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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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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우루과이의 前 축구선수로 삼촌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와 함께 우루과이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주역으로 유명하다.[1]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 그리고 커리어[편집]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는 1927년 몬테비데오의 바리오 수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삼촌은 이미 우루과이에서 블랙 마블이란 별명으로 큰 명성을 떨치고 있던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였는데 이로 인해 빅토르는 축구 선수로서 삼촌과 많이 비교가 되었다.[2]
1945년 센트랄 에스파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47년에는 국가대표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2.2. 1950년 월드컵[편집]
대표팀에 발탁된 빅토르는 곧 대인방어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최종전에서 브라질의 에이스 지지뉴를 마크하라는 특명이 떨어졌고, 그는 이것을 십분 수행해냈다.
그리고 후반 2분, 프리아사의 선제골로 우루과이 선수들이 멘붕에 빠졌을 무렵 빅토르는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에게 그 골은 오프사이드였다라는 주장을 했다. 바렐라는 이를 듣고 주심에게 항의했지만 주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와 알시데스 기지아가 골을 넣으며,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2.3. 1954년 월드컵[편집]
최종전에서만 운이 좋았다는 세간의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우루과이는 4강에까지 진출하였다. 물론 빅토르는 전 경기 선발 출장. 그리고 4강전의 상대는 매직 마자르, 바렐라가 빠진 상황에 연장전에서 근육 경련[3] 이 일어나는 악조건 속에서 분투했지만 헝가리의 산도르 코츠시스에게 연장에서 2골을 얻어맞고 패배하고 말았다.
2.4. 코파 아메리카[편집]
우루과이는 1942년 이후로 코파아메리카에서 우승이 없었다. 하지만 195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14년 만에 오마르 시보리와 앙헬 라브루나가 버티고 있던 라이벌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2.5. 이후[편집]
1957년, 빅토르는 서른의 나이에 빠른 은퇴를 택했다. 은퇴 후에는 국회에서 안내원으로 대략 20년을 일했다. 1985년 5월에 몬테비데오에서 사망했고, 그의 고향인 바리오 수르에 그의 이름을 딴 길이 있다.
또한 2005년에 그의 데뷔 클럽인 센트랄 FC[4] 는 클럽 역대 최고의 선수로 그를 선정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체력과 대인 방어 능력이 좋은 선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포지션으로 따지면 측면 수비수[5]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잘 수행했을 것이다.
4. 수상[편집]
4.1. 클럽[편집]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1953, 1954(이상 CA 페냐롤)
4.2. 국가대표[편집]
4.3. 개인[편집]
- 월드컵 베스트 11: 1950
[1]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는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에서 우승했고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는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우승했다.[2] 포지션도 비슷해서 더욱 그랬다[3] 당시에는 선수 교체가 없었다[4] 센트랄 에스파뇰의 현재 이름[5] 윙 하프로서 양측면을 모두 소화 가능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