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깁

덤프버전 :

분류





배리 깁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펼치기 · 접기 ]



파일:songwriters-hall-of-fame-logo_770_441_90_s.jpg 작곡가 명예의 전당 헌액자
[ 펼치기 · 접기 ]
이름
배리 깁
BARRY GIBB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1994년 출처 참조



Sir Barry Gibb
CBE


파일:MV5BMjExNjQ4OTYzNF5BMl5BanBnXkFtZTcwMjM1NjEwMw@@__V1_.jpg

본명
Barry Alan Crompton Gibb
배리 앨런 크롬튼 깁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맨 섬 기.svg 맨 섬) |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생
1946년 9월 1일 (77세)
왕실령 맨 섬 더글라스
작위
기사 (Knight Bachelor)[1]
직업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프로듀서
소속
래틀스네이크 (1955 - 1958)
비 지스 (1958 - 2003, 2009 - 2012)

[ 펼치기 · 접기 ]
신체
180cm
다른 이름
조니 헤이스(Johnny Hayes)
거주지
미국 마이애미 주
영국 버킹엄셔 베이컨스필드
학력
디메인 로드 소년 학교 중퇴(1953 - 1961)
맨체스터 대학교 명예 음악 박사(2004)
종교
기독교
재산
$90 million
활동 기간
1955년 - 현재
장르
, , 디스코, 컨트리
사용 악기
보컬, 기타
보컬 범위
A1[1] ~ G#5[2]
레이블
파일:캐피톨 레코즈 로고.svg
부모
휴 깁, 바바라 깁
형제자매
누나 레슬리, 남동생 로빈, 남동생 모리스, 남동생 앤디[3][4]
배우자
모린 베이츠 (1966년 - 1970년: 이혼)
린다 그레이 (1970년 - 현재)
자녀
스티븐, 애슐리, 트래비스, 마이클, 알렉산드라 / 4남 1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여담
4. 디스코그래피
4.1. 빌보드 핫 100 성적



1. 개요[편집]


배리 깁 경(Sir Barry Gibb)은 영국의 가수로, .,디스코 밴드 비 지스의 멤버이자 리더이다. 비 지스의 구성원들인 깁 형제들 중 맏형이며,[2] 동시에 현재까지 유일한 생존자이다.

비 지스가 디스코 그룹으로 전향했을 시기, 특유의 가성 창법으로 비 지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1955년, 4형제 중 동생 로빈 깁, 동생 모리스 깁과 함께 영국에서 The Rattlesnakes를 결성했다. 1958년 호주에 가서 비 지스로 이름을 바꿨고, 1967년부터는 다시 영국에 돌아와서 활동했다.

1966년, 모린 베이츠와 19살의 나이로 첫 결혼을 하지만 4년뒤 이혼하고, 1970년 24살 생일날 린다 그레이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살고있다.


2. 상세[편집]


1969년, 로빈 깁이 솔로 활동을 위해 그룹을 떠나자 12월 자신도 탈퇴를 발표하고 솔로 데뷔 앨범 The Kid's No Good을 작업하지만, 발매하지 않고 비 지스로 돌아와 Cucumber Castle 작업을 했다.

1975년 비 지스가 Main Course 앨범으로 재미를 볼 때쯤, 동생 앤디 깁을 형제들과 함께 전폭적으로 지지해줘 스타 가수로 데뷔시켰다.

1981년 비 지스Living Eyes 앨범의 실패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Now Voyager 앨범으로 솔로 데뷔를 했다. 85년, 다이애나 로스의 Eaten Alive 앨범 작업을 하고, 두번째 솔로 앨범 Moonlight Madness 작업을 하지만 곧 취소했다.

1987년, 다시 비 지스 활동을 재개하였고, E.S.P. 앨범으로 그룹은 3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 시기 비 지스에 합류하려 했던, 자신이 특히 아끼고 함께 테니스도 치던 막내 앤디 깁이 심근염으로 급작스럽게 요절하자 배리는 큰 슬픔을 느낀다.

이 후 1990년대부터 비지스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2003년 모리스 깁이 병사(病死)하면서 그룹 해체를 선언했다. 6년 뒤인 2009년 재결합했으나 로빈 깁이 간암 판정을 받았고, 2012년 4월 15일 결국 사망하여 4형제중 맏이지만 동생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혼자 남게 되었다.[3] 2018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여담으로, 빌보드 1위곡을 두번째로 많이 작곡한 가수이다. 그룹 비 지스로는 9곡이지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Woman in Love, Island In The Stream[4]이나 Emotion[5], Heartbreaker[6]등을 작곡하여 다른 가수들에게 주어 1위를 달성했다.

