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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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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2020년까지는 세가 내에서 판타시 스타 온라인, 용과 같이 시리즈 등 PC 온라인, 컨슈머 게임 제작하는 팀이 소속된 회사였으나 2020년에 세가 인터랙티브를 합병하고 2021년에는 중간지주회사가 해체되어 2015년 이전에 가까운 형태로 돌아갈 예정이다. 본사는 도쿄도 시나가와구[3] 에 있으며 2010년대부터 조직개편이 잦은 편이다.
특유의 로고 폰트[4] 는 197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으며[5] , 1982년 현재의 형태로 개정됐다. 왼쪽은 일본의 세가 로고로 하늘색을 띠며 오른쪽은 북미와 유럽에서 쓰이는 로고로 진한 파란색을 띤다. 일본 세가의 영향을 받는 세가 퍼블리싱 코리아의 세가 로고도 일본판 로고를 사용한다. 로고를 나눠 쓰게 된 시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각국의 메가 CD 바이오스 동영상으로 볼 때, 미국-유럽의 SEGA 로고가 일본의 SEGA 로고 보다 어두운 색을 사용한 적이 있다. 위와 같은 색이 확정된 시점은 세가 사미 홀딩스 설립 이후로 보인다.
마스코트는 소닉 더 헤지혹이다.
세가의 역사는 나름대로 길다. 지금은 일본으로 본사가 옮겨갔지만 원래 법인은 미국인 세 명인 마틴 브롬리, 어빙 브롬버그, 리처드 스튜워트가 미국에서 "일본 오락 물산(주)"이라는 이름으로 1960년 6월 3일에 설립한 미국회사였다. 주 업무는 회사 이름답게 일본 오락물 수입. 해당 회사의 모기업이자 영어명은 위의 세 인물들이 1946년 9월 1일에 설립한 "Service Games Inc."였고, 여기서 "SEGA(SErvice GAmes)"가 나왔다.
한편, 데이비드 로젠이라는 사람이 설립했던 로젠 엔터프라이즈라는 미국 업체도 일본 오락물을 미국으로 수입하는 업체였는데, 일본 오락 물산이 로젠 엔터프라이즈를 1965년에 인수합병하면서 '세가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됐다.[6] 그때부터 데이비드 로젠은 경영 1선에서 활약했고, 로젠이 디자인한 잠수함 게임 《페리스코프(1968)》가 성공하자 1969년, 더 큰 회사에 인수되면서 기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1971년, 세가의 일본 지부는 최초의 일본산 핀볼 게임인 Winner를 시작으로, 연이어 명작 핀볼 게임들을 발매하면서 이름을 알렸으며,[7] 1978년, 일본에서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히트하자 세가는 1979년 미국의 비디오 게임 회사 그렘린과 제휴하여 게임 기판의 제작과 일본산 아케이드 게임의 북미 유통을 맡으면서 비디오 게임 분야에 진출하였다.
이 시기에 일본업체 에스코 무역의 사장인 나카야마 하야오는 중고 게임기를 유통하다가 미국 게임기를 불법 복제 유통하는 사업에 진출했는데, 로젠은 자사의 게임들을 불법으로 복제하여 돈을 벌고 있는 나카야마를 어떻게 족칠까 궁리하다가 나카야마 하야오를 직접 만나 그의 통찰력에 반해 나카야마를 세가로 영입하고 1979년에는 아예 에스코 무역을 합병했다.
이후 세가는 나카야마 하야오의 주도하에 여러 게임들을 발표하면서 아케이드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일본 아케이드 개발사 중에서는 당대 북미 아케이드 게임 개발사들과 엎치락뒤치락할 정도로 기술력이 꽤 뛰어나기로 이름을 높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레이싱 게임에 최초로 풀 컬러 그래픽과 스프라이트 스케일링을 적용한 《터보 (1981)》, 비디오 게임 역사상 최초로 스크롤 그래픽에 등각 시점(isometric view)과 3D 게임 플레이를 접목한 《젝손 (1982)》, 세계 최초의 레이저디스크 게임 《아스트론 벨트 (1982)》[8][9] , 높은 속도의 3D 스케일링과 디테일한 스프라이트를 동시에 선보이며 3D 비행기 시뮬레이션 그래픽의 기반을 만들어낸 《벅 로저스: 플래닛 오브 줌 (1983)》 등이 있다.
1983년에 나카야마 하야오가 세가 일본 지부의 사장으로 취임했고, 1984년 세가는 오카와 이사오의 CSK라는 일본 업체에 또 다시 인수되어, 본사를 일본으로 옮기게 되면서 24년의 미국회사의 역사를 마감하고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적을 옮기게 되었다. 로젠은 그 후에도 세가의 회장이되어 나카야마에게 경영 1선을 맡기었고, 본인은 1996년에 마침내 은퇴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세가는 스즈키 유의 지휘 아래 《행온 (1985)》, 《스페이스 해리어 (1985)》, 《아웃런 (1986)》, 《애프터 버너 2 (1987)》, 《파워 드리프트 (1988)》, 《갤럭시 포스 (1989)》, 《SEGA R-360 (1990)》 등의 체감형 아케이드 게임을, 90년대 들어서는 《버추어 레이싱 (1992)》, 《버추어 파이터 (1993)》, 《버추어 스트라이커 (1994)》, 《버추어 캅 (1995)》, 《전뇌전기 버추얼 온 (1995)》등의 3D 게임을 지속적으로 제작하며 전세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1/3을 점령하는 전성기를 맞았다. 이외에도 세가는 일본에서 인형뽑기 열풍을 일으킨 《UFO 캐쳐(1985)》시리즈와 세계 최초의 스티커 사진기 《프린트 클럽 (1995)》을 개발했으며[10] (프린트 클럽 시리즈는 아틀라스와 공동 개발.) 1990년에는 일본 최초로 대형 아케이드 센터[11] 를 설립하였다.[12][13]
세가는 1980~90년대를 주름잡는 아케이드와 체감형 머신의 강자였지만 콘솔 시장에서도 뛰어난 개발력으로 많은 명작들을 배출해 낸 제작사이기도 하다. 《알렉스 키드 시리즈》, 《북두의 권(세가 마스터 시스템)》, 《판타시 스타 시리즈》, 《베어 너클 시리즈》, 《샤이닝 시리즈》,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팬저 드래군 시리즈》, 《나이츠 시리즈》, 《사쿠라 대전 시리즈》, 《스페이스 채널 5 시리즈》, 《젯 셋 라디오》 등을 만들어낸 게임기 소프트웨어 회사로서의 세가의 역량은 대단했다.
세가의 신입 사원 교육 과정에서 배우는 게임 프로그래밍의 정석 (원서명 ゲームプログラマになる前に覚えておきたい技術 単行本 平山 尚(株式会社セガ) (著).)이라는 책은 일본의 게임 개발자들에게 필독서로 여겨질만큼 전설적인 게임개발 입문서로 평가받고 있다.
