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벨상 (문단 편집) == 기록 == * n관왕에 등극한 단체 *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 평화상 3회: [[제1차 세계대전]] 구호 업적, [[제2차 세계대전]] 구호 업적, 전 세계 재난 구호 업적으로 각각 1917년, 1944년, 1963년에 수상한 '''최다 수상 단체이다.''' ICRC의 창설 100주년이기도 한 1963년에는 ICRC의 산하 단체인 [[국제적십자사·적신월사연맹]]도 함께 받았다. 또한 1901년에 ICRC의 창설자인 [[앙리 뒤낭]]이 적십자 창립과 [[제네바 협약]]에 대한 공로로 '''초대''' 노벨평화상을 수상해서 '''실질적으로는 4번 받은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ICRC에서는 본인들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할 때 창립자 뒤낭의 수상도 포함한다. * [[유엔난민기구]] (UNHCR) - 평화상 2회: 1954년에는 난민들에 대한 정지적 법적 보호, 1981년에는 난민들의 이주와 정착 및 처우 개선에 이바지한 공로로 수상했다. * 2관왕에 등극한 사람 * [[라이너스 폴링]]([[미국]]) - 화학상, 평화상: '''세계에서 유일하게 과학상과 평화상을 모두 받은 인물이다.''' ~~[[문이과 통합]]~~ 반핵 운동 때문에 당시 [[매카시즘]] 광풍이 불고 있던 미국 정부에 출국 금지 조치를 받는 바람에 DNA의 X선 사진을 보지 못했고 DNA의 잘못된 구조를 내놓는 바람에 왓슨-크릭에게 생리의학상을 내줬다. 최상의 시나리오의 경우 3회 수상까지 가능했을지도... 타 복수 수상자와 달리 그는 2회 모두 단독 수상했다. * [[마리 퀴리]]([[프랑스]]) - 물리학상, 화학상: '''사상 최초로 2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자 유일하게 여러 분야의 과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남편 [[피에르 퀴리]] 역시 1903년에 그녀와 공동으로 물리학상을 받았고, 첫째 딸과 사위는 1935년에 화학상을 받았으며, 둘째 사위는 1965년에 [[유니세프]]를 대표하여 평화상을 받았다. 둘째 딸인 이브는 이에 대해 "저는 우리 집안의 수치입니다."라는 농담을 했는데, 이는 아버지, 어머니, 언니, 형부, 그리고 자신의 남편까지도 노벨상을 탔는데 자신만 못 탔다는 이유라고. 사실 그녀도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명 피아니스트로서 여러 상과 훈장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가족들 모두가 능력자. * [[존 바딘]](미국) - 물리학상 2회: 1956년에는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의 발명, 1972년에는 [[초전도]] 현상의 연구 공로로 수상했다. * [[프레더릭 생어]]([[영국]]) - 화학상 2회 : 1958년에는 [[인슐린]]의 염기서열, 1980년에는 [[핵산]]의 염기 서열 해독에 대한 연구 공로로 수상했다. * [[배리 샤플리스]]([[미국]]) - 화학상 2회 : 2001년에는 비대칭 촉매된 산화 반응, 2022년에는 클릭 화학으로 수상했다. * 가족(투톱) 수상 * [[부부]] * [[피에르 퀴리]]·[[마리 퀴리]] 부부(1903년 물리학상 투톱 수상) *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이렌 졸리오퀴리]] 부부(1935년 화학상 투톱 수상) - 위의 퀴리 부부의 사위·딸이다. * 칼 퍼디낸드 코리·거티 테리사 코리 부부 (1947년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 군다르 뮈르달(1974년 노벨 경제학상)와 알바 뮈르달(1982년 노벨 평화상) 부부 * 에드바르드 모세르·마이브리트 모세르 부부(2014년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 부자(父子) * 조지프 존 톰슨 (아버지, 1906년 물리학상)과 조지 패짓 톰슨(아들, 1937년 물리학상) * [[윌리엄 헨리 브래그]](아버지)와 [[윌리엄 브래그|윌리엄 로렌스 브래그]](아들), 1915년 물리학상 공동 수상 : 수상 당시 아들 브래그의 나이는 불과 25세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노벨평화상을 탈 때까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유일한 부자 공동 수상자로, 과학분야에서는 지금도 최연소 수상자로 등재되어 있다. * [[닐스 보어]](아버지, 1922년 물리학상)와 오게 닐스 보어(아들, 1975년 물리학상) * 칼 만네 예오리 시그반(아버지, 1924년 물리학상)과 카이 만네 