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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버니의 앨리스 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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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4남인 올버니 공작 레오폴드 왕자와 헬레네 공녀의 장녀이다. 카를 에두아르트의 누나이기도 하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주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으며, 역대 영국 왕자·공주들 중 가장 장수했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1883년 2월 25일 윈저 성에서 올버니 공작 레오폴드 왕자와 올버니 공작부인 헬레나의 장녀로 출생했다. 1883년 3월 26일 윈저 성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이름은 둘째 고모인 헤센 대공비 앨리스에게서 따와 '앨리스'로 지어졌다. 1년 뒤인 1884년 7월 19일에는 동생 찰스 에드워드가 태어나서 누나가 되었다.
아버지 올버니 공작 레오폴드 왕자는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물려받은 혈우병 환자였는데, 앨리스 또한 레오폴드 왕자로부터 이 유전자를 물려받아 혈우병 보인자였다. 레오폴드 왕자는 혈우병으로 인해 1884년 3월 28일, 30세의 젊은 나이로 나이로 요절했다. 이 때 앨리스는 갓 돌이 지났었고, 동생 찰스 에드워드는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2.2. 결혼과 가정[편집]
1904년 2월 10일, 20세의 앨리스는 7촌인 테크의 알렉산더 공자[1] 와 윈저 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 결혼했다. 알렉산더는 앨리스의 사촌오빠 웨일스 공 조지의 아내 테크의 메리의 남동생이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2남 1녀(메이, 루퍼트, 모리스)가 태어났다. 하지만 혈우병 보인자였던 앨리스의 영향으로 장성하여 자손을 남긴 것은 외동딸 메이 뿐이었다.[2]
남편 애슬론 백작 알렉산더가 남아프리카 연방의 총독으로 임명되자, 앨리스 또한 남편을 따라 남아프리카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이후 남편이 캐나다의 총독이 되어 캐나다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전쟁을 피해 많은 왕족들이 캐나다로 찾아왔는데 그 중에는 올라프 왕세자와 메르타 왕세자비, 샤를로트 여대공, 페타르 2세, 요르요스 2세, 지타 황후, 빌헬미나 여왕[3] , 그리고 율리아나 공주 등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군은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앨리스의 유일한 남동생 카를 에두아르트를 체포했다. 앨리스는 남동생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함께 독일로 건너가 미군들에게 석방을 요청했으나 그들은 카를 에두아르트에게 5천 마르크의 벌금형을 내렸다. 이 일로 인해 카를은 거의 파산했다.
2.3. 말년과 사망[편집]
남편 알렉산더 케임브리지가 1957년 런던의 켄싱턴 궁전에서 사망한 이후, 앨리스는 줄곧 그곳에서 거주하다 1981년 1월 3일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무려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태어나서 에드워드 7세, 조지 5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와 찰스 왕세자까지 보고 사망한 것.
장례식은 윈저 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 열렸으며 많은 영국 왕족들이 참여했다. 유해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아들이 묻혀있는 프로그모어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