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계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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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러시아 제국 시대 이민
2.2. 러시아 혁명 이후 이민
2.3. 고르바초프 시대 이후 이민
3. 성향
4. 인물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영어: Russian Americans
러시아어: Русские американцы

러시아 출신의 미국인을 말한다. 러시아화된 여타 슬라브 민족[1]이나 독일계 러시아인, 아슈케나짐, 중앙아시아 출신 이민자 혈통들도 이들에 합쳐서 세기도 한다. 인구 규모는 2009년 기준 316만 3084명으로 이중 러시아에서 태어나 이주한 사람은 40만 9000명 정도이며 러시아어를 사용 가능한 인구는 85만여 명에 달한다.

종교적으로는 정교회 신자 외에도 유대교, 재세례파, 및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파)[2] 등 다양한 편이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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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년부터 1867년까지 알래스카러시아령 아메리카였다. 크림 전쟁 이후 러시아가 미국에게 러시아령 아메리카를 매각하면서 군인, 관료와 같은 러시아인들은 러시아로 돌아갔지만 일반 이주민의 일부는 알래스카가 미국령이 된 이후에도 알래스카 등에 남아서 러시아계 미국인이 되었다. 물론 알레스카에 정착했던 러시아인 인구가 워낙 소수였던 관계로 이들의 비중이 크지는 않았다. 대신 러시아인들이 알레스카를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알류트, 틀링깃 같은 알레스카 원주민들이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되었고, 러시아인 남성과 알래스카 원주민 여성들 사이에 혼혈인이 출생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다. 여담으로 알레스카의 정교회 성당들은 러시아인들이 빠져나가고 나서도 유지되는데, 러시아인들이 떠나고 남은 지역에 세르비아인 정교도들이 와서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소수이긴 하나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주해 간 사람들이 꾸준히 있었다.

2.1. 러시아 제국 시대 이민[편집]


19세기 말부터 러시아인들의 미국 이민이 증가했다. 1820년부터 1870년 사이에 러시아에서 이민 온 사람은 7,550명에 불과했지만 1891년부터 1900년 사이에 593,700명이 이민을 왔고 1901년부터 1910년까지는 160만 명, 1911년부터 1914년까지 868,000명 등 급증했다. 이 시절의 러시아 이민은 1차 이민(First Wave)이라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이민은 급감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자국의 정교회 신도 신민들에게는 이민용 여권을 잘 발급해주지는 않던 편이었으나, 불온분자로 취급받던 폴란드계나 리투아니아계 가톨릭교도 그리고 유대인 대상으로는 이민용 여권을 잘 발급해주던 편이었다. 러시아 제국 내 러시아인들이나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정교도들[3], 라트비아인 개신교도들 및 볼가 타타르 무슬림들 입장에서는 러시아 제국 국외로 이민하기는 어려웠고, 대신 표트르 스톨리핀의 이주정착 지원 정책 등을 이용하여 시베리아 남부나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로 이주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러시아 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여타 주요 집단으로는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그리고 스웨덴 국경을 육로로 통과한 후 다시 스웨덴에서 재이민한 핀란드인 등이 있으나, 이들의 경우 모어가 러시아어가 아니었던 이유로 러시아계 미국인으로는 분류되지는 않는다.

러시아어 사용 이민자들의 상당수는 러시아 제국의 혼란과 반유대주의를 피해 온 아슈케나짐이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1791년에 러시아의 유대인들이 서부의 특정 지역에만 살도록 제한했으며, 1882년에는 이른바 '오월법'이라고 해서 유대인들의 농촌 거주가 금지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 제국에서는 유대인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 거주도 제한했는데 이러한 와중에 농촌 거주까지 금지하자 유대인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밖에 없었고, 여기에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 포그롬까지 간간히 일어나면서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미국이나 캐나다 등으로 이민하게 된다. 물론 미국에도 백인들 사이에서 반유대주의가 없던 건 아니지만 민족구성이 워낙 다양한 탓에 유럽보다는 차별이 덜했다. 러시아 유대인들의 대량 이민 이전 미국 내 유대인은 대부분 네덜란드 출신 세파르딤들로 미국인 전체에서 차지하는 인구 비중은 극소수에 불과하였으나, 20세기 초반 들어서면 아슈케나짐들이 미국 유대인 인구의 90~95%를 차지하게 된다.

