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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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노벨상
The Nobel Priz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설립
1895년
국가
[[스웨덴|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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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노르웨이|

노르웨이
display: none; display: 노르웨이"
행정구
]]
[1]
상금
1,000만 SEK, 115만 달러
한화 약 15억 원 (2023년 기준)
시상 분야
(최초시상년도)
노벨물리학상(1901)
노벨화학상(1901)
노벨문학상(1901)
노벨생리학·의학상(1901)
노벨평화상(1901)
노벨경제학상(1969)
수여 기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물리학상, 화학상, 경제학상)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대학교(생리학·의학상)
스웨덴 아카데미(문학상)
노르웨이 노벨위원회(평화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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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시상 · 수상
3.1. 시상 분야
3.2. 수상자
3.3. 수상자 발표
3.4. 시상식
3.5. 메달
3.6. 상금
5. 관련 상
6. 기록
7. 기타



1. 개요[편집]


(유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는 다섯 등분하여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개발을 한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문학 분야에서 이상주의적인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가간의 우호와 군대의 폐지 또는 삭감과 평화 회의의 개최 혹은 추진을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준다.

- 알프레드 노벨유언 中.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물리학, 화학, 경제학), 스웨덴 아카데미(문학),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생리학/의학), 노르웨이 노벨위원회(평화)에서 매년 인류의 문명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2. 역사[편집]


일설에는 1888년 알프레드 노벨인 루드비그 노벨(Ludvig Emmanuel Nobel/Людвиг Эммануилович Нобель)[2]이 사망했을 때 한 신문에서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고 기사를 실었는데, 그 기사에 노벨을 '죽음의 상인'이라 지칭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노벨이 자신의 사후 이미지를 걱정해 상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해당 오보의 원본이 발견된 바 없으며, 심지어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언급, 인용한 바 없어서 잘못 알려진 풍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걸 회의감을 느꼈던 노벨은[3] 후에 유언으로 유산의 94%(약 440만 달러[4])를 기부, 노벨상을 설립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알프레드 노벨의 재산을 대부분 기부하려하자, 자기들의 몫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그의 친척들[5]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게다가 노벨은 유언장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이 상을 줄 것을 당부했는데, 이것 때문에 스웨덴 내 여론과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까지도 노벨을 비난했다. 특히 평화상 수상을 당시 스웨덴의 지배하에 있었던 노르웨이에 맡겼던 것도 이를 부채질했다. 그러나 유언 집행인 랑나르 솔만(Ragnar Sohlman,1870~1948)의 결단으로 노벨의 재산은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노벨상의 위상을 생각하면 별 탈없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상이다. 솔만은 상을 제정하며 가진 인터뷰에서 '욕을 그리 많이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더군요.'라며 노벨의 친척들이 벌인 온갖 방해공작이나 욕설, 명예훼손을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다만 노벨경제학상의 경우 1968년, 즉 노벨상이 제정되고 난 뒤로도 한참 후에 노벨의 유언과는 무관하게 따로 생긴 상이다. 스웨덴 중앙은행[6]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으로서, 상의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다.[7] 노벨의 유언에 의해 제정된 나머지 5개 분야 노벨상은 정식 명칭은 Nobel Prize[8]로 시작되는 데 반해, 노벨경제학상은 The Sveriges Riksbank Prize로 시작된다.

즉, 노벨경제학상은 엄밀히 따지자면 노벨상은 아니고 노벨 기념상이다. 하지만 경제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는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곳이며, 수상식에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과 함께 참석하고 상금 또한 동일하다. 스웨덴에서 달리 할 이유가 없기 때문.[9] 그래서 일반적으로 노벨상이라고 하면 이 경제학상도 포함되는 편이다. 하지만 알프레드 노벨의 형의 후손인 피터 노벨은 노벨경제학상에 대해 크게 부정적으로, 경제학상에 무단으로 붙인 '노벨'이라는 이름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주식 옵션 투기를 조장하는 시카고학파들이 상을 휩쓸고 있다며, 인류에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한다는 노벨의 취지를 크게 벗어났다고 비판하고 있다.

노벨상 시상 초기에는 지금처럼 권위 있게 여겨지지 않았지만, 곧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상이 되었다. 이는 상의 수준을 높여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에 힘입은 결과였다.


3. 시상 · 수상[편집]



3.1. 시상 분야[편집]





노벨상의 시상 분야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10], '문학', '평화', '경제학'[11]이다.