다른 형제들이 모두 사망하고 혼자 남았을때, 폴 매카트니가 많은 위로를 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로빈의 죽음 이후, 붉은 고기와 유제품을 일체 먹지 않으며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고 한다.

2002년, 마이클 잭슨과 함께 음반작업을 했다. 곡 이름은 'All In Your Name' 으로, 이라크 전쟁 반대와 세계평화를 도모하는 노래이다. 이 곡은 2011년 6월 25일 싱글로 발매되었다.[7]

2010년 인터뷰에서 밝히길, 존 레논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비 지스가 영국에 돌아온 1967년 3월 30일, 런던의 나이트클럽인 The Speakeasy Club에서 배리는 피트 타운젠드의 소개로 존 레논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레논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의 커버 사진을 찍은 날이라 커버 속 코스튬을 그대로 입은 채 발코니에서 밖을 보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있었다. 배리와 피트는 스카치 앤 코크를 마시고 있었고, 피트가 존을 소개해주겠다고하며 배리를 존에게 데려갔다. 피트는 존에게 "존, 이쪽은 비 지스의 배리 깁이야."라고 소개했고, 존은 뒤도 보지 않고 "Howyadoin"이라고 했고 곧바로 "Pleased to meet you"라고 한 후 다른 사람과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결국 배리는 존 레논을 뒷모습으로만 만나게 되었다.

Now Voyager 시절 이후, 면도한 채로 공식석상에 나온 적이 없다. 이 당시에도 면도를 절대적으로 거부했지만 뮤직비디오를 위해 어쩔수 없이 밀게 된 것이다.

2014년 롤링스톤과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수염이 얼굴 근육을 다 아래로 늘어당겨놔서 밀고나면 별로 예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덧붙여, 브래드 피트한테 늦기 전에 수염을 밀어버리라는 충고까지 했다.

2019년 12월 15일, 영국 전 총리인 토니 블레어와 함께 잼 세션을 가졌다. 배리가 버킹엄셔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토니가 바로 달려와 같이 세션에 참여했다. 둘은 비 지스의 히트곡인 Stayin' Alive와 You Win Again을 연주했다.

2021년 1월 8일, 3번째 솔로 정규 앨범인 Greenfields: The Gibb Brothers Songbook, Vol. 1이 발매되었다. 각국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배리의 솔로 앨범 중 최고 성적을 달성했다.

4살때, 어떤 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할 뻔(!) 했다. 다행히 얼마 안가 도망친 성추행범은 잡혔고, 경찰들이 새벽 4시에 배리에게 찾아와 범인이 맞는지 조사를 하러 왔다고 한다.

배리 깁과 배리의 동생들에 대해 인터뷰한 영상이 존재한다. 2012년 영상으로 당시 배리는 65세여서 그런지 나이가 많이 들었다. 다만 머리가 탈모가 좀 오고 백발인 것만 제외하면 얼굴만 보자면 상당히 젊어보이는 편이다.

긴 머리와 자신만만한 특유의 표정, 디스코 시절 보컬을 이끄는 이미지로 인하여 '예수'라는 별명이 있다. 비 지스의 팬이 아닌 일반 디스코 리스너들은 배리 깁이 메인보컬인 줄도 아는 경우가 많다.

김도향과 많이 닮았다.


3. 여담[편집]


  • 솔로로 데뷔해 큰 인기를 얻었던 앤디 깁과 사이가 각별했다. 위에 서술된 것처럼 함께 테니스를 치며 시간을 보냈고, 음악적인 견해도 잘 맞았다고 한다. 이에 배리는 1988년 앤디를 비지스로 합류시켜 함께 활동하려고 계획했었다. 하지만 정식 활동 직전 앤디가 갑작스럽게 심근염으로 사망하면서 배리는 큰 충격에 빠졌다. 배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이었다" 며 회고했다.

  • 비지스 멤버들 중 모리스 깁과도 우애가 깊은 사이였다.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자주 투닥투닥했던 배리와 로빈의 사이를 모리스가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중재하는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모리스는 2003년 마이애미의 한 병원에서 장협착증 수술을 기다리던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 모리스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배리는 크게 상심했다. 조사 과정에서 당시 병원이 클래시 카트를 구비해놓지 않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배리 깁은 병원 측에 항의하여 문제를 지적했고 이후 미국의 모든 병원에 클래시 카트가 모두 구비되게 되었다.

