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회성 (문단 편집) === 앞서 가기 === 앞서 가기는 상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한 상황을 예견하거나 지적하는 지적(知的) 자만이며 본인의 사고 능력(=눈치력)이 남들과 같은 일반화 된 불문율이라 오인하고 눈치를 일종의 경쟁 요소로 우열을 가리려는 것에서 인간관계를 극히 피곤하게 만든다. >공통 > *(자신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지만, 행동력이 빠른 상대가 먼저 선수를 치며) "넌 눈치가 없냐?" 사람이 하루동안 발휘할 수 있는 집중력은 한정돼있으며 이를 어느 곳에 써야 효율적일지 받아들이는것도 개개인마다 다르다. 여기서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별 같잖은 경우에서도 이러한 원리원칙주의자들의 만연한 사적 침범으로 인하여 집중력을 할애해야 할 기회를 잃으면서도 그 실익이 현저히 적다고 판단되는 인지부조화에서 기인한다. 이것을 상대에게 따지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해명하기도 꼴사납기 때문에 넘어가는게 대부분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측도 "내 말이 맞으니 따지지 않는다." 라고 착각 해 사고가 굳히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예시로, '1+1 은 3' 이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상대에게 굳이 본인의 시간을 들여 정정해봤자 그에 따른 이익은 없고 주위 사람이 보기에 할 일 없는 것들의 개뻘짓이라 비춰질 우려도 있어 그냥 맞다며 넘어가는 것을 상대방 측은 내 말이 맞으니 설설 긴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굳혀진 가치관은 그냥 입 닫고 소신 껏 하면 되는 유사 접대술을 상식 인냥 외압을 넣어 주변에게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몰랐던 무능한 인간'''으로 상기된 인상을 조작하는 일반화를 일삼는다. 명심할 점은, 눈치의 수준이 사회성의 주요 요소인건 맞지만 정보격차마저 해소하진 못 한다. 사실 남보다 행동이 빠르다는건 불확실성이 내재되면서도 답을 원하는 군중의 수동적 잣대로 인해 신중히 판단하는 것보다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후광효과|겉으로 풍기는 자신감]]을 보이는게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에 생겨난 강박관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맹목적인 아비투스의 모방은 갈등만 부추길 뿐이며[* 상류층이라도 교양같이 고차원적인 눈치가 요구되는건 공식 석상에서나 사용하지 일상같은 사교 영역에서는 별개이다. 문제는 사용처를 구분하지 않고 남발하는 추태도 모자라 강요까지 하면서 이에 따르지 않을 시 눈치가 없는 사회부적응자라 폄하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눈치만으로 문외한을 극복하는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본인의 논리가 완벽하더라도 괘씸죄 당첨은 물론이거니와 수틀리면 모르면서 왜 나불대냐는 해명이 번거로워서라도 무심한 척 하는게 더 낫다는건 면피가 중요한 조직을 조금이라도 접하면 알 수 있으며 상대가 '''자신 기준의''' 올바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앞서가 그 상황에 따른 당위성을 강구할 권리는 없다.[* 훈계 시 가능하면 1대1 로 하려는 것도, 본인이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도 다분하며 이미지 관리로서 돌려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들도 '이 정도 눈치는 다 갖추고 있을 것이다.' 라며 자신보다 느린 사람을 비방하지 말자.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진 알고 있지만 내가 다루면 상황이 더 꼬일 것 같아서 신중해진 걸수도 있다. 아니면 알고 있는데 본인이 쓸데없이 지적질하는게 불쾌해 '내가 뭘 하든 제 눈에는 트집잡힐 것들인데 노력해봤자 뭐하나.' 라는 식으로 [[학습된 무기력|효용이 감소한 것도]] 원인일 수 있다.[* 사회성은 되도록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하며 위법 행위를 하는 상대방을 방관하는건 정말로 그 행동이 법에 저촉되는걸 몰라서 무시하는게 아닌 상대를 적으로 만듦으로서 [[보복범죄|불똥이 틔는걸 감당할만큼의 이득이 없다는걸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눈치와 도덕성과는 관련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인이 상대보다 사회성이 좋다고 그 상대의 사회성이 안 좋은게 아니며, 상대가 눈치가 없다고 사회성도 없는게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그 상황에서 응당 지적해야 할 입장을 대변하는 사안인지, [[꼰대|생각 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자기 할 말만 읊어대는 자뻑]]인지, 잘 모르면서 아는 듯이 떠들어대는게 아닌지를 항시 의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 개념을 받아들이는 관점 차이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예시로, '이걸 듣고 이해한 뒤 판단하려면 2초가 필요하고 이걸 상대도 알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A와, '이건 0.5초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고 이 이상 걸리는건 사회성이 부족한 것이다.' 