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무현 (문단 편집) == [[/일생|일생]]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노무현/일생)] [[고졸|고졸 학력]]으로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당시 전체 합격자 60명 중에 단 둘뿐인 [[고졸]] 합격자였으나 나머지 1명인 [[안대희]] 전 [[대법관]]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중퇴 학력으로서 고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대희 전 대법관은 고졸이 아니라 서울법대 출신 합격자로 기억하고 노무현만 고졸로 기억한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7개월 만에 사퇴하고 1978년 [[부산광역시]]에서 [[변호사]] 사무소 [[법무법인 부산]]을 개업하였다. 한편, 1981년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은 일을 계기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인권 변호사 활동 경력을 눈여겨본 [[김영삼]]의 제의를 받아 1988년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고, 같은 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제5공화국 청문회]]에서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전직 대통령]], [[정주영|재벌 회장]]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질의하는 모습이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서 이른바 '''청문회 스타'''[* [[https://youtu.be/7SG07dVR4M8| [[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0]] [노무현 전 대통령 전기다큐 3편] '청문회 스타의 탄생' (출처 :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며 [[김영삼]]과 결별하여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민주당계 정당]]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이후 [[지역감정|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민주당 소속 후보가 당선되기 어려운 부산에 출마하여 낙선하는 그에게 지지자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때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가 탄생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해양수산부장관]]을 거쳐,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꺾고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4년 선거 관련 발언이 논란이 되어 헌정 사상 최초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탄핵소추를 당하기도]] 했으나, 이후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어[* [[https://www.law.go.kr/%ED%97%8C%EC%9E%AC%EA%B2%B0%EC%A0%95%EB%A1%80/(2004%ED%97%8C%EB%82%981)| 헌재결정례 (전원재판부 2004헌나1, 2004.5.14.)]]] 직무에 복귀했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퇴임 후 서울특별시가 아닌 고향 [[봉하마을]]로 귀향[* [[https://www.youtube.com/watch?v=4XEamJ_9JrE| [[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0]] [다큐3일] 대통령의 귀향,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1/2)]]]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 등 친인척 비리로 인해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2009년]] [[5월 23일]] [[봉화산(김해)|김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스스로 투신하였다]]. 투신 직후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으나[* 처음에는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 소재한 인근 병원, 두 번째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결국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며 국민장 기간 동안 봉하마을과 전국의 분향소에 1000만 명에 달하는 조문 인파가 몰렸다.[* [[https://www.yna.co.kr/view/AKR20090526061900051| <盧전대통령 서거> 조문인파 역대 최대 전망 (연합뉴스 : 2009-05-26)]]] 원래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었지만, 본인이 [[노무현/유서|유서]]에서 [[화장(장례)|화장]]해 달라고 의사를 밝힘에 따라 수원연화장에서 화장되어 [[봉하마을]] 대통령 사저 근처 묘역에 안치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