노벨상의 시상 분야들은 노벨이 생전에 몸담았던 분야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폭약을 합성, 제조하는 과정은 화학이, 폭발의 반응 에너지를 연구하는 것에서 물리학이, 그가 제조했었던 폭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이 약으로써 사용된다는 점에서 생리 의학이, 노벨이 말년에 평화를 바라며 문학 저술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문학과 평화상이 관련되어 있고, 후대에 새로 제창된 분야이긴 하지만 노벨 역시 성공한 사업가였다는 점에서 경제학상도 연관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12]

자연과학의 5가지 분야(물리학/화학/생물학/지구과학/천문학) 중에서 명확히 상의 이름에 언급된 물리학과 화학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와 노벨상의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지구과학(지질학, 기상학, 해양학)은 노벨상의 시상 분야에서 빠져 있다.[13] 다만, 지질학의 세부 분야인 지구물리학, 지구화학 그리고 기상학의 세부 분야인 대기역학, 대기화학, 해양학의 세부 분야인 해양물리학 분야의 업적으로 물리학상이나 화학상을 수상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20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중 2명은 기상학자인데, 이들의 연구업적은 대기역학에 속하는 것이었고, 기상학 연구에 노벨상이 수여된 건 2021년이 최초였다. 한편 지구온난화·환경에 관련된 인물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전례도 존재한다.
  • 천문학물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천문학 분야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물리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있으며 2019년을 비롯하여 이미 수상한 사례가 수차례 존재한다.[14]
  • 생물학은 노벨 생리학·의학상에서 말하는 생리학이 사실상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16] 시상 분야에 속한다.
    • 생태학의 경우는 생물학의 한 분야이기는 하나, 생리학에는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생태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 동물행동학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례가 있다. 즉, 꿀벌의 춤을 연구한 카를 폰 프리슈와 거위오리의 각인[15]을 밝혀낸 콘라트 로렌츠, 리차드 도킨스의 스승인 조류학자 겸 동물행동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헌 등이 1973년에 동물행동학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 식물학의 경우엔, 먼저 리하르트 마르틴 빌슈테터가 엽록소를 비롯한 식물 색소의 연구로 191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 한스 피셔도 엽록소 연구로 1930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고 1947년엔 로버트 로빈슨 경이 알칼로이드 연구로 역시 노벨화학상 수상, 옥수수 유전학에 대한 독보적 존재인 여성 생물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이 1983년도에 '이동성 유전 요소의 발견'에 관한 식물유전학 연구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단순히 기초과학 업적만 수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노벨은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라고 유언하였기 때문에, 응용과학은 물론 발명도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17] 발명이 업적인 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꽤나 많고, 특히 발명과는 제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노벨생리학·의학상 역시, MRI(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18] 개발로 수상하거나, CT(컴퓨터단층촬영)[19]를 개발한 전기공학자가 수상하기도 했다.

수학상은 없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노벨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예스타 미타그레플레르라는 수학자가 노벨 수학상을 받는 꼴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라는 설[20], 미타그레플레르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는데 그가 워낙 수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보니 수상의 공정성이 떨어질까봐 제외했다는 설, 흠모했던 여인이 수학자를 선택하는 바람에 사랑이 쫑나서라는 설 등. 근데 다 별 근거는 없는 이야기다. (관련 반론) 가장 신빙성 있는 설은 공학도 출신 실업가였던 노벨이 수학은 실용학문이 아니라서 노벨상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수학자들이 앞에서 언급된 소문들을 꾸며냈다는 해석도 있다. 물론 수학과 관련된 상은 필즈상, 아벨상, 울프상 등 여럿 존재하는데, 이 상의 권위는 노벨상에 준할 정도로 높다. 한편 노벨상을 받은 수학자가 없지는 않다.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 물리학상을 받은 로저 펜로즈 등.


3.2. 수상자[편집]


국적은 일체 불문하고 가장 적합한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 상에 대해서 최소 1명~최대 3명에게 수상하고,[21] 개인에게 주는 상이지만 평화상만은 단체도 받을 수 있다.

또한 살아 있는 사람만이 수상할 수 있다.[22] 다만, 예외적으로 사후 수상한 사례가 있는데 2011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랠프 스타인먼 박사가 수상자 발표 3일 전에 사망한 걸 노벨위원회가 알지 못하고 명단에 올리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으나 수상자 목록은 그대로 유지시키기로 했다. 이유는 수상자 명단에서 사망자를 제외하는 것은 수상자가 이미 사망한 사실을 심사위원회가 확인한 때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심사가 끝나고 수상자가 결정된 이후 사망 확인은 수상자 변동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 그래서 수상자로 확정된 사람이 시상식이 오기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도 그 고인에게 상은 수여된다.

1년 이내에 상을 받지 않으면 수상을 거절한 걸로 간주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상자는 6개월 이내에 수락 강연을 해야 한다. 즉, 노벨상 시상일이 매년 12월 10일이므로 다음해 6월 10일까지가 기한. 수락 강연을 하지 않으면 상금이 수여되지 않는다. 강연 형태는 정해진 게 없으므로 일반적인 형태의 강연은 물론이고, 연설, 동영상이나 녹음, 공연, 노래 등의 형태도 가능하다고 한다.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누가 후보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데, 노벨상 최종 후보자와 수상 과정에 대한 정보는 무조건 50년이 지난 후 공개 여부 적합성 심사를 거친 다음에 공개 가능하다. 흔히 언론에서 누가 후보라 카더라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의 배당률을 인용한 것.[23] 또한 후보는 선정자를 정해서 투표하는 게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올해는 누가 받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적어내는 형식으로 결정된다. 2011년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수상이 발표되기 직전 래드브록스에서 그의 배당률이 급격히 떨어져 수상자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의혹제기 직후 스웨덴 검찰이 수사에 나설 정도로 후보나 수상자 정보에 대해서는 철통 보안이 이뤄지고 있다.

