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 (문단 편집) == 국호 == ||<-2> '''언어별 명칭''' || ||[[한국어]]||고려(高麗)[* 고려와 고구려는 사실 같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이전에 고구려가 고려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왕건의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그냥 고구려로 부르는 것. 실제로 중국 사서에서는 [[장수왕]] 이후 고구려를 고려로 표기했다. 조선 전기의 [[한글]] 문헌에서는 '고려'로 발음이 언급되는 바, 적어도 고려 후기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고려라고 불렀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는 훗날 서양에는 Corea 내지는 Korea로 알려지게 된다.], 고려 왕조(高麗王朝) || ||[[중국어]]||高麗[* 현대의 발음은 '가오리'지만 당송대의 [[중고한어]] 발음으로는 까우례(kɑu liᴇ) 또는 까우레이(kɑu lei)다.]/高麗王朝(정체), 高丽 /王氏高丽 (간체) || ||[[일본어]]||[ruby(高麗, ruby=こうらい)](고라이), [ruby(高麗, ruby=こま)](고마)[* [[고구려]] 역시 고마라고 읽는 경우가 있다.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고마 신사', [[코마가와역]] 등.] || ||[[베트남어]]||Cao Ly|| ||[[몽골어]]||Солонгос[* Solongos, 중세 [[몽골어]]로는 ᠰᠣᠯᠤᠩᠭᠤᠰ, ''Solungɣus''. 현대 [[몽골인]]들은 [[한국]]을 설렁거스(Солонгос)라고 부른다. Solongo는 몽골어로 '[[무지개]]'라는 뜻이 있으며, Solon (누런족제비)+go(~를 가진 사람)+s(복수형)를 합쳐 족제비 가죽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있다. 프랑스의 동양학자 P. 펠리오(1878-1945)는 설렁거스의 어원을 원과 고려가 족제비 가죽을 많이 거래했던 역사적 기록에 주목하여 후자로 보았으나, 의미적으로 무지개가 아름답기 때문인지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전자의 설이 많이 퍼져있다. 몽골 국립 할하 몽골어 학회에서는 Solongos가 '해 뜨는 동쪽의 나라'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명시했다. 색동저고리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으나, 근거없는 낭설이다.], Kuryo[* 현대 [[몽골어]]로는 현대 한국과 구별하여 고려를 Kuryo라고도 한다.] || ||[[러시아어]]||Корё|| ||[[페르시아어]]||گوریو|| ||[[아랍어]]||كوريا, غوريو|| ||[[영어]]||Koryŏ, Goryeo, Korea, Corea|| 국호는 [[고구려|고(구)려]]의 국호를 그대로 이었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것. 일각에서는 여전히 고려가 신라를 계승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조건 어거지로만 보기도 뭐한 게 중국 쪽 일부에서 고려가 신라를 계승했다는 인식은 단순히 동북공정의 여파가 아닌 오래전부터 있던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려 서희와 요나라 소손녕과의 회담에서도 소손녕이 고려는 신라를 계승한 나라이니 통일 신라가 지배한 적이 없는 옛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반도 북부의 영토 획득에 고려는 정당한 권리가 전혀 없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서희가 고려는 신라가 아닌 고구려를 계승하여 평양을 수도 중 하나인 서경으로 삼은 나라이니 거란이야말로 그들이 동경요양부(옛 고구려의 [[요동성]], 현 [[랴오양시]])로 삼은 고구려의 옛 땅을 정당한 권리도 없이 점거한 것이라고 반론하여 소손녕의 오해를 정정하여 지적했다. 이후 소손녕 또한 서희의 말에 수긍한다. 와전되어 서희가 소손녕을 속였다고 보는데 서희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애초 고려의 국호 자체가 고구려 계승을 선포하며 만들어졌고, 서경은 분사제도로 고려의 수도 개경의 일부 관아들이 서경에도 설치되는 등 제 2의 수도로 대우를 받던 곳이다. 훈요 10조에도 서경의 특별 대우는 다른 누구도 아닌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직접 남긴 것이다.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소손녕은 유목민족인 [[거란|거란족]]이었기 때문에 비록 거란족의 요나라가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세워진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걸 '보편적인 당대 중국인의 시각'으로 볼 수 없다. 