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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셜 스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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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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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1. 개요[편집]


영국의 보호국으로 지금의 아랍에미리트에 위치해 있었다.


2. 역사[편집]


트루셜 해안 지역을 영국이 평화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전제로 보호국을 삼는 조약이 1820년에 체결되어 성립되었다.

트루셜 해안은 해적 해안 또는 오만 해안 또는 휴전 오만이라고도 불렸다.

당시 오만 제국의 수도는 아프리카 잔지바르에 있었고, 각 지역은 분열된 정체성을 갖고있었다. 따라서 당시 영국은 효과적으로 해당 지역의 부족들과 협상하여 보호국을 삼을 수 있었다.

트루셜 스테이트의 공식적인 계승국은 아랍에미리트로 인정된다. 또한 아랍에미리트 역사의 토대가 되는 첫 사건을 1820년 조약으로 꼽는다.

트루셜 스테이트는 영국의 보호국이기는 했으나, 식민지와는 달랐다. 영국은 해당 지역을 전략적 거점으로만 삼았을 뿐 통치에는 직접적인 간섭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루셜 스테이트의 가문들을 위해서 영국식 통치 제도를 가르쳤으며, 부족한 인구와 경제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타국에서 사람들을 모집하여 국가의 기틀을 스스로 만들기를 독려하였다.

지금도 아랍에미리트를 이끄는 '알 나흐얀' 가문은 트루셜 스테이트 때 부터 영국과의 협력 아래 성장하게 되었다.

1853년에는 외부의 모든 공격을 방어하는 권한을 영국에게 위임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1891년에는 카와심 가문의 공격을 영국이 막아냈다.

1952년에는 사우디가 영토 일부를 소유권을 주장하여 뺐었으나, 1955년에 영국이 땅을 되찾는다.

카와심 가문은 본래 트루셜 해안 일대에 실권자 역할을 했었지만, 1819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다. 따라서 알 나흐얀 가문을 비롯하여 트루셜 스테이트 일대의 다수의 부족은 마치 영국을 해방자처럼 대하는 계기가 여러 번 생기게 된다.

수도는 샤르자, 지금은 샤르자 토후국의 수도이다.

1958년에 아부다비에 석유가 발견되고, 1962년에는 생산과 수출이 가능해진다.

1971년 12월 1일 영국의 보호국 조치가 해제되었고, 1972년 12월 2일에 아랍에미리트로 계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