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독교 (문단 편집) == 서양철학과의 관계 == >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 >---- > 성 베드로 다미아노 >fidem, si poteris, rationemque conjunge >할 수 있는 한, 신앙을 이성과 결합시키십시오 >---- >성 [[보에티우스]][* 요셉 피퍼, 중세 스콜라 철학 -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와 갈등-, 김진태 옮김, 서울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3, p50] 본래 유대교는 셈족 계통의 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었으나 [[헬레니즘 제국]]에 의해서 그리스 사상이 유입되었고, 이스라엘 왕국 멸망 이후 지중해 곳곳에 흩어져있던 유대인 공동체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주석성경에 의하면, BC 2세기경이 되면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가 팔레스티나 전체 인구보다 더 많았다.] 외부 사상과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이게 된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갈라져나온 이후, 철학의 수용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였고 여기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자가 '아다만티우스'라는[* [[아다만티움]]을 변형시킨 별명이다. 우리말로 번역할때는 '강철인간', '강철의 철학자', '강철의 신학자' 등으로도 옮긴다.] 별명을 가진 [[오리게네스]]이다. 그는 그리스 철학에 쓰이던 알레고리 개념을 성경 해석에 도입하는 등 그리스 철학 전반을 기독교의 전통에 흡수하여, '신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승화시켰다.[* 이 때문에 오리게네스를 최초의 신학자로 보는 견해도 강하다. 이를테면 [[가톨릭출판사]]에서 나온 서적인 <신학사>가 그러하다.] 이후 교부들은 [[플라톤]] 사상, [[스토아 학파|스토아 사상]] 등을 적극 수용했고, 훗날의 [[스콜라 철학|스콜라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수용했다. 이후 근대에 들어서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독교는 반지성, 반이성으로 해석되어 철학자들에게 집단다굴을 당하게 된다. 물론 이신론자들처럼 대외적으로는 기독교 간판을 건 철학자들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간판만 그러하였으니 아무튼 이 시기는 기독교에게 거의 [[흑역사]]라 보면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드리히 니체]]가 이성에 대해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근대 철학을 비판하고, 현대에 접어들어 [[마르틴 하이데거]]가 최후의 일격을 가하며[* 물론 니체는 비판 대상에 종교 또한 포함되어 있다.] 계몽주의 철학이 종언을 맞이했다. 또한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로 통하는 카를 라너가, 스승인 하이데거의 사상을 새로운 신학의 집사로 부려먹은 이후 현대철학과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중이다. 그리고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프랑스 아카데미 정회원이기도 한 르네 지라르가 자신의 모방 이론을 이용,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변호하면서 다른 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대강 알 수 있겠지만, 좋든 싫든간에 기독교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오리게네스]] 이후부터는 서양철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불교가 인도 및 중국 철학과의 관계가 밀접하듯, 기독교는 서양 철학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서양 철학 역시도 천부인권, 평등 등의 많은 개념을 기독교에서 수용했다.[* 물론 [[미국 독립선언서]]를 쓴 [[토마스 제퍼슨]]의 사례처럼, 근대의 평등사상은 상당 수 이신론적 가치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의 근본에서는 결국 기독교의 영향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시기 이신론자 중 상당수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또한 [[스콜라 철학]] 최강의 떡밥 중 하나인 보편논쟁은[* '보편'이라는 게 진짜로 실재하는 것인지, 혹은 그렇게 이름 붙여졌을 뿐인지의 논쟁이다. 전자의 관점을 극단적으로 수용할 경우 전체주의 등으로 변질될 수 있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또한 후자의 관점을 극단적으로 수용할 경우, 인권이라는 게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어떤 권리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얻는 권리로 바뀌는 폐단이 있다. 이 관점에 의하면 '인간'이라는 개념 역시도 단지 사람들이 편의상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일 뿐이며, '보편적인 인간'이라는건 비실재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연히 상식적으로 중도론이 나오게 되고, 신학에서도 철학에서도 중도론을 밀고 있다. 물론 그 중도라는게 도대체 어느 지점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날의 유물론, 관념론, 전체주의, 개인주의, 민족주의, 인권 등까지 연결되는 희대의 논쟁이기도 하다.[* 20세기 중반에 [[2차대전|전체주의 때문에 대전쟁이 발생한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실제 생활과 동떨어진 논쟁이 아니다.] 이러한 면모 때문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표현을 빌리자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유능한 집사를 고용한 셈이다] 이 표현이 철학도 입장에서 언짢을 수 있다면, 현대인들은 '철학과 신학은 부부이다'라고 변형해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단순히 철학의 부분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만민평등의 개념과 인권의 개념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등장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적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예제 폐지나 미국의 흑인운동도 모두 기독교적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반해 동양철학은 이런 신에 대한 해석에서 일찍히 떠나서 발전했다. 유교, 도가, 불교 모두가 신에 대한 불신을 하고 있다. 유교는 신에 대한 관점에서 떠나서 사람의 근본원리를 탐구하고 이를 인으로 정하고 인을 따르도록 강조했고 도가에서는 신 또는 우주보다 더 높은 것을 이해하고 이를 도라고 칭하고 무위자연이 될것을 사람들에게 요구했으며 불교에서는 아에 자신의 형태는 지나가는 것이라며 모든 것은 연기라고 설명하고 신적이든 철학적이든 분석적인 접근을 하지 않도록 하고 오직 원인을 고치는 일에만 생각하라고 하였다. 서양과는 다르게 동양은 신에 의한 생각을 할 시간이 적었다. 동양철학은 애초에 신에 대한 접근이 없었기에 서양철학의 시행착오같은 과정 또한 없다. 이런 이유로 많은 근대, 서양심리분석가들은 동양철학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에 관해서 많은 연구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불교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