심지어 VR 기기도 닌텐도보다 먼저 만들었다!! 링크 그러나 거의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비운의 기기. 하지만 당시 세가에서 재직하던 미즈구치 테츠야(세가랠리, REZ 디렉터)는 당시 세가의 VR 기술을 경험하였다고 언급하였고, 링크 이는 PS VR의 REZ Infinite를 개발하는데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2001년 게임기 사업에서 철수한 세가는 아케이드 게임에 '넷 플레이' 개념을 도입한 서비스 ALL.Net을 처음으로 선보인 《버추어 파이터 4 (2001)》, IC카드를 사용하여 TCG를 아케이드에서 구현한 《World Club Champion Football 시리즈|WORLD CLUB Champion Football]] (2002)》, IC카드와 ALL.Net을 기반으로 아케이드용 레이싱 게임의 판도를 새롭게 짠 《이니셜 D Arcade Stage (2003)》, 전세계 희귀 곤충들의 멸종위기까지 불러올 정도로 히트를 친 남아대상의 《갑충왕자 무시킹 (2003)》, 여아들에게 멋진 옷 입는 법을 가르치는 컨셉의 건전한 여아대상의 게임인 《멋쟁이 마녀 러브 앤 베리 (2004)》등의 게임을 차례로 선보이며 1997년을 기점으로, 아케이드 시장과 콘솔 게임기 시장의 기술력 차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되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침체기에 들어갔던 아케이드 시장을 다시 살려내고 해외 게임들의 유통을 맡기 시작해서 풋볼 매니저 등의 게임을 일본에 소개하는 등 고군분투했다.
이외에도 세가는 세가 토이즈라는 장난감을 만드는 자회사를 설립하는가 하면 여아를 대상으로 한 아케이드 게임 「멋쟁이 마녀 러브 앤 베리」의 히트 이후에는 게임에서 나오는 옷과 상품을 파는 옷가게도 오픈했다. 세가가 이렇게 많은 영역에서의 사업을 한 원인은 세가라는 회사 자체가 인수합병으로 만들어진 회사이기도 하고, 분사 등을 거쳐서 기능의 최적화를 꾀하는 회사경영체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력시장인 아케이드 시장의 계속된 불황과 가정용 게임기 사업 실패로 인해 결국 2004년 사미와 합병했다.
세가는 뛰어난 개발력으로 유명했지만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서의 경영수완이 형편없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1997년에 게이머들을 상대로 게임회사의 신뢰도 조사를 했을 때 세가는 믿을 수 있는 게임 소프트를 만들어내는 게임회사 2위와 믿을 수 없는 게임기를 만든 게임 회사 2위를 동시에 석권했다.콩라인 정말이지 아타리급의 황당한 실책을 다수 저질렀는데, 이를 살펴보면 '얼마나 아케이드로 벌어놓은 것이 많았으면 드림캐스트 시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세가 마크 III 시절에는 '아케이드 시장의 강자인 자신들의 게임만 이식해놔도 잘 팔릴 것이다.' 라는 실로 오만한 생각으로 서드 파티 도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결과는 닌텐도의 패미컴에 크게 밀린 판매실적이었다. 그리고 휴대용 시장에서는 게임 기어가 불편한 휴대성과 전지로 닌텐도의 게임 보이에 크게 밀리는 판매실적을 기록하였다. 1990년대 초반에 미국 지사의 분전으로 세가 제네시스(일본명 메가 드라이브)가 미국에선 닌텐도의 슈퍼 NES(일본명 슈퍼 패미컴)를 누르고 1위에 올라서기도 했지만, 이후 벌어진 차세대 게임기 경쟁에서 세가 새턴은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에 완패하고 말았다.
이 패배에 대해 세가의 일본 지사와 미국 지사의 대립을 원인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미국 세가의 승승장구로 입지를 위협받게 된 일본 세가가 강한 견제에 들어가면서, 양측의 대립으로 차세대 경쟁에서 뒤쳐지게 됐다는 이야기다. 당시 미국 지사의 사장인 톰 칼린스키가 소니와의 제휴나 실리콘 그래픽스[14] 와의 사업을 물어왔으나, 회장인 나카야마가 모두 거부해버리고 독단적으로 세가 새턴 런칭을 결정한 일이 그 예시라고 한다.[15]
이 소니와의 제휴 거부는 결과적으로 대기업인 소니에 세가가 종속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며 당연한 결정으로 보는 의견이 있는 반면, 당시의 소니는 닌텐도나 세가에 비해 게임업계 파워가 한참 밀린 회사였으며, 소니가 제안한 라이센스 제안은 파격적이었기에 게임 자본과 기술력에서 앞선 세가가 소니에게 종속될 리 없었다는 의견도 있다.[16]
한편 당시 미국 세가의 마케팅 담당이었던 스티브 레이스는 일본 지사와의 대립에 질려 소니로 이직해버린 바 있다. 그리고 1995년 E3에서 299달러 연설을 하며 세가를 크게 물먹인다.복수귀 당시 세가 새턴의 가격은 399달러였는데, 그는 연설에서 "299달러" 딱 한마디를 하고 내려가며 큰 임팩트를 줬다. 그렇게 게임기 판매 가격부터 크게 밀린 세가는 북미에서의 승기를 완전 잃게 된다. 톰 칼린스키 사장도 1996년에 사임했다.
애초에 세가의 시작이 미국 회사였던 탓에 미국 지사의 사이즈가 결코 작지 않았고, 모든 것을 일본 본사를 통해 결정했던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와는 달리 미국 세가의 단독 결정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나 게임 스튜디오가 있는 등 미국 세가의 독립적인 행동이 큰 영향을 미치는 회사였다. 이러한 독립성은 미국에서의 공격적인 마케팅 등으로 제네시스가 닌텐도를 누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기도 하였으나, 미국 지사에선 슈퍼 32X를 개발하고 일본에선 완전 차세대인 새턴을 개발하는 등 제품 개발 로드맵에 대한 불협화음, 이로 인한 잦은 출장과 전화통화(+통역/번역)로 벌어진 갈등 등이 겹쳐 결국 선택과 집중에 실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당시 신참에 불과했던 플레이스테이션에 미국 왕좌의 자리를 내주게 됐다.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 시장 패배를, 일본 본사의 견제 때문만으로 몰고가는 것에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일단 미국 지사에서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32비트 시장에 진입시키고자 만든 32X는 철저히 실패했다. 그리고 세가의 근본적 실패 원인은 양질의 서드파티를 확보하지 못한 점이 크고, 이는 일본 지사 미국 지사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만 32X 역시 새턴 개발 비화와 연관지어 생각하면 MD와 새턴 간의 소프트 개발 진입장벽이 서드 파티 이탈을 불러올 것을 우려한 미국 지사가 그 간극을 메꾸려고 마지막 발버둥을 쳤던 것이라 생각하면 의도는 좋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어려운 세가 새턴 시기를 지나며 겨우 버텨냈지만, 후속작인 드림캐스트가 그간의 삽질로 인한 후폭풍 때문에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 2와 제대로 경쟁을 하지도 못하고 3년만에 망해버렸다. "드림캐스트가 몰락했을 당시 세가는 만약 다른 게임 회사였다면 아마 3번은 망했을 수준."이라고 세가의 소닉팀 나카 유지가 말했을 정도로 세가의 삽질은 심각 그 자체였다.
