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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SM5에서 넘어왔습니다.
르노삼성 SM5/1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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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식 배경화면
1998년 3월 5일에 출시된[3] 전륜구동 중형 세단이다. 삼성자동차의 유일한, 처음이자 마지막 양산 모델이며 삼성자동차가 망한 후에는 르노가 인수하여 2005년까지 계속 생산되었다.
익스테리어 및 내장은 닛산의 2세대 세피로(A32, 수출명 맥시마)의 전면부 및 후면부 디자인을 약간 수정하고, 편의사양을 약간 수정하여 출시했다. 출시 초기에는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해와 조립했다. 이후 르노 그룹이 인수한 후에는 부품 국산화가 이루어졌다.[4][5][6]
앞에서 보면 세피로의 전면 그릴을 역삼각형에서 삼각형으로 바꾼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 때문에 SM5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좁아지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주를 이루던 디자인 트렌드와 달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넓어지는 특이한 그릴 디자인을 가지게 되었다. 삼성자동차에서는 기존 자동차와 다르게 삼각형처럼 아래로 갈수록 커지는 그릴 디자인이 혁신이라고 자랑했지만 사실은 혁신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세피로와는 뭔가 차별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그릴을 반대 방향으로 바꾼 것에 불과했다. 실제 당시 시장에선 라디에이터그릴의 하단이 넓은 생소한 외형이었기에, 원형모델이었던 닛산 세피로의 그릴은 평범한 방향이었지만 날카롭고 날렵한 이미지를 가져다 주었고, 그에반해 역방향으로 위치한 SM5의 차분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가져다 준다고[7]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맥시마/세피로 원판을 보여주면 원판 디자인이 뛰어나다는 반응이 다수다. 그릴 방향 하나만 차이날 뿐이지만 맥시마/세피로가 더 고급차라는 느낌을 주며, 심지어 시각적으로 차체가 더 크다는 느낌마저 준다. 자동차 역사상 SM5처럼 역방향 그릴을 채용한 예는 많이 없다. 벤츠도 디자인 변화가 한계가 다다르자 최근 라디에이터 그릴이 밑으로 내려올수록 넓어지는 디자인을 채용했다가 크게 혹평을 받고 있다.
삼성자동차는 자체 기술력은 물론이거니와 생산 경험도 전무한 실정[8] 이었지만, 당시 경영난에 빠져 자금이 필요했던 닛산자동차[9] 와 기술 협력을 맺고 자금을 대주는 대신 세피로를 그대로 넘겨받은 덕분에 삼성자동차가 창립된 지 겨우 3년만에 초고속으로 양산 모델로 출시할 수 있었다. 세피로의 일부 디자인과 편의 사양을 변경하여 출시했다고 하는데, 그 차이는 크지 않아서 대부분의 부품을 그대로 사용했다. 세피로와 측면 디자인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동일하며 실내 센터페시아도 계기판을 제외하면 사실상 동일하다. 다만 카오디오는 삼성이 세피로보다 고급 오디오를 넣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삼성자동차는 닛산의 한국 현지 공장에 불과하다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다. 한편으로 인수 기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기아차와 달리,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성차를 르노가 쉬이 인수한 것도 닛산 차에 최적화된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시 당시의 라인업은 2L I4 SR20, V6 2.0·2.5L VQ 엔진로 구성된 SM520, SM520V, SM525V 등의 3가지였다. 이후 5월에 1.8L SR18 엔진을 장착한 보급형 기본 모델인 SM518이 추가됐다. 변속기는 4기통에만 5단 수동변속기가 장착됐으며, V6 모델은 자동 변속기 사양이 기본이 되었다.
SM518, SM520 모델의 경우는 자트코 4단 F03B 변속기, LPG 모델에 락업 클러치가 없는 아이신 50-40E 4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리게 됐다. 단, 아이신 변속기를 탑재한 LPG 모델은 별 문제가 없으나, 가솔린 모델에 얹히는 자트코 변속기의 경우에는 내구성이 다소 낮은 편인데다, 특유의 저속에서 1단에서 2단으로 변속될 때의 변속 충격이 고질적으로 지적받고 있다. 한편 520V, 525V 모델은 ZY 4단 자동변속기이다. 또한 동급 최초로 전 모델 5홀 너클 허브가 적용되었다.[10]
리어 서스펜션은 토션빔으로 분류된다. 정확히는 QT 서스펜션[11] 이라 한다고 한다. 소형차를 중심으로 주로 이용되는 토션빔의 구조를 취하고 있고 메이커에서 또한 편의상 '토션빔'으로 부르고 있다. 구체적으로 초기형 카니발의 리어 서스펜션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5링크 일체형 차축의 요소 또한 일부 띄고 있다. 닛산이 토션바 타입 리어 서스펜션을 적용하면서 초기에 시도한 과도기적 물건으로 볼 수 있다. 이전 서술과 달리 QT 서스펜션은 멀티링크에서 가져왔다고 볼 수 있는 구조 또는 요소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일명 '도끼다이'라 불리우는 레터럴링크/로드 모듈을 보고 이야기 하는것 이라면 이 부품은 QT 서스펜션의 승차감 위주 셋팅으로 인해 떨어진 횡강성 확보 차원의 부품일 뿐 전혀 멀티링크의 요소라고 볼 수 없는 부품이다. 다만 승차감 확보를 위해 스트로크를 넉넉하고 여유있는 길이에 맞추어 놓고, 다소 강한 댐퍼에 부드러운 스프링으로 세팅하며 그에 맞춰 휠하우스 또한 크게 확보하였다[12] 하지만 QT 서스펜션은 당시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던 닛산의 구조 공유차원의 여러 시도 과정에서 나온 과도기적 물건이었기에 완성도가 높지 못했다. 아래 서술에서 확인할 수 있는 NVH 측면으로 이어지는 진동 문제를 안고 있었고 S투어링 기반의 셋팅이라서 승객이 체감하는 승차감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SM5 1세대 후륜 서스펜션이 토션빔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근래에 SM6 출시 이후 널리 알려진 감이 있다.
한편 SM5 1세대의 전륜은 맥퍼슨 스트럿인데, 이는 맥시마/세피로가 처음 개발되던 시점에는 중형차의 서스펜션으로 나쁘다 할 수는 없었지만, SM525V에서 고급차를 표방하던 것에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었고, 사실 이차가 한국에서 SM5로 출시되던 시점에는 그랜저는 물론이고 EF 쏘나타도 전륜에 더블위시본, 후륜에 멀티링크를 채용하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태생이 일제인 SM5에 대한 다소 과정된 기대를 품고 이 차를 시승했다가 XG는 물론이고 EF보다 승차감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2.0L DOHC 이상 트림에만 5 너트 휠을 적용하였던 레간자와 다르게, SM5는 모든 트림에 5너트 휠을 적용하였다.