라는 B가 있다. [[빨리빨리]] 문화에서는 B가 맞는 말이지만 이는 '''정답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이상론이다. 사회성이 부족한게 단지 그에 관련된 지식의 부재 때문에 그렇게 보이기도 한데 이것마저 사회부적응자 취급을 하게 된다면 자신들이 속한 영역 내 지식이 열린 사회에까지 영향을 주어 전체적으로 [[시민의식|사회에 내재된 가치]]를 오염시킨다.[* 특히, 자신과 똑같은 과오를 한 사람에게 적용할 시 인간의 불완전성에 소급하여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본디 실수를 하며 이를 지적하는 사람 역시 실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지니고 겸손해야 하는데 정작 앞으로 평생 실수를 안 할 것이기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상대를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맹신하는 오류]]를 범한다.] 또 반응 시간이 느리다는 핑계로 빠릿빠릿하지 못하다며 사회성에 흠이라도 있다는 냥 파고 드는데 그거 [[ADHD]]와 [[고지능자]]를 동시에 충족하라는 소리이다. 이처럼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결론내는 습관이 문화로 굳어진다면 필연적으로 '''의미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본인에게는 전혀 불순한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은 완곡어법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인명 중시 체계가 중요한 조직에서 이러한 오류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이와 비슷한 용어로 [[https://blog.naver.com/3345/222525920206|교토식 화법]]이라는 우스갯소리로도 알려져 있지만, 눈치의 의의를 돌려서 멕이기 위한 목적으로 받아들여 상대로부터 과도한 완곡어법을 강요하고 이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결국 개개인마다의 사회망 형성이 불순한 목적의 실리적 놀음이었다라는 인간혐오를 유발한다. 또한, 이러한 앞서 가기의 폐해가 사적영역과 공공영역이 혼합된 환경에서 주로 일어날시에는 서열이 낮은 사람의 반론권이 억압된다. 이미 상대는 그 상황의 정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언변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며, 본인이 느끼기에는 [[빅 브라더(1984)|서로의 영역 안에 타인도 동시에 존재하는 중이라 착각하니까]] 사회성이 낮아보이는건 당연하다.[* 이는 자신이 상대와 어느정도는 강제로 친해져야 살아남는 환경이었을 확률이 높고 그만큼 나의 부족함과 실수를 어쩔 수 없이 보여야하는 경우도 많으니 상대는 다른 곳(공공영역) 역시 이곳(사적영역)에서와 같이 사회성이 낮다고 예상하는거다.] 사람은 생각보다 당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관심이 없다. 굳이 말 안하면 상대가 자신이 피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프로불편러|피해라고 여길만한 이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당신의 논리가 반드시 옳아서 상대의 말문이 막힌게 아니며 이 역시 상대가 스스로의 무지함을 인지해서 가만히 있는게 아니다. 더 대화해봤자 피곤해질 것 같으니 그냥 포기한 것이다. 예로서 A와 B의 상황에서의 눈치력을 동시에 만족해야 할 시, 이 중 어느 것을 우선순위로 두어 처리할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요점은 공통적으로 일단 하나를 집중해서 끝내는게 실수 없이 처리할 수 있음에도 이들은 '''동시에 하지 않는것 자체를 실수로 여긴다'''. 함정으로는,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문제없이 처리하는 멀티형 인간은 매우 드물며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니 일반인은 주의력 분산으로 실제 사고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싱글코어를 지향하도록 진화됐지만, 현대사회로 오며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익숙해지고 이것이 다수의 현상이 되어 결국엔 시간효율성의 극대화로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는게 능력으로 자리잡은 이상 멀티테스킹=사회성이라고 자찬하며, 남들이 보는 것보다 출력값(결과)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관계망의 밀도로 변명하여 논지를 흐린다.[* 내 논리가 틀렸어도 너보다 인간관계가 넓은 것을 '사회성이 좋다=우월하다' 라고 확장하여 자신의 잘못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내빼면서 정작 자신과 같은 잘못을 한 사람에겐 [[내로남불|지지리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 집단 내 사회성이 낮은 너의 의견은 틀렸다로 조작한다. 