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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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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를 표현하고 있는 토머스 내스트[1]의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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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경에 그려진 시사 만화의 장면으로, 박식하지만 비쩍 마른 학자와 건장하지만 우둔한 권투 선수를 대조함으로써 독해와 연구는 스포츠 같은 신체 활동과 반대라는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2] '약한 것은 죄악' 문서에 적힌 블레즈 파스칼의 어록과 엮어서 해석할 여지도 있다.

1. 개요
2. 용어의 역사
3. 목적의식
4. 형태
4.1.1. 파시즘과 반지성주의
4.3. 탈진실(Post-truth)
5. 남용 문제
5.1. 지식인층 비판과의 구별
6. 어록
7. 같이 보기
7.1. 집단주의 관련



1. 개요[편집]


반지성주의(, Anti-intellectualism)는 '지식', '공부' 또는 '배움'과 관련된 대상에 대해 적대감과 불신을 갖는 사상(이데올로기) 혹은 그러한 경향을 뜻한다.


2. 용어의 역사[편집]


'반지성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963년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를 출판했을 때부터다. 호프스태터는 1950년대를 휩쓴 매카시즘의 광풍과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중들이 애들레이 E. 스티븐슨 후보에게 공공연히 적개심을 표출하던 현상에 주목해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 책은 미국의 반지성주의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3. 목적의식[편집]


반지성주의 및 전체주의가 행해지는 이유는 집단의 정체성 및 체제 유지를 우선시하라 강조하고, 이 과정에서 세뇌에 가까운 우민화에 의존하므로, 학문에 기반한 소수의 비판을 억누를 필요가 있어서이다. 보통 사상적인 이유로 인해 지식인 계층을 제거하려 들기 보다는 그저 단순히 지식인 계층이 권력 유지에 장애물이 되기에 적대하는 일이 훨씬 잦다.


4. 형태[편집]


반지성주의자들은 지적사고논리적 고찰보다는 감성과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행동, 직관의 우위를 주장하며[3], 철학, 수학, 자연과학, 연구방법론, 교육, 지식인을 배척한다. 그것을 이용하여 전체주의, 근본주의, 파시즘, 및 사이비 종교가 반대자를 억압하고 민중들을 우민화시켜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여론을 없애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이용한다. 더 무시무시한 점은, 반지성주의가 대중들의 취향에 더욱 맞아떨어지기 때문에[4]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훨씬 덜해 대중들이 빠져들기 쉽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사회나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의 통찰력을 가질 수준의 지성과 교양을 갖추려면 공부라는 수고를, 그것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랜 시간을 들여 많이 해야 한다.[5]하지만 반지성주의는 오히려 공부할 필요가 없고 공부는 샌님들이나 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주의로 앞에서 언급한 공부라는 '수고'를 건너뛰기 때문에 당장 듣기에는 더욱 달콤하다. 그래서 그 달콤함에 취해 어렵고 쓴 공부를 멀리한다. 설사 공부했다고 해도 쓰디쓴 현실을 마주하기에 공부에서 더 멀어진다.

4.1. 전체주의[편집]


국가, 민족 등 거대한 이념을 최우선시하며 개인의 자유와 이견의 표출을 억압한다. 또 불필요하다고 간주되는 지식을 금서 지정, 이론 사장 등의 방식으로 은폐하며 위협이 되는 지식인들을 제거하고 의도적으로 낮은 수준의 교육을 일률적으로 실시하여 소속 구성원들을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며 다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등 획일화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지식에 대한 말살 및 전체주의의 진행 과정 때문에 우민화나 군국주의와 연관이 있기도 하다.

4.1.1. 파시즘과 반지성주의[편집]


파시즘은 전체주의를 주요 이념으로 하고 있으며 반지성주의는 파시즘의 성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태도는 단기적으로 다수의 권력을 더 공고하게 만들 수 있었고 그들의 감정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와 민중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파시즘은 실질적인 통치에는 테크노크라트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집단에 많이 의존했다. 반지성주의처럼 보이지만 전문가주의이기도 한 것이다.