출시 당시부터 N.V.H는 다소 좋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받았는데, 이게 삼성자동차 초창기 때 판매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정숙성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의 소비자들의 특성에 맞게 경쟁 모델들이 신모델에서 정숙성을 크게 내세웠던 반면, SM5는 다른 부분의 정숙성은 그럭저럭 동급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하부소음과 진동, 즉 로드노이즈의 문제는 아랫급인 준중형급은 고사하고 소형차와 비교했을 때도 별달리 나은 점이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을 정도로 안 좋았다.[13]
SM5 초창기 발표 당시 동급 한국차들과 달리 차폭이 좁은 것도 단점이었다. 이는 2세대 세피로 자체가 차폭이 넓지 않은 차였기 때문이다. 이는 2세대 세피로의 태생적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차폭이 자동차세 부과에 영향을 주는 일본의 세법으로 인해 차폭을 좁게 가져가는 일본차의 성향적인 탓이 요인으로 작용한 것도 있겠으나, 근본적인 이유로는 A32 세피로 개발 당시의 닛산은 자금사정이 여유롭지 못했기에 원가절감차 설계 공유에 심혈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고 A32 세피로 또한 그러한 배경 안고 개발되었기에 닛산 블루버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32 세피로는 태생적으로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다.[14][15] 전폭이 1,815mm인 EF쏘나타, 옵티마, 매그너스와 달리 SM5는 전폭이 1,775mm이기에 4cm정도의 차이가 있었고, 이는 A32 세피로가 등장할 즈음 출시된 '쏘나타Ⅱ'와 거의 비슷한 수치이다.
출시 당시 처녀작으로서 시장 진입의 효과를 최대한 높이고자 1,800CC, 2,000CC SR 엔진을 탑재한 하위 트림들은 중형급 시장에서 기아 크레도스ll, 현대 EF쏘나타, 대우 레간자와 경쟁하며 기반을 다지고, V6 2,000CC[16] 와 V6 2,500CC 엔진을 장착하고 편의사양을 고급화한 SM525V 같은 상위트림은 고급 중형차로서 또다른 수요를 공략하려는 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SM5가 출시된 지 7개월 후인 10월에 현대자동차에서 고급 준대형급 모델 그랜저 XG를 출시하면서[17] SM5의 이런 전략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비슷한 전략으로 GM대우 L6 매그너스와 기아 옵티마 리갈이 출시됐으나, 이 또한 시장에서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판매량 측면에서 쏘나타에 이어 2인자 위치를 다지게 해준 모델이기도 했다. 그랜저와 경쟁을 표방했던 SM525V의 전략은, 사실 SM5 하나로 중형과 준대형차 수요를 모두 커버하고자 했던 부분도 욕심이었을 뿐더러, EF쏘나타도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마르샤의 수요층 일부까지 흡수할 정도가 되었고, 여기에 준대형 차급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개척한 그랜저 XG의 등장은 고급 중형차를 표방했던 SM525V의 위치를 더욱 애매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삼성차는 대우자동차와의 빅딜에 휩쓸리며 삼성 그룹과 대우 그룹간 협상도 진통을 겪었는데, IMF를 벗어나려 기업 간 빅딜에 혈안이 되어 있던 당시 김대중 정부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삼성자동차가 파산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2000년 4월 르노에서 삼성차를 인수한 이후 SM5의 출고가를 대폭 후려쳤다. 삼성자동차 시절 그랜저 XG에 육박했던 SM525V 가격을 500만원이나 내려서 그랜저보다 확실히 저렴하게 출고가를 인하했고[18] SM520 가격도 EF 쏘나타 수준으로 대폭 인하하며 판매 안정화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노조 파업과 구조조정 모두 정리하게 되면서 회사는 빠르게 정상화되어갔고, 르노가 SM5 가격을 대폭 다운한 이후 수요가 크게 살아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개인택시 기사들과 오너들의 입소문을 통해 뛰어난 품질이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10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1년 한 해에만 10만대나 팔렸고, 중형차 시장에서 당시 3위를 차지했다. 1세대 SM5의 누적 판매량의 80% 이상이 2000년 이후에 판매되었으며 처음 3년간의 판매대수는 누적 판매량의 10%대에 불과했다. 2000년 이전 삼성차 시절에 나온 SM5는 부품이 거의 100% 일제여서 고장이 안나서 중고차 매물이 희귀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근거없는 낭설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2000년 이전 판매량 자체가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그 판매량 조차도 삼성그룹 임직원들에게 거의 강매 내지는 내부 할인 등을 통해 대거 판매한 것을 포함한 수치였다. 물론 1997년 외환 위기 때문에 자동차 판매량 자체가 부진했던 시절이긴 하지만 SM5는 당시 중형세단 중에서도 유독 부진했다.
현대자동차는 마르샤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 그리고 그랜저의 이름값을 유지시키기 위해 중형차와는 다른 차체를 쓰며 태생부터 중형차와는 급이 다른 그랜저 XG를 내놓았는데, SM525V는 옵션은 나쁘지 않았지만 최상위트림의 출시 당시 가격대(2,400만원대 초반#)가 1,000만원대 초중반이었던 SM520에 비해 너무 비쌌었다. 그랜저에 비해서 떨어지는 차급, 승차감, 차체 강성, NVH, 출력, 미션 충격 등으로 그랜저의 직접적인 동급 모델로 간주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승차감에서도 세팅의 한계로 인해 그랜저 XG에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핸들링 성능 등 기본기 측면에서는 XG 대비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SM5는 노면 소음 등 NVH에서는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호평 받았던 델타 엔진을 장착한 그랜저 XG에 비해 주행 성능은 스펙 이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것이 판매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니었다. 고질적인 미션 충격도 평가를 깎아 먹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지만, 미션 자체의 내구성은 좋은 편이어서 차가 굴러가는데는 지장이 없었다.[19] 오히려 나중에 VQ 엔진에서 노킹 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때문에 SM5는 당시 EF쏘나타와 직접 경쟁하는 삼성자동차의 중형급 모델로 인식이 굳어지며 4기통 엔진을 장착한 SM520을 위주로 많이 팔리게 되었다.[20] 그래도 SM5는 사실상 일본차라는 인식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2001년 회사 안정화 이후 판매량이 10배 가량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EF 쏘나타에 이어 대한민국 판매량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SM520이 가장 많이 팔렸지만 SM520V와 SM525V등의 V6 모델도 적지 않은 판매량을 보였으며, V6 2500cc 동급 경쟁 차종인 EF쏘나타 2.5, 매그너스, 옵티마 리갈에 비해서는 훨씬 더 성공적인 판매량을 보였다. 보통 중형차 고배기량 모델은 세금이 비싸고 2.0L에 비해 큰 메리트를 찾기 힘들어 거의 안 팔리고 구색맞추기용으로나 두는 반면, 1세대 SM525V는 상기한 이유로 2.5L급 중형차임에도 꽤 준수한 판매량을 보였다. 즉 마르샤와 후에 대우 매그너스가 추구했던 포지셔닝에서 실제로 SM525V 가장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21][22]
품질은 동시기의 쏘나타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았다. 이에 힘입어 2세대까지 중형차 시장에서 현대 VS 르노삼성의 구도로 10년 넘게 지속됐다.