그래도 이런 삽질 조차도 세가의 엉뚱함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존재하고, 그야말로 세가니까 나올 수 있는 그때까지의 세가의 넋을 담은 복합 SRPG 게임인 세가가가같은 게임도 나오게 되었다. 거의 모든 세가의 대표 캐릭터가 등장하며, 타 하드웨어 메이커 및 캐릭터를 패러디한 장면은 기본에다, 오타쿠 네타(모에모에라든가...)도 다소 함유된 편이라서 팬들은 반 장난격으로 세가에서 직접 만든 세가 동인게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 세가가가를 제작한 개발진은 크레이지 택시 시리즈로 유명한 히트메이커이고, 게임의 디렉터는 오카노 테츠다. 처음에는 한정 물량만 나왔으나, 세가 팬들의 성원 끝에 통상판으로 나온 게임.
세가는 자사 게임기 자체로도 별 이상한 짓을 다 했다. 메가 드라이브만 해도 세가 라이브러리, 메가 CD, IBM과 합작해서 만들어낸 16비트 개인용 컴퓨터 테라 드라이브,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인 메가 LD, 32X 등으로 뻗어나갔고, 휴대용 게임기로 발매한 게임 기어에 백라이트와 TV 재생 기능을 넣어서 6개의 건전지를 사용하여 휴대용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큰 크기와 3시간의 플레이 시간이라는 삽질을 하였다.
이러한 세가의 삽질의 가장 으뜸은 세가 새턴 시절 포토 CD, 비디오 CD 플레이어, 모뎀을 통하는 인터넷 접속 모듈, 화상전화, 자동차 탑재(이건 가격이 15만엔이나 되었다.), 워드프로세서, 프린터, 키보드, 디스크 드라이버, 모뎀을 포함한 주식투자용 콘솔, 디지털 카메라 기능을 집어넣은 새턴을 각각 발매한 것.
자사의 게임기를 일종의 고사양 게이밍 컴퓨터로 만들려고 한 것인데, 당시에 상당히 무모한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를 나중에 소니에서 플레이스테이션 3으로 그대로 따라했다가 Wii와 엑스박스 360에서 밀려나간 것을 고려하면... 또한 메가 드라이브의 주변기기인 메가 모뎀의 경우, 전화선으로 게임의 콘텐츠를 새롭게 추가한다는 시스템이었는데 이것이 10년 이상이 지나서 생긴 DLC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보면 세가는 정말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대를 앞서나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제대로 접목시킬 노하우도 없었을 뿐더러, 제대로 된 계획도 없던 게 문제. 그냥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면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겠지?" 라는 위험한 발상을 한 것이다. 대부분 이러한 주요 역할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쓴 하드웨어들은 게임뿐만 아니라 전자 제품도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이러한 백화점식 구성으로 대중을 끌어오겠다는 기획은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발상이다. 특히나 게임기같이 생활 필수품이 아닌 고가의 제품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발상은 기술력의 발달로 '스마트폰'이라는 괴물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로 실현되긴 했다.
비단 하드웨어 사업에서만 말고 소프트 관리 부분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삽질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자사의 소프트 자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개발 데이터들을 남겨놓지 않고 마구 폐기한 것인데, 이는 기념비적인 작품인 버추어 파이터 2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작품이 후에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었을 때 세가 본사의 이식작임에도 어딘가 뒤떨어지고 거슬리는 이식도에 많은 비판이 있었고, 후에 회사측에서 게임의 개발 데이터를 남겨놓지 않고 모두 폐기해서 이식이 불가능하고 에뮬레이터 방식으로 옮긴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오래된 게임의 데이터 유실이야 사고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지만 저만한 중요 작품의 데이터를 그것도 실수도 아니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폐기해 버린 것은 소프트 회사로서는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
자사의 마스코트인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또한 개발 데이터들의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나카 유지가 코딩하던 물리 엔진이 소실되어버렸고, 소닉 1과 소닉 2를 메가 드라이브 에뮬레이팅으로 이식해버리는 등, 리마스터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쪽은 다행스럽게도 팬메이드 엔진인 "레트로 엔진"과 개발자 "크리스천 화이트헤드"가 혜성같이 등장하여 소닉 CD의 리마스터 출시를 시작으로 간신히 해결되었다.[시키지도] 크리스천은 나중에 소닉 매니아 개발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후에 엑스박스 360으로 전뇌전기 버추얼 온 포스를 이식했을 때도 눈물겨운 후기가 있는데, 게임 데이터는 당연히(!) 모두 폐기되었었고, 아케이드에서 흥행이 실패한 게임이다 보니 남아 있는 게임장도 손에 꼽을 정도라 겨우 지방의 한 곳에서 가동하고 있는 곳을 찾아내 기기를 빌려 본사로 가져와 모니터에 자를 대고 HP 바 소모량 등을 측정해 공격 대미지 데이터 같은 것을 추정해 이식했다.
사미와 합병 이후로는 본업인 게임 제작과 퍼블리싱에만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모기업인 세가 사미 홀딩스가 생각보다 돈이 많기에 별 걱정은 없는 듯. 2013년 3월기 기준으로 세가 사미 홀딩스의 현금 및 예금은 1104억엔이며, 순자산은 3450억엔이다.
다만, 여기서 함정에 빠지면 안되는것이 이것은 연결실적이다. 즉, 세가뿐만 아니라 사미, 타이요일렉, 로데오, 긴자 등의 파칭코 회사도 전부 포함한 실적이라는것이다. 세가 게임즈의 개별 실적에서 발췌한 2013년 3월기 전자 공고에 따르면 현금 및 예금은 고작 220억엔에 불과하며 순자산은 고작 660억엔밖에 되지 않는다.
세가가 사미에 인수된 직후인 2000년대 중반에는 PS2로 세가 에이지스[17] 시리즈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자사 게임 리메이크작들을 프로듀싱해서[18] 염가에 발매한적이 있는데, 보통 2500엔대로 일반적인 게임의 1/2정도 가격으로 발매했다. 염가형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대이하의 퀄리티 때문에 좋은소리를 듣지는 못했다.(예외적으로 할만한 세가 에이지스 게임도 존재하긴 한다.
2012년 5월에 발표한 소비자 사업 부분(게임 개발, 유통.) 경영 성적이 말그대로 충격적인데, 구조조정으로 인한 특별 손실을 제외한 영업손실이 약 88억엔이고 특별 손실을 포함하면 151억 8200만엔의 영업손실을 냈다. 사실 2분기까지는 세가의 예상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세가는 2분기 누계 기간 동안 55억엔 적자를 예측하였고 실제로 2분기 누계 기간 동안에는 60억엔의 영업 손실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세가는 하반기에 주요 타이틀[19] 을 발매하여 적자를 흑자로 뒤집을 것이라고 기대를 했으나, 소닉 타이틀이 2개가 나오는 3분기에서 5억엔밖에 적자폭을 축소시키지 못했고, 4분기에 주요 타이틀이 풋볼 매니저밖에 없던 세가는 결국 적자폭을 축소시키지 못하고 그 결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400명이 해고되었다. 단 파칭코쪽은 710억엔의 영업이익을 보여주며 소비자 사업으로 인한 손실을 유기기사업으로 메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주요 사업의 방향을 오리지널 게임 제작에서 다른 제작사의 게임을 유통하는 쪽으로 돌린 모양이다. 2012년 세가의 미국 지부는 앞으로 오리지널 게임은 발매하지 않고 인기있는 후속작 게임 위주로만 게임을 제작할 것이며 게임 유통 비중을 늘리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다만 이런 회사 방침이 세가 미국 지부에만 적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세가 전체에 적용되는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FY2013년 1분기 소비자 사업은 -15억엔을 기록하여 전년도 4분기 보다 136억엔이 상승했고 전년도 보다 23억엔 증가했다. 2분기 소비자 사업은 -7억엔을 기록하여 1분기 보다 8억엔이 상승했고 전년도 보다 53억엔 상승했다. 3분기 소비자 사업은 2분기보다 12억엔 상승했고 보다 전년도 보다 60억엔 정도 늘어나면서 증가하여 5억엔을 기록했지만 반대로 유기기사업은 77억엔으로 전년도 보다 88.5% 감소했다. 4분기 소비자 사업은 3분기 보다 12억엔 감소했지만 전년도 보다 144억엔 정도 증가하여 -7억엔 을 기록했고 유기기사업은 235억엔을 기록하여 적자를 메웠지만 전년도 보다 66.9% 감소하였다.[20] 결론는 소비자 사업은 여전히 적자였지만 전년도 보다 많이 증가했고 유기기사업은 반대로 적자는 아니였지만 전년도 보다는 많이 감소했다.
