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공 | 定懿公 왕재 | 王梓
|
시호
| 정의공(定懿公)
|
작위
| 수사공(守司空)
|
직위
|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
본관
| 개성 왕씨
|
휘
| 재(梓)
|
부모
| 부친 승화백(承化伯) 왕정(王禎) 모친 흥수공주(興壽宮主) 왕씨[1]
|
형제자매
| - 2남 중 장남 [ 펼치기 · 접기 ]
|
배우자
| 개성 왕씨[2]
|
자녀
| 1녀 딸 - 왕재녀 왕씨
|
생몰연도
| ? ~ 1164년(의종 18년) 9월 13일
|
고려의 왕족.
이름은 왕재(王梓). 작위는 수사공(守司空)이다.
낙랑공 왕영의 손자이다.
승화백(承化伯) 왕정(王禎)과 흥수공주(興壽宮主)
[3]의 장남이다.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수사공(守司空)에 임명됐으며,
의종 18년인 1164년에 사망했다. 시호는 정의공(定懿公)이다.
- 조부: 낙랑공 왕영(王瑛)
- 조모: 보령궁주(保寧宮主) 왕씨 - 문종의 차녀
- 부: 승화백(承化伯) 왕정(王禎)[4]
증손녀 왕재녀 왕씨의 묘지 비문에 따르면 양희공(良僖公)으로 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 모: 흥수공주(興壽宮主) 왕씨 - 숙종의 차녀
왕재는
숙종의 5남
대원공 왕효의 딸과 결혼해 슬하에 무남독녀를 뒀다. 아내는 딸을 낳고 곧 죽었고, 왕재는 효성이 깊은
딸을 아들처럼 여겨 그 후에 가문을 물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