특히 SM520V·SM525V에 적용된 VQ20·VQ25 엔진은 명품 엔진으로 당시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23] 될 정도로 내구성이 상당히 좋았고, 엔진 내부에는 수명이 길고 내구성이 뛰어난 백금으로 코팅된 점화 플러그, 대한민국 중형 승용차 최초로 타이밍 벨트 대신 타이밍 체인이 설치되어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였다. 백금 점화플러그는 1개월 뒤 데뷔한 EF 쏘나타에도 바로 적용되어 묻힌 감이 있긴 하지만, 소음 문제나 원가절감 등의 이유로 다른 대한민국 자동차 회사들이 외면하던 타이밍 체인을 장착한 것은 SM5가 동시대 대한민국 중형차나 준대형차에서는 유일했다. 당시 SM5는 타이밍 체인을 채택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광고했고, 타이밍 체인은 SM5이 내구성이 좋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SM5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타이밍 체인을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SM5가 대한민국 최초가 아니다. 과거 포니2 역시 타이밍 체인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타이밍 체인의 소음 문제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다른 차량에는 한동안 적용되지 않았다. SM5 역시 타이밍 체인에서 약간의 소음이 있지만 체인 커버를 씌운 덕인지 그리 문제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후 대한민국에 다른 자동차 업체의 엔진에도 타이밍 체인 장착이 필수가 된다.
하지만 VQ20 사양은 문제 제기가 많았는데, 배기량 대비 출력이 떨어져 차가 안나간다는 불만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24] , 고질적인 노킹 문제에 시달렸다. 허나 VQ 엔진이 명품 엔진이라 평가받은 것은 북미에 주로 판매되는 닛산의 중대형 모델들과 인피니티에 주력으로 사용한 3,000cc 이상의 대배기량 엔진들이며, 그것도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의 일이다. 게다가 VQ 엔진은 배기량에 따라 세팅의 차이가 커서 속성도 무척 다르고 평가도 매우 상이한데, SM5에 사용된 2,000cc대 VQ 엔진들은 배기량 대비 낮은 출력과 토크, 노킹 등의 고질병이 있었다. 특히 VQ 2000cc는 노킹 문제가 결함급으로 심각했다. VQ 엔진은 일본에서도 노킹 문제가 제기되어 옥탄가가 높은 고옥탄 휘발유 사용이 권장되던 엔진이었다. [25]
특기할 점이라면 LPG 모델의 엔진인데, 내부명으로 SR20DET이다. 이런 이름으로 인해 터보차저 모델[26] 이란 오해가 있는데, 사실 SM5는 3세대 L43의 1.6 TCe 이전까지 터보차져가 순정으로 장착된 사양이 존재하지 않는다. 믹서(FBM) 타입의 LPG 엔진에 순정 터보차져 사양은 전세계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부품 카탈로그상 SR20T 라고 기록된 부분을 터보로 오인한 듯.
부품 카탈로그 상의 SR20T의 정확한 의미는 택시(Taxi)의 T다. 정식으로 터보트림이 등장했다면 부품 카탈로그 상에 분명히 존재해야 하나 르노삼성의 eSPIS 시스템으로 조회해도 그러한 데이터는 확인되지 않는다.
LPG 모델은 그 당시 보기 드문 DOHC 헤드를 사용하는 LPG 모델로서 경쟁 모델들이 LPG 연료 특유의 고온을 감당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SOHC 헤드를 사용한 LPG 엔진 (시리우스 2.0/2.4 LPG 사양)대비 DOHC 헤드를 적용하여 최고출력이 높은점이 장점이였다. 그러면서도 당대 경쟁 차량 대비 내구성 문제가 없던 데다, 오히려 높은 성능 덕에 고속주행 등지에서 차량 RPM을 높게 쓰지 않아도 되어서 내구성이 더 좋다는 말도 있었다. 하여간 경쟁차량보다 우수한 출력을 발휘하여 영업용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SR20 엔진 사양들 중 LPG 사양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사양이기에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사양이며 항간에는 LPG 모델의 피스톤이 더 압축비가 낮은 SR20DET의 터보용 피스톤이라는 낭설이 존재하나 실질적인 부품 카탈로그상 SR20과 SR20T(Taxi)에 적용되는 피스톤은 모두 품번이 동일하다.[27] 다만 이 쪽도 아직 기화기인지라 냉간 시동은 영 좋지 않은 게 흠. 변속기도 택시 시장을 의식해 성능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검증된 내구성 위주의 변속기를 달았는데, LPG 특유의 약한 폭발력과 더불어 변속 충격이 당대 기준으로 굉장히 작아 평가가 좋았다.
2세대 세피로를 페이스리프트하여 판매한 모델이기 때문에 마크 빼고 일본차라는 이유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반대 급부로 한세대 전 구닥다리 일본차를 그대로 들여와 판다는 비아냥 섞인 조롱도 듣기도 했다. 2세대 세피로는 90년대 당시 닛산이 내부적인 상황 때문에 미국에서 품질 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28]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 닛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10만 마일(약 16만km) 정도는 거뜬하게 달릴 정도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내구성과 신뢰성이 좋은 자동차로 정평이 나 있었다.[29]
덕분에 신생업체에서 제작된 첫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출시 때부터 3년 6만km라는 당시의 대한민국제 중형차로서는 파격적인 무상 보증수리 정책[30] 으로 품질 보증을 내세우는 등 화제가 되었다. 강력한 내구성을 보장하는 품질보증 정책은 단순히 이벤트성 홍보 전략으로 그치지 않고 이후 SM5를 구입한 소비자들의 실사용을 통해 입증이 되어 입소문으로 퍼져 나갔으며, 특히 내구성이 중요한 택시 사양으로로 출시된 후 개인택시 시장[31] 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내면서 그 명성이 SM5의 후속작 모델들까지도 이어질 정도로 대단했다.[32] 1세대 SM5 택시의 인기를 바탕으로, 2세대 SM5 택시도 처음에는 불티나게 팔렸지만 아래에 서술된 바와 같이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치명적인 결함이 나타나면서 SM5가 택시 시장에서는 사실상 퇴출되고 말았다. 하지만 1세대 SM5는 단종 후 20여년인 현 시점에서도 별 고장 없이 잘 굴러다니는 경우[33] 를 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급 모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한민국 소비자들에게 일본차급의 품질을 제공한 최초의 대한민국 중형차로서 의미가 있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삼성자동차 설립 초기 이건희 회장의 의중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에서 등한시 되어 왔던 부품의 품질에 각별히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설계와 부품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들여왔기 때문에 그 덕을 많이 본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닛산 개발진들이 SM5를 원판인 맥시마보다 더 높이 평가했다는 점은 삼성의 정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1세대 SM520을 명차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게 된 이유이자, 이것이 단순히 일본차를 그대로 들여와서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위에서 말했듯이, 같은 설계의 모델이라 하더라도 조립되는 공장과 부품의 품질에 따라 출고 후 품질이 결정되는 만큼, 오리지널 모델인 닛산 세피로보다 오히려 품질이 좋다는 평가가 있었다. 토요타 조차도 신생업체인 삼성자동차를 잠재적 라이벌로 지목할 수준이었다는 얘기가 있었으며,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의 품질 경쟁 시발점이 되어 업계 전반의 품질 향상의 계기가 됐다.