2013년 7월 말에 발표한 1분기 소비자 사업 실적은 영업이익은 3900만엔의 흑자를 냈으나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25.2% 감소한 188억 9500만엔에 그쳤다.출처
2013년 9월 18일, 세가 사미가 ATLUS(정확히는 모회사인 인덱스)를 140억엔에 인수하고, 회사명을 바꾸기로 했다. 유저들 반응은 그나마 살려준 게 어디냐인듯 하다. 참고로 아틀라스 인수가 발표되었을때 세가 사미 그룹의 주식이 폭락했다.
2013년 11월 1일날 발표한 2014년 2분기 소비자 사업 실적은 영업이익 11억 1800만엔. #으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5% 증가했다. 덧붙여 실적 예상에 차이가 생겼는데 이유는 패키지 게임 소프트웨어의 판매량이 예상보다 늘어났고, 연구 개발비와 마케팅 비용을 절약해서 예상을 상회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다만 PC패키지는 예상치보다 잘 팔렸으나 다른 기종이 예상 실적을 한참 밑돌았다.
그리고 3분기 실적이 나왔다. 소비자 사업 부분 영업이익은 27억 8100만엔으로 목표치가 40억엔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상세하게 들여다보자면 패키지 게임 사업 부분은 경영 성적에서부터 패키지 게임 사업 부진이라고 기술해놓았으며, 보조 자료에 따르면 세가는 FY2014년 4분기(2014년 3월 31일)까지 1,166만장을 팔아야하는데 3분기 기준으로 631만장가량 소프트웨어를 팔았다. 이말은 남은 4분기동안 530만장을 팔아야하는 상황이다. 부분적으로 살펴보자면 PSP 타이틀은 4분기까지 20만장을 팔아야하는 상황인데 3분기에 벌써 16만장을 팔았고, PC 타이틀도 4분기까지 258만장을 팔아야하는데 227만장을 팔아 의외로 괜찮은 상황이다. 그리고 3DS 타이틀의 판매량은 4분기까지 98만장으로 예측하고 있으나 3분기까지 55만장 팔렸고 카탈로그 판매량은 4분기까지 424만장을 예측했으나 3분기 기준 281만장 팔렸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문제는 PS3,4, Wii U, PSvita 게임의 판매량으로 PS3,4 타이틀은 4분기까지 132만장 팔린다고 예측했으나 3분기 현재 고작 15만장밖에 팔리지 않았고,[21] Wii U 타이틀의 경우 95만장을 예측했으나 27만장 팔렸으며,[22] PSvita 타이틀 판매량은 4분기까지 60만장을 예측했는데 3분기 현재 고작 7만장 팔렸다. 물론 대박날만큼 재밌는게 없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뿌요 뿌요 퀘스트와 체인 크로니클, 판타시 스타 온라인에 의한 디지털 게임사업 호조와 완구 사업과 애니메이션 사업의 호조로 인해 영업적자로 뒤집히지는 않았다.[23] 한마디로 패키지 게임 사업이 부진하였으나 디지털 게임 사업과 같은 다른 사업이 생각보다 잘 나가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물론 비교했을 때 패키지 게임의 퀄리티가 망한 덕분이지만. 그 결과 2분기 보다는 16억 6300만엔 상승했고 전년도 보다는 20억엔 이상 상승하여 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판타시 스타 온라인 2와, 모바일 게임의 호조로 소비자 사업 실적이 견조한데도 불구, 소닉 로스트 월드의 희대의 판매부진에 설상가상으로 사미의 파칭코마저 검정 통과가 늦어져 발매를 3월 말까지 할 수 없어, 실적 예상을 하향 수정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세가의 소비자 사업 부분은 놀이 기구 사업과 패키지 게임 사업 부분의 인적 자원을 수익성 높은 모바일 게임 사업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으며[24] 세가의 사장이 4월 1일부터 오카무라 히데키씨로 교체된다. 기존의 사장인 츠루미 나오야는 세가 사미 홀딩스의 대표 이사 전무와 세가의 이사회 부회장으로 임명되었다.
2014년 5월 9일 4분기 실적은 영업 이익 20억엔으로 패키지 게임의 수익률 하락과 모바일 게임의 저조로 인해 3분기보다는 7억엔 하락하였다. 소비자 사업의 주요 전략은 별 다른 것 없이, 패키지 게임 사업을 축소하고 디지털 게임 사업에 초점을 둘 것이라고 하였으며, 패키지 게임의 IP의 디지털 게임화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2018년도 실적은 사미의 유기기 사업이 부진한 상태에서 패키지 부문의 수익이 예상외로 잘 나온 반면 모바일 부문의 실적이 부진하여 신작 수를 조절하고 남은 자원을 패키지에 투입하는 쪽으로 전략을 변경한다고 발표한다.
2020년 4월 1일부터 2015년 조직개편부터 쓰여온 세가 게임즈가 세가 인터랙티브와 합병하면서 세가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존속법인은 세가 게임즈이기 때문에 등기상으로는 세가 게임즈가 세가로 바뀌었다.
2021년 1월 29일, 세가 사미 홀딩스가 2021년 4월 1일부로 세가 그룹과 사미의 관리 업무를 승계하기로 했다. 이 개편과정에서 주식회사 세가를 존속법인으로, 세가그룹을 소멸법인으로 한 합병을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주식회사 세가가 중간지주회사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중간지주회사를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1년 11월 1일 마이크로소프트와 차세대 전략 타이틀의 창출과 차세대 개발 환경의 구축에 관한 전략적 제휴의 체결을 추진할 것을 알렸다.#
2021년 12월 1일 자사 소프트웨어 개발 및 디버그 작업을 담당하는 새로운 스튜디오 세가 삿포로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2022년 1월 세가는 게임 센터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것을 발표했다. 게임 센터를 관리하는 회사명은 GENDA GiGO Entertainment로 변경하고 남아있는 점포 명칭도 SEGA에서 GiGO로 변경한다고 한다.#
2023년 4월 17일에는 앵그리버드 시리즈로 유명한 모바일 게임 개발사 로비오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였다. #
||1. 개요[편집]
세가(セガ / SEGA)는 일본의 게임 제작사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는 세가 내에서 판타시 스타 온라인, 용과 같이 시리즈 등 PC 온라인, 컨슈머 게임 제작하는 팀이 소속된 회사였으나 2020년에 세가 인터랙티브를 합병하고 2021년에는 중간지주회사가 해체되어 2015년 이전에 가까운 형태로 돌아갈 예정이다. 본사는 도쿄도 시나가와구[3] 에 있으며 2010년대부터 조직개편이 잦은 편이다.
