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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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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실이
Bang Sil-i


본명
방영순
출생
1958년 10월 29일[1] (65세)
경기도 강화군 (現 인천광역시 강화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강화국민학교 (졸업)
강화여자중학교 (졸업)
강화여자종합고등학교 (졸업)[2]
신체
165cm, 67kg, O형[3]
가족
남동생 방화섭, 배우자 김연국, 아들, 딸
취미
수영, 무용
데뷔
1986년 <서울시스터즈>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가수.


2. 생애[편집]


강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82년에 미8군 부대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 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활동하기 위해《방실이와 두 여자》, 《글래머걸스》 등 여러 그룹을 결성하여 화려한 율동과 특유의 시원스런 가창력을 무기로 무명시절을 극복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가수로 활동한 시기는 1985년 박진숙, 양정희를 만나 국내 유일의 여성 트리오 《서울 시스터즈》를 결성하면서 부터이다.[4]

당시 맏언니였던 방실이는 1986년에 1집 트로트곡 〈첫차〉를 발표하고 공식적인 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다. 타이틀곡 〈첫차〉는 신나는 리듬과 함께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로, 이 노래를 계기로 데뷔 초부터 남성팬들을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상급 가수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인 1987년 발표한 2집 <뱃고동>과 2년뒤인 1988년 발표한 3집〈청춘열차〉도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1989년이 되자 같은 팀원이었던 박진숙, 양정희가 결혼으로 인해 국수를 먹게 되면서 이별을 하게 되는 바람에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서울 시스터즈》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어 추억 속으로 사라져 대중들에게서도 잊혀져 갔다.

방실이는 데뷔 4년만인 1990년에 솔로로 전향함과 동시에, 중장년층을 겨냥한 방실이의 솔로 데뷔곡이자 방실이의 1집 앨범의 타이틀곡 〈서울탱고〉는 탱고리듬으로 된 가요였다는 점과 그룹 활동 때 갈고 닦은 그녀의 풍부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낯선 곳을 떠도는 나그네의 쓸쓸한 넋두리를 부질없는 세상사에 연관지어 관조하듯 표현해 특히 중장년층과 기성세대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92년, 2집 앨범 〈여자의 마음〉도 유행하여 다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 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던 방실이는 1994년에 사업가인 김연국하고 결혼하고 한동안 잠정 은퇴하였다.[5] 그러던 1997년, 선행 연예인으로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을 받은 적 있다.#

그 후 2000년에 솔로로 복귀하였고, 2002년 11월에 발표한 트로트 <뭐야 뭐야>로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인가요 분야에서 상위권을 석권하였다. 이 노래는 전 세대에 널리 알려져 노래방 애창곡으로도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 5월에는 빠른 박자와 댄스 리듬의 트로트 <아! 사루비아> 가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방실이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약간의 댄스 비트와 발라드, 블루스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개성있는 창법과 출중한 가창력,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을 섭렵하며 인기를 확보한 실력 있는 가수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06년 9월에는 <괜찮아요>를 발표하였다.[6] 또한 그녀는 데뷔 때부터 거구한 체중과 단발머리를 주로 선호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로 자신의 이미테이션 가수들(밤실이, 방쉬리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 2007년 2월 SUPER JUNIOR-T가 자신의 노래 〈첫차〉를 리메이크하자 피쳐링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활발히 활동하던 도중이던 2007년 6월 7일, 과로와 몸살 증세로 인한 뇌경색으로 주위를 안타깝게 하였으나, 현재는 건강이 호전되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 2013년 11월 5일에는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뇌경색으로부터 회복된 모습을 보였다. 다만 연예계 복귀는 지금까지도 재개하지 않은 상태이다.

2021년 MBN 특종세상 스타멘타리에서 오랜만에 근황이 나왔는데, 몸이 좋았다 안좋았다를 반복하고 있고 현재는 80% 정도는 앉아 있는다고 한다.# 뇌경색환자들이 겪는 흔한 일상인데, 재발위험이 큰 질병이라 연예계 복귀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2022년 6월 방송된 '스타다큐 마이웨이' 방실이편에서 친한 동생인 포크가수 양하영이 우정출연했는데,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언니인 방실이의 예전 활발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부디 완쾌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방실이 앞에서 공연을 했다.

2023년 4월 2일 방송된 '스타다큐 마이웨이' 이동준편에서 방실이가 입원한 요양원을 방문하여 근황이 나왔는데 왼쪽 눈 시력이 완전히 상실하였고 오른쪽 눈 마저 80%가 상실되어 거의 보지 못할 정도이다. 방실이의 눈 수술을 앞두고 이동준은 자선 디너쇼에서 모은 후원금을 기부하였다.

3. 여담[편집]


  • 한서경, 문희옥, 김혜연, 한혜진, 전미경과 친하다.
  •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뇌경색이 발생하기 전까지 전국노래자랑에서도 초대가수로 종종 나왔었다. 초대가수로 나온 회차는 2007년 6월 24일에 방송된 전라남도 보성군 편이 마지막이며 해당 회차는 2007년 5월 5일에 녹화했다.
  • 2002년 서세원이 제작한 영화 긴급조치 19호에 출연한 적이 있다. 김흥국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나왔는데, 이 때 방실이가 김흥국에게 "너 월드컵 끝났는데 뭐 먹고 살거냐?" 라며 놀린다.[7] 참고로 방실이는 김흥국보다 1살 많다.

[1] 방실이가 63년생이 아니라는 얘기는 전 부터 있었다. 22년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61년생(프로필상 63년 1월생)인 양하영이 언니라고 부르는 걸로 보아 63년생은 방송 나이인 것이 확실해졌다. 서울시스터즈의 다른 멤버인 박진숙이 59년, 양정희가 61년생이었기 때문에 실제 서울시스터즈의 맏언니였던 방실이는 최소 1958년생 이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동준과 오랜 절친으로 친구인 것을 보면 1958년생으로 추정된다.[2] 현 강화초등학교 - 강화여자중학교강화여자고등학교.[3] KBS[4] 이들이 데뷔후에 2년이 지난 1988년에는 일본의 소녀대를 벤치마킹한 세또래가 등장하게 되었다.[5] 이 결혼은 당시 소속사 때문에 강제로 했다고 한다.# 당시의 남편은 일본인이었다고....... 일본명은 아마키 도시히로.[6] 이 영상을 보면 1993년에도 동명곡이 있었는데 2006년에 나온 버전은 리메이크를 한 것으로 보인다.[7] 이미 알려진대로 김흥국은 연예계에서 소문난 축구광이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부터 응원단을 조직해 해외 응원을 다녔고,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냈던 정몽준 전 국회의원과 친분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