사실 90년대 이후 닛산은 재정난과 일본에서 강성으로 유명한 자사 노조의 분규로 존망의 기로에 서있었고, 이로 인해 90년대 중반 닛산은 미국에서 품질에서 혹평을 받았고, 이는 닛산의 부채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1999년 매각을 시도한 끝에 르노에 인수되고 말았다. SM5의 품질이 원판 세피로/맥시마보다 낫다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삼성자동차가 2000년에 르노에 매각되고 르노삼성자동차로 재편된 후에는 초기보다 품질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중고차 시장에서도 한동안 르노 매각 이전에 생산된 초기 출시분 모델을 선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삼성자동차 시절 SM5가 더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부품이 대부분 일제 수입이었고 조립만 한국에서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핵심부품의 다수가 닛산 직수입이었다. 그러나 내외장 등 단순 부품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었고, 실제론 사업 허가 당시의 협약으로 인해 수입 부품의 비중은 40퍼센트 가량이었다. 이후 국산화율을 80퍼센트로 늘리면서 이 국산화 단계에서의 초기품질 확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으로 초창기 모델의 선호도가 높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떨어진 품질 수준조차 대한민국제 자동차 전체 품질조사에서 자사의 준중형 세단 SM3와 함께 항상 1, 2위였으니, 초기 모델을 산 사람들이 차를 중고차 시장에 잘 안 내놓으려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삼성자동차 시절 출고된 SM5 초기 생산분이 중고차 시장에 드문 것은 차가 워낙 고장이 안나서 중고차로 안나오는 것이 아니라[34] 그 시절 SM5 판매량 자체가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1세대 SM5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이 르노가 삼성차를 인수한 이후에 판매되었고, 삼성차 시절 판매량은 전체 1세대 SM5 판매량 중에서 10%대에 불과했다.[35]
4기통 차량[36] 과 6기통 차량[37] 의 디자인이 약간씩 다르다. 뒷 번호판이 트렁크에 달려있고 엠블럼이 그릴 중앙에 위치하면 4기통 차량, 뒷 번호판이 범퍼에 달려있고[38] 엠블럼이 후드 위에 돌출되어 있는 후드탑 방식이며 라디에이터 그릴이 빗살모양이고 휠을 포함해 디자인이 더 고급스러우면 6기통 차량이다. 차체 도색도 살짝씩 다르다. 4기통 차량의 경우 원톤 도색이 적용되었고 6기통 차량의 경우 진주투톤과 검정투톤 도색이 적용되었다. 이 공식은 다음 세대 SM5와 SM7[39] 에서도 이어진다.
출시 초창기부터 대대적으로 방영되었던 안전사례를 어필한 광고가 EF쏘나타와의 경쟁에서 적잖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42] 참고로 이 광고의 컨셉 자체가 1991년 칸 광고제에서 상을 탄 벤츠 광고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더구나 광고모델이었던 석진홍[43] 은 실제로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삼성화재보험 상무이사여서, '2번째 SM5를 타는 것 말고 선택지가 있기는 했겠느냐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차량 안전성만 고려하면 그냥 천운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가 언급된 당시 기사 이미지를 링크한 보배드림 게시물과 댓글. 하지만 이런 CF와는 달리 2000년 건설교통부 충돌테스트와 2007년 보험개발원 옵셋충돌테스트, 2010년 KNCAP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역대 SM5는 동세대[44] 타사 중형차들에 비해 충돌 안전성이 우수한 적이 없었다. 다만 저 사고는 스몰 오버랩 충돌로 추정되는데, 스쿠프가 최소 60km/h 이상에서 달려와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다른 차량이었다 한들 사고 피해가 더 작거나 그러진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차 대 차 사고라 스쿠프가 충돌 후 속도를 못 이겨 더 튕겨나간 덕에 운전석이 심하게 침하당하지 않아 중상을 면할 수 있던 것이다. SM5가 약했다 한들 스쿠프는 더 종잇장이므로 스쿠프가 일방적으로 충돌 피해를 몰아받은 것.
참고로 이 때는 차량 엠블렘이 SM518/SM520/SM525V 이런 식으로 SM5 + 배기량을 표기하는 방식이었는데, 출시 후 한 달 뒤에 독일의 유수 자동차 기업인 BMW가 삼성자동차의 모델명이 자사의 모델 표기법과 유사해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소지가 있다며 해외 시장에서 삼성의 SM5 시리즈 모델명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삼성자동차가 듣보잡 업체면 BMW가 신경쓰지도 않았을 듯 한데 이렇게 공식으로 항의 서한까지 보낸 것은 삼성자동차 측에서 1998년 8월부터 중국, 칠레 등 5개국으로 수출을 계획하고, 현지 국가의 상표등록까지 마쳐 바로 모델명을 사용 가능한 상태였던데다,[45] 결정적으로 미국 공인 자동차 테스트 기관인 AMCI에서 SM525V를 BMW 528i보다 우수한 차로 평가하는 바람에 BMW가 위기감을 느끼고 견제 차원에서 항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삼성자동차가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휘청이다가 결국 르노에 매각되는 수순을 밟게 되어 기존의 해외 진출 계획이 완전히 엎어지면서, 굳이 BMW와 싸우며 모델 표기법을 고수할 필요도 없어졌기에 2005년에 출시된 2세대부터는 차량 이름을 그냥 SM5라고만 표기하고 배기량명 대신 트림명(SM5 SE, SM5 LE)을 붙였다. 이후 중국, 터키, 동남아시아 일대로 수출시에는 초기 모델명인 세피로로 수출하였다.
출시 전에 마케팅의 일환으로 네이밍 응모 이벤트를 실시했지만, 호응이 부족했거나 맘에 드는 이름이 없었는지, 최종 이름은 삼성자동차의 약자인 SM과 중형 세단을 뜻하게 하는 5를 붙여 SM5으로 결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탈수록 가치를 느끼는 차[1]
가치를 아는 사람, 당신은 다릅니다
타보면 다릅니다[2]
삼성이 만든 첫 차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부산에서 만듭니다
당시 공식 배경화면
1998년 3월 5일에 출시된[3] 전륜구동 중형 세단이다. 삼성자동차의 유일한, 처음이자 마지막 양산 모델이며 삼성자동차가 망한 후에는 르노가 인수하여 2005년까지 계속 생산되었다.