나라에 문제가 있다면 권력이나 폭력(전쟁 등)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도 이 형태에 속한다. 애초에 반지성주의의 뿌리이자 결말로 '그 이상 알면 다친다, 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같은 속설로 지성을 가진 자를 권위로 찍어누르려면 결과적으로는 힘으로 입을 다물게 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2. 대중주의우민화[편집]


반지성주의자들은 기존의 지식인들이 다수의 대중과 격리된 엘리트에 지나지 않으며 권력과 여론 등을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이러한 지식인들과 대립하며 대중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옹호자라고 주장한다. 특히 다수결의 원칙을 중요시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먹혀들기 쉬운 말이다.

그러나 다수결의 맹점을 이용하여 권력을 독차지 하거나 국민들을 핍박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나치 독일. 요제프 괴벨스아돌프 히틀러를 필두로 한 선동과 가짜뉴스, 선전 등을 이용해 투표로 선출된, 다수결에 의해 독재자가 뽑혀서 민주주의가 자멸해버린 사례이자 군중의 선택이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리는 그대로, 비판적 수용 없이 믿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몸에 A가 좋다'는 헛소문이나 실제로 심지어 팔리기까지 하는 수소수, 게르마늄 팔찌처럼 다수의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 집단이 갖고 있는 배타성과 일반인 집단이 갖고 있는 반감이 전문성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이제는 양측 사이에서 소통을 매개할 수 있는 소통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기사도 있다.

이처럼 대중, 특히 비전문가들은 지성적인 토론과 교류를 통한 합리적 선택보다는 선동과 날조에 따른 감정적인 선택을 선호한다는 걸 알 수 있다.

4.3. 탈진실(Post-truth)[편집]


이미 객관적으로 증명된 이론이나 진실을 부정하고 어떻든 간에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는 현대적 현상이다.[6] 특히 과학적 진실과 역사적 진실을 가장 불신하는데, 이는 과학과 역사의 특성상 '100% 확실'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계는 매번 새로운 것이 발견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자신이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지 확실하게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중학교 과학시간에도 나오지만 그 이론이 나옴으로서 증명하고, 그것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다가도 새로운 가설과 이론, 증명이 나온다면 그것을 다시 반박하거나 받아들이듯, 과학에는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기 매우 힘들다. 역사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시대상에 맞게 변형되어 기록되거나 소실되는 경우도 많으며, 위서 등이 많기 때문에 '이랬을 것이다' 라 추측할 뿐 완벽하게 맞다고 말하기가 매우 힘들다. 물론 학자들이나 과학자, 혹은 성향이 탐구적인 사람이라면 이런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접근하여 결과에 대한 현상과 물증 등을 근거로 토론이나 교류를 통해 잘못된 내용을 걸러낼 수 있겠지만, 예/아니오라는 단순한 답만 좋아하거나 뭔가를 확실하게 믿는걸 원하는 성향의 사람들, 혹은 새로운 내용에 무관심 하거나 토론과 대화 등을 귀찮아하는 사람이라면 과학계의 이런 절차를 불신하거나 귀찮아 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해할 수준이 되어 있지 않음에도 대충 이해하고 맞다며 자기합리화에 빠지면서 탈진실 과정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으로 좋은 정보가 많아진 만큼 가짜뉴스도 많아지고,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편향된 정보만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7] 지구평면설, 천동설, 그림자 정부 등 음모론과 탈진실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완전한 진실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해서 과학이나 역사학이 쓸모없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학적 접근의 의미는 직관과 근거없는 예측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이다. 비과학적 실험과 비논리적 추론으로는 진실에 결코 다가갈 수 없음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 과학역사학은 거짓에 가까운 음모론이나 유사과학, 유사역사학과는 세계관이 다르다. 과거의 이론이 폐기되었다는 뜻은 그 이론을 폐기할 수 있을 정도의 과학적 성과를 발견했다는 뜻이고, 실험이 실패했다는 것은 여러 접근 방법 중 하나가 그 진실에 다가서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여러 갈래의 가설을 하나씩 검증하며 그 가짓수를 줄이는 자체가 진실에 대한 접근이다. 따라서, 기성 학문이 진실을 완전히 알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탈진실'을 택하는 것은 훨씬 더 큰 오류를 범하는 행위이다. 당연히 현대 과학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학문이 아니며, 과학으로 규명된 분야보다 그렇지 않은 분야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쓸모없는 학문일까? 고리타분하고 알아듣기 힘든 기성학문의 이론들보다, 흥미 위주의 음모론이나 유사과학이 훨씬 귀에 더 잘 박힌다. 단순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며 열심히 진실을 탐구한 석학들을 한번에 바보로 여길 수 있을 만큼 지식의 역전이 일어나는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탈진실 현상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이러한 점을 파고들어 대중의 불신을 일으키고, 선동가들이 돈, 정치적 영향, 관심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선동하다 보면 그것이 나중에 틀렸음이 증명되었음에도 다수의 사람들은 그에 해당하는 정보 자체를 거부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큰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5. 남용 문제[편집]