이건 본인이 진심으로 인간관계를 업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은 잘한게 없으니 관계망이 좁고 사회성이 낮다는건 그만큼 의견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를 어림잡아 '니 인격적인 문제 또한 그런 잘못에 관여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지?' 라고 자신의 인간관계를 사회의 기여분이라 착각해 죗값을 흥정하는거다. 또 상대의 주변인이 직접 교차검증하여 따질 가능성도 적어 자신의 지적을 맞받아칠 수고도 덜어지니 가지고 놀아도 괜찮을 것이란 거만이 깔려 자기가 우월하다고 착각해 틀린 말을 했어도 상대방이 친구(사회성)가 없다는걸 드러내 내 논리가 옳든 아니든 '그렇게 따지려드니 친구(사회성)가 없는거다.' 와 같이, 너나 잘해라로 상대를 무안하게 만들기 쉽다.] 결국 이러한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선술한대로 약자는 말이 없으므로 후자의 억까가 평준화되어 마땅한 사회부적응의 명분이 되어버린다.[* 100%의 집중력을 동원해야 상황을 해결하는데 '''난데 없이''' 상대가 끼어들어 본인은 동의하지도, 인지하지도 않았던 다른 상황을 들먹여, "[[선택적 주의|조금만 신경쓰면 눈치챌 수 있던걸]] 알아채지 못하다니 참으로 멍청하구나." 라고 핀잔을 주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 집중력이 끊기는건 덤.] 따라서 대부분 이러한 해결책은 상대가 관할하는 영역에서 빠져나오는 것 말고는 없으며 억지로 어울려봤자 덧 없는 완벽주의 성향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본인이 먼저 미치거나 진중한 대화는 일절 없는 산 송장으로 대해주는게 최선이다. >예시 1 >A : "이건 OO야. 왜냐하면..." >B : "ΔΔ이기 때문이죠." >(A가 할 말을 도중에 가로챈다) 이 때,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눈치가 빠르다고 맞장구치는 경우와 동의 없이 끼어들어 조직 내 자신을 무식하게 보이게 만든 불쾌감으로 인해 보복하는 경우이다. 물론 대부분 말하고 있는 도중 끊는다는건 그만큼 사회적 거리가 가깝기에 무례하더라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정말로 그렇게 넘어갈 거라고 B가 착각할 때이다. B의 답이 사실이든 아니든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크게 상관은 없다. 중요한건 A와 B의 관계가 수평적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눈치는 상황의 유연한 대처를 하기 위해서나 쓰는거지 '''불쾌해질 가능성이 높을 시엔 일단 끝까지 듣고만 있는게 좋다.'''[* 설령 맞다고 해서 B의 우위를 인정한다는 확증도 없다. 되려 의미 왜곡을 이용해 질투로서 보복받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체가 무시 된 분별 없는 앞서 가기는 자칫 상대의 발언을 뺐는 월권으로 의도되기 십상이며 권위가 추락하는걸 싫어하는 사람은 당신을 적으로 돌릴 것이기 때문에 수직적인 관계였다면 그냥 그대로 쭉 처신 잘 하는게 좋다. >A : "이건 너(B)의 잘못이라 생각해. 왜냐하면..." >C : (허락 없이 언쟁에 끼어들며) "그건 A의 문제 아닌가?" >B : (자연스럽게 C의 발언에 동의한다) 갈등 중 갑자기 C가 중재하여 지적 자만을 행하는 경우이고 당사자(A)가 이해해줄거라 판단하여 앞서 가는거다. 여기서의 문제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제3자로부터 나의 의견이 '''묵살'''된다는 점이다. 망언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본인으로서 상황이 종결되는 것도 더 파고 들면, 궤변을 너무 당연한듯이 말해 사람을 벙 찌게 만들어 말문이 막히는걸 '''본인이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며 항변할 힘이 없는걸 C가 아는 경우라도 외부에서는, B가 A보다 우월하다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사전에 작당하기 위한 수적 강세를 웬만큼 눈치가 빠르지 않는 한은 모르고 넘어간다.[* 눈치챈다는건 보통 조롱 목적으로 말을 따라한다던가 천성이 띠겁게 말하는걸 좋아하거나 본인이 속한 영역에까지 피해가 와 눈치 안 채는게 더 이상한 경우이다.] 어차피 자기네들끼리의 문제이고 책임에서 자유로운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노한 A가 감정을 표출한다면, C측이 제공한 의도의 불확실성에서 확정적인 A의 궤변으로 항변은 조작되어 책임을 떠넘기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A의 명예는 공개적으로 훼손해도 된다.' 라는 차별을 조직 내에 심어준다. 이는 수평 관계 내 서열 문화가 세속되는 원리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한 쪽만 유달리 표정이 썩는다면 이러한 예시를 거쳐간 확률이 크다.] 그러니 영업방해로 쫒아낼게 아니면 끼어들지 않는게 서로에게도 좋다. 형평성의 상대적 관점에서 오는 갈등에서 상대에게 유도신문을 하기 위해 돌려서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D : "□□에 대해 궁금해." >E : "그러게, □□는 뭘까?" >F : (보다 못해 끼어들며) "검색해보면 되잖아요." >D, E : "...?" F가 꺼낸 말은 예시로만 봤을 땐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도 허락 없이 영역을 침범했다는 것이고 분위기 상 적용되는 요인을 추가하면, 모르는 척 하여 사교를 돋으려는 일종의 '''추임새'''란걸 모르고 상식과 사교를 혼용하여 '정신(사회성)이 제대로 박혀있으면 모르는걸 티내지 않겠지.' 