한편 노벨상 수상자의 공식 기록에선 국적/인종은 딱히 적지 않고, 수상자의 출생지와 (사망했을 경우) 사망지만 기록한다. 애초에 국적을 고려하지 않고 수상자를 선정하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이 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수상자의 국적 문제가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국적을 결정하는 원칙이 속지주의/속인주의부터 시작해서 제각기 다르고, 수상자가 활동 기간 동안 국적이 바뀌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중국적, 미승인국 문제, 수상자 본인의 국가 정체성, 종주국-식민지 관계 문제까지 들어가면 복잡해 진다.[24]

  • 이 출생지의 원칙 때문에 한국이 출생지로 등록된 한국인이 아닌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 해양 엔지니어로 부산세관에서 근무했던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콩,누에를 재배하던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1904년 부산에서 태어난 찰스 피더슨이라는 미국인이 그 예이다. 8살때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 후 1922년에 데이턴 대학교, MIT를 거친 다음 42년간 연구에 전념하다가,1987년 노벨 화학상을 받고 뉴저지주에서 사망했다.[25]
  • 한편, 영토 변경으로 인해 출생지가 속한 국가가 달라진 경우에는 당시 해당 지역의 지명과 해당 지역을 통치한 국가의 명칭을 먼저 기재하고 현재의 지명과 해당 지역을 통치하는 국가를 괄호로 병기한다.[26] 가령 마리 퀴리[27]는 출생지를 Warsaw, Russian Empire (now Poland)로 표기하고, 출생 당시에는 독일 제국령이었지만 현재는 프랑스 영토인 스트라스부르가 고향인 한스 베테의 경우는 출생지를 Strassburg[28] (now Strasbourg), Germany (now France)로 표기한다.

수상자를 발표할 때는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를 그려서 발표한다. 2012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그림을 도맡는 사람은 스웨덴의 일러스트레이터 니클라스 엘메헤드(Niklas Elmehed). 그림 재료는 검정색 아크릴과 금박뿐이다. 보통 그림은 수상 발표 직전이 되어서야 그린다.


3.3. 수상자 발표[편집]


수상자들은 시상식 약 두 달 전인 10월의 첫번째 월요일을 기점으로 평일마다 하나씩 생리의학상-물리학상-화학상-문학상(이상 스톡홀름)-평화상(오슬로)-경제학상(스톡홀름)의 순서대로 현지 기준 오전 11시~오후 1시 사이[29]에 공식적으로 발표되며 유튜브로 생중계 및 녹화 업로드된다.# 당연하지만, 한국의 공휴일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추석 연휴, 개천절이나 한글날에 발표할 수도 있다.


3.4. 시상식[편집]


파일:Nobel-prize-ceremony.jpg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스톡홀름 콘서트홀. 스웨덴 국왕이 직접 수여한다.

매년 12월 10일, 노벨의 기일에 시상한다. 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상식이 열리며, 나머지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노벨이 살던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병합된 상태였기에 노벨 사후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분리되며 평화상만이 노르웨이에서 시상식을 열게 된 것. 드레스 코드가 엄격한데,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는 게 원칙이다. 단,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는 것도 가능하다.사례 수상자들은 스웨덴/노르웨이 국왕에게 메달과 상패를 수여받는다.

시상식이 끝나면 기념 만찬이 열리며 스웨덴에선 TV로 중계된다. 수상자들은 왕과 왕비를 대면하는 자리를 가지며, 왕은 대화마다 먼저 말을 건낼 특권이 있다.

12월 11일에는 수상자들이 스톡홀름 콘서트 홀에 모여 각자의 연구 성과와 앞으로의 발전에 대해 토론하는 "Nobel Minds"가 있으며 이 역시 TV로 중계된다. 이 자리는 당해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데 모이는 유일한 기회라는 의의가 있다.

공식적인 자리가 끝나면 수상자들은 각자의 수상 분야 주관처에서 여는 성녀 루치아 축일(12월 13일) 행사에 참석하게 된다. 이 행사는 시상식과 만찬에 비하면 많이 풀린 분위기라는 모양.

