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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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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의 문관 관료, 성리학자.
2. 생애[편집]
1645년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조참판, 대사간을 지냈고 경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다.이후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지냈다. 이후 서인의 실질적인 영수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 당시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여 숙종의 화를 샀다. 이에 함경도 등지로 귀양 생활을 해야 했고 귀양이 끝난 후 부여에 기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3. 여담[편집]
젊은 시절 집안이 워낙 가난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추석 때 노모(老母)를 위해 쌀자루를 들고 이웃 마을의 전동흘이라는 사람을 찾았는데 전동흘이 아주 극진히 대접을 하며 '비록 지금은 곤궁할지라도 장차 크게 부귀하실 것이니 조금도 걱정 말고 열심히 공부하시오'라 하였다. 이후로 둘의 친분은 깊어졌고 전동흘은 이상진이 서울로 올라가 과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그의 노모를 돌봐주었다. 과거에 급제한 이상진은 후에 무과에 급제한 전동흘을 추천하였고 전동흘은 함경남도병사, 포도대장 등을 지내었다.
참고로 이 이상진의 친구 전동흘이 바로 장화홍련전에서 귀신을 보고도 죽지 않아 장화 홍련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는 사또의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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