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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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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899년
평안북도 철산군 운산면 영동
(현 평안북도 철산군 근천리)
사망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상훈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치민은 1899년생이며 평안북도 철산군 운산면 영동(현 철산군 근천리)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했고, 1920년 5월 만주 관전현에서 정원범, 장익부 등과 함께 비밀결사 숭의단(崇義團)을 조직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폈다. 숭의단은 국내로 잠입하는 독립운동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는 한편 만주의 독립군이 국내로 진공할 때 이에 호응하여 국내의 각 관공서를 습격하고 관공리를 처단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또한 1920년 9월 5일 김창곤(金昌坤)·한철수 외 동지 6명과 함께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에 가입하고, 각자 권총과 기타 무기를 휴대하고 국내에 진입하여 각 지방을 순회하며, 청년을 모집하여 의용단 본부에 보내는 한편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아울러 평북 의주 비현면에서 친일파를 처단하는 활동을 하였다.

1921년 1월 20일, 평북 철산군 주재소 순사 김의주(金義柱)를 유인한 후 독립단원 2명이 침입하였으니 체포하라고 거짓정보를 제공했다. 이후 순사가 나간 틈을 이용하여 주재소에 있는 무기와 권총으로 김의주에게 부상을 입히고, 5월 17일 압록강 부두에서 독립단의 왕래를 감시하고 있던 헌병 하성진(河成鎭)과 밀정 나자현(羅子賢)을 총살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일경에 체포되었고, 1921년 10월 24일 신의주지청에서 김창곤·한철수와 함께 사형을 받고 공소, 1922년 4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정치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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