란 앞서 가기가 되려 본인의 사회성 부족을 상대에게 증명했다. 이는 D, E가 만든 친밀 영역에 속하지 않는 입장에서 사교의 일부임을 무시한거다. 그들 역시 검색해보면 될 일이지만 굳이 말로 꺼낸다는건 이미 서로가 알고 있지만 티키타카를 위해 모르는 척 연기하는 것인데 어디서 사회적 거리도 어정쩡한 인간이 다가와 교정하려 든다면 어이가 없을 것이다. 이 때는 답답해도 상대가 먼저[* "알려줄 사람 어디 없나?" 보다는, 본인을 지목하여 "알려줄 수 있나요?" 라고 특정성을 만족할 시.]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신경 끄는게 좋다. >예시 2 >A : "안녕하세요? 여쭤볼게 있는데요." >B : "..." >(대강 말투를 보아하니 길을 묻는 척 [[도를 아십니까|포교]]하려는 것 같으니 무시한다) >A : '뭐지? 사회부적응자인가?' A와 B 모두 앞서 가기를 이용했다. 다만, A는 사회적 거리가 확립되지 않은 채 맹목적인 편향을 동반했지만, B는 사전 경험으로 자신의 이익이 불분명한 앞서 가기보다 크다고 생각 해 최대한 현명하게 A를 피했다. 이에 A는 단순히 길만 물어볼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B의 의도를 'B의 입장이었다면 보이는 나(A)의 형상' 을 앞서 가 이해하려 하기보단 편향된 앞서 가기를 통해 사회부적응이란 오류를 일으키게 된다. 정리하자면, 앞서 가기가 사회적 거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치관과 더나가 통합마저 가능하다는 신념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이다. 서로가 앞서 가기를 의식하게 하는 욕심은 [[지네의 딜레마|각자에게 자조랍시고 의사결정에 혼란을 일으킨다.]]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양쪽 의견의 수렴은, 무시하는 B의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무시하는게 현명했기에 사회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로 나뉠 수 있는 관찰자의 한계를 막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며 눈치가 좋다고 개인이 함부로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면 안 된다. >C : "안녕~." >D : (내 뒤에 사람이 있어서 무시한다) "..." >C : '...혹시 나 싫어하나?' D 입장에서는, C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줄 만큼 친하지 않는 애매한 관계라 예시처럼 만일 인사를 받아줬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인사를 건냈던 거라면 개쪽일테니 명예 보존을 위해 유예시켰다고 보는게 타당하며 사회적 거리를 앞선다는건 대의명분으로서 자신을 이용하겠다란 흑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인사를 하기 전 대상자 주변에 나와 지인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아이컨텍을 유지하며 다가가거나 그냥 포기하는게 낫다. 이렇듯 앞서 가기는 사회적 거리에 따라 변칙적이다. 인사를 했을 시 상대가 받아줄지 말지는 사회성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가령 어느정도 친해져야 개그로도 활용하는게 앞서 가기인데, 이러한 조건을 무시하고 무조건 보상 없이 눈치력을 강요하는 것은 치장으로서의 목적과도 부적합하다.[* 최소한 치장한다는건 이 사람에게 잘 보일 시 얻게 되는 확실한 보상이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인데 여기서는 그런 것도 없다. 조직에서의 사적 난립은 지양해야겠지만, 사적영역에서의 조직문화를 관여하는건 이들이 원하는 인과율에 비해 사람이 복종할 만한 보상체계(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저 사람이 지금 당장 내 앞에서 실수를 보였다고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실수할거라 판단하는건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거지가 쓰레기를 주우라는 명령에 코웃음 치는걸 보고 지위가 바뀐 경찰의 명령에도 똑같이 반응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당신에게 보이는 실수는 그저 긴장할 필요가 없는 사적영역에 있었거나 당신에게 잘 보일만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 : "받으세요." >F : (거절하며) "괜찮습니다." 언뜻 보면, E의 호의를 F가 무시한 것처럼 보인다. 허나 여기선 악의를 가지고 행동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사회적 리스크에 따른 자기 보호로부터 오는 이익 대비 의미 왜곡으로 호소력이 조작되는 동질성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명예 보존에 기인하다. 리스크를 세분화하면,''' 1)''' 지속적인 관계임을 증명하기 위한 피로감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완곡어법. '''2)''' 배후 또는 플라잉 몽키로부터 [[뇌물|착취당할 명분]]을 막기 위한 주도권 유지 목적의 사전 차단.