모든 행사가 완료되면 수상자들은 (공식 행사가 아니고 통상 이런 과정을 대부분의 수상자가 거치는데) 고국으로 돌아가서 노벨상 수상 강연을 하고 정부, 기업, 학계 등 각계각층에서 몰려오는 초청을 받으며 인류 학문과 평화 발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살게 된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 유행으로 시상식과 연회 등 상기의 행사들이 모두 취소되고 TV 중계로 대체하며, 수상자들은 각국 주재 스웨덴 대사관이나 근무 기관에서 상을 받는다. 노르웨이에서 시상하는 평화상 역시 시상 행사 규모가 대폭 축소되고 연회는 열리지 않으며 역시 온라인 시상을 할 수도 있다. 관련 기사


3.5. 메달[편집]



파일:buturikagaku.jpg
파일:152B43435016121204.jpg
노벨 화학상 메달[30]
노벨 문학상 메달


노벨상 메달은 1902년부터 2010년까지 스웨덴 에스킬스투나에 있는 스웨덴 화폐제작소(Myntverket, Swedish Mint)[31]에서 제작되었다. 그러나 2011년 회사가 없어지면서, 이 회사에서 만들던 스웨덴 노벨상 메달을 2011년에는 노벨 평화상 메달을 만들던 노르웨이의 Det Norske Myntverket (Mint of Norway)에서 함께 만들고 있다. 2012년 5월부터는 노벨상 메달을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Svenska Medalj AB라는 회사에서 만들기로 계약을 했고, 이 회사에서 노벨평화상을 제외한 모든 노벨상 메달을 만든다.

노벨물리학상 및 화학상, 노벨생리학·의학상, 노벨문학상 메달의 경우에는 뒷면에 수상자의 이름을 새기는 반면, 노벨평화상과 노벨경제학상 메달은 수상자의 이름을 테두리에 새긴다. 또한 윗 사진과 같이, 과학 분야 상 및 문학상는 전면 모양이 다 동일하지만 평화상과 경제학상은 나머지와 다르다.


3.6. 상금[편집]


아무리 노벨이 많은 돈을 남겼다지만, 상금을 계속 지급하기 때문에 그 유산이 영원할 수는 없다. 따라서 노벨재단에서는 노벨의 유산을 토대로 여러 사업[32]을 진행하고 있다. 그 덕분에 노벨상 위원회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여 상금 줄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벨상 위원회의 투자도 경기 불황을 비켜갈 수 없는지, 1949년에 인당 지급하는 상금을 한번 줄였다가 그 이후 지속적으로 상금을 높여서 인당 140만 달러(2023년 기준으로 약 18억1천3백만 원)까지 지급했으며 2012년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다시 인당 110만 달러로 줄였다고 한다. 관련 기사[33] 현재는 1,000만 스웨덴 크로나, 115만 달러 (2023년 기준으로 약 14억8,925만 원)정도를 지급하고 있다.

노벨상 상금은 대한민국 국적자가 받으면 소득세법 시행령 18조 2항에 따라 세금없이 실수령할 수 있다. 조항 자체에 노벨상이라고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정확히는 소득세법시행령 제18조 2항 노벨상 또는 외국정부·국제기관·국제단체 기타 외국의 단체나 기금으로부터 받는 상의 수상자가 받는 상금과 부상이다.(국가법령정보센터 출처) 노벨경제학상은 스웨덴 중앙은행이 외국 정부 내지는 기타 외국의 단체에 포함되기에 마찬가지다. # 노벨상의 권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3.7. 각국 수상 현황[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노벨상/각국 수상 현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대한민국의 분야별 현황[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노벨상/대한민국의 분야별 현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관련 상[편집]


  • 이공 계열 분야[37]
    • 필즈상 - 세계수학자회의에서 주관하는 가장 권위있는 수학상.[34] [35] 일명 수학계의 노벨상.
    • 프리츠커상 - 하얏트 재단에서 주관하는 가장 권위있는 건축상. 일명 건축학계의 노벨상.
    • 튜링상 - 계산기협회에서 주관하는 가장 권위있는 컴퓨터과학상. 일명 컴퓨터과학계의 노벨상.
    • 아벨상 - 노르웨이 왕실에서 수상하는 수학상.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린다.[36]

  • 인문학 및 예체능 분야
    • 폴라음악상 - 스웨덴 왕립음악원[38]에서 주관하는 음악상. 일명 음악계의 노벨상.[39]
    • 휴고상 - 세계 SF 회의에서 주관하는 사이언스 픽션상. 일명 SF계의 노벨상.
    • 템플턴상 - 존 템플턴 재단에서 주관하는 종교상. 일명 종교학계의 노벨상.
    • 요한 쉬테 정치학상: 스웨덴 요한 쉬테 재단에서 주관하는 정치학상. 일명 정치학계의 노벨상.
    • 황금종려상 - 칸영화제에서 주관하는 영화상. 일명 영화계의 노벨상.
    • 안데르센상 - 덴마크의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 주관하는 아동문학상. 일명 아동문학계의 노벨상.


