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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파브리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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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옥중 논문 게재 논란



1. 개요[편집]


파일:발레리 파브리칸트.png

Valery Iosifovich Fabrikant (Валерий Иосифович Фабрикант)

교수이자 살인마.

소련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인물이다.


2. 상세[편집]


1940년에 소련 벨로루시 SSR 민스크에서 태어났다. 벨라루스계다.

소련 출신이었던 발레리 파브리칸트는 기계공학자로써 실력은 좋았으나 성격 탓에 동료와의 다툼이 많았다. 그러다가 1979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리고 이듬해 캐나다 콘코디아 대학교 기계공학부 부교수로 채용됐다. 하지만 여기서도 성격 탓에 동료 교수들과 마찰을 빚었는데 자기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는 성격 탓에 지탄을 받았고 학생들과도 불화를 빚었다.

이러다가 결국 1992년 8월 24일에 연구를 둘러싸고 갈등하던 교수 4명을 총으로 쏴 죽이기에 이른다. 대학 직원에게도 총상을 입히고 경비원과 연구실 관계자를 인질로 잡아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다.

법정에서도 괴팍한 언행으로 법정모욕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법정에서는 일관되게 정당방위를 주장했고 파브리칸트는 5개월간의 재판에서 변호인 10명을 선임하고 자신을 변호했다. 그는 교수진들이 "심장마비를 유발하려고" 했기 때문에 살인을 방어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변론을 하였다. 그러나 편집증이 있긴 하지만 형사상 책임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1급살인죄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60편이 넘는 논문을 게재했다.


3. 옥중 논문 게재 논란[편집]


발레리의 논문 저술에 일부 학자들은 반대 의견을 나타냈는데 특히 발레리가 몸담았던 콘코디아 대학교 총장은 범죄자의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는 것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반면 몬트리올 대학교의 이브 긴그라스 교수는 "개인의 범죄는 사회가 벌하는 것이지 과학적 성과의 타당성 판단에는 영향이 미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는 "이번 이슈는 과학자의 연구 내용을 평가할 때 그 행동이나 사상도 포함할지 윤리적 딜레마를 부각한다""논문 내용이 건전하면 출판돼야 마땅하며, 살인자의 논문을 폐기하는 것은 지식의 억압"이라고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