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신삼대토스

덤프버전 :


1. 개요
2. 상세
3. 여담



1. 개요[편집]


파일:신삼대토스.jpg
2002~2004년 프로토스 프로게이머의 선두주자들이었던 박정석, 강민, 박용욱삼대토스의 위상을 계승하였던 신진 프로토스 게이머로, 박지호, 오영종, 송병구[1]를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이들은 삼대토스의 뒤를 이어 프로토스를 새로이 이끌었다.


2. 상세[편집]


신삼대토스의 양대 개인리그 경력
이름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



본선 횟수



본선 횟수
박지호
0
0
2
7회
0
0
0
3회
오영종
1
1
0
5회
0
0
0
2회
송병구
1
3
2
17회
0
1
1
10회
박지호는 2003년, 오영종과 송병구는 2004년에 데뷔했고 3인모두 2005년부터 개인리그에 데뷔한다.

프로토스의 황금기였던 2003시즌을 지나 2004시즌이 되자 프로토스는 단 한 명도 우승하지 못했을 정도로 암울한 시기를 맞았는데 더 큰 문제는 성적이 아니라 프로토스의 유망주 수급이었다. 4강 진출도 강민, 박정석, 박용욱 이 3명 밖에 없었다. 심지어 본선 진출자 까지 범위를 넓혀도 전태규, 김성제, 김환중, 안기효가 전부였다. 안기효를 제하면 나머지 선수들도 삼대토스와 동세대 선수들이었을 정도로 프로토스의 신예가 매우 부족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참에 2005시즌이 되자 2003년부터 팀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던 박지호와 팀리그 에서 이윤열을 꺾는 등 잠재력을 보여주던 오영종 이 두명의 기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고 여기에 아마추어 시절부터 알음알음 유명하던 송병구가 데뷔하자마자 챌린지리그를 우승하고 EVER 스타리그 2005에 진출하게 되면서 프로토스의 신예들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된다.

이 3명이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에서 공동 다승왕을 수상하면서 그 기대감이 현실이 되기 시작하고, 거기에 So1 스타리그 2005에 박지호와 오영종이 처음으로 개인리그에 진출에 성공하고, 직전 시즌에 데뷔한 송병구까지 2회 연속 스타리그 진출을 이뤄내면서 이때부터 이 3명을 프로토스의 미래라고 부르며 신삼대토스라고 지칭하게 된다.

결국 오영종과 박지호는 So1 스타리그 2005에서 각각 우승과 4위라는 호성적을 거두면서 가을의 전설을 이뤄냈고 이 리그에서 이전까지는 자주 사용하지 않던 아비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며 캐리어까지 애용하며 프로토스의 로망을 자극하는 동시에 프로토스의 발전까지 이루어냈다. 이때부터 이들은 새로운 프로토스의 기둥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박지호는 다음 시즌인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 2회 연속 4강 진출을 달성했고, 06시즌에는 개인리그에서는 8강 이상 진출하지는 못 했지만 팀의 프로리그 우승, 그랜드 파이널 우승까지 이끌었다. 07시즌에는 개인리그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하는 등 부진했지만, 프로리그에서 맹활약했다[2]. 오영종은 06시즌에는 부진하다 가을 남자 답게 가을 시즌에 부활해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준우승, 팀의 프로리그 포스트 시즌까지 이끌었고 07시즌이 되자 개인리그에서는 단 한번도 진출하지 못하는 등 부진했지만 프로리그에서 정규 시즌 MVP, 결승전 MVP, 통합챔피언전 MVP까지 수상하며 팀의 최초이자 마지막 우승을 이끌며 맹활약했다. 송병구는 이 두 명과 대비되게 06시즌까지는 개인리그 8강에도 진출하지 못했고, 프로리그도 이전과 다르게 부진했지만[3] 07시즌이 되자 포텐셜이 터지며 개인리그, 프로리그 할 것 없이 맹활약하게 된다. 07시즌까지는 이 3명 모두 활약했지만 08시즌이 되자 올드 게이머들이 그렇듯이 박지호와 오영종은 하락세를 맞이했고[4], 송병구는 신삼대토스 시절 이상의 활약을 이어나가며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택뱅리쌍의 일원으로 스타판 황혼기를 책임졌다.