익스테리어 및 내장은 닛산의 2세대 세피로(A32, 수출명 맥시마)의 전면부 및 후면부 디자인을 약간 수정하고, 편의사양을 약간 수정하여 출시했다. 출시 초기에는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해와 조립했다. 이후 르노 그룹이 인수한 후에는 부품 국산화가 이루어졌다.[4][5][6]
앞에서 보면 세피로의 전면 그릴을 역삼각형에서 삼각형으로 바꾼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 때문에 SM5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좁아지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주를 이루던 디자인 트렌드와 달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넓어지는 특이한 그릴 디자인을 가지게 되었다. 삼성자동차에서는 기존 자동차와 다르게 삼각형처럼 아래로 갈수록 커지는 그릴 디자인이 혁신이라고 자랑했지만 사실은 혁신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세피로와는 뭔가 차별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그릴을 반대 방향으로 바꾼 것에 불과했다. 실제 당시 시장에선 라디에이터그릴의 하단이 넓은 생소한 외형이었기에, 원형모델이었던 닛산 세피로의 그릴은 평범한 방향이었지만 날카롭고 날렵한 이미지를 가져다 주었고, 그에반해 역방향으로 위치한 SM5의 차분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가져다 준다고[7]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맥시마/세피로 원판을 보여주면 원판 디자인이 뛰어나다는 반응이 다수다. 그릴 방향 하나만 차이날 뿐이지만 맥시마/세피로가 더 고급차라는 느낌을 주며, 심지어 시각적으로 차체가 더 크다는 느낌마저 준다. 자동차 역사상 SM5처럼 역방향 그릴을 채용한 예는 많이 없다. 벤츠도 디자인 변화가 한계가 다다르자 최근 라디에이터 그릴이 밑으로 내려올수록 넓어지는 디자인을 채용했다가 크게 혹평을 받고 있다.
삼성자동차는 자체 기술력은 물론이거니와 생산 경험도 전무한 실정[8] 이었지만, 당시 경영난에 빠져 자금이 필요했던 닛산자동차[9] 와 기술 협력을 맺고 자금을 대주는 대신 세피로를 그대로 넘겨받은 덕분에 삼성자동차가 창립된 지 겨우 3년만에 초고속으로 양산 모델로 출시할 수 있었다. 세피로의 일부 디자인과 편의 사양을 변경하여 출시했다고 하는데, 그 차이는 크지 않아서 대부분의 부품을 그대로 사용했다. 세피로와 측면 디자인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동일하며 실내 센터페시아도 계기판을 제외하면 사실상 동일하다. 다만 카오디오는 삼성이 세피로보다 고급 오디오를 넣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삼성자동차는 닛산의 한국 현지 공장에 불과하다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다. 한편으로 인수 기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기아차와 달리,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성차를 르노가 쉬이 인수한 것도 닛산 차에 최적화된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시 당시의 라인업은 2L I4 SR20, V6 2.0·2.5L VQ 엔진로 구성된 SM520, SM520V, SM525V 등의 3가지였다. 이후 5월에 1.8L SR18 엔진을 장착한 보급형 기본 모델인 SM518이 추가됐다. 변속기는 4기통에만 5단 수동변속기가 장착됐으며, V6 모델은 자동 변속기 사양이 기본이 되었다.
SM518, SM520 모델의 경우는 자트코 4단 F03B 변속기, LPG 모델에 락업 클러치가 없는 아이신 50-40E 4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리게 됐다. 단, 아이신 변속기를 탑재한 LPG 모델은 별 문제가 없으나, 가솔린 모델에 얹히는 자트코 변속기의 경우에는 내구성이 다소 낮은 편인데다, 특유의 저속에서 1단에서 2단으로 변속될 때의 변속 충격이 고질적으로 지적받고 있다. 한편 520V, 525V 모델은 ZY 4단 자동변속기이다. 또한 동급 최초로 전 모델 5홀 너클 허브가 적용되었다.[10]
리어 서스펜션은 토션빔으로 분류된다. 정확히는 QT 서스펜션[11] 이라 한다고 한다. 소형차를 중심으로 주로 이용되는 토션빔의 구조를 취하고 있고 메이커에서 또한 편의상 '토션빔'으로 부르고 있다. 구체적으로 초기형 카니발의 리어 서스펜션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5링크 일체형 차축의 요소 또한 일부 띄고 있다. 닛산이 토션바 타입 리어 서스펜션을 적용하면서 초기에 시도한 과도기적 물건으로 볼 수 있다. 이전 서술과 달리 QT 서스펜션은 멀티링크에서 가져왔다고 볼 수 있는 구조 또는 요소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일명 '도끼다이'라 불리우는 레터럴링크/로드 모듈을 보고 이야기 하는것 이라면 이 부품은 QT 서스펜션의 승차감 위주 셋팅으로 인해 떨어진 횡강성 확보 차원의 부품일 뿐 전혀 멀티링크의 요소라고 볼 수 없는 부품이다. 다만 승차감 확보를 위해 스트로크를 넉넉하고 여유있는 길이에 맞추어 놓고, 다소 강한 댐퍼에 부드러운 스프링으로 세팅하며 그에 맞춰 휠하우스 또한 크게 확보하였다[12] 하지만 QT 서스펜션은 당시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던 닛산의 구조 공유차원의 여러 시도 과정에서 나온 과도기적 물건이었기에 완성도가 높지 못했다. 아래 서술에서 확인할 수 있는 NVH 측면으로 이어지는 진동 문제를 안고 있었고 S투어링 기반의 셋팅이라서 승객이 체감하는 승차감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SM5 1세대 후륜 서스펜션이 토션빔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근래에 SM6 출시 이후 널리 알려진 감이 있다.
한편 SM5 1세대의 전륜은 맥퍼슨 스트럿인데, 이는 맥시마/세피로가 처음 개발되던 시점에는 중형차의 서스펜션으로 나쁘다 할 수는 없었지만, SM525V에서 고급차를 표방하던 것에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었고, 사실 이차가 한국에서 SM5로 출시되던 시점에는 그랜저는 물론이고 EF 쏘나타도 전륜에 더블위시본, 후륜에 멀티링크를 채용하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태생이 일제인 SM5에 대한 다소 과정된 기대를 품고 이 차를 시승했다가 XG는 물론이고 EF보다 승차감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2.0L DOHC 이상 트림에만 5 너트 휠을 적용하였던 레간자와 다르게, SM5는 모든 트림에 5너트 휠을 적용하였다.
출시 당시부터 N.V.H는 다소 좋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받았는데, 이게 삼성자동차 초창기 때 판매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정숙성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의 소비자들의 특성에 맞게 경쟁 모델들이 신모델에서 정숙성을 크게 내세웠던 반면, SM5는 다른 부분의 정숙성은 그럭저럭 동급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하부소음과 진동, 즉 로드노이즈의 문제는 아랫급인 준중형급은 고사하고 소형차와 비교했을 때도 별달리 나은 점이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을 정도로 안 좋았다.[13]
SM5 초창기 발표 당시 동급 한국차들과 달리 차폭이 좁은 것도 단점이었다. 이는 2세대 세피로 자체가 차폭이 넓지 않은 차였기 때문이다. 이는 2세대 세피로의 태생적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차폭이 자동차세 부과에 영향을 주는 일본의 세법으로 인해 차폭을 좁게 가져가는 일본차의 성향적인 탓이 요인으로 작용한 것도 있겠으나, 근본적인 이유로는 A32 세피로 개발 당시의 닛산은 자금사정이 여유롭지 못했기에 원가절감차 설계 공유에 심혈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고 A32 세피로 또한 그러한 배경 안고 개발되었기에 닛산 블루버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32 세피로는 태생적으로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다.[14][15] 전폭이 1,815mm인 EF쏘나타, 옵티마, 매그너스와 달리 SM5는 전폭이 1,775mm이기에 4cm정도의 차이가 있었고, 이는 A32 세피로가 등장할 즈음 출시된 '쏘나타Ⅱ'와 거의 비슷한 수치이다.