  • 기타 버금가는 상
    • 래스커상 - 래스커 재단에서 주관하는 의학상. 일명 미국의 노벨상.
    • 울프상[40] - 울프 재단에서 주관하는 농학, 화학, 수학, 의학, 물리학, 예술 분야 상. 일명 이스라엘의 노벨상.
    • 폴라리스상 - 민간 항공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 노벨상을 패러디한 상
    • 공자평화상 - 중국의 중국국제평화연구센터라는 단체가 만든 정체불명의 상.
    • 다윈상 - 어이없이 죽거나 생식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 주는 상.
    • 이그노벨상 - 웃기거나 잉여스러운 연구에 수여하는 상.[41]


6. 기록[편집]


  • n관왕에 등극한 단체
    •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 평화상 3회: 제1차 세계대전 구호 업적, 제2차 세계대전 구호 업적, 전 세계 재난 구호 업적으로 각각 1917년, 1944년, 1963년에 수상한 최다 수상 단체이다. ICRC의 창설 100주년이기도 한 1963년에는 ICRC의 산하 단체인 국제적십자사·적신월사연맹도 함께 받았다. 또한 1901년에 ICRC의 창설자인 앙리 뒤낭이 적십자 창립과 제네바 협약에 대한 공로로 초대 노벨평화상을 수상해서 실질적으로는 4번 받은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ICRC에서는 본인들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할 때 창립자 뒤낭의 수상도 포함한다.
    • 유엔난민기구 (UNHCR) - 평화상 2회: 1954년에는 난민들에 대한 정지적 법적 보호, 1981년에는 난민들의 이주와 정착 및 처우 개선에 이바지한 공로로 수상했다.

  • 2관왕에 등극한 사람
    • 라이너스 폴링(미국) - 화학상, 평화상: 세계에서 유일하게 과학상과 평화상을 모두 받은 인물이다. 문이과 통합 반핵 운동 때문에 당시 매카시즘 광풍이 불고 있던 미국 정부에 출국 금지 조치를 받는 바람에 DNA의 X선 사진을 보지 못했고 DNA의 잘못된 구조를 내놓는 바람에 왓슨-크릭에게 생리의학상을 내줬다. 최상의 시나리오의 경우 3회 수상까지 가능했을지도... 타 복수 수상자와 달리 그는 2회 모두 단독 수상했다.
    • 마리 퀴리(프랑스) - 물리학상, 화학상: 사상 최초로 2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자 유일하게 여러 분야의 과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남편 피에르 퀴리 역시 1903년에 그녀와 공동으로 물리학상을 받았고, 첫째 딸과 사위는 1935년에 화학상을 받았으며, 둘째 사위는 1965년에 유니세프를 대표하여 평화상을 받았다. 둘째 딸인 이브는 이에 대해 "저는 우리 집안의 수치입니다."라는 농담을 했는데, 이는 아버지, 어머니, 언니, 형부, 그리고 자신의 남편까지도 노벨상을 탔는데 자신만 못 탔다는 이유라고. 사실 그녀도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명 피아니스트로서 여러 상과 훈장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가족들 모두가 능력자.
    • 존 바딘(미국) - 물리학상 2회: 1956년에는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의 발명, 1972년에는 초전도 현상의 연구 공로로 수상했다.
    • 프레더릭 생어(영국) - 화학상 2회 : 1958년에는 인슐린의 염기서열, 1980년에는 핵산의 염기 서열 해독에 대한 연구 공로로 수상했다.
    • 배리 샤플리스(미국) - 화학상 2회 : 2001년에는 비대칭 촉매된 산화 반응, 2022년에는 클릭 화학으로 수상했다.
  • 가족(투톱) 수상
    • 부부
      • 피에르 퀴리·마리 퀴리 부부(1903년 물리학상 투톱 수상)
      •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이렌 졸리오퀴리 부부(1935년 화학상 투톱 수상) - 위의 퀴리 부부의 사위·딸이다.
      • 칼 퍼디낸드 코리·거티 테리사 코리 부부 (1947년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 군다르 뮈르달(1974년 노벨 경제학상)와 알바 뮈르달(1982년 노벨 평화상) 부부
      • 에드바르드 모세르·마이브리트 모세르 부부(2014년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 부자(父子)
      • 조지프 존 톰슨 (아버지, 1906년 물리학상)과 조지 패짓 톰슨(아들, 1937년 물리학상)
      • 윌리엄 헨리 브래그(아버지)와 윌리엄 로렌스 브래그(아들), 1915년 물리학상 공동 수상 : 수상 당시 아들 브래그의 나이는 불과 25세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노벨평화상을 탈 때까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유일한 부자 공동 수상자로, 과학분야에서는 지금도 최연소 수상자로 등재되어 있다.
      • 닐스 보어(아버지, 1922년 물리학상)와 오게 닐스 보어(아들, 1975년 물리학상)
      • 칼 만네 예오리 시그반(아버지, 1924년 물리학상)과 카이 만네 뵈리에 시그반(아들, 1981년 물리학상)
      • 한스 폰 오일러켈핀 (아버지, 1929년 화학상)과 울프 폰 오일러(아들, 1970년 생리의학상)
      • 아서 콘버그(아버지, 1959년 생리의학상), 로저 콘버그(아들, 2006년 화학상)
      • 수네 베리스트룀(아버지, 1982년 생리의학상), 스반테 페보(아들, 2022년 생리의학상)[42]
    • 부녀(父女)
    • 모녀(母女)
    • 형제
      • 얀 틴베르헌(형, 1969년 경제학상), 니콜라스 틴베르헌(동생, 1973년 생리의학상)
    • 숙질
      •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이모, 1995년 생리의학상), 베냐민 리스트(조카, 2021년 화학상)