특유의 로고 폰트[4] 는 197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으며[5] , 1982년 현재의 형태로 개정됐다. 왼쪽은 일본의 세가 로고로 하늘색을 띠며 오른쪽은 북미와 유럽에서 쓰이는 로고로 진한 파란색을 띤다. 일본 세가의 영향을 받는 세가 퍼블리싱 코리아의 세가 로고도 일본판 로고를 사용한다. 로고를 나눠 쓰게 된 시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각국의 메가 CD 바이오스 동영상으로 볼 때, 미국-유럽의 SEGA 로고가 일본의 SEGA 로고 보다 어두운 색을 사용한 적이 있다. 위와 같은 색이 확정된 시점은 세가 사미 홀딩스 설립 이후로 보인다.
마스코트는 소닉 더 헤지혹이다.
2. 역사[편집]
세가의 역사는 나름대로 길다. 지금은 일본으로 본사가 옮겨갔지만 원래 법인은 미국인 세 명인 마틴 브롬리, 어빙 브롬버그, 리처드 스튜워트가 미국에서 "일본 오락 물산(주)"이라는 이름으로 1960년 6월 3일에 설립한 미국회사였다. 주 업무는 회사 이름답게 일본 오락물 수입. 해당 회사의 모기업이자 영어명은 위의 세 인물들이 1946년 9월 1일에 설립한 "Service Games Inc."였고, 여기서 "SEGA(SErvice GAmes)"가 나왔다.
한편, 데이비드 로젠이라는 사람이 설립했던 로젠 엔터프라이즈라는 미국 업체도 일본 오락물을 미국으로 수입하는 업체였는데, 일본 오락 물산이 로젠 엔터프라이즈를 1965년에 인수합병하면서 '세가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됐다.[6] 그때부터 데이비드 로젠은 경영 1선에서 활약했고, 로젠이 디자인한 잠수함 게임 《페리스코프(1968)》가 성공하자 1969년, 더 큰 회사에 인수되면서 기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1971년, 세가의 일본 지부는 최초의 일본산 핀볼 게임인 Winner를 시작으로, 연이어 명작 핀볼 게임들을 발매하면서 이름을 알렸으며,[7] 1978년, 일본에서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히트하자 세가는 1979년 미국의 비디오 게임 회사 그렘린과 제휴하여 게임 기판의 제작과 일본산 아케이드 게임의 북미 유통을 맡으면서 비디오 게임 분야에 진출하였다.
이 시기에 일본업체 에스코 무역의 사장인 나카야마 하야오는 중고 게임기를 유통하다가 미국 게임기를 불법 복제 유통하는 사업에 진출했는데, 로젠은 자사의 게임들을 불법으로 복제하여 돈을 벌고 있는 나카야마를 어떻게 족칠까 궁리하다가 나카야마 하야오를 직접 만나 그의 통찰력에 반해 나카야마를 세가로 영입하고 1979년에는 아예 에스코 무역을 합병했다.
이후 세가는 나카야마 하야오의 주도하에 여러 게임들을 발표하면서 아케이드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일본 아케이드 개발사 중에서는 당대 북미 아케이드 게임 개발사들과 엎치락뒤치락할 정도로 기술력이 꽤 뛰어나기로 이름을 높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레이싱 게임에 최초로 풀 컬러 그래픽과 스프라이트 스케일링을 적용한 《터보 (1981)》, 비디오 게임 역사상 최초로 스크롤 그래픽에 등각 시점(isometric view)과 3D 게임 플레이를 접목한 《젝손 (1982)》, 세계 최초의 레이저디스크 게임 《아스트론 벨트 (1982)》[8][9] , 높은 속도의 3D 스케일링과 디테일한 스프라이트를 동시에 선보이며 3D 비행기 시뮬레이션 그래픽의 기반을 만들어낸 《벅 로저스: 플래닛 오브 줌 (1983)》 등이 있다.
1983년에 나카야마 하야오가 세가 일본 지부의 사장으로 취임했고, 1984년 세가는 오카와 이사오의 CSK라는 일본 업체에 또 다시 인수되어, 본사를 일본으로 옮기게 되면서 24년의 미국회사의 역사를 마감하고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적을 옮기게 되었다. 로젠은 그 후에도 세가의 회장이되어 나카야마에게 경영 1선을 맡기었고, 본인은 1996년에 마침내 은퇴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세가는 스즈키 유의 지휘 아래 《행온 (1985)》, 《스페이스 해리어 (1985)》, 《아웃런 (1986)》, 《애프터 버너 2 (1987)》, 《파워 드리프트 (1988)》, 《갤럭시 포스 (1989)》, 《SEGA R-360 (1990)》 등의 체감형 아케이드 게임을, 90년대 들어서는 《버추어 레이싱 (1992)》, 《버추어 파이터 (1993)》, 《버추어 스트라이커 (1994)》, 《버추어 캅 (1995)》, 《전뇌전기 버추얼 온 (1995)》등의 3D 게임을 지속적으로 제작하며 전세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1/3을 점령하는 전성기를 맞았다. 이외에도 세가는 일본에서 인형뽑기 열풍을 일으킨 《UFO 캐쳐(1985)》시리즈와 세계 최초의 스티커 사진기 《프린트 클럽 (1995)》을 개발했으며[10] (프린트 클럽 시리즈는 아틀라스와 공동 개발.) 1990년에는 일본 최초로 대형 아케이드 센터[11] 를 설립하였다.[12][13]
세가는 1980~90년대를 주름잡는 아케이드와 체감형 머신의 강자였지만 콘솔 시장에서도 뛰어난 개발력으로 많은 명작들을 배출해 낸 제작사이기도 하다. 《알렉스 키드 시리즈》, 《북두의 권(세가 마스터 시스템)》, 《판타시 스타 시리즈》, 《베어 너클 시리즈》, 《샤이닝 시리즈》,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팬저 드래군 시리즈》, 《나이츠 시리즈》, 《사쿠라 대전 시리즈》, 《스페이스 채널 5 시리즈》, 《젯 셋 라디오》 등을 만들어낸 게임기 소프트웨어 회사로서의 세가의 역량은 대단했다.
세가의 신입 사원 교육 과정에서 배우는 게임 프로그래밍의 정석 (원서명 ゲームプログラマになる前に覚えておきたい技術 単行本 平山 尚(株式会社セガ) (著).)이라는 책은 일본의 게임 개발자들에게 필독서로 여겨질만큼 전설적인 게임개발 입문서로 평가받고 있다.
