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진화(독립운동가)

덤프버전 : r20210301



파일:정진화.jpg
본관
동래 정씨
출생
1873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1]
사망
1945년 8월 18일
경상북도 예천군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진화는 1873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0년 한일병합 이후 국권 회복을 도모하다가 1913년 채기중, 유창순, 유장렬, 한훈, 강순필 등과 함께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을 결성하였다. 주로 의병 성향의 인물이 참여했던 풍기광복단은 독립군 양성을 위한 무기구입과 군자금 모집에 실천방략을 두고 독립운동을 폈다.

그후 풍기광복단이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과 통합하여 1915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결성할 때, 이에 참여했다. 대한광복회는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행동지침을 정하고, 각처에 곡물상을 설립하여 혁명기지로 삼는 한편, 혁명계획은 군자금 조달, 독립군 및 혁명군의 기지건설, 의협 투쟁으로서의 총독처단 계획과 친일부호 처단 등으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우선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했는데, 그는 자신의 집에서 채기중·정세여(鄭世汝)·윤창하 등과 함께 친일부호에게 보낼 군자금 모집의 <경고문>을 초안·작성한 후 수십통을 인쇄하여 발송하였다. 그러던 중 1918년초 동회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일경에 붙잡혀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예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5년 8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정진화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인근의 청곡리와 함께 동래 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