엄밀한 학술적 사상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정치적 비난의 수사로서 자주 쓰이는 용어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반지성주의자라고 칭하는 사람은 없으며 반지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만 존재한다.

2020년대 이후로는 전세계적으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반지성주의자'로 치부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옳고 지성적이며 '상대'는 틀리고 반지성적이다." 라는 이분법적인 태도는 결국 또다른 반지성주의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반지성주의' 라는 단어를 '무식함' 이라는 단어와 일치시키는 경우가 대한민국의 미디어나 인터넷 상에서 매우 많은데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예를들어 타국의 수도 이름이나 삼각함수를 모른다고 해서 그것은 '반지성주의' 와는 전혀 다르다.

학술적인 연구에 관한 단어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맥락에서 나왔기 때문에[8] 전체적인 정치 변화를 모르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용어이며 이것을 일상 생활에 함부로 적용하는 것은 상당히 자의적이 될 수도 있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9]

'반지성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반대 개념이 무엇인지를 우선 명확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10]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철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단순히 '반지성주의는 나쁘고 그 반대는 좋다'라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지성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반지성주의의 사례도 자주 드러나지만 그 반대에 속하는 엘리트주의[11], 이성만능주의, 과학만능주의, 전문가주의, 능력주의, 선민의식 등의 사례도 자주 드러난다는 점에서 다른 특이성이 있다.[12] 자신과 대중의 입장이 다를 경우 대중을 반지성주의적이라며 비판하다가 자신과 대중의 입장이 같을 경우에는 대중의 편을 들며 반지성주의적 스탠스를 취하는 이들도 매우 흔하니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치에 있어서 확실한 전문가인 정치인의 주장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을 반지성주의라고 규정하는 일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념을 불문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치인의 주장을 무조건 비난하는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태도를 반지성주의로 규정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이다.

오묘한 것은 확실한 권위와 근거를 가진 전문가의 주장을 무조건 불신할 경우에는 반지성주의가 되지만, 때로는 전문가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신봉할 경우에도 반지성주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전문가의 의견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는 반지성주의 여부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누군가를 추종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13]

5.1. 지식인층 비판과의 구별[편집]


간혹 곡학아세 등의 '지식인이나 전문가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 내지는 '비전문가가 전문가 앞에서 이견이나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반지성주의와는 엄연히 다르다. 반지성주의와 지식인의 행태 비판을 동일시하는 주장을 하는 '지식인', '전문가'들의 경우 그 의도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지식인, 교수는 믿을 게 못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E. H. 카역사란 무엇인가 사후개정판 서문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14] 보통 우민화 정책 등과 연관해서 비판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용어지만, 이 개념 자체가 꼭 틀린 것은 아니다. 대립되는 양쪽에서 어느 것에 무게를 싣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극단적인 반지성주의로 가는 경우이다.

