부하고 들고일어났다가는 끔찍한 학살, 더욱 가혹한 탄압이나 피비린내 나는 반군과 괴뢰정부 사이의 내전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고.

4. 단어의 남용[편집]


현재에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자국의 인권이나 독재를 비판하는 타국이나 인권 단체 등을 상대로 남용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중국. 그러나 정작 그 중국이야말로 타국의 일이 자국의 국익에 침해된다면 내정간섭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서슴지 않으며 심지어는 중국의 국외 불법 경찰조직 운영 같은 명백히 내정간섭이라 볼 수 있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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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덤으로 고구려/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에까지 야욕을 뻗치는 전형적인 외세개입의 부작용을 보여주었으나, 신라는 나당전쟁을 통해 이것마저 떨쳐냄으로써, 외세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교과서적인 예시를 보여주었다.[2] 강대국은 약소국에 비해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무언가를 주고 받을 때 손해를 덜 보는 반면, 약소국은 가진 게 없으니 자원채굴권과 같은 큰 걸 내주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자원채굴권이 큰 것이라기보다는 비슷한 걸 내주어도 가난한 약소국 쪽이 더 뼈아픈 것에 가깝다. 쉽게 말해, 대기업 회장님은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도 합의금으로 몇 푼 쥐어주면 그만이지만, 가난한 사람은 몇 달치 월급을 내주어야 하거나 아예 몸으로 때워야 하는 것과 같다.[3] 미국: 경인선 부설권(→일본)·운산 금광 채굴권 차지, 철도·전기 분야의 이권(ex. 한성전기회사) 획득
러시아: 압록강·두만강·울릉도 등의 삼림 채벌권 차지, 함북 종성·경원의 광산 채굴권 차지, 용암포 불법 점령(1903, 러일전쟁의 기폭제), 절영도 조차 요구(독립협회의 노력으로 철회됨), 한·러 은행 설립(독립협회의 노력으로 폐쇄됨)
프랑스: 경의선 부설권(→일본)·광산 채굴권 차지
일본: 경부선·경원선 부설권 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