대니네 동네에는 그의 아버지의 추종자들, 즉 칙칙한 옷을 입은 러시아 하시드파 유대인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들의 관습과 인식은 그들이 버려두고 온 땅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사모바르에 차를 끓였고, 각설탕을 입에 물고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들은 고향 음식을 먹었으며, 때로는 러시아어 때로는 이디시어로 말을 주고 받으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탈무드의 아들(The Chosen) / 체임 포톡 저


물론 이들 러시아 제국 출신 유대인들 중 오늘날 러시아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온 경우는 비교적 적었고, 대부분은 오늘날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18세기 말 폴란드-리투아니아멸망 이후 (19세기 후반 기준) 해당 지역들이 100년 가까이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해당 지역의 유대인들은 이디시어와 러시아어를 모어로 사용하게 되었고, 이들은 미국으로 이민 후에도 한동안 러시아어 그리고 러시아 문화를 보존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18세기 러시아 볼가 강 유역으로 이주해온 독일계 러시아인 상당수가 19세기부터 종교 박해가 이루어지자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볼가 강 출신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아는 한지/건조형 농업에 맞는 미국 대평원 북부쪽에 정착하게 되는데, 제일 많이 간 곳이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이다. 사우스다코타 주의 지역 요리 시슬릭(chislic)은 러시아의 샤슐릭 레시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독일계 러시아인 출신 이민자들이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한편 러시아 제국에서 이민한 경우가 아님에도 스스로를 러시아계 미국인들로 인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산악지대의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루신인 상당수가 같은 시기 미국으로 이민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범슬라브주의 등의 영향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러시아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고, 상당수가 러시아계 미국인 공동체에 흡수되었다.

2.2. 러시아 혁명 이후 이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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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시절 한국과 연해주에서 체류하다가,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이민한 러시아계 미국인 배우 율 브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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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부터 1922년, 즉 러시아 혁명부터 적백내전의 종료까지 러시아가 혼란에 빠지자 많은 러시아인들이 프랑스나 독일 혹은 중국을 거쳐 피난하였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를 2차 이민(Second Wave)이라고 부른다. 당시 미국으로 이민 온 러시아인들은 상당수가 귀족이거나 유대인 부상 등 사회의 상류층이었으나, 전 재산을 털어서 이민을 오는 와중에 미국에 도착한 상태에서 빈털터리가 되어 온 경우가 상당했다. 1930년대부터는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각각 독일과 프랑스/중국 내 러시아인 난민들을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백군 난민들 중 상당수가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1940년 미국에서 출간되는 러시아어 일간지의 구독자 수가 50만여 명에 달했다 한다. 신문을 한 가정 당 한 명씩 구입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백내전을 전후하여 러시아에서 해외로 망명한 러시아인 300만여 명 중 상당수가 결국 미국으로 모였다는 말이 된다.

러시아 혁명 전후하여 소련을 탈출한 사람들 중 귀족 가문 출신 혹은 백군 관련 인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련은 국가 무신론 정책을 바탕으로 모든 종교를 다 배척하는 입장이었으되, 그 중에서도 유독 티베트 불교를 유독 극심하게 탄압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칼미크인들이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이렇게 프랑스에 자리잡은 칼미크인들은 2차대전 전후로 다시 미국으로 이민하여 오늘날 칼미크계 미국인들의 기원이 된다.

20세기 초반 당시는 아직 항공 교통이 대중화되기 이전이었고 러시아계 이민자들 대부분은 대서양과 접한 북동부 해안 도시들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이른바 뉴욕브루클린 비치가 리틀 오데사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다른 한편 독일계 러시아인 농부들의 경우는 북부 내륙 사우스 다코타, 노스 다코타 등에 주로 이민정착하였는데, 이들은 1차대전과 2차대전 기간 동안 징병을 거부하여 징역형을 선고받거나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부 러시아인들은 캘리포니아 등지에도 자리잡는다. 러시아 내 친유대주의 소수종파였던 몰로칸들과 숩보트닉들이 한 때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이민 공동체를 구성한 적도 있었으나, 이들은 미국 내 빈곤 문제에다가 히브리어, 이디시어를 전혀 못하는 문제 등으로 여타 유대인들에게 제대로 된 유대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했고, 대부분은 같은 러시아인이나 유대인들 사이에서 배우자를 구하지 못해 당시 로스앤젤레스의 극빈층을 구성하는 히스패닉들 불법체류자들과 통혼하면서 공동체가 금새 사멸되었다 한다.

