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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평양까지

덤프버전 :

1. 개요
2. 가사
2.1. 원곡
2.2. 신형원 버전
3. 여담



신형원 - 서울에서 평양까지

1. 개요[편집]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민중가요택시기사 조재형이 작사하고 작곡가 윤민석이 곡을 붙인 노래다. 1991년 노동자 노래단 4집〈민중연대 전선으로〉에서 발표되었고 이후 1994년 꽃다지 1집에 수록되었으며 1995년 신형원 6집에 수록되었다. 신형원 앨범에 수록될 때 가사의 일부가 살짝 개사되었다.

작사가의 직업이 택시 기사여서 그런지 통일이 된다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실컷 택시를 몰고 가고 싶다는 소망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꿈 속에서라도 서울에서 평양까지 달려보고 싶다고 하는 가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2. 가사[편집]


1991년 조재형 작사 원곡과 흔히 알려진 1995년 신형원 버전 가사를 함께 수록한다. 가사가 달라진 부분은 볼드체로 표시한다.


2.1. 원곡[편집]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2만원[A]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 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B]

평양은 왜 못 가?

우리 민족 우리의 땅 평양만 왜 못 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 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볼란다.

분단 몰아내고 통일만 된다면

돈 못 받아도 나는 좋아 이산가족 태우고 갈래

돌아올 때 빈 차걸랑 울다 죽은 내 형제들

묵은 편지 원혼이나 거두어오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 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볼란다. (x2)[1]



2.2. 신형원 버전[편집]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5만원[A]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 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B]

평양은 왜 못 가?

우리 민족 우리의 땅 평양만 왜 못 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 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볼란다.

우리의 꿈 우리의 희망 통일만 된다면

돈 못 벌어도 나는 좋아 이산가족 태우고 갈래

돌아올 때 빈 차걸랑 울다 죽은 내 형제들

묵은 편지 원혼이나 거두어오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 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볼란다. (x2)

꿈 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볼란다.



3. 여담[편집]


이 노래와 거의 같은 주제를 다루고 제목이 비슷하며 비슷한 시기에 나온 김혜연[2]의 <서울 평양 반나절>이란 트로트 곡이 있다. 곡 자체는 이 노래보단 좀 템포가 빨라서 밝아 보이지만 가사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반나절이면 갈 거리인데 휴전선 때문에 가로막혀서 갈 수 없는 구슬픈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한소수교는 이뤄졌지만 한중수교는 이뤄지기 전에 만들어진 노래라서[3] 적성국이었던 소련에도 갈 수 있게 된 현실만 묘사되었는데[4] <서울 평양 반나절>은 한중수교 이후에 만들어진 노래라 가사에 '중국도 러시아도 모두 열려서 마음대로 오고 가는데'라고 나온다. 공통점은 이젠 옛날 적성국이었던 중국도 갈 수 있고 러시아도 갈 수 있게 됐는데 왜 아직도 북한은 못 가냐는 푸념이 담겨 있다.

가사를 보면 그 시절 물가와 현재 물가간의 체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데[5] 지금은 동일한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간다고 가정하면 최소 20만원 이상은 각오해야 된다. 동일한 요금으로 같은 목적지까지 간다고 가정하면 KTX나 저가 항공을 이용해야 할 듯하다. 2021년 기준으로 택시요금 2만원이면 서울 성북구에서 송파, 서초구 가면 딱 2만원이고 버스 160번 시종작치인 도봉산에서 온수동까지 가려면 무려 4만원이 나온다. 만약 평양에 버스터미널이 생긴다면 서울에서 평양의 거리는 전주와 비슷하니 우등버스 기준으로 2만원 정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의 가사 중 '택시요금 5만원' 부분은 현재 요금에 맞게 바꿔 부르고 있다. 지금은 ‘택시요금 20만원’ 이라고 부르고 있다. #



[A] A B 반경이 비슷한 서울에서 전주까지로 간접 비교를 해 보면 현재 물가 기준으로 택시 요금이 24만 원 정도 나온다.[B] A B 앞서 말했다시피 평양은 서울 기준으로 전주와 거의 비슷한 반경에 있다. 참고로 전주는 전북이므로 당연히 광주보다 더 가깝다.[1] 신형원 버전에선 마지막 소절을 한 번 더 반복한다.[2] 뱀이다로 유명한 그 김혜연 맞다.[3] 노래가 지어진 이듬해인 1992년 8월에 한중수교가 이뤄졌다.[4] 사실 1988년부터 관광이나 비즈니스 업무로 중국에 관광하러 가는 것 자체는 가능했다. 다만 일단 사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홍콩이나 일본 등 제3국에서 중국행 비자를 받는 절차를 따로 거쳐야 했기 때문에 연변에 친척이나 지인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관광객들이 개인 여행으로 중국으로 가기가 매우 번거로웠다. 그래서 보통은 단체 관광하러 가는 식이었다.[5] 참고로 1991년 기준으로 대졸 초봉이 월 50만원~60만원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