심지어 VR 기기도 닌텐도보다 먼저 만들었다!! 링크 그러나 거의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비운의 기기. 하지만 당시 세가에서 재직하던 미즈구치 테츠야(세가랠리, REZ 디렉터)는 당시 세가의 VR 기술을 경험하였다고 언급하였고, 링크 이는 PS VR의 REZ Infinite를 개발하는데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2001년 게임기 사업에서 철수한 세가는 아케이드 게임에 '넷 플레이' 개념을 도입한 서비스 ALL.Net을 처음으로 선보인 《버추어 파이터 4 (2001)》, IC카드를 사용하여 TCG를 아케이드에서 구현한 《World Club Champion Football 시리즈|WORLD CLUB Champion Football]] (2002)》, IC카드와 ALL.Net을 기반으로 아케이드용 레이싱 게임의 판도를 새롭게 짠 《이니셜 D Arcade Stage (2003)》, 전세계 희귀 곤충들의 멸종위기까지 불러올 정도로 히트를 친 남아대상의 《갑충왕자 무시킹 (2003)》, 여아들에게 멋진 옷 입는 법을 가르치는 컨셉의 건전한 여아대상의 게임인 《멋쟁이 마녀 러브 앤 베리 (2004)》등의 게임을 차례로 선보이며 1997년을 기점으로, 아케이드 시장과 콘솔 게임기 시장의 기술력 차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되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침체기에 들어갔던 아케이드 시장을 다시 살려내고 해외 게임들의 유통을 맡기 시작해서 풋볼 매니저 등의 게임을 일본에 소개하는 등 고군분투했다.
이외에도 세가는 세가 토이즈라는 장난감을 만드는 자회사를 설립하는가 하면 여아를 대상으로 한 아케이드 게임 「멋쟁이 마녀 러브 앤 베리」의 히트 이후에는 게임에서 나오는 옷과 상품을 파는 옷가게도 오픈했다. 세가가 이렇게 많은 영역에서의 사업을 한 원인은 세가라는 회사 자체가 인수합병으로 만들어진 회사이기도 하고, 분사 등을 거쳐서 기능의 최적화를 꾀하는 회사경영체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력시장인 아케이드 시장의 계속된 불황과 가정용 게임기 사업 실패로 인해 결국 2004년 사미와 합병했다.
2.1. 혼란[편집]
세가는 뛰어난 개발력으로 유명했지만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서의 경영수완이 형편없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1997년에 게이머들을 상대로 게임회사의 신뢰도 조사를 했을 때 세가는 믿을 수 있는 게임 소프트를 만들어내는 게임회사 2위와 믿을 수 없는 게임기를 만든 게임 회사 2위를 동시에 석권했다.
세가 마크 III 시절에는 '아케이드 시장의 강자인 자신들의 게임만 이식해놔도 잘 팔릴 것이다.' 라는 실로 오만한 생각으로 서드 파티 도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결과는 닌텐도의 패미컴에 크게 밀린 판매실적이었다. 그리고 휴대용 시장에서는 게임 기어가 불편한 휴대성과 전지로 닌텐도의 게임 보이에 크게 밀리는 판매실적을 기록하였다. 1990년대 초반에 미국 지사의 분전으로 세가 제네시스(일본명 메가 드라이브)가 미국에선 닌텐도의 슈퍼 NES(일본명 슈퍼 패미컴)를 누르고 1위에 올라서기도 했지만, 이후 벌어진 차세대 게임기 경쟁에서 세가 새턴은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에 완패하고 말았다.
이 패배에 대해 세가의 일본 지사와 미국 지사의 대립을 원인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미국 세가의 승승장구로 입지를 위협받게 된 일본 세가가 강한 견제에 들어가면서, 양측의 대립으로 차세대 경쟁에서 뒤쳐지게 됐다는 이야기다. 당시 미국 지사의 사장인 톰 칼린스키가 소니와의 제휴나 실리콘 그래픽스[14] 와의 사업을 물어왔으나, 회장인 나카야마가 모두 거부해버리고 독단적으로 세가 새턴 런칭을 결정한 일이 그 예시라고 한다.[15]
이 소니와의 제휴 거부는 결과적으로 대기업인 소니에 세가가 종속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며 당연한 결정으로 보는 의견이 있는 반면, 당시의 소니는 닌텐도나 세가에 비해 게임업계 파워가 한참 밀린 회사였으며, 소니가 제안한 라이센스 제안은 파격적이었기에 게임 자본과 기술력에서 앞선 세가가 소니에게 종속될 리 없었다는 의견도 있다.[16]
한편 당시 미국 세가의 마케팅 담당이었던 스티브 레이스는 일본 지사와의 대립에 질려 소니로 이직해버린 바 있다. 그리고 1995년 E3에서 299달러 연설을 하며 세가를 크게 물먹인다.
애초에 세가의 시작이 미국 회사였던 탓에 미국 지사의 사이즈가 결코 작지 않았고, 모든 것을 일본 본사를 통해 결정했던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와는 달리 미국 세가의 단독 결정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나 게임 스튜디오가 있는 등 미국 세가의 독립적인 행동이 큰 영향을 미치는 회사였다. 이러한 독립성은 미국에서의 공격적인 마케팅 등으로 제네시스가 닌텐도를 누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기도 하였으나, 미국 지사에선 슈퍼 32X를 개발하고 일본에선 완전 차세대인 새턴을 개발하는 등 제품 개발 로드맵에 대한 불협화음, 이로 인한 잦은 출장과 전화통화(+통역/번역)로 벌어진 갈등 등이 겹쳐 결국 선택과 집중에 실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당시 신참에 불과했던 플레이스테이션에 미국 왕좌의 자리를 내주게 됐다.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 시장 패배를, 일본 본사의 견제 때문만으로 몰고가는 것에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일단 미국 지사에서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32비트 시장에 진입시키고자 만든 32X는 철저히 실패했다. 그리고 세가의 근본적 실패 원인은 양질의 서드파티를 확보하지 못한 점이 크고, 이는 일본 지사 미국 지사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만 32X 역시 새턴 개발 비화와 연관지어 생각하면 MD와 새턴 간의 소프트 개발 진입장벽이 서드 파티 이탈을 불러올 것을 우려한 미국 지사가 그 간극을 메꾸려고 마지막 발버둥을 쳤던 것이라 생각하면 의도는 좋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어려운 세가 새턴 시기를 지나며 겨우 버텨냈지만, 후속작인 드림캐스트가 그간의 삽질로 인한 후폭풍 때문에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 2와 제대로 경쟁을 하지도 못하고 3년만에 망해버렸다. "드림캐스트가 몰락했을 당시 세가는 만약 다른 게임 회사였다면 아마 3번은 망했을 수준."이라고 세가의 소닉팀 나카 유지가 말했을 정도로 세가의 삽질은 심각 그 자체였다.
그래도 이런 삽질 조차도 세가의 엉뚱함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존재하고, 그야말로 세가니까 나올 수 있는 그때까지의 세가의 넋을 담은 복합 SRPG 게임인 세가가가같은 게임도 나오게 되었다. 거의 모든 세가의 대표 캐릭터가 등장하며, 타 하드웨어 메이커 및 캐릭터를 패러디한 장면은 기본에다, 오타쿠 네타(모에모에라든가...)도 다소 함유된 편이라서 팬들은 반 장난격으로 세가에서 직접 만든 세가 동인게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 세가가가를 제작한 개발진은 크레이지 택시 시리즈로 유명한 히트메이커이고, 게임의 디렉터는 오카노 테츠다. 처음에는 한정 물량만 나왔으나, 세가 팬들의 성원 끝에 통상판으로 나온 게임.