  • 로빈 깁과는 애증의 사이로, 2003년 모리스 사후 사이가 틀어졌다. 모리스 깁의 추모공연 문제를 놓고 갈등을 벌인 뒤 5년동안 서로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고 한다.[8] 비지스 활동 시절부터 투닥거리던 두 사람의 사이를 모리스가 중재해주곤 했는데, 모리스의 사망으로 이 역할이 사라지자 두 사람의 사이는 매우 소원해졌고 결국 개인적인 교류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2009년 재결합 활동 때 다시 만나 활동을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감정의 골은 이미 깊어진지 오래였고 두 사람은 다시 결별하게 된다. 그렇게 서로 교류하지 않고 살아오다가 로빈이 간암 판정을 받은 2011년 11월 배리가 그를 병문안하면서 만나게 된다.[9] 이 때 두 사람은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고 화해했으며, 병문안을 마친 배리가 병원을 떠날 때 로빈은 병실 앞까지 나와 배리를 배웅했다고 한다.[10] 그리고 로빈이 죽기 얼마 전, 배리는 호흡기를 끼고 있는 로빈을 다시 병문안했다. 배리는 로빈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고, 모리스가 죽었을 당시 그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는 회한 때문에 로빈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배리는 로빈을 위해 만든 곡인 'The end of Rainbow' 를 틀어주었는데, 로빈은 이 때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화답했다고 한다. 그렇게 로빈을 병문안하던 중, 배리는 아들 트레비스가 딸을 낳았다는 전화를 받게 되고 결국 손녀를 보기 위해 병실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배리가 마이애미 공항에 도착한 순간, 로빈이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배리는 곧장 런던으로 날아와 로빈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4. 디스코그래피[편집]


연도
제목
1970
The Kid's No Good[11]
1984
Now Voyager
1986
Moonlight Madness[12]
1988
Hawks[13]
2016
In The Now
2021
Greenfields: The Gibb Brothers Songbook, Vol. 1


4.1. 빌보드 핫 100 성적[편집]


  • Guilty[14] (3위) (1980)
  • What Kind Of Fool[15] (10위) (1981)
  • Shine, Shine (34위)[16] (1984)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30 05:33:03에 나무위키 배리 깁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2002년에 3등급 대영제국 훈장(CBE)을 받고 2018년에 2등급 훈장에 준하는 기사작위 Knight Bachelor를 받았다. 이에 따라 그의 풀 네임은 'Sir Barry Alan Crompton Gibb, CBE'가 된다.[2] 물론 밴드 한정인 것이고, 깁 형제 전체로 따지면 베리 위에 한 살 위 누나가 더 있다. 물론 지금도 살아있다.[3] 실제로 역순으로 형제들이 죽었다. 막내 앤디가 가장 먼저 죽었고, 쌍둥이 형제 중 동생 모리스가 2003년에, 쌍둥이 형 로빈이 2012년에 죽었다. 가장 맏형인 베리, 큰 누나 레슬리가 가장 장수하면서 동생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으니, 남은 자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4] 케니 로저스, 돌리 파튼 보컬.[5] 사만다 생(Samantha Sang) 보컬[6] 디온 워윅 보컬[7] 마이클 잭슨 2주기에 맞춰 발매했다.[8] 두 사람의 음악적인 견해 차이가 큰 원인으로, 배리가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로빈은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에 큰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비지스 활동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견해 차이가 매우 커 결국 사이가 소원해진 것.[9] 배리는 로빈이 죽기 1년 전에야 로빈이 간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사실 로빈은 2010년 암 수술을 받았으나 로빈이 배리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배리도 로빈의 건강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다.[10] 당시 로빈은 오랜 항암치료로 면역력이 매우 약해진 상태여서 배리는 로빈에게 감기 걸리면 큰일나니 빨리 들어가라고 말했다고 한다.[11] 미공개 데뷔 앨범.[12] 미공개 앨범, 아래의 Hawks 앨범으로 계획을 바꾸었다.[13] 동명 영화 사운드트랙.[14]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곡 피쳐링. Guilty 앨범 자체를 프로듀싱했는데 바브라의 Woman in Love 역시 배리 깁과 로빈 깁이 작곡했다.[15]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곡 피쳐링.[16] 솔로곡 중 유일하게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