  • 최고령/최연소 수상자[43]
    • 최고령 수상자: 존 B. 구디너프 (97세 4개월 17일, 2019년 화학상)
    • 최연소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17세 5개월 1일, 2014년 평화상)

  • 수상을 거부하려다 결국 받은 사람들
    • 조지 버나드 쇼 - 1925년 문학상. 본인은 처음엔 받지 않으려고 했다가 받은 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만이 노벨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 비꼬았다. 상금을 기부해 달라, 입양해 달라 같은 구걸에 가까운 편지들을 계속 받다보니 쇼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 리처드 파인만 - 1965년 물리학상. 유명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수상을 거부하려 했으나 "그런 짓을 하면 더 유명해질걸요."라는 기자의 말을 듣고 받기로 결정했다.
    • 밥 딜런 - 2016년 문학상. 가수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는데 수상자 발표가 난 이후로 한동안 그는 전혀 이에 대해서 연락을 받지도 않았고, 별다른 의견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침묵을 깨고 노벨상을 수락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본인이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으며 주스웨덴 미국 대사가 참석해 밥 딜런의 수락 연설문을 대독한 다음 노벨상을 대리 수상했다.

  • 수상을 거부ㆍ저지당했으나 결국 받은 사람들
    • 리하르트 요한 쿤 - 1938년 화학상
    • 아돌프 프리드리히 요한 부테난트 - 1939년 화학상
    • 게르하르트 도마크 - 1939년 생리 · 의학상
      • 나치 독일 정부는 1935년 평화상 수상자로 카를 폰 오시에츠키를 선정한 것에 대해 강력히 비난하면서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위의 사람들은 상을 받고 싶어도 당시에는 받을 수 없었다. 물론 이 금지령은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해제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1946년에 상을 받았다.
      • 사실은 1944년 화학상 수상자 오토 한도 여기 들어갈 뻔했다. 노벨위원회가 또 독일인을 선정한 걸 왕립학술원에서는 난감해하면서 공식 발표를 한 해 미루기로 했고, 1년 후 나치가 패망하자 "이제 독일인도 상 받을 수 있다!"라는 상징으로 그제서야 수여했다. 발표 자체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거부당한" 사람으로 치지 않는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1958년 문학상. 닥터 지바고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소련 정부와 작가 동맹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자 수상을 거부했다. 하지만, 노벨상 주최 측에서는 이를 거부한 것이라 판단하지 않아서 수상 보류로 남겨 두었다. 결국 그의 사후 소련에서도 닥터 지바고가 출판되는 등 그 업적이 공식적으로 인정 받고 난 뒤, 그의 아들이 대리 수상을 했다. 고로 받긴 받았다.

  • 수상을 거부·저지당했으며 결국 받지 못한 사람들
    • 카를 폰 오시에츠키 - 1935년 평화상. 선정 당시 나치 독일 정부에 의해 투옥 중이었던 터라 수상이 불가능했으며, 결국 상을 받지 못하고 1938년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 류샤오보 - 2010년 평화상.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중국 정부에 의해 수상을 거부당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가족들도 가택연금 조치하여 수상하지 못하게 막았다. 노벨위원회는 그를 위해 마련된 빈 의자에 공석으로 직접 상을 수여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독재적 행태에 엿을 먹였다. 이렇게 수상을 강제로 거부당하고 빈 의자에 수상을 해준 사례는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나치 독일 시대의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하는 경제보복을 했다.

  • 성비
분야
남자
여자
성비[44]
평화상
91
18
5.05:1
문학상
102
17
6.00:1
생리학·의학상
212
12
17.67:1
화학상
180
8
22.50:1
물리학상
215
4
53.75:1
경제학상
87
2
43.50:1
전체
887
61
14.54:1


7. 기타[편집]



  • 1965년에 학술인용분석 및 과학계량학의 기초를 닦은 유진 가필드(E.Garfield)는 초기 노벨상 수상자들이 동료 연구자들에 비해 5배 더 많은 논문을 출판했고, 피인용수는 30~50배 가량 더 높으며, 그 분야에서의 피인용수 상위 0.1%에 속하는 걸작급의 논문을 한 편 이상 저술한 바 있음을 발견하였다. 오늘날에도 2,000회 이상 인용된 논문의 저자들을 중심으로 노벨상 수상을 예측하기 위한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

  • 노벨상 수상자들의 상당수는 민간기업이 아닌 대학 소속의 학자들이지만, IBM만이 거의 유일하게[45] 민간 기업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계속 배출해오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IBM 소속의 노벨상 수상자는 6명이며, 이들의 업적은 하나같이 현대 과학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한편으로, 민간기업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 중 끝판왕은 시마즈 제작소에 소속된 다나카 고이치. 그는 과학 분야 모든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유일하게 학사 학력으로 수상했다.