[* 자신이 호의를 받을 만큼 조직에 기여한게 없거나 사회적 거리를 좁히려는 과정이 전무할 때.] '''3)''' (음식일 시) 독극물을 통한 위해 가능성. '''4)''' 대상의 착오 및 유도[* F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받을 물건을 자신에게 준 것으로 착각하여 생기는 상황이며 구성원의 주도 하에 누명을 씌우는 것도 이와 같다.]가 얽혀있어 이에 대처할 바엔 처음부터 무시하는게 F 입장에선 호의를 알았더라도 최선이었음을 역으로 앞서 서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선의를 [[츤데레|제대로 전달하지 않아서]] 생긴 착오이거나 분위기 상 의도를 알려주지 않아도 상대가 호의로 알아듣고 받아주겠거니 하는 안일함이 문제일 수도 있다. 함정으로는, 그 분위기조차 결속력으로 인하여 F를 제외한 E의 구성원만 알 수 있도록 왜곡될 우려가 있다.[* 이는 주변 인물이 외향성에 가까워 좋게 받아주는게 당연하다고 배운 사람에게는 호의를 받아주지 않는 신중함을 이해하지 못하여 반감을 가지는 케이스가 생기고 이러한 심리는 끼리끼리 자라난 주변인의 조언으로 '악의로서 자신의 선의가 더렵혀졌다.' 라고 조작당해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는 원인이, 앞서 가기로 심증을 스스로 추론하지 않고 조직을 통한 책임 회피와 다수결을 만족하려는 재해석적 욕구가 평형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중상모략의 기저에 만족한다.] 이렇듯 사람을 알아가는 단순한 과정에서도 앞서 가기는 자기 보호를 위해 쓰이는 사정 상 매우 빈번하게 벌어지는 갈등 양상이며 이에 무시당했다고 상대에게 따지지 말자. 상대방은 자기 주제를 알고 거리를 두는걸 수도 있기에 섣불리 사회성 없는 인간이라 판단하지 않는게 좋으며 보복의 명분도 되어선 안 된다. 위의 사고방식이 계도로 악용되는 경우, 대답의 지체를 사회부적응으로 매도해 혼란을 줘서 욕받이로 만드는게 가능하다. 또한 가문의 명예나 관리로서 앞서 가기를 내세우는건 당장의 취지로서는 좋겠지만 완벽주의에 가까운 강요나 다름 없는 교육관은 자식에게 극상성이다.[* 100가지의 실수 중 하나라도 지키지 않는게 전부 지키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면 누구나 후자를 택하고 일탈할 것이다. 자신의 행동거지가 항시 감시받을 수 있다는 상태를 알게 하는건 감시자의 방식대로는 좋겠지만 그 방식이 굳이 사회에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라면 이만한 시간낭비가 없다. 명예 보존을 위하여 생각 없는 말을 꺼내는걸 극도로 조심하고 또 이를 당연하다 여기고 자라나지만, 정작 사회에서는 생각 없는 말임에도 웃고 떠드는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판이하게 다른 사교술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얘기를 꺼내봤자 붕 뜨게나 하지 [[진지충]] 같이 오명이란 오명은 다 뒤집어씌인다. 이는 허탈감과 동시에 양측을 향한 증오를 양산한다. 절제가 있어도 내면은 삐뚤어진다. 사람 미치는거다.] 최악의 경우, [[명예살인|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사적제재를 정당화한다. >예시 3 > *[[관상]]을 보아하니 대화 나눌 것 없이 사회성이 떨어진다는걸 알 수 있겠다. > *저 사람은 외동이니까 성격(사회성)이 안 좋겠네. > *못생긴 것들은 성격이 더럽다. 신념이 극단적으로 확장될 경우 유사과학을 신봉하여 사회성을 외형으로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주로 사회를 겉핥기 식으로만 배운 사람이 하는 오류일 수도 있지만 같은 환경에서 오랜 기간 지내고 자라온 사람에게도 이러한 편견은, 같은 문제일지라도 관심도에 따라 더 비판적으로 다가가는건 사람을 대상으로 판단해도 다르지 않으니 왜곡될 수 있다. 이는 인물을 평가할 시 자신이 속한 환경에 따라 사회 성숙도가 달라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부자, 사업가, 연예인, 메이저급 인플루언서 같이 서민들이 평생 벌어도 못 모을 돈을 지니는 만큼 [[공황장애|고충이 따르지만]] 일반인은 공감하기 힘들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가면을 쓰고 신념을 감추고 행동할지라도 무의식에서 나오는 미세표정은 감추기 힘드므로 상대방은 과거 학습으로 '저 인간은 나의 외적 또는 과거의 흔적으로 가치를 평가하려는구나.' 를 단번에 알 수 있으며 또다시 자신의 무의식에서 나온 표정의 의도를 눈치챈 감정기복으로 일어난 미세표정에서 나오는 신호를 역으로 눈치채고 '역시 내 신념은 틀리지 않았다.' 라며 신념이 더욱 확고해지게 된다. >예시 4 >A : "아까 시켰던 업무 다 끝냈어요?" >B : "끝냈으니까 이걸 하고 있겠죠?" > >(계산 후 들고 갈게 많아 보이는걸 확인하며) >C : "비닐 드릴까요?" >D : "그럼 이걸 그냥 들고 가요?"[* 눈치가 있다면 상대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내가 비닐이 필요한 것을 알텐데, 그럼에도 물어 봤다는건 상대가 본인을 조롱할 의도라는 것일테니 나 역시 비꼬아도 정당행위라 하며 작위적으로 해석한다.] > >(전화가 걸린 상황) >E : "여보세요?" >F : (여러 가지 지시를 한다) >E : "OO대로 하면 되는거죠?" >F : "잘 안 들리는데 좀 똑바로 얘기할래?" >E : (다시 읊는다) >F : "너 나랑 장난치냐?"