러시아 본토의 경우 소련이 백군을 격파하고 확고히 자리를 잡자 이민은 극도로 제한되었는데, 이 시기에 소련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러시아인들은 주로 다른 나라를 경유하거나 몰래 배를 타고 가는 등의 편법으로 미국에 간 경우이며 사실상 보트피플이나 다름없었다. 1976년에 일본주일미군 쪽으로 귀순한 빅토르 벨렌코(Viktor Belenko) 같은 사례도 있긴 했다.

1970년대에 소련의 유대인 탄압이 심해지자[4] 소련은 이민을 완화했고 약 25만 명이 이민을 갔다. 이들은 상당수가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이나 미국 등으로 갔다. 구글의 창설자 세르게이 브린이 이때 이민을 간 대표적인 사람이다.

2.3. 고르바초프 시대 이후 이민[편집]


1980년대가 지나면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 등으로 러시아의 이민 제한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그 덕분에 미국에서 러시아어 구사자는 1980년에는 273,226명 수준이었지만 2005년엔 806,242명으로 늘었다. 특히 1987년부터 소련 각지에 잔존해 있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으로 대량 이민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러시아 내 유대인 인구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감소한 편이라 한다.

유대인 이외에 또 다른 주요 종교적 소수자 이민 집단으로는 무슬림 메스케티 튀르크인들이 있는데 20세기 초반까지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거주하였다가 스탈린 대숙청 때 카자흐스탄 일대로 강제이주 당하고 소련 해체 이후 다시 러시아의 크라스노다르로 이민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재이민한 경우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메스케티 튀르크인들의 이민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러시아인의 이민만큼 깐깐한 제한을 두지는 않고 있다.

이 외에도 유명 음악인이나 패션 모델 중에서 미국에 정착한 경우도 흔하다. 이리나 샤크, 앤 비알리치나, 발렌티나 젤랴예바, 블라다 로슬아코바 등등. 앤 비알리치나의 경우는 자신의 딸의 이름을 미국과 러시아의 사이를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알레스카라고 지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최근에도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에 지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알아보는 러시아인들이 있다고 한다. 물론 푸틴 정권에 적대적이지 않은 러시아인이 경제적인 목적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도 있긴 하다.


3. 성향[편집]


파일:나보코프.png
  • 미국 이민 후에는 영어로 소설을 쓴 러시아계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영어권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 20세기 최고의 영어 명문장가로 꼽힌다. 정치 성향은 우파에 가까웠는데, 볼셰비키 혁명과 나치즘의 태동 당시의 트라우마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소련) 정부의 정치적 탄압을 피해 망명해온 러시아인의 후손들은 대체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단순히 생계형 이민을 온 러시아인의 후손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불가리아, 세르비아,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등 구 공산권의 동유럽 국가 혈통인 미국 백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미국으로 이민한 러시아인 상당수가 지식인 계층이었던 이유로 오늘날 러시아계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소득 및 교육 수준이 평균을 상회한다. 2017년 기준 러시아계 미국인 가정의 1년 평균 소득은 $80,554[5]로 미국 평균 $60,336를 상회하며, 대학 졸업률은 60.4%로 미국 평균 32%를 상회한다.


4. 인물[편집]



5. 관련 문서[편집]


[1] 우크라이나계, 벨라루스계, 폴란드계 등 과거 러시아 제국 영토 출신[2] 주로 루신인 출신 이민자 중 러시아계 미국인 정체성을 가진 경우[3] 고의식파 신도들 포함[4] 직접적인 탄압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소련 중앙텔레비전의 이사직을 맡은 세르게이 라핀이 유대인 연예인들의 TV출연을 제한하는 등 차별행위가 어느정도 있었다.[5] 다만 알레스카에 잔류한 러시아인 정착촌 내 러시아계 미국인들은 미국 백인들 중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집단에 속한다.#1#2[6] 2011년 작고한 인물로 그의 살아생전에는 푸틴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었고, 당시는 아직 푸틴이 독재 의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이전이었다. 랴자노프스키 사후 푸틴이 대한 그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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