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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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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러시아 통치 시기와 마찬가지로 소련 시기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양국 러시안 디아스포라는 다양한 이념, 계급, 직업, 문화 정체성을 가진 매우 혼종적인 구성을 보였다. 집단 내 차이와 분화의 정도는 제정러시아 시기보다 훨씬복합적인 양상을 보인다. 소련 합병기 발트지역 내 러시안 디아스포라는 다음의 다섯 가지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그룹은 러시아에서 파견된 공산당 통치엘리트 및 발트 주둔 군대 장교 및 일반사병 등의 군인들이다. 여기에는 퇴역 후에 발트 지역에 남은 장교와 군인도 포함되는데, 이들은 발트국 정착 후 본토의 가족, 친척들을 데려옴으로써 일종의 '이민 체인(immigration chain)'을 형성했다. 이들은 ‘해방자’로서의 소련 이념에 충실하며,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린집단이다.

두 번째 그룹은 노보탈린스크나 벤츠필스 항구, 올라인의 화학단지, 리가의 포포프 플랜트 등 국가 기반산업에 종사한 건설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러시안 디아스포라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또 가장 늦게 이주한 이들이기도 하다. 특히 러시아의 가장 가난한 지역 거주자들이 주로 채용되었다. 첫 번째 그룹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가족이나 친척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규모 국가산업에 종사하기에 정착과 동시에 집이 주어지고 높은 임금을 받는 등의 혜택을 누렸다.

세 번째 그룹은 엔지니어, 의사, 교사, 연구원, 연극계나 언론계 종사자, 고숙련 노동자 등 전문가 집단이다.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 오데사 출신의 지식인으로, 특히 엔지니어나 연구원, 고숙련 노동자의 경우, 위에 열거한 국가기반산업을 이끄는 최고기술자로 발트 지역의 전문적, 기술적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이들과 더불어 의사나 교사, 문화계 종사자들은 소련 전체에 구축된 전문가 고용 시스템을 통해 발트국에 정착하게 된 일종의 ‘다국적 소련 지식인(multinational Soviet intelligentsia)’에 해당한다.

네 번째 그룹은 창조적 인텔리 러시아인들로 이들의 발트국 이주는 일종의 정치적, 이념적 망명에 해당한다. 이들 중에는 소련의 제5열(пятаяколонна)12)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에서 찾지 못하던 일자리나 사회적 인정을 이주를 통해 얻기도 했다. 러시아 이민자 중 수적으로는 가장 적었지만 가장 권위 있는 그룹으로 토착민족에게도 높은 존경을 받았다. 로트만(Ю. Лотман), 예고로프(Б. Егоров), 사모일로프(Д. Самойлов) 등 러시아의 저명한 인문학자, 작가 등이 여기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그룹은 2차대전 전, 또는 혁명 전부터 발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다. 17세기 발트지역으로 대량 탈주한 러시아 구교도의 후손이 대표적으로, 거의 토착민이나 다름없이 세대에 걸쳐 이 지역에 살아온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러시안 디아스포라 중 거주국과 통합의정도가 가장 높으며 수적으로도 다수에 속한다. 이들은 러시아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보존하면서도 토착어에 능숙하고 거주국 문화에 익숙하며 이를 존중했다. 1930~40년대 스탈린의 대반동 시기 이 그룹은 발트인들과 함께, 때로는 그들보다 먼저 탄압 당했다(Simonian 2004, 67 74).

제1, 2 그룹이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현지인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데 반해, 나머지 세 그룹에 대한 현지인의 태도는 우호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이었다.

역전된 소수자: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사회의 러시안 디아스포라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