이는 모든 전문가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을 펼치라는 뜻이 아니다. 단순히 특정 분야의 권위자가 하는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되며, 최소한의 교차검증은 하라는 것이다. 지식인이나 전문가 역시 어디까지나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인 만큼 그들의 전문성을 이권과 권력을 위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오해를 그대로 적용하면 그 어떤 것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없게 된다. 지식인이라고 마냥 성인군자인 것은 아닌데, 오히려 정보력과 전문성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실제로 지식인 계급이 유일한 지배계급이어서 권력을 독점하던 조선의 경우 지식인계급이 앞장서서 노비를 부리고 백성을 착취했다. 게다가 이들은 지적우위를 이용하여 착취와 억압을 자행하던 중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우위를 잃지 않았다. 더 심각한 건 지식인계급 전체가 자행하는 범죄는 잘 조명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역사를 쓰는 것도 사회를 비판하는 것도 지식인계급이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두말하면 입 아픈 또 다른 부류가 바로 현대 정치인들로 반지성주의와 지식인, 전문가들을 비판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치학 교수 정도를 제외하면 정치인들보다 정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니 정치인이 비리를 저지르건 반동주의적인 정책을 펼치건 아무것도 모르는 우매한 대중은 그냥 닥치고 있으라는 반민주적 결론이 도출된다.

또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독재 국가와 같이, 고등 교육을 받은 인재가 드물고 또 그러한 인재가 독재 국가라는 특성상 어용 학자, 기자, 작가 등으로 전락할 여지가 큰 [15], 지식인이 지식인으로서 힘을 전혀 쓸 수 없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오해가 더더욱 위험해진다.

일부에선 엘리트주의와 반지성주의를 일반화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물론 독재에서 시작한 엘리트주의는 권의주의적 행동이나 확증편향, 진영논리 등으로 인한 반지성주의적 행동을 하며, 엘리트들이 자기 전공 외 다른 분야에 대해서 반지성주의적 행동이나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엘리트주의로 시작된 일들이 인류의 입장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둬들이고, 이러한 엘리트 중심에는 오히려 지성인들을 중심으로 학문의 발전을 앞당기는 등 반드시 엘리트주의가 반지성주의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6. 어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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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증오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전의 가장 큰 적은 '지식인 주의'이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


진정한 천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음은 바보들이 단결해서 그와 맞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조너선 스위프트[16]

[17][18]


나는 우리에게 지각과 이성, 그리고 사고력을 부여하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그것들을 사용하는 행위를 금하시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신들조차도 어리석음을 무찌를 수 없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


인간의 멍청함이 가진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로버트 A. 하인라인


엉터리로 배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다.

벤자민 프랭클린


모세는 학문적으로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않은, 평범한 상식을 지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방식으로 설명했다. 반면 천문학자들은 인간 지성의 예리함이 파헤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큰 노력을 들여 연구한다. 그러한 연구에 반감을 가져선 안 되며, 과학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이라면 생각 없이 거부하는 광신도들의 오만으로 비난받을 존재가 아니다.

장 칼뱅


예언자 무함마드는 우리에게 종교를 설파하기 위해 온 것이지 민간 요법 같은 잡동사니를 가르치러 온 것은 아니다. 예언자의 언행에서 나오는 의학과 관련된 언급을 결코 강제적 성격을 지닌 율법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이븐 할둔[19]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찰스 다윈


이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


好信不好學其蔽也賊

그저 믿기만 좋아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남을 해치는 것이다.[20]

논어 17장(양화) 제8절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의견을 채택한 뒤에는 모든 얘기를 끌어들여 그 견해를 뒷받침하거나 동의한다. 설사 정반대를 가리키는 중요한 증거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며, 미리 결정한 내용에 죽으라고 매달려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지키려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

워렌 버핏


"우리들은 모두 세상을 자신의 선입관에 맞춰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와 상반된 관점은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수고로움을 동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죠. "

(We all have a tendency to think that the world must conform to our prejudices. The opposite view involves some effort of thought, and most people would die sooner than think – in fact they do so.)