뵈리에 시그반(아들, 1981년 물리학상) * 한스 폰 오일러켈핀 (아버지, 1929년 화학상)과 울프 폰 오일러(아들, 1970년 생리의학상) * 아서 콘버그(아버지, 1959년 생리의학상), 로저 콘버그(아들, 2006년 화학상) * 수네 베리스트룀(아버지, 1982년 생리의학상), [[스반테 페보]](아들, 2022년 생리의학상)[* [[혼외자]]이기 때문에 성이 다르다.] * 부녀(父女) * [[피에르 퀴리]](아버지, 1903년 물리학상), [[이렌 졸리오퀴리]](딸, 1935년 화학상) * 모녀(母女) * [[마리 퀴리]](어머니, 1903년 물리학상•1911년 화학상), [[이렌 졸리오퀴리]](딸, 1935년 화학상) * 형제 * 얀 틴베르헌(형, 1969년 경제학상), 니콜라스 틴베르헌(동생, 1973년 생리의학상) * 숙질 *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이모, 1995년 생리의학상), [[베냐민 리스트]](조카, 2021년 화학상) * 최고령/최연소 수상자[* 날짜는 시상식이 진행되는 12월 10일 기준.] * 최고령 수상자: 존 B. 구디너프 (97세 4개월 17일, 2019년 화학상) * 최연소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17세 5개월 1일, 2014년 평화상) * 수상을 거부한 사람들[* 당사자가 거부는 했지만 일단 공식적으로는 역대 선정자 명단에 포함되어있다. [[니콜라 테슬라]]의 경우 1915년 당시 로이터 통신 '''주장'''에 따르면 '''[[토머스 에디슨]]'''과 공동으로 받을 수 있었으나 '공동으로 받을 바에는 받지 않겠다'고 밝혀 다른 물리학자들이 수상을 했다고는 하나 노벨 재단에서 "본인이 상을 받기 싫다고 해서 수상자에서 제외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강하게 부인했고 실제로 근거로 뒷받침된 바가 없다.] * [[장폴 사르트르]] - 1964년 문학상. "노벨상이 너무 서구쪽에 치우쳐져 있고 동양은 별로 받지 못했다. 또한 노벨상을 받으면 나의 행동과 지지 발언이 노벨상의 권위로 대체되어 버리기 때문에 수상을 거절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면서 노벨상위원회에 후보 명단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하고 만약 수여된다고 하더라도 상을 받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위원회는 그를 그해의 수상자로 뽑았던 것. 이에 대해 당시의 노벨상위원이었던 라르스 일렌스텐(Lars Gyllensten)이 저술한 회고록 「Minnen, bara minnen」의 주장에 따르면, 사르트르는 11년 후인 1975년에 변호사를 통해 노벨상위원회에 뒤늦게나마 상금만이라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당연히 위원회 측은 거절했다고. [[https://www.svd.se/sartres-brev-kom-forsent-till-akademien|#]] 그러나 1975년에 사르트르는 책 인세와 강연 등으로 이미 상금이 아쉽지 않을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었고 건강이 나빠지긴 했지만 꾸준히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므로, 그런 그가 자신이 말한 것을 모두 내팽개치고 갑자기 상금을 타고자 연락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르트르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들은 한 사기꾼의 상금 탈취 시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 레득토 - 1973년 평화상. 북베트남 외교부장. [[베트남 전쟁]] 종전에 기여한 공로로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 수상을 거부하려다 결국 받은 사람들 * [[조지 버나드 쇼]] - 1925년 문학상. 본인은 처음엔 받지 않으려고 했다가 받은 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만이 노벨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고 비꼬았다. 상금을 기부해 달라, 입양해 달라 같은 구걸에 가까운 편지들을 계속 받다보니 쇼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 [[리처드 파인만]] - 1965년 물리학상. 유명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수상을 거부하려 했으나 '''"그런 짓을 하면 더 유명해질걸요."'''라는 기자의 말을 듣고 받기로 결정했다. * [[밥 딜런]] - 2016년 문학상. 