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흐시드 왕조

덤프버전 :



알 이흐시디윤
아랍어 : الإخشيديون
파일:Ikhshidid_Dynasty_935_-_969_(AD).png
이흐시드 왕조의 강역
존속기간935년~969년
지위아바스 왕조의 봉신국
왕조이흐시드 왕조
수도푸스타트
공용어튀르크어(군사 언어)
아랍어
콥트어
민족구성아랍인
콥트인
튀르크
정부형태군주제(아미르)
면적2,000,000km2(추정치)
국교이슬람교(수니파)
통화디나르
이전국가아바스 왕조
이후국가파티마 왕조
현재 국가
파일:이집트 국기.svg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


파일:리비아 국기.svg


파일:에리트레아 국기.svg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파일:시리아 국기.svg


파일:이라크 국기.svg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파일:요르단 국기.svg


파일:레바논 국기.svg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1. 개요
2. 역사
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935부터 969년까지 존속하며,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치한 중앙아시아 페르가나 출신의 튀르크계 수니파 이슬람 왕조.


2. 역사[편집]


이흐시드 왕가의 중시조인 투그즈 이븐 주프는 페르가나에서 온 튀르크인이었다. 그는 같은 페르가나 출신의 튀르크계 툴룬 왕조아미르에 의해 다마스쿠스 총독으로 임명되어 902년 쉬아 계열 이스마일파 카르마트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이후 아바스 왕조가 툴룬 왕조에 대한 재정복을 감행하자 투그즈는 칼리파군을 도와 이집트로 진격했고, 그 대가로 시리아를 할양받았다. 30여년 후, 그의 아들인 무함마드 이븐 투그즈는 아바스 칼리파에 의해 이집트 총독으로 임명되었다.(935년) 당시 이집트는 쉬아 계열 이스마일파(7이맘파) 국가인 파티마 왕조의 3차에 걸친 침공으로 피폐해져 있었는데 무함마드의 통치하에서 안정을 되찾았고, 이에 944년 아바스 왕조 제20대 칼리파 알 라디로부터 페르시아의 귀족 칭호인 알-이흐시드(al-Ikhshīd)를 하사받아 다른 총독들보다 격이 높음을 과시했다.

946년 무함마드가 다마스쿠스에서 승하한 이후에도 이흐시드 왕조는 아라비아 반도 서부 홍해 연안에 위치한 히자즈의 총독위를 획득하는 등, 잘 나가는 듯 했으나 서쪽 이프리키야의 파티마 왕조와 남쪽 누비아의 침입에 시달려야 했다.

946~968년에는 재상인 아불 미스크 카푸르가 실권을 장악했고(966~968년에는 제4대 왕으로 즉위.) 투그즈의 아들들(제2대 왕 아불 카심 우누주르 이븐 알 이흐시드, 제3대 왕 아불 하산 알리 이븐 알 이흐시드)은 명목상의 통치자로 전락했다. 에티오피아나 수단의 노예 출신으로 추정되는 카푸르는 파티마 왕조의 침입을 잠시나마 잘 막아냈다. 그는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여 짧은 기간이지만 자신의 궁에 저명한 시인 알 무타나비를 거주시키고, 이를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968년 카푸르 사후, 즉위한 불과 12세의 어린 왕 아불 파와리스 아흐마드 이븐 알리 이븐 알 이흐시드(투그즈의 손자, 제3대 왕의 아들)는 파티마 왕조의 침입을 막아낼 역량이 부족했고, 969년 서쪽에서 쳐들어온 파티마 왕조의 대장군 자우하르에게 이집트가 정복되었다.(마지막 왕은 987년에 사망했다.) 시리아에 남아있던 왕족(삼촌) 하산 역시 970년 파티마군에게 사로잡히면서 멸망했다. 어쨌든 9세기 이후 이집트는 극히 짧은 공백기를 제외하면 다시는 바그다드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3. 둘러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