출시 당시 처녀작으로서 시장 진입의 효과를 최대한 높이고자 1,800CC, 2,000CC SR 엔진을 탑재한 하위 트림들은 중형급 시장에서 기아 크레도스ll, 현대 EF쏘나타, 대우 레간자와 경쟁하며 기반을 다지고, V6 2,000CC[16] 와 V6 2,500CC 엔진을 장착하고 편의사양을 고급화한 SM525V 같은 상위트림은 고급 중형차로서 또다른 수요를 공략하려는 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SM5가 출시된 지 7개월 후인 10월에 현대자동차에서 고급 준대형급 모델 그랜저 XG를 출시하면서[17] SM5의 이런 전략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비슷한 전략으로 GM대우 L6 매그너스와 기아 옵티마 리갈이 출시됐으나, 이 또한 시장에서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판매량 측면에서 쏘나타에 이어 2인자 위치를 다지게 해준 모델이기도 했다. 그랜저와 경쟁을 표방했던 SM525V의 전략은, 사실 SM5 하나로 중형과 준대형차 수요를 모두 커버하고자 했던 부분도 욕심이었을 뿐더러, EF쏘나타도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마르샤의 수요층 일부까지 흡수할 정도가 되었고, 여기에 준대형 차급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개척한 그랜저 XG의 등장은 고급 중형차를 표방했던 SM525V의 위치를 더욱 애매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삼성차는 대우자동차와의 빅딜에 휩쓸리며 삼성 그룹과 대우 그룹간 협상도 진통을 겪었는데, IMF를 벗어나려 기업 간 빅딜에 혈안이 되어 있던 당시 김대중 정부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삼성자동차가 파산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2000년 4월 르노에서 삼성차를 인수한 이후 SM5의 출고가를 대폭 후려쳤다. 삼성자동차 시절 그랜저 XG에 육박했던 SM525V 가격을 500만원이나 내려서 그랜저보다 확실히 저렴하게 출고가를 인하했고[18] SM520 가격도 EF 쏘나타 수준으로 대폭 인하하며 판매 안정화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노조 파업과 구조조정 모두 정리하게 되면서 회사는 빠르게 정상화되어갔고, 르노가 SM5 가격을 대폭 다운한 이후 수요가 크게 살아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개인택시 기사들과 오너들의 입소문을 통해 뛰어난 품질이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10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1년 한 해에만 10만대나 팔렸고, 중형차 시장에서 당시 3위를 차지했다. 1세대 SM5의 누적 판매량의 80% 이상이 2000년 이후에 판매되었으며 처음 3년간의 판매대수는 누적 판매량의 10%대에 불과했다. 2000년 이전 삼성차 시절에 나온 SM5는 부품이 거의 100% 일제여서 고장이 안나서 중고차 매물이 희귀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근거없는 낭설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2000년 이전 판매량 자체가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그 판매량 조차도 삼성그룹 임직원들에게 거의 강매 내지는 내부 할인 등을 통해 대거 판매한 것을 포함한 수치였다. 물론 1997년 외환 위기 때문에 자동차 판매량 자체가 부진했던 시절이긴 하지만 SM5는 당시 중형세단 중에서도 유독 부진했다.
현대자동차는 마르샤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 그리고 그랜저의 이름값을 유지시키기 위해 중형차와는 다른 차체를 쓰며 태생부터 중형차와는 급이 다른 그랜저 XG를 내놓았는데, SM525V는 옵션은 나쁘지 않았지만 최상위트림의 출시 당시 가격대(2,400만원대 초반#)가 1,000만원대 초중반이었던 SM520에 비해 너무 비쌌었다. 그랜저에 비해서 떨어지는 차급, 승차감, 차체 강성, NVH, 출력, 미션 충격 등으로 그랜저의 직접적인 동급 모델로 간주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승차감에서도 세팅의 한계로 인해 그랜저 XG에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핸들링 성능 등 기본기 측면에서는 XG 대비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SM5는 노면 소음 등 NVH에서는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호평 받았던 델타 엔진을 장착한 그랜저 XG에 비해 주행 성능은 스펙 이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것이 판매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니었다. 고질적인 미션 충격도 평가를 깎아 먹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지만, 미션 자체의 내구성은 좋은 편이어서 차가 굴러가는데는 지장이 없었다.[19] 오히려 나중에 VQ 엔진에서 노킹 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때문에 SM5는 당시 EF쏘나타와 직접 경쟁하는 삼성자동차의 중형급 모델로 인식이 굳어지며 4기통 엔진을 장착한 SM520을 위주로 많이 팔리게 되었다.[20] 그래도 SM5는 사실상 일본차라는 인식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2001년 회사 안정화 이후 판매량이 10배 가량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EF 쏘나타에 이어 대한민국 판매량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SM520이 가장 많이 팔렸지만 SM520V와 SM525V등의 V6 모델도 적지 않은 판매량을 보였으며, V6 2500cc 동급 경쟁 차종인 EF쏘나타 2.5, 매그너스, 옵티마 리갈에 비해서는 훨씬 더 성공적인 판매량을 보였다. 보통 중형차 고배기량 모델은 세금이 비싸고 2.0L에 비해 큰 메리트를 찾기 힘들어 거의 안 팔리고 구색맞추기용으로나 두는 반면, 1세대 SM525V는 상기한 이유로 2.5L급 중형차임에도 꽤 준수한 판매량을 보였다. 즉 마르샤와 후에 대우 매그너스가 추구했던 포지셔닝에서 실제로 SM525V 가장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21][22]
품질은 동시기의 쏘나타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았다. 이에 힘입어 2세대까지 중형차 시장에서 현대 VS 르노삼성의 구도로 10년 넘게 지속됐다.
특히 SM520V·SM525V에 적용된 VQ20·VQ25 엔진은 명품 엔진으로 당시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23] 될 정도로 내구성이 상당히 좋았고, 엔진 내부에는 수명이 길고 내구성이 뛰어난 백금으로 코팅된 점화 플러그, 대한민국 중형 승용차 최초로 타이밍 벨트 대신 타이밍 체인이 설치되어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였다. 백금 점화플러그는 1개월 뒤 데뷔한 EF 쏘나타에도 바로 적용되어 묻힌 감이 있긴 하지만, 소음 문제나 원가절감 등의 이유로 다른 대한민국 자동차 회사들이 외면하던 타이밍 체인을 장착한 것은 SM5가 동시대 대한민국 중형차나 준대형차에서는 유일했다. 당시 SM5는 타이밍 체인을 채택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광고했고, 타이밍 체인은 SM5이 내구성이 좋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SM5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타이밍 체인을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SM5가 대한민국 최초가 아니다. 과거 포니2 역시 타이밍 체인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타이밍 체인의 소음 문제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다른 차량에는 한동안 적용되지 않았다. SM5 역시 타이밍 체인에서 약간의 소음이 있지만 체인 커버를 씌운 덕인지 그리 문제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후 대한민국에 다른 자동차 업체의 엔진에도 타이밍 체인 장착이 필수가 된다.