세가는 자사 게임기 자체로도 별 이상한 짓을 다 했다. 메가 드라이브만 해도 세가 라이브러리, 메가 CD, IBM과 합작해서 만들어낸 16비트 개인용 컴퓨터 테라 드라이브,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인 메가 LD, 32X 등으로 뻗어나갔고, 휴대용 게임기로 발매한 게임 기어에 백라이트와 TV 재생 기능을 넣어서 6개의 건전지를 사용하여 휴대용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큰 크기와 3시간의 플레이 시간이라는 삽질을 하였다.
이러한 세가의 삽질의 가장 으뜸은 세가 새턴 시절 포토 CD, 비디오 CD 플레이어, 모뎀을 통하는 인터넷 접속 모듈, 화상전화, 자동차 탑재(이건 가격이 15만엔이나 되었다.), 워드프로세서, 프린터, 키보드, 디스크 드라이버, 모뎀을 포함한 주식투자용 콘솔, 디지털 카메라 기능을 집어넣은 새턴을 각각 발매한 것.
자사의 게임기를 일종의 고사양 게이밍 컴퓨터로 만들려고 한 것인데, 당시에 상당히 무모한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를 나중에 소니에서 플레이스테이션 3으로 그대로 따라했다가 Wii와 엑스박스 360에서 밀려나간 것을 고려하면... 또한 메가 드라이브의 주변기기인 메가 모뎀의 경우, 전화선으로 게임의 콘텐츠를 새롭게 추가한다는 시스템이었는데 이것이 10년 이상이 지나서 생긴 DLC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보면 세가는 정말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대를 앞서나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제대로 접목시킬 노하우도 없었을 뿐더러, 제대로 된 계획도 없던 게 문제. 그냥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면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겠지?" 라는 위험한 발상을 한 것이다. 대부분 이러한 주요 역할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쓴 하드웨어들은 게임뿐만 아니라 전자 제품도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이러한 백화점식 구성으로 대중을 끌어오겠다는 기획은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발상이다. 특히나 게임기같이 생활 필수품이 아닌 고가의 제품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발상은 기술력의 발달로 '스마트폰'이라는 괴물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로 실현되긴 했다.
비단 하드웨어 사업에서만 말고 소프트 관리 부분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삽질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자사의 소프트 자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개발 데이터들을 남겨놓지 않고 마구 폐기한 것인데, 이는 기념비적인 작품인 버추어 파이터 2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작품이 후에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었을 때 세가 본사의 이식작임에도 어딘가 뒤떨어지고 거슬리는 이식도에 많은 비판이 있었고, 후에 회사측에서 게임의 개발 데이터를 남겨놓지 않고 모두 폐기해서 이식이 불가능하고 에뮬레이터 방식으로 옮긴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오래된 게임의 데이터 유실이야 사고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지만 저만한 중요 작품의 데이터를 그것도 실수도 아니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폐기해 버린 것은 소프트 회사로서는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
자사의 마스코트인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또한 개발 데이터들의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나카 유지가 코딩하던 물리 엔진이 소실되어버렸고, 소닉 1과 소닉 2를 메가 드라이브 에뮬레이팅으로 이식해버리는 등, 리마스터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쪽은 다행스럽게도 팬메이드 엔진인 "레트로 엔진"과 개발자 "크리스천 화이트헤드"가 혜성같이 등장하여 소닉 CD의 리마스터 출시를 시작으로 간신히 해결되었다.[시키지도] 크리스천은 나중에 소닉 매니아 개발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후에 엑스박스 360으로 전뇌전기 버추얼 온 포스를 이식했을 때도 눈물겨운 후기가 있는데, 게임 데이터는 당연히(!) 모두 폐기되었었고, 아케이드에서 흥행이 실패한 게임이다 보니 남아 있는 게임장도 손에 꼽을 정도라 겨우 지방의 한 곳에서 가동하고 있는 곳을 찾아내 기기를 빌려 본사로 가져와 모니터에 자를 대고 HP 바 소모량 등을 측정해 공격 대미지 데이터 같은 것을 추정해 이식했다.
2.2. 사미와 합병 이후[편집]
사미와 합병 이후로는 본업인 게임 제작과 퍼블리싱에만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모기업인 세가 사미 홀딩스가 생각보다 돈이 많기에 별 걱정은 없는 듯. 2013년 3월기 기준으로 세가 사미 홀딩스의 현금 및 예금은 1104억엔이며, 순자산은 3450억엔이다.
다만, 여기서 함정에 빠지면 안되는것이 이것은 연결실적이다. 즉, 세가뿐만 아니라 사미, 타이요일렉, 로데오, 긴자 등의 파칭코 회사도 전부 포함한 실적이라는것이다. 세가 게임즈의 개별 실적에서 발췌한 2013년 3월기 전자 공고에 따르면 현금 및 예금은 고작 220억엔에 불과하며 순자산은 고작 660억엔밖에 되지 않는다.
세가가 사미에 인수된 직후인 2000년대 중반에는 PS2로 세가 에이지스[17] 시리즈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자사 게임 리메이크작들을 프로듀싱해서[18] 염가에 발매한적이 있는데, 보통 2500엔대로 일반적인 게임의 1/2정도 가격으로 발매했다. 염가형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대이하의 퀄리티 때문에 좋은소리를 듣지는 못했다.(예외적으로 할만한 세가 에이지스 게임도 존재하긴 한다.
2012년 5월에 발표한 소비자 사업 부분(게임 개발, 유통.) 경영 성적이 말그대로 충격적인데, 구조조정으로 인한 특별 손실을 제외한 영업손실이 약 88억엔이고 특별 손실을 포함하면 151억 8200만엔의 영업손실을 냈다. 사실 2분기까지는 세가의 예상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세가는 2분기 누계 기간 동안 55억엔 적자를 예측하였고 실제로 2분기 누계 기간 동안에는 60억엔의 영업 손실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세가는 하반기에 주요 타이틀[19] 을 발매하여 적자를 흑자로 뒤집을 것이라고 기대를 했으나, 소닉 타이틀이 2개가 나오는 3분기에서 5억엔밖에 적자폭을 축소시키지 못했고, 4분기에 주요 타이틀이 풋볼 매니저밖에 없던 세가는 결국 적자폭을 축소시키지 못하고 그 결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400명이 해고되었다. 단 파칭코쪽은 710억엔의 영업이익을 보여주며 소비자 사업으로 인한 손실을 유기기사업으로 메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주요 사업의 방향을 오리지널 게임 제작에서 다른 제작사의 게임을 유통하는 쪽으로 돌린 모양이다. 2012년 세가의 미국 지부는 앞으로 오리지널 게임은 발매하지 않고 인기있는 후속작 게임 위주로만 게임을 제작할 것이며 게임 유통 비중을 늘리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다만 이런 회사 방침이 세가 미국 지부에만 적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세가 전체에 적용되는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FY2013년 1분기 소비자 사업은 -15억엔을 기록하여 전년도 4분기 보다 136억엔이 상승했고 전년도 보다 23억엔 증가했다. 2분기 소비자 사업은 -7억엔을 기록하여 1분기 보다 8억엔이 상승했고 전년도 보다 53억엔 상승했다. 3분기 소비자 사업은 2분기보다 12억엔 상승했고 보다 전년도 보다 60억엔 정도 늘어나면서 증가하여 5억엔을 기록했지만 반대로 유기기사업은 77억엔으로 전년도 보다 88.5% 감소했다. 4분기 소비자 사업은 3분기 보다 12억엔 감소했지만 전년도 보다 144억엔 정도 증가하여 -7억엔 을 기록했고 유기기사업은 235억엔을 기록하여 적자를 메웠지만 전년도 보다 66.9% 감소하였다.[20] 결론는 소비자 사업은 여전히 적자였지만 전년도 보다 많이 증가했고 유기기사업은 반대로 적자는 아니였지만 전년도 보다는 많이 감소했다.
