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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람 지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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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친위대 의사, SS상급대령이다.
2. 초기 행적[편집]
힐데스하임에서 교회 음악연주자의 부친아래 태어난 지퍼스도 어릴적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어 첼로, 피아노, 오르간 등을 잘 연주했다. 독일의 바로크 음악을 좋아한 그는 학생시절에 반 유대주의 단체인 <독일민족방어동맹>에 참가하여 과격활동으로 인해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그 후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지퍼스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전문대학을 다니면서 역사, 철학, 종교학을 공부한 후 예술가 동맹에 가입해 <대지로 돌아가는 운동>등에 참가했다.
3. 나치당 입당과 친위대 입대[편집]
1929년에 나치당에 입당한 그는 1933년에 친위대의 국가지도자였던 하인리히 힘러가 설립한 엑스테른슈타이네 재단에서 일했다. 1935년에 친위대에 입대한 지퍼스는 이 해에 아넨에르베의 사무장으로 취임했다. 아넨에르베의 장관은 따로 있었지만 아넨에르베의 실무는 완전히 지퍼스가 장악했다. 초자연연구와 인종학 등을 담당하던 이 부서에서 일한 지퍼스는 1943년에 군사과학 연구회의 감독관이 되기도 했다. 지퍼스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나치가 여러가지로 실행한 인체실험에 깊이 관여했다. 그 중 하나가 스트라스부르 라이히 대학의 아우구스트 히르트의 인종연구를 위해 인골을 모아보내 협력한 것이다. 지퍼스는 이 인골수집을 위해 112명의 유대인 수용자를 골라내 살해했다고 한다.
4. 전후 재판과 최후[편집]
독일의 패전 후, 연합군에 의해 체포된 지퍼스는 뉘른베르크 의사 재판에서 범죄적인 인체실험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혐의로 1947년 8월 20일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에 1948년 6월 2일에 란츠베르크 형무소에서 지퍼스는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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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지페르스'나 '자이버스'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