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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페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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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No.5No.7No.28No.34
브롱코 나구르스키조지 매카피조지 할라스윌리 갈리모어월터 페이튼
No.40No.41No.42No.51No.56
게일 세이어스브라이언 피콜로시드 루크만딕 벗커스빌 휴이트
No.61No.66No.77No.89
빌 조지클라이드 터너레드 그랜지마이크 딧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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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미국 스포츠 사이트 the Athletic에서 NFL 역사상 최고의 선수 100명을 발표했다.
1위2위3위4위5위
톰 브래디짐 브라운제리 라이스로렌스 테일러레지 화이트
6위7위8위9위10위
조 몬태나페이튼 매닝월터 페이튼조니 유나이타스딕 버커스
11위12위13위14위15위
오토 그레이엄앤서니 무뇨즈돈 허슨조 그린존 엘웨이
16위17위18위19위20위
디콘 존스레이 루이스댄 마리노로니 로트브루스 스미스
21위22위23위24위25위
애런 로저스브렛 파브새미 보애런 도널드존 해나
26위27위28위29위30위
로드 우드슨배리 샌더스디온 샌더스에밋 스미스멜린 올슨
31위32위33위34위35위
밥 릴리앨런 페이지브롱코 나구르스키지노 마체티J.J. 왓
36위37위38위39위40위
포레스트 그렉잭 램버트랜디 모스에드 리드에릭 디커슨
41위42위43위44위45위
O. J. 심슨짐 파커드루 브리스브루스 매튜스래리 앨런
46위47위48위49위50위
토니 곤잘레스랜디 화이트시드 럭맨스티브 영딕 레인
51위52위53위54위55위
르데니언 톰린슨잭 햄게일 세이어스척 베드나릭랜스 알워스
56위57위58위59위60위
롭 그론카우스키마이크 웹스터허브 애덜리주니어 슈조너선 오그덴
61위62위63위64위65위
바트 스타레이 니츠케레이먼드 베리월터 존스조 슈미트
66위67위68위69위70위
얼 캠벨진 업쇼찰스 우드슨테리 브래드쇼마셜 포크
71위72위73위74위75위
멜 블런트아드리안 피터슨매리언 모틀리바비 벨폴 워필드
76위77위78위79위80위
아트 셸테드 헨드릭스로저 스타우벅마이크 헤인스윌리 레니어
81위82위83위84위85위
존 맥키켈렌 윈슬로레오 노멜리니멜 하인불독 터너
86위87위88위89위90위
벅 뷰캐넌챔프 베일리대럴 그린바비 레인윌리 브라운
91위92위93위94위95위
윌리 데이비스레니 무어마이크 싱글티어리엘로이 허시프랜 타킨턴
96위97위98위99위100위
마이크 딧카짐 오토스티브 밴뷰런데르몬티 도슨데릭 브룩스
출처



파일:RIP payton.jpg
파일:시카고 베어스 로고.png
시카고 베어스 No.34
월터 제리 페이튼
Walter Jerry Payton
출생1954년 7월 25일
미시시피 주 컬럼비아
사망1999년 11월 1일 (향년 45세)
국적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 학교잭슨 주립대학교
신체178cm | 91kg
포지션러닝백
프로 입단1975년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
시카고 베어스 지명
소속 구단시카고 베어스 (1975~1987)


1. 개요
2. 프로 전 경력
3. NFL
4. 은퇴 후
5. 여담



1. 개요[편집]


전직 미식축구 선수, 포지션은 러닝백.

오로지 시카고 베어스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원 클럽 플레이어이다.

2. 프로 전 경력[편집]


보이스카우트, 리틀리그 야구, 동네 교회에서 활동하고 고교 입학 후 학교 고적대에서 드럼을 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1학년(Junior)때 미식축구를 시작했다. 비록 178cm의 작은 체구지만 스피드와 체력이 월등하여 기량이 급성장했다. 그러나 SEC 학교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하고[1] 전통적인 흑인 학교였던 Jackson State Univ.에 입학해 신문방송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칼리지 풋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3. NFL[편집]


1975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시카고 베어스에 지명됐다.[2]

수상 경력을 일일이 열거하기 많을 만큼 맹활약했고 1984년 9월 19일에 당시 통산 최다 러싱야드 기록(짐 브라운의 12,312야드)을 경신했다. 1987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1993년 프로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당연히 그의 등번호인 34번은 영구결번됐다.

4. 은퇴 후[편집]


은퇴 이후 1995년 NFL에서 리그 확장을 할때 본인이 세인트루이스에 신생팀을 세우려 했지만 잭슨빌샬럿에 밀려 창단에 실패했으며[3] 그리고 4년 뒤 1999년 2월 원발 경화성 담관염의 증세로 담관암 투병을 시작했으며 1999년 4월 12일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커브스의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1999년 11월 1일 월터의 사망을 아들인 자렛 페이튼이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1999년 11월 5일 일리노이 주 배링턴의 한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렀으며 감독이었던 마이크 딧카와 존 매든 등이 참석했다. 그 다음날 그가 항상 뛰어다녔던 솔저 필드에서 미망인 코니 페이튼, 딸 브리트니 페이튼 등 가족들과 2만명의 팬이 운집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가졌다. 베어스 팬들을 그의 죽음을 슬퍼했으며, 그의 동상을 솔저 필드 앞에 제막하여 지금도 그를 추모하고 있다.

5. 여담[편집]


하지만 경기에서의 압도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인성이 대단히 훌륭했던 선수이며, 그 덕분에 별명이 다름아닌 Sweetness였다.[4]

그래서 그의 매너를 따서 만든 상이 바로 월터 페이튼 상(Walter Payton Award)이다.[5]

삶의 좌우명은 "Never Die Easy"였으며 그의 자서전 제목도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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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주 적은 수의 흑인 선수만 받아들이던 때였다.[2] 이 해 드래프트는 이틀에 걸쳐 17라운드까지 진행됐으며 부머 웰즈뉴욕 제츠에 16라운드에 지명됐으나 미식축구 커리어를 접고 야구 쪽으로 발길을 돌려 일본프로야구에서 강타자로 활약했다.[3] 만약 창단에 성공했으면 NFL 선수 최초의 NFL 구단주가 될 뻔했다. 그리고 그 해 램스가 세인트루이스로 연고지를 이동하면서 세인트루이스 램스가 된다.[4] 그의 인성에서 이 별명이 유래됐다고 잘 알려져 있으나 그의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냉소적으로 부르는 뜻이라는 말도 있다.[5] 주요 수상자로 일라이 매닝, 래리 피츠제럴드, JJ 왓등이 있다.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는 비슷한 상으로 로베르토 클레멘테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