2013년 7월 말에 발표한 1분기 소비자 사업 실적은 영업이익은 3900만엔의 흑자를 냈으나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25.2% 감소한 188억 9500만엔에 그쳤다.출처
2013년 9월 18일, 세가 사미가 ATLUS(정확히는 모회사인 인덱스)를 140억엔에 인수하고, 회사명을 바꾸기로 했다. 유저들 반응은 그나마 살려준 게 어디냐인듯 하다. 참고로 아틀라스 인수가 발표되었을때 세가 사미 그룹의 주식이 폭락했다.
2013년 11월 1일날 발표한 2014년 2분기 소비자 사업 실적은 영업이익 11억 1800만엔. #으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5% 증가했다. 덧붙여 실적 예상에 차이가 생겼는데 이유는 패키지 게임 소프트웨어의 판매량이 예상보다 늘어났고, 연구 개발비와 마케팅 비용을 절약해서 예상을 상회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다만 PC패키지는 예상치보다 잘 팔렸으나 다른 기종이 예상 실적을 한참 밑돌았다.
그리고 3분기 실적이 나왔다. 소비자 사업 부분 영업이익은 27억 8100만엔으로 목표치가 40억엔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상세하게 들여다보자면 패키지 게임 사업 부분은 경영 성적에서부터 패키지 게임 사업 부진이라고 기술해놓았으며, 보조 자료에 따르면 세가는 FY2014년 4분기(2014년 3월 31일)까지 1,166만장을 팔아야하는데 3분기 기준으로 631만장가량 소프트웨어를 팔았다. 이말은 남은 4분기동안 530만장을 팔아야하는 상황이다. 부분적으로 살펴보자면 PSP 타이틀은 4분기까지 20만장을 팔아야하는 상황인데 3분기에 벌써 16만장을 팔았고, PC 타이틀도 4분기까지 258만장을 팔아야하는데 227만장을 팔아 의외로 괜찮은 상황이다. 그리고 3DS 타이틀의 판매량은 4분기까지 98만장으로 예측하고 있으나 3분기까지 55만장 팔렸고 카탈로그 판매량은 4분기까지 424만장을 예측했으나 3분기 기준 281만장 팔렸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문제는 PS3,4, Wii U, PSvita 게임의 판매량으로 PS3,4 타이틀은 4분기까지 132만장 팔린다고 예측했으나 3분기 현재 고작 15만장밖에 팔리지 않았고,[21] Wii U 타이틀의 경우 95만장을 예측했으나 27만장 팔렸으며,[22] PSvita 타이틀 판매량은 4분기까지 60만장을 예측했는데 3분기 현재 고작 7만장 팔렸다. 물론 대박날만큼 재밌는게 없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뿌요 뿌요 퀘스트와 체인 크로니클, 판타시 스타 온라인에 의한 디지털 게임사업 호조와 완구 사업과 애니메이션 사업의 호조로 인해 영업적자로 뒤집히지는 않았다.[23] 한마디로 패키지 게임 사업이 부진하였으나 디지털 게임 사업과 같은 다른 사업이 생각보다 잘 나가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물론 비교했을 때 패키지 게임의 퀄리티가 망한 덕분이지만. 그 결과 2분기 보다는 16억 6300만엔 상승했고 전년도 보다는 20억엔 이상 상승하여 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판타시 스타 온라인 2와, 모바일 게임의 호조로 소비자 사업 실적이 견조한데도 불구, 소닉 로스트 월드의 희대의 판매부진에 설상가상으로 사미의 파칭코마저 검정 통과가 늦어져 발매를 3월 말까지 할 수 없어, 실적 예상을 하향 수정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세가의 소비자 사업 부분은 놀이 기구 사업과 패키지 게임 사업 부분의 인적 자원을 수익성 높은 모바일 게임 사업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으며[24] 세가의 사장이 4월 1일부터 오카무라 히데키씨로 교체된다. 기존의 사장인 츠루미 나오야는 세가 사미 홀딩스의 대표 이사 전무와 세가의 이사회 부회장으로 임명되었다.
2014년 5월 9일 4분기 실적은 영업 이익 20억엔으로 패키지 게임의 수익률 하락과 모바일 게임의 저조로 인해 3분기보다는 7억엔 하락하였다. 소비자 사업의 주요 전략은 별 다른 것 없이, 패키지 게임 사업을 축소하고 디지털 게임 사업에 초점을 둘 것이라고 하였으며, 패키지 게임의 IP의 디지털 게임화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2018년도 실적은 사미의 유기기 사업이 부진한 상태에서 패키지 부문의 수익이 예상외로 잘 나온 반면 모바일 부문의 실적이 부진하여 신작 수를 조절하고 남은 자원을 패키지에 투입하는 쪽으로 전략을 변경한다고 발표한다.
2020년 4월 1일부터 2015년 조직개편부터 쓰여온 세가 게임즈가 세가 인터랙티브와 합병하면서 세가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존속법인은 세가 게임즈이기 때문에 등기상으로는 세가 게임즈가 세가로 바뀌었다.
2021년 1월 29일, 세가 사미 홀딩스가 2021년 4월 1일부로 세가 그룹과 사미의 관리 업무를 승계하기로 했다. 이 개편과정에서 주식회사 세가를 존속법인으로, 세가그룹을 소멸법인으로 한 합병을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주식회사 세가가 중간지주회사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중간지주회사를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1년 11월 1일 마이크로소프트와 차세대 전략 타이틀의 창출과 차세대 개발 환경의 구축에 관한 전략적 제휴의 체결을 추진할 것을 알렸다.#
2021년 12월 1일 자사 소프트웨어 개발 및 디버그 작업을 담당하는 새로운 스튜디오 세가 삿포로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2022년 1월 세가는 게임 센터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것을 발표했다. 게임 센터를 관리하는 회사명은 GENDA GiGO Entertainment로 변경하고 남아있는 점포 명칭도 SEGA에서 GiGO로 변경한다고 한다.#
2023년 4월 17일에는 앵그리버드 시리즈로 유명한 모바일 게임 개발사 로비오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였다. #
3. 콘솔 게임기 목록[편집]
3.1. 가정용[편집]
3.2. 휴대용[편집]
4. 스마트폰 게임[편집]
자세한 내용은 세가/스마트폰 게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