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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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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주니어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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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주니어(셜록 2세) (1924)
Sherlock Jr.

파일:셜록 주니어 movie.jpg
감독
버스터 키튼
출연
버스터 키튼, 캐서린 맥과이어 외
장르
코미디
개봉일
1924년 4월 21일
상영 시간
45분
흥행
$448,337

1. 개요
2. 등장인물
3. 평가
4. 여담


1. 개요[편집]



"그 흠잡을 데 없는 코미디언이 흠잡을 데 없는 무성 코미디로 자신을 연출하고 있습니다...일부 비평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이것이 원시 미국 초현실주의의 한 예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공상하지 맙시다. 더 중요한 것은 위대한 미국 미니멀리즘의 예시와 단순한 사물과 움직임이 아무렇지도 않게 복잡한 방식으로 조작되어 꾸준히 커지는 웃음소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전체 길이는 단 45분이며 1초도 낭비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바로 소중한 미덕입니다."

타임지, 셜록 주니어의 100대 영화 선정 이유.


제너럴과 함께 버스터 키튼 최고의 걸작이자 역대 최고의 코미디 영화에 반드시 언급되는 걸작이다. 웬만한 영화 리스트 Top 100에 빠지지 않고 코미디 영화 100선에서도 20위 안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불세출의 명작이다.


2. 등장인물[편집]


셜록 주니어 (버스터 키튼 분)
셜록이 사랑한 여자 (캐서린 맥과이어 분)


3. 평가[편집]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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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Db Top 250 195위{{{-3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display:none; margin-left: 0.5em"
20XX-XX-XX 기준
)





파일:Letterboxd 로고 화이트.svg

(Letterboxd Top 250 71위{{{-3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display:none; margin-left: 0.5em"
20XX-XX-XX 기준
)















4. 여담[편집]


원래 키튼은 공동 감독으로 1910년대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던 로스코 아버클(Roscoe Arbuckle)을 고용했다.[1] 당시 아버클은 강간 혐의 등으로 고소를 먹어 당시 엄청난 금액이었던 70만 달러라는 빚을 지게 되어[2] William Goodrich라는 가명으로 촬영에 참여했다. 하지만 아버클이 화를 내고, 배우들에게 짜증을 내는 등 일종의 갑질을 행하자 키튼은 그와 작업하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했고, 결국 단독 감독으로 촬영을 마무리 했다.

셜록 주니어 촬영 당시 키튼은 촬영을 하다 죽을 뻔 했는데, 목뼈가 부러진 것이었다. 키튼이 움직이는 박스카 트레인을 걷다가 물웅덩이를 잡는 장면[3]에서 예상보다 물이 빨리 들어와 키튼을 덮쳤다. 그 순간, 키튼의 목이 바닥의 강철 레일에 부딪쳐 키튼은 기절했고, 그 날 촬영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영화 촬영으로 인해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못했고, 1935년이 되어서야 목 뒤에 굳은 살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셜록이 사랑한 여자의 아버지 역을 맡은 사람은 조 키튼(Joe Keaton)으로 버스터 키튼의 아버지이다.

현재의 평가와는 달리[4], 이 영화는 당시 키튼의 첫 번째 흥행 실패작이었다.



[1] 특히 아버클은 키튼의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켜주는 등 키튼의 무명 시절에 상당히 도움을 주었다. 1960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2] 키튼의 또 다른 걸작이었던 제너럴의 촬영금액이 75만 달러였고, 당시 제너럴은 고작 15만 달러만 벌어들여 키튼이 제대로 망했다는 걸 생각하면...[3] 키튼은 스턴트를 직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4] 셜록 주니어는 제너럴, 시티 라이트보다 높이 평가받는 경우도 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