가수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는데 수상자 발표가 난 이후로 한동안 그는 전혀 이에 대해서 연락을 받지도 않았고, 별다른 의견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수상을 거부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나왔다. 그러다가, 침묵을 깨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0/29/0200000000AKR20161029018751009.HTML|노벨상을 수락]]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본인이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으며 주스웨덴 미국 대사가 참석해 밥 딜런의 수락 연설문을 대독한 다음 노벨상을 대리 수상했다. * 수상을 거부ㆍ저지당했으나 결국 받은 사람들 * 리하르트 요한 쿤 - 1938년 화학상 * 아돌프 프리드리히 요한 부테난트 - 1939년 화학상 * 게르하르트 도마크 - 1939년 생리 · 의학상 * 나치 독일 정부는 1935년 평화상 수상자로 [[카를 폰 오시에츠키]]를 선정한 것에 대해 강력히 비난하면서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위의 사람들은 상을 받고 싶어도 당시에는 받을 수 없었다. 물론 이 금지령은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해제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1946년에 상을 받았다. * 사실은 1944년 화학상 수상자 [[오토 한]]도 여기 들어갈 뻔했다. 노벨위원회가 또 독일인을 선정한 걸 왕립학술원에서는 난감해하면서 공식 발표를 한 해 미루기로 했고, 1년 후 나치가 패망하자 "이제 독일인도 상 받을 수 있다!"라는 상징으로 그제서야 수여했다. 발표 자체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거부당한" 사람으로 치지 않는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1958년 문학상. [[닥터 지바고]]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소련 정부와 작가 동맹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자 수상을 거부했다. 하지만, 노벨상 주최 측에서는 이를 거부한 것이라 판단하지 않아서 수상 보류로 남겨 두었다. 결국 그의 사후 소련에서도 닥터 지바고가 출판되는 등 그 업적이 공식적으로 인정 받고 난 뒤, 그의 아들이 대리 수상을 했다. 고로 받긴 받았다. * 수상을 거부·저지당했으며 결국 받지 못한 사람들 * [[카를 폰 오시에츠키]] - 1935년 평화상. 선정 당시 나치 독일 정부에 의해 투옥 중이었던 터라 수상이 불가능했으며, 결국 상을 받지 못하고 1938년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 [[류샤오보]] - 2010년 평화상.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중국 정부에 의해 수상을 거부당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가족들도 가택연금 조치하여 수상하지 못하게 막았다. 노벨위원회는 그를 위해 마련된 빈 의자에 공석으로 직접 상을 수여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독재적 행태에 엿을 먹였다. 이렇게 수상을 강제로 거부당하고 빈 의자에 수상을 해준 사례는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나치 독일]] 시대의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하는 경제보복을 했다. * 성비 || '''{{{#ebe72b 분야}}}''' || '''{{{#ebe72b 남자}}}''' || '''{{{#ebe72b 여자}}}''' ||'''{{{#ebe72b 성비}}}'''[* 소수점 아래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 || || '''평화상''' || 91 || 18 || 5.05:1 || || '''문학상''' || 102 || 17 || 6.00:1 || || '''생리학·의학상''' || 212 || 12 || 17.67:1 || || '''화학상''' || 180 || 8 || 22.50:1 || || '''물리학상''' || 215 || 4 || 53.75:1 || || '''경제학상''' || 87 || 2 || 43.50:1 || || '''{{{#ebe72b 전체}}}''' || 887 || 61 || 14.54:1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