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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시 스텡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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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뉴욕 양키스에서 월드 시리즈 5연패를 포함 7번의 우승을 한 감독이며 뉴욕 메츠의 창단 감독.
미키 맨틀과 요기 베라 등으로 대표되는 양키즈의 1950년대 제2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지도자다.
2. 선수경력[편집]
다저스가 아직 뉴욕에 있던 시절 외야수로 입단하여 여러 팀을 돌아다니면서 선수생활을 했다. 스텡겔의 인생의 첫번째 우승은 뉴욕 자이언츠에서의 1921년 우승.[1] 이 우승은 베이브 루스가 포함된 양키스를 물리쳐 달성한 것이어서 더욱 값진 것이었다.
3. 감독 경력[편집]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고, 보스턴 브레이브스에서 감독도 했지만 성적이 나빠 잘렸다. 이후 마이너리그 감독을 하면서 약팀보다는 강팀을 맡았을 때에 좋은 감독이라는 가능성을 본 양키스가 1949년 팀의 감독으로 데려왔다.
이 선택은 대성공이었다. 양키스와 스텡겔 감독은 1949년, 1950년, 1951년, 1952년, 1953년 무려 5번 연속으로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고,[2] 1956년과 1958년에도 우승했다. 하지만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 피츠버그에게 패하면서 양키스 감독의 자리에서 물러났다.[3]
이후 1962년 창단한 뉴욕 메츠의 초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신생팀 뉴욕 메츠는 전력이 약했고 폭발적이었던 인기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스텡겔은 1965년 감독에서 물러났다.
4. 은퇴 이후[편집]
스텡겔의 37번은 양키스와 메츠에서 모두 영구결번이 되었고, 감독직을 떠난 이듬해인 1966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이후 1975년 9월 중순 림프암 선고를 받아 입원했지만 한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9월 29일 사망했다. 그가 생을 마감한 곳은 캘리포니아의 글렌데일이다.
5. 이모저모[편집]
원래 꿈은 치과의사였지만 여러 사정으로 야구선수의 길을 가게 됐다고 한다.
1942년 브레이브스 감독시절 시범경기서 당시 타자였던 피 위 리즈에게 빈볼 지시를 거부한 한 좌완 투수를 마이너로 내린 후에 시즌 막판에서야 다시 메이저리그로 복귀시켰는데, 그 선수는 바로 시대를 주름잡던 좌완 투수인 워렌 스판이었다. 나중에 스텡겔 본인은 이 행동을 엄청 후회했다고 한다.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 패배한 뒤 양키스 감독에서 물러나며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양키스가 나이를 핑계로 날 해고했다. 다시는 70살이 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기자회견장은 당연히 뒤집어졌다.
여러 도시의 팀에서 선수, 감독생활을 했지만 주로 뉴욕 연고의 팀들과 인연이 많았기 때문에 뉴욕을 연고로 한 팀 4팀(브루클린 다저스, 뉴욕 자이언츠,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 유니폼을 모두 입어본 유일한 사람이다.
6. 감독 성적[편집]
[1] 다만 1921년 월드 시리즈 출장 기록은 없다.[2] 스텡겔 시절 양키즈의 월드 시리즈 5년 연속 우승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일본은 요미우리의 9년 연속, 한국은 해태와 삼성이 각각 4년 연속으로 우승한 것이 최고.[3] 당시 최종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피츠버그의 빌 마제로스키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아 우승을 놓쳤던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