팀 단위 대회 성적은 박지호가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1회, 통합 챔피언전 우승 1회, 위너스 리그 준우승 1회[5], 오영종이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1회, 통합 챔피언전 우승 1회, 송병구가 프로리그 우승 2회, 준우승 1회, 통합 챔피언전 준우승 1회를 기록하였다. 팀 단위 대회 수상 실적은 박지호가 다승왕 1회, 오영종이 다승왕 2회, 정규 시즌 MVP 1회, 결승전 MVP 1회, 통합 챔피언전 MVP 1회, 송병구가 다승왕 1회, 정규 시즌 MVP 1회, 결승전 MVP 1회를 기록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3명 모두 MSL보다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강세를 보였다. 심지어 박지호와 오영종의 4강 이상 커리어는 모두 스타리그에 쏠려있다. 그나마 송병구가 MSL에서 준우승 1회, 4강 1회의 성적을 올리며 둘보다는 그나마 양대리그에서 고른 활약을 보였다.

명예의 전당에는 결승 진출 경험이 없는 박지호를 제외한 2명이 헌액되었다.

신삼대토스 간의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기준 상대 전적 리스트.
(공식전/비공식전 포함, 왼쪽의 선수가 앞으로)


박지호
오영종
송병구
박지호

3:2/3:2
1:4/1:4
오영종
2:3/2:3

3:5/4:7
송병구
4:1/4:1
5:3/7:4


3. 여담[편집]


사실 이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안기효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06시즌까지의 커리어는 오히려 안기효가 송병구 보다 앞섰다.[6] 하지만 신삼대토스가 05시즌에 두각을 나타내던 신예 3인을 묶은 말인데, 안기효의 개인리그 데뷔가 이 3명보다 앞선 04시즌이라는 점, 이 3명이 최소한 4강 진출은 달성했는데 안기효는 결국 8강을 넘지 못했다는 점, 이 3명에게 상대전적이 모두 열세라는 점들이 겹쳐 최종적으로는 제외되었다. 재밌는 것은 개인리그 데뷔가 빨랐다는 점, 커리어가 밀린다는 점, 상대 전적이 열세라는 점등 여러모로 신삼대토스 이전의 3인을 묶은 삼대토스에 포함되지 못한 전태규와 유사한 점들이 많다.

박지호는 2010년 들어 코치와 선수를 병행하다 2011년 팀의 해체와 더불어서 은퇴했고, 오영종은 2008년 가을 공군에 입대한 뒤 2010년 전역과 동시에 친정팀에 복귀했다가 2011년 팀의 해체로 인해 은퇴한다. 송병구는 2012년까지 주전력으로 활약했고 스타2로 바뀌고 난 뒤까지 활약하다 팀이 2016년에 해체하자 동시에 은퇴하게 된다. 이 중 박지호와 송병구는 은퇴 뒤 아프리카TV BJ로 활동하고 있고, 오영종은 잠시 BJ 활동을 하다 그만두고 지금은 일반인의 삶을 살고 있다.

[1] 이쪽은 드래프트 세대 중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프로토스 5명(김구현, 김택용, 도재욱, 윤용태, 허영무)과 묶여서 육룡으로 분류되기도 한다.[2] 이 시기에 에이스 결정전 11연승을 달성했다.[3] 이때 와우에 빠져 스타를 소홀히 한 게 원인이었다.[4] 그나마 박지호는 2010시즌까지 개인리그에 진출했지만 오영종은 2008시즌이 마지막 개인리그 진출이었다.[5] 위너스 리그 준우승 1회는 박지호가 전력 외 판정을 받은 09-10시즌 때 기록한 것이다.[6] 안기효가 8강 2회를 기록했지만 송병구는 8강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