  • 워낙 강력한 권위를 가진 상이다 보니 이 상을 수상한 사람의 출신 대학교가 명문대로 급부상한다.[46] 당연히 수상자는 해당 대학교 최고의 아웃풋이 된다.

  • 2020.01.11~2020.05.31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서 노벨상 특별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 다만 코로나19 바이러스 범유행의 여파로 생각만큼 많이 다녀가지는 않은 모양.

  •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면, 젊은 시절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수학자 존 내시에게 노벨상(경제학상)을 줄 것인가를 두고서 미리 존 내시를 찾아가서 사전 인터뷰 혹은 사정청취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슨 얘기인가 하니, 후보의 인격이나 정상적인 판단력 등이 실은 고려대상이라는 것이다! 단 어디까지나 인용 사항에 불과하고, 업적이 지대하면 인성이 문제있어도 상은 주는 것 같다. 프리츠 하버 문서로.

  •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시상식이 취소되고 스웨덴 대사관 혹은 자신이 다니는 곳에서 온라인으로 가진다. # 2022년부터는 정상적으로 시상식을 개최한다.

  • 여담이지만 '새로운' 발견을 한 과학자들에게 주는 상이라는 뜻으로 생각해 'novel'로 착각할 수 있지만, 노벨상은 실존하는 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아무관계가 없다.

