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손상득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 포수, 2군 배터리코치.
2. 선수 경력[편집]
고려대학교 졸업 후 1980년 실업팀 포철에 입단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삼성 창단멤버로 입단했다. 막 대학을 졸업하고 온 2살 어린 이만수가 주전을 차지하며 백업으로 밀렸고, 백업 자리마저 다량의 국가대표 경험이 있던 박정환에게 밀렸다. 때문에 그리 많은 경기에 나가지 못했고 1988년 은퇴했다.
포수지만 키 172cm에 왜소한 체구로 요즘 선수에 비교하면 현재윤과 비슷했던 선수였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삼성 구단 직원으로 있다가 1991년 삼성 배터리코치로 부임해 1993년까지 있었고, 1996년부터 한화 배터리코치, SK 배터리코치, 2005년에는 LG 코치로 있었다.
2006년 신일고 감독으로 부임해 2008년 중순까지 팀을 이끌었다. 2008년 7월 11일 대붕기 경북고와 8강전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으로 선수들에게 고의로 경기에서 지도록 지시해 3개월 자격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고의 경기 포기는 아마추어 감독이라도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이는 당시 신일고 야구부장의 지시 때문이었다고. 아마추어 감독도 계약직이기에 부당한 일을 할 수 없이 따른 것. 그리고 고의 경기 포기를 지시한 야구부장은 자격정지 1년의 중징계를 받았다. 어쨌든 경기 포기 지시 사건로 신일고 감독직에서 해고되었다.
이듬해 2009년 삼성 2군 배터리코치로 부임하며 4년 만에 프로팀 코치로 복귀함과 동시에 오래간만에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2014년 시즌이 끝나고 구단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
2015 시즌 후 LG 트윈스 2군 배터리코치로 영입됐다. 2018 시즌부터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4. 여담[편집]
- 1980년대에 선수 생활 도중 현역병으로 복무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5] 프로 초창기에는 대다수 선수들이 이미 실업야구 시절 성무(공군 소속 야구팀)나 경리단(육군 소속 야구팀) 등의 군 소속 야구 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상태에서 프로에 입단했고, 꼭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당시에는 스포츠 선수에 대한 병역특례 범위가 넓었다.[6]
- 같은 삼성 창단 멤버인 손상대와 같은 고교 출신인 데다가, 포지션도 포수로 같고 이름이 비슷해 형제로 오인받곤 했다. 그러나 손상득은 '祥得', 손상대는 '相大'로 다른 한자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