하지만 VQ20 사양은 문제 제기가 많았는데, 배기량 대비 출력이 떨어져 차가 안나간다는 불만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24] , 고질적인 노킹 문제에 시달렸다. 허나 VQ 엔진이 명품 엔진이라 평가받은 것은 북미에 주로 판매되는 닛산의 중대형 모델들과 인피니티에 주력으로 사용한 3,000cc 이상의 대배기량 엔진들이며, 그것도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의 일이다. 게다가 VQ 엔진은 배기량에 따라 세팅의 차이가 커서 속성도 무척 다르고 평가도 매우 상이한데, SM5에 사용된 2,000cc대 VQ 엔진들은 배기량 대비 낮은 출력과 토크, 노킹 등의 고질병이 있었다. 특히 VQ 2000cc는 노킹 문제가 결함급으로 심각했다. VQ 엔진은 일본에서도 노킹 문제가 제기되어 옥탄가가 높은 고옥탄 휘발유 사용이 권장되던 엔진이었다. [25]
특기할 점이라면 LPG 모델의 엔진인데, 내부명으로 SR20DET이다. 이런 이름으로 인해 터보차저 모델[26] 이란 오해가 있는데, 사실 SM5는 3세대 L43의 1.6 TCe 이전까지 터보차져가 순정으로 장착된 사양이 존재하지 않는다. 믹서(FBM) 타입의 LPG 엔진에 순정 터보차져 사양은 전세계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부품 카탈로그상 SR20T 라고 기록된 부분을 터보로 오인한 듯.
부품 카탈로그 상의 SR20T의 정확한 의미는 택시(Taxi)의 T다. 정식으로 터보트림이 등장했다면 부품 카탈로그 상에 분명히 존재해야 하나 르노삼성의 eSPIS 시스템으로 조회해도 그러한 데이터는 확인되지 않는다.
LPG 모델은 그 당시 보기 드문 DOHC 헤드를 사용하는 LPG 모델로서 경쟁 모델들이 LPG 연료 특유의 고온을 감당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SOHC 헤드를 사용한 LPG 엔진 (시리우스 2.0/2.4 LPG 사양)대비 DOHC 헤드를 적용하여 최고출력이 높은점이 장점이였다. 그러면서도 당대 경쟁 차량 대비 내구성 문제가 없던 데다, 오히려 높은 성능 덕에 고속주행 등지에서 차량 RPM을 높게 쓰지 않아도 되어서 내구성이 더 좋다는 말도 있었다. 하여간 경쟁차량보다 우수한 출력을 발휘하여 영업용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SR20 엔진 사양들 중 LPG 사양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사양이기에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사양이며 항간에는 LPG 모델의 피스톤이 더 압축비가 낮은 SR20DET의 터보용 피스톤이라는 낭설이 존재하나 실질적인 부품 카탈로그상 SR20과 SR20T(Taxi)에 적용되는 피스톤은 모두 품번이 동일하다.[27] 다만 이 쪽도 아직 기화기인지라 냉간 시동은 영 좋지 않은 게 흠. 변속기도 택시 시장을 의식해 성능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검증된 내구성 위주의 변속기를 달았는데, LPG 특유의 약한 폭발력과 더불어 변속 충격이 당대 기준으로 굉장히 작아 평가가 좋았다.
2세대 세피로를 페이스리프트하여 판매한 모델이기 때문에 마크 빼고 일본차라는 이유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반대 급부로 한세대 전 구닥다리 일본차를 그대로 들여와 판다는 비아냥 섞인 조롱도 듣기도 했다. 2세대 세피로는 90년대 당시 닛산이 내부적인 상황 때문에 미국에서 품질 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28]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 닛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10만 마일(약 16만km) 정도는 거뜬하게 달릴 정도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내구성과 신뢰성이 좋은 자동차로 정평이 나 있었다.[29]
덕분에 신생업체에서 제작된 첫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출시 때부터 3년 6만km라는 당시의 대한민국제 중형차로서는 파격적인 무상 보증수리 정책[30] 으로 품질 보증을 내세우는 등 화제가 되었다. 강력한 내구성을 보장하는 품질보증 정책은 단순히 이벤트성 홍보 전략으로 그치지 않고 이후 SM5를 구입한 소비자들의 실사용을 통해 입증이 되어 입소문으로 퍼져 나갔으며, 특히 내구성이 중요한 택시 사양으로로 출시된 후 개인택시 시장[31] 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내면서 그 명성이 SM5의 후속작 모델들까지도 이어질 정도로 대단했다.[32] 1세대 SM5 택시의 인기를 바탕으로, 2세대 SM5 택시도 처음에는 불티나게 팔렸지만 아래에 서술된 바와 같이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치명적인 결함이 나타나면서 SM5가 택시 시장에서는 사실상 퇴출되고 말았다. 하지만 1세대 SM5는 단종 후 20여년인 현 시점에서도 별 고장 없이 잘 굴러다니는 경우[33] 를 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급 모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한민국 소비자들에게 일본차급의 품질을 제공한 최초의 대한민국 중형차로서 의미가 있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삼성자동차 설립 초기 이건희 회장의 의중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에서 등한시 되어 왔던 부품의 품질에 각별히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설계와 부품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들여왔기 때문에 그 덕을 많이 본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닛산 개발진들이 SM5를 원판인 맥시마보다 더 높이 평가했다는 점은 삼성의 정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1세대 SM520을 명차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게 된 이유이자, 이것이 단순히 일본차를 그대로 들여와서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위에서 말했듯이, 같은 설계의 모델이라 하더라도 조립되는 공장과 부품의 품질에 따라 출고 후 품질이 결정되는 만큼, 오리지널 모델인 닛산 세피로보다 오히려 품질이 좋다는 평가가 있었다. 토요타 조차도 신생업체인 삼성자동차를 잠재적 라이벌로 지목할 수준이었다는 얘기가 있었으며,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의 품질 경쟁 시발점이 되어 업계 전반의 품질 향상의 계기가 됐다.
