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콘스탄티노스 1세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그리스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국왕.
2. 생애[편집]
1868년 요르요스 1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날 왕궁 앞으로 군중들이 몰려와 왕자의 이름을 "콘스탄티노스"로 하라고 외쳤는데 왕자의 외할아버지 러시아의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당시 인기있는 전설 중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다시 점령하는 자는 동로마 제국 최후의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이름을 이은 콘스탄티노스 12세'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사교육을 받고 그리스-튀르크 전쟁(1897년)과 1912~13년의 발칸 전쟁 총사령관으로 활약하였다. 1896 아테네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13년 3월 18일 부왕 요르요스 1세가 암살당하자 즉위하였다. 그러나 친독적 인물이었던 콘스탄티노스 1세는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총리대신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와 엄청난 갈등을 빚은 끝에 1917년 차남 알렉산드로스[2] 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하였다.
그러다가 알렉산드로스가 급서하고, 베니젤로스가 총선에서 패배하자 反베니젤로스파가 주도한 국민투표에서 99%의 지지를 받아 1920년 12월 19일 재즉위하였다. 그러나 그리스가 튀르키예 독립전쟁에서 패하자 지지도가 바닥을 찍게 되었고, 결국 패전 책임을 지고 장남 요르요스 2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4개월 뒤 망명지인 이탈리아 왕국 팔레르모에서 서거한다.
조지 5세, 니콜라이 2세, 노르웨이의 모드 왕비의 외사촌이자 크리스티안 10세와 호콘 7세의 친사촌이며, 엘리자베스 2세 전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의 첫째 큰아버지이다.
3. 가족[편집]
[1]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ντ(nt)가 붙어 있을 경우 τ에서 d 발음이 난다.[2] 협상국에 참전을 주장했던 베니젤로스의 압력으로 양위한 건데, 장남인 요르요스 2세가 독일 제국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도 분위기상 주기가 어려웠다.[3] 독일 제국의 프리드리히 3세와 빅토리아 황후의 3녀이자 빌헬름 2세의 여동생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다.[4] 페르디난드 1세의 장녀이다.[5] 유고슬라비아의 왕비 알렉산드라[6] 미하이 1세[7] 빌헬름 2세의 외손녀이다.[8] 스페인의 왕비 소피아, 콘스탄티노스 2세 등[9] 아마데오 1세의 손자로 사보이아 왕가의 방계인 사보이아-아오스타 가문 출신이다.[10] 영국의 젠트리 가문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