화북은 커녕 [[연운 16주]] 같이 화북의 북쪽 매우 일부만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후 서긍을 포함한 송나라인들의 인식을 비추어볼 때 오히려 고구려의 정체성을 고려인들이 이었다는 인식이 한족 사회에선 지배적이었다. 애초 삼국이 현존하던 당대 중국에서는 삼한이라고 해서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같은 족속으로 퉁쳐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당장 중국에서 죽은 고구려인들의 묘지 비문만 봐도 요동삼한인이라고 지칭해놓은 게 상당하다. 게다가 요나라와 동시대에 존재했으며 정통 중국이라 할 수 있는 송나라의 지식인인 [[소식(시인)|소식]]은 정작 고려를 비칭할 때 고구려를 까는 것과 마찬가지의 단어인 맥적(맥족 도적)을 그대로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송의 서긍이 고려를 직접 방문하고 저술한 고려도경에서도 고려는 고씨 왕조가 망했다가 왕씨 왕조가 들고 일어난 걸로, 즉 고구려에서 고려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으로 서술해놓았다. 그 외 원이 새로 일어난 명에 틸탈 털려 북원으로 전락하던 시기에도 "[[북원]]의 요양성(遼陽省) 평장사(平章事) 유익(劉益)과 우승(右丞) 왕카라부카(王哈刺不花) 등이 명나라에 귀순하려 하였으나 그들은 명나라가 주민을 이주시킬까 근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요양이 본시 우리 땅이었으므로 만약 고려가 청하면 이주를 모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사신을 파견하여 통보하여 왔다."라는 기록도 있다. 요양성은 옛 [[요동성]]을 가리키는데, 이에 의하면 원나라 장수와 고려 정부 모두 요동이 옛날에는 고려의 땅이었다고, 즉 '고구려=고려'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구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난립하는 형태였지만 당시엔 대부분 망하고 없었다.] 한편, 좀 더 현실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자면 계승의식은 고구려를 표방했지만 실질적 세력권은 고구려의 옛 중심지를 점거하는 덴 성공했으나 북방영토는 대거 상실하고 그 대신 백제와 신라 영토의 비중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즉, 고구려+신라+백제를 다 품게 된 것.''' 이는 한족이란 개념이 하상주나 진이 아닌 한나라에서 나온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고려의 고구려 계승에 대해 더 자세하게는 [[고려/평가#s-4]] 항목 참조. 고구려의 국호는 초기엔 고구려, 구려, 고려 등의 여러가지로 불렸는데 [[장수왕]] 대부터 고려(高麗)로 고정되어 사용됐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에게는 고구려보다는 고려가 더 익숙한 명칭이었으므로 고려를 사용한 것이다. 중국식 역사서가 편찬될 만큼 한문학이 발달된 시기라 후연, 후당, 후조 같이 자국을 고려(고구려)땅에서 일어난 나라라고 "후고려(後高麗)"라고 표현한 기록이 종종 발견된다. 예를 들어 태자사낭공대사비나 대각국사문집.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후라는 앞글자는 건국한 땅의 옛국가에서 따온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 없는 표현이다. 현대에 [[고구려]]를 당대에 널리 사용되던 고려 대신 고구려라고 부르는 이유는 첫째로 뒤의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서, 둘째로 [[삼국사기]]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궁예]]의 후고구려 역시 개국 당시의 처음 국호는 고려였다. 이후 [[마진]], [[태봉]]으로 변경하긴 하지만 왕건의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궁예의 고려는 [[후고구려]]라고 호칭된다. 때문에 한국의 외국 이름인 '[[코리아|Korea]]'의 어원을 제공한 나라가 왕건이 세운 고려일 수도 있지만, 언급했듯이 [[장수왕]] 이후인 고(구)려에서 이미 어원이 형성됐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금까지 이어진 '''KOREA'''라는 호칭의 근원이 고구려임은 변함이 없다. 코리아의 어원이 왕건의 고려라고 해도 그 고려라는 명칭이 고구려를 계승하면서 전달된 국호이기 때문이다. 조선 초 기록인 《[[동국정운]]》 기준으로 '高麗'의 [[중세 한국어]] 발음은 '고ᇢ롕〮([[예일식 로마자 표기법|예일]]: ''kwòwlyéy'')'였다.[* 현대식 한글로 표기하면 '고우려이' 정도. 다만 이 당시 'ㅕ'는 지금의 (jʌ) 대신 (jə) 소리를 냈다.] 고려시대 당시의 발음은 정확히는 알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