사실 90년대 이후 닛산은 재정난과 일본에서 강성으로 유명한 자사 노조의 분규로 존망의 기로에 서있었고, 이로 인해 90년대 중반 닛산은 미국에서 품질에서 혹평을 받았고, 이는 닛산의 부채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1999년 매각을 시도한 끝에 르노에 인수되고 말았다. SM5의 품질이 원판 세피로/맥시마보다 낫다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삼성자동차가 2000년에 르노에 매각되고 르노삼성자동차로 재편된 후에는 초기보다 품질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중고차 시장에서도 한동안 르노 매각 이전에 생산된 초기 출시분 모델을 선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삼성자동차 시절 SM5가 더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부품이 대부분 일제 수입이었고 조립만 한국에서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핵심부품의 다수가 닛산 직수입이었다. 그러나 내외장 등 단순 부품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었고, 실제론 사업 허가 당시의 협약으로 인해 수입 부품의 비중은 40퍼센트 가량이었다. 이후 국산화율을 80퍼센트로 늘리면서 이 국산화 단계에서의 초기품질 확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으로 초창기 모델의 선호도가 높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떨어진 품질 수준조차 대한민국제 자동차 전체 품질조사에서 자사의 준중형 세단 SM3와 함께 항상 1, 2위였으니, 초기 모델을 산 사람들이 차를 중고차 시장에 잘 안 내놓으려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삼성자동차 시절 출고된 SM5 초기 생산분이 중고차 시장에 드문 것은 차가 워낙 고장이 안나서 중고차로 안나오는 것이 아니라[34] 그 시절 SM5 판매량 자체가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1세대 SM5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이 르노가 삼성차를 인수한 이후에 판매되었고, 삼성차 시절 판매량은 전체 1세대 SM5 판매량 중에서 10%대에 불과했다.[35]
4기통 차량[36] 과 6기통 차량[37] 의 디자인이 약간씩 다르다. 뒷 번호판이 트렁크에 달려있고 엠블럼이 그릴 중앙에 위치하면 4기통 차량, 뒷 번호판이 범퍼에 달려있고[38] 엠블럼이 후드 위에 돌출되어 있는 후드탑 방식이며 라디에이터 그릴이 빗살모양이고 휠을 포함해 디자인이 더 고급스러우면 6기통 차량이다. 차체 도색도 살짝씩 다르다. 4기통 차량의 경우 원톤 도색이 적용되었고 6기통 차량의 경우 진주투톤과 검정투톤 도색이 적용되었다. 이 공식은 다음 세대 SM5와 SM7[39] 에서도 이어진다.
출시 초창기부터 대대적으로 방영되었던 안전사례를 어필한 광고가 EF쏘나타와의 경쟁에서 적잖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42] 참고로 이 광고의 컨셉 자체가 1991년 칸 광고제에서 상을 탄 벤츠 광고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더구나 광고모델이었던 석진홍[43] 은 실제로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삼성화재보험 상무이사여서, '2번째 SM5를 타는 것 말고 선택지가 있기는 했겠느냐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차량 안전성만 고려하면 그냥 천운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가 언급된 당시 기사 이미지를 링크한 보배드림 게시물과 댓글. 하지만 이런 CF와는 달리 2000년 건설교통부 충돌테스트와 2007년 보험개발원 옵셋충돌테스트, 2010년 KNCAP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역대 SM5는 동세대[44] 타사 중형차들에 비해 충돌 안전성이 우수한 적이 없었다. 다만 저 사고는 스몰 오버랩 충돌로 추정되는데, 스쿠프가 최소 60km/h 이상에서 달려와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다른 차량이었다 한들 사고 피해가 더 작거나 그러진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차 대 차 사고라 스쿠프가 충돌 후 속도를 못 이겨 더 튕겨나간 덕에 운전석이 심하게 침하당하지 않아 중상을 면할 수 있던 것이다. SM5가 약했다 한들 스쿠프는 더 종잇장이므로 스쿠프가 일방적으로 충돌 피해를 몰아받은 것.
참고로 이 때는 차량 엠블렘이 SM518/SM520/SM525V 이런 식으로 SM5 + 배기량을 표기하는 방식이었는데, 출시 후 한 달 뒤에 독일의 유수 자동차 기업인 BMW가 삼성자동차의 모델명이 자사의 모델 표기법과 유사해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소지가 있다며 해외 시장에서 삼성의 SM5 시리즈 모델명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삼성자동차가 듣보잡 업체면 BMW가 신경쓰지도 않았을 듯 한데 이렇게 공식으로 항의 서한까지 보낸 것은 삼성자동차 측에서 1998년 8월부터 중국, 칠레 등 5개국으로 수출을 계획하고, 현지 국가의 상표등록까지 마쳐 바로 모델명을 사용 가능한 상태였던데다,[45] 결정적으로 미국 공인 자동차 테스트 기관인 AMCI에서 SM525V를 BMW 528i보다 우수한 차로 평가하는 바람에 BMW가 위기감을 느끼고 견제 차원에서 항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삼성자동차가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휘청이다가 결국 르노에 매각되는 수순을 밟게 되어 기존의 해외 진출 계획이 완전히 엎어지면서, 굳이 BMW와 싸우며 모델 표기법을 고수할 필요도 없어졌기에 2005년에 출시된 2세대부터는 차량 이름을 그냥 SM5라고만 표기하고 배기량명 대신 트림명(SM5 SE, SM5 LE)을 붙였다. 이후 중국, 터키, 동남아시아 일대로 수출시에는 초기 모델명인 세피로로 수출하였다.
출시 전에 마케팅의 일환으로 네이밍 응모 이벤트를 실시했지만, 호응이 부족했거나 맘에 드는 이름이 없었는지, 최종 이름은 삼성자동차의 약자인 SM과 중형 세단을 뜻하게 하는 5를 붙여 SM5으로 결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1세대 모델 중에는 시중에 발매되지 않고 소량 생산된 SM530L이라는 비공식 모델도 있다. 상세 내용은 문서 참고.
한편 2001년 9월에는 르노삼성자동차 출범 1주년을 기념해 4기통 520의 에디시옹 스페시알(Edition Speciale)이라는 특별 사양을 8,400대 한정으로 판매했다. 스페시알과 스페시알 플러스로 나누어지며, 스웨이드 시트, 고출력 프리미엄 오디오[46] , 핸즈프리, CD체인저, 공기청정기 등 편의장비를 갖춘 모델이었다. 스페시알은 트렁크 좌측 상단, 양측 펜더 부분에 Speciale 문구가 붙어 있다. 기사
2.2. 마이너체인지 (2002 ~ 2003)[편집]
2002년 1월 5일에 디자인이 소폭 변경된 2002년형이 출시되었다. 이 때 바뀐 부분들은 스티어링 디자인과 후면 디자인, 그리고 휠 디자인 등이다.[48] 전후면 클리어형 램프가 도입되었고, 구세대 자동차의 상징이던 인출식 라디오 안테나가 삭제되었다. 가격은 1,273만원~2,485만원으로# 뉴 EF쏘나타의 1,225만원~2,589만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 개소세 인하 등으로 가격 인하가 더해지며 판매대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2002년도 베스트셀링카 6위까지 오르기도 하였다. 거기다 1위인 쏘나타 판매대수와 비교하자면 2000대 미만이었다. 또한 2002년 7월에는 누적 판매량이 20만 대를 돌파했다. 바야흐로 SM5의 최전성기 시절. 또한 2003년 중반에 SR엔진의 점화 방식을 디스트리뷰터 방식에서 개별코일 방식으로 바꿈과 동시에 엔진 커버를 올리는 변화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