[* 수신자의 마이크 이상이거나 발신자의 스피커 성능이 저하된 경우이다. F는 이러한 고장의 가능성을 무시한 채 E가 본인의 지시가 맘에 안 들어 고의로 못 알아듣게 말을 웅얼웅얼 거린다고 판단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눈치가 좋을지라도 정서 지능이 낮으면 상대가 느끼는 상황을 배제한 채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된다. 이게 심해지면, 영역 침해를 하면서까지 타인의 관점을 멋대로 해석해도 된다는 근거를 만들게 되며 그보다 낮은 눈치력을 지닌 집단이나 그렇게까지 높은 수준의 눈치를 요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불쾌감을 전달하는걸 정당화시킨다.''' 반대로, 정서 지능이 높은만큼 상대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불쾌하게 만드는지도 알기 때문에 지능적으로 남 기분 망치는게 취미인 경우 스트레스 풀이로서 악용할 수 있다. 정확히는 자기 기준에서 이성적이지 않는 무질서를 혐오하는 것에 가깝다. 세상은 자신이 생각하는 관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대 또한 자신과 일원화되어 있다는 정의관을 진리라 여기며 이는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너(상대)도 내가 불쾌할 것을 예상하고 말을 한 것일테니 나도 너를 불쾌하게 만들더라고 그냥 받아들여라.' 라는 억지도, 본인이 이렇게 해석하도록 만든 상대를 지목하여 책임을 양비하려는 목적[* 가장 흔한 예로는, 피해자 또한 가해자에게 괴롭혀도 될 명분을 제공했으니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본인의 일원화된 제 3자 입장의 1차원적 사고가 '''지극히 상식적인''' 대처법인냥 [[피해자 비난|피해자를 꾸짖는걸 당연하다 여긴다.]]]으로도 적합하기에 알게 모르게 관계망에 광범위한 훼방을 놓으며 눈치 없는 것은 물론 눈치 없는 척을 하는 행위, 이성보다는 감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분위기[* 유흥 목적의 티키타카, 어린아이의 재롱 등과 같이 장례식장에서 유족이 이성을 잃고 울부짖거나 소리지르는것이 단순히 감정에 치우친 사회부적응자라 조롱하는건 본인 이미지 관리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를 애써 외면하기 보단 같이 슬퍼하며 공감해주는 척이라도 하는게 타인이 바라보는 상식인의 기준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에 좋든 싫든 그러한 연기를 하여 상식인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과 실제 선의의 목적임에도 의도를 비꼬는 등 굳이 자신이 신호를 주지 않아도 눈치가 좋은 집단에 오냐오냐 길들여졌을 시에도 이러한 악화일로를 보이게 된다. 보통 무례함과 같이, 위 같은 예시들의 예지라는 부수적인 요인의 연쇄로 쌍방의 공격성을 촉발시켜 말다툼으로 치닫는게 주 패턴이다. >(배달을 시킨 구성원들) >G : "배달 왔다." >H, I : "잘 먹을게." >J : "응? 근데 내껀 어딨어?" >G : "니껀 없어."[* 조직으로 비교하면, G는 파벌의 우두머리, H,I는 플라잉 몽키, J는 G의 우월성을 보충하기 위한 도구이다.] G가 돈을 내는 거라면 해당 예시에서의 법적 문제는 없다. 허나 부당한 상황을 J가 납득할 만한 근거가 과거에 J가 해놓은 실수에 따른 앙심을 위한 보복 중 사회로부터 얻는 이득이 현저히 적은 '''본인이 만든 눈치의 기준'''에 벗어나는게 그 이유라고 한다면, J는 상대방의 딴지에 대항할 권리가 없어지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게 된다.[* 상대가 반박하지 못하는건 설마 이런 걸로 과거를 들먹일 정도로 예민하지는 않음을 앞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딴지를 거는 측은 토론이라 생각하겠지만 강제로 당위성을 해명하는 입장에서는 준비기간도 사회자도 없는 것이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쉽다. 일부 악질은 이 점을 노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끼어들어 주위 사람이 보았을 땐 지적당하는 사람은 '잘못을 했으니 알아서 긴다.' 로 왜곡시켜 꼬리 자르기를 한다.] 또한, 사적영역 내 중간관리직에 대항할 자격은 이미 과거 급조된 'G의 눈치력' 에 불응한 결과로서 사적영역에서 보여준 행적의 여파가 공공영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게 적용될 것이라 확증한 이후일테니 J가 반박해봤자 G의 입장에서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과거 자신 기준에 불응한건 사실이니 교정 가능성도 없다는 논조로 반박해 상대의 묵인을 통한 자신(G)의 근거를 주변인에게 간접적으로 옳았음을 조작하여 조직 내 권력을 유효화할 수 있으며 여기까지 온다면 사실상 피해자 스스로가 구성원에게 이미지를 쇄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영역에 끼어드는건 상대의 과거에 했던 잘못을 빌미로 더는 동의를 묻는 것이 무의미해기에 상대방의 입장을 들어보지 않고도 강제도출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성이 주력인 판단을 할만한 시간이 남아서 반박할 준비도 충분한 G로 인해 그나마 있는 체면을 사리기 위한 J의 무기력으로서 이를 본 3자(H,I)에게, 궤변으로 자만하는것을 더 우월하다 판단하게 만들어 사회 자본을 더럽힌다.