[1] 노벨평화상 한정.[2] 젊은 시절 러시아 제국으로 건너가 공장 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후에는 블루 오션석유 사업에 뛰어들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브라노벨(Branobel)이라는 석유 회사를 설립했다. 브라노벨은 한때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50%를 차지했다고 한다.[3] 강한 무기가 있어야 평화가 유지된다고 말했다는 설도 있다.[4] 19세기 말에는 엄청난 돈이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당시, 국내 방송에서 현재 값어치를 원화로 추정했더니 약 2,215억 원이라고 한다.[5] 반평생 넘게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기에 노벨의 직손은 없었다.[6] 스웨덴의 화폐인 스웨덴 크로나를 조폐 및 발행하고 있다.[7] 그래서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재단에서 수상하는 상이 아니므로 노벨 재단에서 상금을 주지는 않는다.[8] 예: Nobel Prize in physics[9] 게다가 노벨이 노벨상에 대한 유언을 남길 당시에는 아직 경제학이 체계적인 분과 학문으로 발전하기 전이었고, 때문에 경제학을 시상 분야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여러모로 곤란했다. 설령 노벨의 생전에 경제학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으로 성장해서 존재하고 있었더라도, 노벨의 관심사를 따진다면 경제학을 시상 분야로 지정했을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10]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 시상되는 노벨상의 정식 명칭은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 대한 노벨상)인데, 이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노벨 생리학 또는 의학상>,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 <노벨 생리학·의학상>, <노벨 생리의학상>, <노벨 의학상> 등 각양각색이다. 한편 최근 언론에서는 노벨 의학상이라는 용어보다는 노벨 생리의학상이라는 용어를 주로 쓰는 편인데, 이 용어 역시 일반인들로서는 "<생리의학>이라는 의학 분야가 있나보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상인가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 이 상의 시상 분야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번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11] 경제학상은 노벨상이 제정되고 난 뒤로도 한참 후에,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으로서 노벨의 유언과는 무관하게 따로 생긴 상이다.[12] 물론 경제학과 경영학은 다른 학문이고 상의 정식 명칭이 스웨덴 중앙은행상이므로 노벨과의 연관성이 크지 않긴 하다.[13] 더욱이 지구과학 분야는 수학의 필즈상이나 아벨상처럼 노벨상과 동급의 권위를 가진 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구과학이 노벨상 시상 분야에서 빠져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특히 지질학은 지구과학의 근본 학문으로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학 등에 비해 결코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 분야이기에 권위있는 상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14] 또한 천체물리학도 물리학의 한 분야이지만, 천문학의 한 분야이기도 하므로, 천체물리학 관련 업적으로 인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천문학 분야의 업적으로 수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15] 태어나서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고 따르는 현상[16] 노벨이 유언을 남길 당시 생리학은 생물학의 여러 분야를 통칭하는 용어였다. 이에 대해서는 노벨 생리학·의학상 문서로.[17] 심지어 과학분야의 경우 초창기에는 실용과학에 더 비중을 두었다. 특히 노벨물리학상은 초창기엔 실험물리학자나 발명가가 수상했으며 1918년 막스 플랑크가 양자론으로 상을 받기까지 이론물리학은 찬밥신세였다.[18] 2003년 노벨생리학·의학상. 폴 로터버와 피터 맨스필드[19] 1979년 노벨생리학·의학상. 앨런 코맥과 고드프리 하운스필드[20] 2018학년도 7월 전국연합학력평가 30번 지문에 이 설이 등장한다.[21] 어떨 때는 한 업적으로 4명의 공로자가 나오는 바람에 1명이 수상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3명이 상금을 나눠서 그 1명에게 주었다고 한다.[22] 노벨상을 수상할 수도 있었으나 사망한 대표적인 사례는 주기율표를 만드는 데 큰 공로를 한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제1차 세계 대전 갈리폴리 전투에서 사망한 헨리 귄 제프리스 모즐리, 한국 관계자로는 이휘소 박사가 있다. 예외로는 1961년 콩고 내전을 중재하러 가던 도중에 북로디지아(현재 잠비아)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같은 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제2대 UN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가 있다.[23] 래드브록스는 2006년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와 2015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을 맞힌 이력이 있다.[24]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이중국적자나 한 번 이상 국적을 바꾼 사람, 출생 국가가 식민지었던 시기에 출생하거나 활동한 사람도 여럿 있다.[25] 관련 기사[26] 독일인 수상자 중에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이나 알자스-로렌같은 지역이 고향인 경우. 이런 경우에 걸리는 사람이 모두 독일인인 것은 아니다.[27] 마리가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1903년 노벨물리학상, 1911년 노벨화학상) 국적은 프랑스였다. 프랑스 출신인 피에르 퀴리와 결혼을 하면서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 본인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고 마리 자신이 폴란드인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폴란드는 독립 국가가 아니라 제정 러시아의 점령 하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3자의 입장인 노벨위원회가 함부로 국적을 결정하기도 어렵다.[28] '슈트라스부르크', 스트라스부르의 독일어 명칭[29] 한국시각 저녁 6시~8시[30] 물리학상과 동일[31] 국영은 아니다. 1,000년이 넘도록 스웨덴의 주화와 노벨상 메달을 만들어 왔던 회사이다.[32] 근데 여기에는 무기회사도 있는데, 노벨이 무엇으로 돈을 벌었는지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33] 물론 노벨상만 받아도 엄청난 명예와 각계 각층의 각종 지원이 따르기 때문에 상금은 부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상을 딸 정도의 업적을 달성하면 과학/문학 분야는 이미 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의미가 없지만 어떤 분야던 간에 노벨상을 따기만 하면 전 세계의 온갖 명문 대학에서 제발 우리 대학 교수 좀 해달라고 러브콜이 밀려오며, 조교수나 부교수가 아닌 테뉴어를 받는 정식교수로 임용된다. 우스갯소리로 노벨상의 가장 큰 장점은 '돈 걱정 안하고 연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과학, 기술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선진국의 경우에도 기초 과학을 다루는 대다수의 교수와 연구원이 비용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관측천문학이나 전파천문학 같은 학문은 관측 장비가 대학은커녕 정부 차원에서도 제작하고 운영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학자들은 항상 연구비에 목말라 있는데 노벨상을 수상하면 정부, 학교, 기업의 지원이 따라오고 상대적으로 연구 분야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34] 권위는 필즈상이 제일 높긴 하지만, 40세라는 나이 제한이 있기에 수학계를 이끄는 젊은 리더들에게 준다면, 노벨상처럼 그 분야의 나이 많은 대가가 받는 상은 아벨상, 울프상에 더 가깝다. 어떻게 보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준다고 볼 수도 있다.[35] 앤드루 와일즈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공로로 40세를 넘겨서 받은 (수상 당시 44세) 사례가 존재하며, 이는 현재까지 유일한 사례다.[36] 필즈상은 상금도 많지 않고, 40세 이하라는 조건이 달려있어 그러한 조건이 없는 아벨상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인정하는 추세다.[37] 이 이공 계열 상들은 특히 노벨상에 견줄 수 있는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수상시 노벨상과 동급의 큰 영광을 누리게 된다. 세계 명문대들을 비교할 때, 노벨상과 함께 해당 대학 출신들이 이 상들을 얼마나 수상했는지도 참고가 되어 순위가 매겨질 정도다.[38] 노벨상처럼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스웨덴 국왕이 직접 시상한다는 상징성과 권위를 지니고 있다.[39] 에른스트 폰 지멘스 재단에서 주관하는 음악상인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도 매우 권위가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클래식 음악에 한정되어 수여되므로 폴라음악상의 범용성에는 미치지 못한다.[40] 물리, 화학에서는 노벨상 다음가는 상이고 수학에서는 필즈상, 아벨상과 함께 인정받는 상이며 의학쪽에서는 노벨상과 래스커상 다음가는 상이다.[41]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동시에 수상한 사람도 있다.[42] 혼외자이기 때문에 성이 다르다.[43] 날짜는 시상식이 진행되는 12월 10일 기준.[44] 소수점 아래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45] 벨 연구소가 7번(13명)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46] 평화상을 제외한다면 특히 수상자의 해당 분야가 엄청난 강세를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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