버트런드 러셀, 《상대성 이론의 참뜻》(1925)


"만약 누군가가 유능한 교수라면, 그의 첫 번째 임무는 학생들에게 그들 자신의 가치입장의 정당화에는 불리한 사실들ㅡ즉, 학생의 당파적 견해에 비추어볼 때 학생 자신에게 불리한 그런 사실들ㅡ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모든 당파적 견해에는ㅡ예를 들면 나의 견해도 포함해서ㅡ이 견해에 극도로 불리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만약 대학교수가 그의 수강생들을 그것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면, 그는 단순한 지적 업적 그 이상을 행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너무나 소박하고 당연한 일에 대한 표현치고는 어쩌면 너무 장중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감히 그것을 '도덕적 업적' 이라고까지 부르고 싶습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pp.65-66


"제임스 핸래티가 다시 돌아와 자신이 범인이라고 털어놓아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에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요.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니까요."

A6 도로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밸러리 스토리가 2002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


우리는 오래된 편견을 던져 버리는 대신 상당히 소중히 여긴다. 더욱 수치스러운 것은 그것이 편견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에드먼드 버크


현명한 자는 보는 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 걸 본다.

이오시프 스탈린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펼치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고 하였다. 어느 때부터 신문에서 매일 담배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기사가 계속되자 그는 신문을 끊었다.

담배의 중독성에 관한 유머 중 하나.[21]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이경규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이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

공부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헛되고, 생각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논어 위정편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아는 것이 적으면 많이 아는 사람을 미워한다.

유빈(柳玭; 중국의 학자)


저희는 일반인이라 굳이 그 논문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김윤경(시민연대 '인터넷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의 정책국장), MBC 100분 토론/827회

해당 발언


아무튼, 요즘 같은 시대를 '반지성주의의 시대'라고 일컫는다면서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반지성주의의 시대가 아니라 온정주의의 시대입니다. 멍청이들을 반지성주의라는 멋진 호칭으로 불러주는 배려와 온정의 시대죠.

부기영화 134화, 돈 룩 업 편


7. 같이 보기[편집]



7.1. 집단주의 관련[편집]