[* 한치 앞을 예측하기도 힘든 상황 속 이성만 차리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오지랖은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배부른 상황에서나 할법한 가짜 지성이다. 이들에게는 묻지마 범죄자에게 [[칼부림]] 대상으로 흉기에 찔린 피해자에게 '왜 멀찌감찌 이상신호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는가? 이에 대해 피해자도 안일했던 책임이 있다.' 라고 반문할 정도로 자신이 예상하는대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판단하며 상황을 복기할 여유가 없는 위급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위법성 조각 사유(형법)|그걸 몰라서 찔리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론으로만 땜빵해 사회성이 좋은 척 연기하는 거다.] 따라서 후천적으로 사회성 및 대인 기술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사적영역에서는 사회부적응자로 인식된다.[* 외람이지만, 잘나디 잘난 연예인의 부모가 출현하여 자식 평을 할 때 한심하다며 비꼬는듯한 묘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방송이니까 아웅떠는 것도 있지만, 일반인과 비교하면 아무리 공공영역에서는 우월하더라도 사적영역의 모습으로 각인된 부모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진심이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수동공격적 사고는 아무리 본인이 상식인으로서 자부하는 행위에서도 법치주의로 다룬다면 위법이 되는 경우가 있다.[*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폭행을 정의로서 응징한 가해자의 변명으로 자주 거론되지만 문제는 감정적으로는 분노를 느끼지만 위해를 가하면 위법임을 아는 다수의 상식인의 존재를 망각한다는 점이다.] 위 예시는 상대가 조롱의 의도를 잘 느끼도록 표현한 것으로서 피해자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거나 예민하다고 조작할 수 있을 정도의 치밀한 앞서 가기를 활용한다면 법적은 물론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된다는 해석을 도출하기도 난해할 정도이다. 대표적인 사용처는 수평관계를 연기하는 갑이 포진하기 쉬운 환경이다. >예시 5 >(초면끼리 자기소개를 하는 중) >A : "너 나이가 몇이야?" >B : "빠른년생이라 일단은 XX살 입니다." >A : "근데 어쩌라고?" > >(전자레인지 알림이 울린다) >C : "왜 (음식) 안 꺼내?" >D : "응? 니거 아니야?" >C : "알림 계속 울리잖아." >D : "너가 알아서 꺼낼 줄 알았지." >C : "알림이 다 됐으면 __누군가__라도 꺼내야 하는건 상식 아니야?" > >(남자가 여자를 배려하는 상황) >E : "아, 너(여자)는 쉬고 있어. 오빠가 알아서 할게." >(F 또는 다수에게) >E : "야, 같이 도와." >F : "??... 도와주겠단 말 안 했는데?" >E : "존나 눈치 없네." A와 B의 상황에서는 대화로만 봤을 시 시비걸릴 포인트를 집기가 난해한데, 상대(B)가 간략하게 답하는게 어울리는 상태에서 이러한 자기 공개에 살을 덧붙히는 의도는 서열에 따른 도전의식으로 오해석하여 시비걸어도 된다는 명분을 주게 되어 대화가 꼬이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까 A가 느끼기엔 '너(B)같은 노예가 왜 나랑 말을 길게 이어나가려 하는거지. 주변이 보기에 너랑 나랑 친해지려는 것 같이 보이잖아. 불쾌해.' 이다.] 물론 다짜고짜 서열을 경화시키려는 A의 원인도 있지만 이를 확장하는건, B가 이러한 의도를 앞서 생각하지 않아 부적절한 처세술을 보인 점과 더불어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심증을 대비해 여론 공세에 독박 쓸 것을 예상하여 최소한의 의사를 지키지 않은게 A의 입장에서 문제가 된다면 서열 상 중대한 문제로 변화한다. 여기서 문제라고 하는건 겉보기엔 A의 과민반응이겠지만 이를 결정하는건 그러한 공세에 합세하는 제3자의 과반이 정할 몫이다. 따라서 B는 정말로 순수한 의도로서 수평관계로 전향하려는 사교에 의한 시도이겠지만 상대방에겐 객기로 보이는 것이다. 초면에는 부연설명 할거 없이 필요한 말만 하자. C와 D의 상황은, D에게선 C의 소유물에 간섭해도 된다는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인지라 C가 직접 꺼낼 것이라 판단하였고 이를 C 역시 자신(D)이 음식을 꺼내지 않고 방치하는 의도를 어림잡아 예상할 것이라 앞서 간게 오착이 된 것이다. 사실 지적하기 전에 먼저 와서 끄지 않았고 D에게 대리권을 주지 않은 C의 책임이 크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나의 의도를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도 알 정도로 눈치가 좋다고 과대평가하는게 문제다. 다만, C의 시각에서 D의 행위를 메타화할 수 있는 눈치력을 지녔다면 이 또한 동의받지 않은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인 무대처를 상대(C)가 모를리가 없다고 판단할테고 어찌 보면 C가 주변인에게 [[절도죄|나쁜 의도]]로 소문을 퍼트릴 것을 예상하지 않았을리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물건은 함부로 건드는게 아니다. 