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벨상 (문단 편집) == 역사 == 일설에는 1888년 [[알프레드 노벨]]의 [[형]]인 루드비그 노벨(Ludvig Emmanuel Nobel/Лю́двиг Эммануи́лович Нобе́ль)[* 젊은 시절 [[러시아 제국]]으로 건너가 공장 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후에는 [[블루 오션]]인 [[석유]] 사업에 뛰어들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브라노벨(Branobel)이라는 석유 회사를 설립했다. 브라노벨은 한때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50%를 차지했다고 한다.]이 사망했을 때 한 신문에서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고 기사를 실었는데, 그 기사에 노벨을 '[[죽음의 상인]]'이라 지칭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노벨이 자신의 사후 이미지를 걱정해 상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해당 오보의 원본이 발견된 바 없으며, 심지어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언급, 인용한 바 없어서 [[https://m.kr.ajunews.com/view/20211018161234498|잘못 알려진 풍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걸 회의감을 느꼈던 노벨은[* 강한 무기가 있어야 평화가 유지된다고 말했다는 설도 있다.] 후에 [[유언]]으로 유산의 94%(약 440만 달러[* 19세기 말에는 엄청난 돈이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당시, 국내 방송에서 현재 값어치를 원화로 추정했더니 약 2,215억 원이라고 한다.])를 기부, 노벨상을 설립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알프레드 노벨의 재산을 대부분 기부하려하자, 자기들의 몫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그의 친척들[* 반평생 넘게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기에 노벨의 직손은 없었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게다가 노벨은 유언장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이 상을 줄 것을 당부했는데, 이것 때문에 스웨덴 내 여론과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까지도 노벨을 비난했다. 특히 평화상 수상을 당시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스웨덴의 지배하에 있었던]] [[노르웨이]]에 맡겼던 것도 이를 부채질했다. 그러나 유언 집행인 랑나르 솔만(Ragnar Sohlman,1870~1948)의 결단으로 노벨의 재산은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노벨상의 위상을 생각하면 별 탈없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상이다. 솔만은 상을 제정하며 가진 인터뷰에서 '욕을 그리 많이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더군요.'라며 노벨의 친척들이 벌인 온갖 방해공작이나 욕설, 명예훼손을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다만 [[노벨경제학상]]의 경우 [[1968년]], 즉 노벨상이 제정되고 난 뒤로도 한참 후에 노벨의 유언과는 무관하게 따로 생긴 상이다. 스웨덴 중앙은행[* 스웨덴의 화폐인 [[스웨덴 크로나]]를 조폐 및 발행하고 있다.]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으로서, 상의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재단에서 수상하는 상이 아니므로 노벨 재단에서 상금을 주지는 않는다.] 노벨의 유언에 의해 제정된 나머지 5개 분야 노벨상은 정식 명칭은 Nobel Prize[* 예: Nobel Prize in physics]로 시작되는 데 반해, 노벨경제학상은 The Sveriges Riksbank Prize로 시작된다. 즉, 노벨경제학상은 엄밀히 따지자면 노벨상은 아니고 노벨 기념상이다. 하지만 경제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는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곳이며, 수상식에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과 함께 참석하고 상금 또한 동일하다. 스웨덴에서 달리 할 이유가 없기 때문.[* 게다가 노벨이 노벨상에 대한 유언을 남길 당시에는 아직 [[경제학]]이 체계적인 분과 학문으로 발전하기 전이었고, 때문에 경제학을 시상 분야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여러모로 곤란했다. 설령 노벨의 생전에 경제학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으로 성장해서 존재하고 있었더라도, 노벨의 관심사를 따진다면 경제학을 시상 분야로 지정했을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노벨상이라고 하면 이 경제학상도 포함되는 편이다. 하지만 알프레드 노벨의 형의 후손인 피터 노벨은 노벨경제학상에 대해 크게 부정적으로, 경제학상에 무단으로 붙인 '노벨'이라는 이름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주식 옵션 투기를 조장하는 [[시카고학파]]들이 상을 휩쓸고 있다며, [[인류]]에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한다는 노벨의 취지를 크게 벗어났다고 비판하고 있다. 노벨상 시상 초기에는 지금처럼 권위 있게 여겨지지 않았지만, 곧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상이 되었다. 이는 상의 수준을 높여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에 힘입은 결과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