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항경 (문단 편집) == 생애 == 1940년 경기 경성부 출생으로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서울대 법대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대학 재학 시절에는 학내 언론 기자로 활동하였다. 1970년 외무사무관급 특채[* 외무부의 경우, [[5.16 군사정변]] 이후 고등고시 행정과가 폐지되고, 그 후신인 3급 행정직 공무원 공개채용시험(행정고등고시) 합격자는 타 부처와 달리 외무부에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3급 외무직 공무원 공개채용시험(외무고등고시)가 1968년 부활할 때까지, 주사급 공채 및 특채로 간부 공무원을 충원하였다. 이 연장선 상에서 김항경 차관도 외무고시 부활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었던 특채 제도로 외무부에 입직한 것이다. ]로 외무부에 입직하여 지금의 동북아국인 아주국에 배치되었다. 외무부에서는 양자 외교 분야에서는 동남아과장, 주미얀마대사 등의 보직을 담당하였으며, 영사교민국장을 담당하는 등, 영사 업무에서 전문성을 발휘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외무부 기획관리실장을 맡아, 당시 언론에서는 외무부 장관은 물론, 차관, 1차관보, 2차관보, 외교정책실장, 기획실장, 의전장, 외교안보연구원장 등 본부 1급 이상 주요 보직 8개 중 5개를 비고시인 특채 출신이 차지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https://www.mk.co.kr/news/home/view/1996/01/2741/|#]] [[김대중 정부]]에서는 주뉴욕총영사, 외교안보연구원장을 거쳐, 마지막 외교통상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영사 업무와 달리 지역 외교정책 수립을 담당하는 주요 보직을 거치지 못해 전문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평가도 있었다.[[https://news.mt.co.kr/mtview.php?no=2002020414220300054|#]] [[분류:1940년 출생]][[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고등학교 출신]] [[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외교통상부 차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