[1] Thomas Nast(1840년 9월 27일~1902년 12월 7일), 독일 태생의 미국 캐리커처 화가이자 미국 카툰의 아버지로 간주되는 시사 만화가이며, 대표작으로는 현대판 산타클로스와 다양한 정치적 상징으로서의 코끼리 심벌이 있다.[2] 다만 일부 포퓰리스트들은 신체적 능력이 과도하게 뛰어난 운동선수도 엘리트 계층으로 보아 비판하기도 한다.[3] 진화적 과정에서 체득된 직관이 논리에 의한 판단보다 더 정확한 경우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물론 이것이 논리적 고찰을 무시한 직관에 평가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므로 주의를 요한다. 직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철학의 경우, 철학자들조차 직관적인 판단에 다양한 편견이 반영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4]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들의 무비판적 성향이 지성만능주의, 엘리트주의인 경우도 많다. 사실 반지성주의라는 용어는 정치적인 변화와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상황과는 잘 맞지 않는 면이 많다. 대한민국의 대중들만 해도 반지성주의적인 면도 있지만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성향 역시 매우 강하다. 이는 한국의 사회적 환경에서 나온 것이다.[5] 예를 들 코로나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방역, 백신, 등 각종 현안들을 봤을 때 그 정책들이 물론 당연히 정치적인 면도 포함돼 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정부가 국민들 통제하려고 거리두기하고 백신 강제로 맞춘다' 등 반지성주의의 대표적인 예시들로 코로나 관련 분야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으면 빠져들기 매우 쉽다. 얼마나 공부해야 하냐면 '백신을 맞았을 때 감염 예방과 증상 완화 효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와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가?'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칠 때 어떤 단백질과 효소가 변형되는가?' 정도까지 알아야 반지성주의에 빠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인간 본성 자체가 원래 단순하기 때문에 엄청난 노력을 요구한다.[6] 단, '객관적인 진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같은 철학적 질문과는 결이 다르다. 깊이 고민하는 철학의 개념이 아닌 생각 자체를 아예 거부하는 고집에 가깝기 때문.[7] 유튜브 알고리즘이 대표적인 사례로, 유튜브 알고리즘을 2~3번만 타도 추천 동영상이 방금 보았던 영상과 매우 유사한 영상들로 채워진다. 따라서 다른 입장과 정보를 접할 기회가 줄어든다.[8] 학자나 언론인이 반지성주의를 언급하는 경우는 대부분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논할 때이다.[9] 한국 대중들에게 그냥 '무식한 놈' 정도로 이해되는 경향이 다분하다.[10] 지성, 사고, 논리, 직관, 감성 등의 개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반지성주의라는 개념도 허깨비에 불과하다.[11] 물론 엘리트주의도 독재 권력과 결합하거나 잘못 운용될 경우 오히려 대중들의 반지성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 다만 기본적인 관점에선 엘리트주의는 반지성주의의 반대에 가깝다. 물론 엘리트주의가 반드시 정단대의 극단주의인 것은 아니다.[12] 'XX는 지능의 문제', 국평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한국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성주의' 국가라는 평도 있다.[13] 한 과학자는 이를 과학적 삶의 양식이라고 칭하기도 했다.[14] "가까운 장래에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믿음은 불만에 가득 찬 지식인 집단에만 국한되어 있고, 그들이 오늘날 그런 믿음을 유포시키는 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결론내리고 싶다. 나의 결론은, 파괴와 쇠퇴 이외에는 아무것도 내다보지 않으면서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인류의 더 나은 진보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제해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가 엘리트주의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주된 창도자들은 지식인들, 즉 자신들이 봉사하고 있는 지배적 사회집단의 이념을 전파하는 자들('한 사회의 이념은 그 사회의 지배계급의 이념이다')이다."[15]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한병태가 이런저런 굴욕을 겪은 끝에 엄석대 편에 붙게 되는 것이 당대의 지식인들이 겪은 독재 정권에 붙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세태를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16]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한 말로도 알려져 있으나, 원조는 조너선 스위프트이다.[17] 역설적이게도, 이 말을 한 스위프트 본인은 당대의 천재적인 과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을 매우 싫어했으며, 뉴턴 역학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그의 저서 걸리버 여행기의 3편에서 등장하는 라퓨타는, 뉴턴과 당시의 과학계를 신랄하게 비꼬는 내용이다.[18] 다만 그가 반지성주의라고는 단정지을수는 없는게 조너선스위프트가 살던시대는 과학혁명이 한참 일어나던 시기이며 급속도로 기존의 상식들을 무너뜨리고 생겨난 새로운학문들과 이에 맞춰 생겨난난일부 유사과학 등의 사례로 인해 이사람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들을 완전히 신뢰하기엔 많이 어려웠을것이다. 그 걸리버여행기의 내용도 과학자체보단 온갓 기행을 벌이는 돌팔이들과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기술로 누군가를 착취하려하는 인간의 오만하거나 탐욕스런 행동을 비판하는것에 초점이 맞춰져있다.[19] 중세 말에는 그리스-로마 의학을 계승하여 발전하던 당대의 이슬람 의학이 불온하다며, 무슬림들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려준 민간 요법 외에 의학으로 치료받으면 안된다고 멍멍거리는 놈들도 생겨났다. 오늘날 보코하람의 시조인 셈이다. 이븐 할둔 역시 음악을 금기시하던 보수적인 학자였는데도 이런 말을 책에 적었을 정도니, 이들의 비상식적인 횡포를 알만 했다.[20] 다만 이 문장에서의 '信'은 정보의 수용 측면보다는 더 넓은 의미의 '신의 있는 태도'에 가까운 의미이며, 맹신을 신의 있는 태도와 동격으로 볼 것이 아닌 이상 반지성주의를 꼬집는 말로 보기는 곤란하다. 애초에 이 문장 자체가 공자가 제자 자로에게 전한 경계의 말 가운데 일부로, 그 전체 내용은 仁(어짊), 知(지혜), 信(신의), 直(강직함), 勇(용감함), 剛(굳셈)의 여섯 가지 미덕도 배움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폐해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21] 보기 싫은 것(담배의 해악)은 거부하는 소극적 확증편향으로 볼 수 있다. 적극적인 확증편향의 예로는 '봐라! 아무개는 담배 피우고도 100살까지 살았다!'라는 기사를 제시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