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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가브리엘라 디 사보이아

덤프버전 :

사보이아의 공주
마리아 가브리엘라 디 사보이아
Principessa Maria Gabriella di Savoia

이름
마리아 가브리엘라 주세파 알데곤다 아델라이데 마르게리타 루도비카 펠리치타 젠나라 디 사보이아
(Maria Gabriella Giuseppa Aldegonda Adelaide Margherita Ludovica Felicita Gennara di Savoia)
출생
1940년 2월 24일 (84세)
이탈리아 왕국 나폴리
배우자
로베르 젤링거 드 발카니 (1969년 결혼 / 1990년 이혼)
자녀
마리 엘리자베트
아버지
움베르토 2세
어머니
벨기에의 마리조제
형제
마리아 피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마리아 베아트리체
종교
가톨릭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마리아 가브리엘라는 이탈리아 왕국의 마지막 왕 움베르토 2세의 딸이자 이탈리아의 왕위 요구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의 여동생이다. 현재 그녀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편집]


1940년 2월 24일 이탈리아 왕국 나폴리에서 움베르토 2세벨기에의 마리조제 공주 사이의 1남 3녀 중 차녀이자 셋째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난 1940년은 그녀의 조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등용한 베니토 무솔리니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해로 본격적인 혼돈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입게 되었고, 1943년 국왕은 이탈리아 북부 지역이 나치 독일괴뢰국살로 공화국이 되자 자신은 비교적 안전한 남쪽 지방으로 피신했다. 1940년 이전까지만 해도 극좌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인기가 많았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일가와 사보이아 왕실는 이 사건을 말미암아 평판이 극도로 나빠졌다. 나치군의 위협과 이탈리아 국민들의 분노로 위기를 감지한 그녀의 어머니 마리조제는 자신의 자식들과 함께 스위스로 대피했다. 그리고 마리조제와 그녀의 자식들은 1945년에 로마로 귀환했다.

1945년 무솔리니가 총살되고 좌파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정치권은 무솔리니 다음으로 전쟁 책임이 있던 왕실을 폐지하고자 이듬해 1946년 국민 투표를 개시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그나마 자신보다 인기가 있는 아들 움베르토 2세에게 양위해서라도 군주제를 유지하려 했으나, 결국 공화정 전환 54%, 왕실 유지 46%로 이탈리아 군주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공주였던 마리아 가브리엘라도 이에 따라 겨우 한 달 만에 공주 자리를 빼앗긴 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타국으로 추방되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6세였다.

마리아 가브리엘라는 다시 어머니가 있던 스위스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자리잡았다. 그녀는 제네바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학업을 이어갔다.


3. 여담[편집]


1959년 이란 제국팔레비 2세가 소라야 왕비와 이혼한 직후 다음 왕비 후보자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결국 종교적인 이유로 엎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