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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인

덤프버전 : r20210301


성명정기인(鄭基仁)
본관연일 정씨[1][2]
생몰1888년 10월 17일 ~ ?
출생지경기도 인천도호부
(현 인천광역시)
사망지미상
추서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연일 정씨 포은공파로 포은 정몽주의 후손이다.

2. 생애[편집]


정기인은 1888년 10월 17일 경기도 인천도호부(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선대의 세거지인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쇠래(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 새래)로 이주하였다.

그는 1907년 11월경 이익삼(李益三)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1908년 1월 2일 신순용(申順用) 외 10여 명의 의병과 함께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능동 원촌에서 이장 이병기(李秉箕)로부터 광목 2필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3월 15일 포곡면 둔전리에서도 광목 2필, 현금 2엔을 모집했으며, 같은 해 4~5월 수여면 방축동리와 금량시, 하동면 삼배울 등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했다. 1907년 11월에는 김재천(金在天)·이윤빈(李允賓) 등과 함께 용인군 포곡면 두계울리, 광주군 상동막리, 실촌면 상열미리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10년 1월 24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강도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2년 9월 13일 대사령에 의해 징역 3년으로 감형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정기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지주사공파, 포은공파.[2] 홍순석, 「포은가문의 절의(節義)와 계승」, 『용인향토문화연구』 제13집, 용인향토문화연구회, 2013, 1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