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B-36 (문단 편집) === 개발배경 ===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 폭격기가 영국 상공을 폭격하는 [[영국 본토 항공전]]이 개시되자, 이런 현상을 지켜보던 미 육군항공대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만일 영국이 패배하고 대부분의 서유럽이 독일의 손에 들어간다면 미국과 독일이 전쟁상태에 돌입할 경우, 중간 기착지없이 [[대서양]]을 그대로 횡단하여 독일과 전쟁을 수행해야 할 운명이 될 것을 걱정했다.[* 당장 세계지도를 보면 미국은 위로는 최우선 동맹국인 캐나다, 아래로는 거의 미국에 종속되다시피 한 멕시코 사이에 끼어 있고, 좌우로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끼고 있다. 따라서 예나 지금이나 천혜의 장벽으로 보호받으면서 본토 방위를 신경 쓸 필요 없이 전 군사력을 해외에 투사하는 것이 미국의 국방 정책의 기본이다. 그런데 영국이 사라지면 유럽 방면에서 전력을 투사할 교두보가 사라지는 셈이니.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미국의 상륙함대는 서유럽 상륙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추축국]]들은 유럽 대부분을 장악해버렸고 영국은 물론, 북해지역도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해상을 봉쇄한 [[U보트]]는 영국의 식량과 산업망을 서서히 고갈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태평양]]에서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이라 미국과 대립하면서 중국, 영국령 말레이, 네덜란드령 동인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노리면서 전쟁의 위험이 크게 증대되었다. 이러한 불안한 국제정세에 충격을 받은 미 육군항공대 수뇌부는 북미대륙에서 유럽까지 논스톱으로 날아가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폭격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 장군과 육군항공대 지휘관들과의 회의끝에 대륙간 중폭격기 개발을 지시했다. 그리하여 1941년 4월 11일, 미 육군항공대는 항공기 제작사들에게 비밀유지를 요구하며 미국의 항공기지에서 발진하여 유럽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폭격기 개발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육군항공대가 제안한 요구는 25000피트 상공에서 최고 속도 450마일(724km/h)을, 시간당 순항 속도 275마일(445km/h)에 45,000피트(14000m)의 실용상승한도를 요구했었는데, 25,000피트 상공에서 12,000마일의 항속거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이었다. 당시 B-17E 폭격기가 25,000피트에서 317마일의 최고 속도를 냈으며 실용상승고도가 37,000피트이고 최고 항속거리가 2,000마일인 것을 비교하면 육군항공대의 요구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요구는 1941년 8월, 5,000피트(1524m)의 활주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할 것과 240에서 300마일의 순항속도와 40,000피트(12000m)의 실용상승한도와 10,000마일(16000km)의 최고 항속거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 중에서 특히 10,000파운드(4500kg)의 폭장능력과 10,000(16000km)마일의 최고항속거리는 매우 중요하게 요구되었다. 덕분에 이 계획에 입각해서 만들어지는 폭격기를 텐(ten)-텐 폭격기[* 10,000파운드의 폭장량, 10,000마일의 최고항속거리]라고 별명이 붙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