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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야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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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68년 시즈오카현 현립 시즈오카 고등학교를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앰버서더 칼리지를 1972년 졸업한 뒤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편입해 1974년 졸업하였다. 1978년 국제청소년연수협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1990년 중의원 의원이었던 아버지의 사망으로 선거구를 물려받아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구 시즈오카 3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40회 중원선에서도 재선하였으나 1996년 41회 중원선에서 전직 하마마쓰시 시장이었던 기타와키 야스유키에 패배해 첫 낙선했다.
1999년 기타와키가 하마마쓰시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보궐선거가 치루어지자 재출마하여 정계에 복귀했다. 다음 해 42회 중원선에서 훗날 하마마쓰시 시장이 되는 스즈키 야스토모에게 패배하였으나 2003년 43회 중원선에서 또 다시 당선, 44회 중원선에서는 스즈키를 석패율제 부활도 안될 만큼 찍어눌러 당선되었다.
2008년 8월 후쿠다 야스오 개조내각에서 내각관방부장관으로 취임, 9월 아소 내각에서는 제11대 문부과학대신으로 취임했다. 2009년 제45회 중원선에서 낙선하여 비례 블록으로 부활, 같은 해 9월 아소 내각의 총사퇴로 대신직을 사임했다.
2011년 제50대 자민당 총무회장으로 취임, 이후 제2-4차 아베 내각 기간동안 3선하였다. 중간에 일본·코소보 의원 연맹 회장,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을 역임했다.
2021년 제49회 중원선에서 3선의 기간동안 석패율 구제를 받았던 입헌민주당의 겐마 켄타로 후보에게 패배해 비례 블록으로 부활했다.
3. 정치적 성향[편집]
- 문부과학대신 시절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회 교과서를 통과시켰다.
- 한국으로부터 독도를 반환하기 위해 무력 행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 우파 성향 답게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하고 있다.
- ‘평화를 원하는 진정한 국익을 생각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국회의원 모임’이라는 모임에 가입되어 있다. 2013년 춘계예대제 당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4. 소속 정당[편집]
5. 선거 이력[편집]
[1] 철도회사 사장, 후쿠로이 합동 운송 이사, 후쿠로이정장 역임.[2] 1920~1989, 중의원 의원 역임.[3] 낙선 후 보궐선거에서 당선.[A] A B 석패율제 당선.[4] 일본의 마지막 중선거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