되려 신뢰는 한치의 실수로도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존재이니 선택을 보류하는 쪽으로 일단락하여 상대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차악으로서 단절을 무마하려는 선의일 수도 있고 이는 꼭 [[깻잎 논쟁|실재해야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선의로서의 무대처가 외관상의 산파한 사실만을 편향하여 바라보는 제3자에 의한 이기적 개인주의자로 조작 돼 불순한 인간으로 매도당하기 쉽다는것을 간과한거다. 하물며 동의를 구한다는 것도 역으로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자조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 의도가 와전되어 세간에서 흔히 가만히 있으면 될 걸 굳이 일을 키워 수습하지 못 하게 만드는 경우도 이러한 심리적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남들이 보기엔 이 상황에선 이러이러하게 대처하는게 당연할지라도 개인에게는, 영역이 다른 상황이 경합하여 오는 무수한 예외 상황의 공통 대처가 예기치 못하는 상대의 딴지에 인성 부족으로 정보가 와전 돼 조리돌림 당하는게 정확하다. 이는 뉴스 포털, 유튜브 댓글을 보면 이 분야의 진수를 알 수 있다.] E, F의 상황은, 자신(E)의 가치관이 마땅히 해야 할 신념으로 자리잡아서 생겨나는 갈등이다. 본인에게는 이성을 배려한다고 생각하겠지만, F나 그 조직에게는 나 or 우리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상대방 편의에 이용되었단 사실에 불쾌감을 느낀다. 애초에 이 대화는 그 의도를 알았어도 문제라고 여겨질 사회적 격차[* 또는 관례상 맞장구 쳐준건데 이를 사회적 거리가 허물어졌다고 오해해 받아줄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가 있는 형식이므로, 배려받는 여성(들)과 같은 보수를 받는 조건을 추가하면 E가 상사일지라도 당하는 측은, 따지는 것을 '눈치가 없다' 고 치부하는걸 납득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찮아도 E의 의도는 아무리 선의였어도 남이 보기엔 따먹기 위해 노동력을 갈취하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도 하니 공익에 가까웠어도 뒤에선 평판이 추락할 수 있다. 문제는 공익이 아닌 사익으로서 타인에게 억지로 동조해야 할 상황이 의외로 많이 벌어지며 갈라치지 말았어야 할 인간관계에 불똥을 흩뿌려 쓸데없는 논란을 점화해 개개인의 처신과 윤리 수준을 상향 평준화시킴으로서 [[정치적 올바름/비판|무대처로 일관하는 사익에 편승하는 부조리를 제공한다.]] 해당 예시는 대처가 불가능할 정도로 일상과 직장에서 녹아들어있다. 본인의 판단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거란 소망은 상대에겐 사교 또는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조차 앞서 가기로 악용되어 오해의 소지를 낳기에 수직관계 내 친목으로 오는 불관용이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도 주변인으로부터 '좋게 넘어가지 않고 일을 키워 모두를 피곤하게 만든다.' 는 쪽으로 조작될 것임을 미리 눈치채고 알아서 숨 죽이는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눈치챘겠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같이 무궁무진한 상황이 존재하며 필요에 따라 직접 만들 수 있다. 위의 예시들은 이론으로 규합된 극히 일부를 나타낸 것으로서 어떤건 실전으로 터득해야만 알 수 있는 등 별 이유없이 갑질하려고 꼬장부리는 무의미한 신경전에 적절한 완급 조절과 대응법의 분화 역시 구사자의 화법과 성음 파형에 따라서도 천차만별로 나뉘어진다. 앞서 가기를 통한 이중 추론이 무의미해지는 경우는 대표적으로 자발적으로 형성된 내집단이 주도하는 [[직장 내 괴롭힘|괴롭힘]]이다. 닫힌 사회로만 좁히면 본인이 먼저 원인 제공을 했을 공산이 크며 여기서는 이를 의도하지 않았든 사회부적응자처럼 보인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인간은 외관에 지배된다. 못생긴게 이유인 것도 슬프지만 맞을 수 있다.] 두 가지 전부 자신의 잘못이 명백한데 처우에 무심하면 상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의 명예를 조져버릴 심산이기 때문에 지적할 상대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재구성이 가능하다. 드물게 상대의 정신상태가 문제를 만든 경우도 있다. 여기서 사회인이 할 수 있는 대처법이라곤 조직을 나가거나 일적으로만 소통하는 현상 유지이다. 개인이 해결한다면 윤리의식을 지킬게 아니라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본인이 앞서 가기로 상대를 논파하려 들거면 먼저 상대방이 왜 그랬는지 '''이유'''[* 그 이유조차 상대를 납득할만하게 의미를 조작할 수 있으니 본인이 뒷담화나 험담을 퍼트리는데 가담하진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만일 맞다면 이유를 조작해 험담할 때 쓰일 수 있다는걸 상대방도 알기 때문이다.]라도 듣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자신을 배려한 것을 앞서 가기로 오해했던 걸수도 있다. 욕설을 받아들이는 관점 역시 모욕감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만을 기준으로 손절하면 안 된다. 진심으로 걱정 돼 충고하는걸 수 있다.[* 편향이 난립한 커뮤니티처럼 홍보를 위해 개인의 경험을 각색한 정보로 인맥을 걸러내다간 곁에 둬야하는 사람까지 손절하고 만다.] 인간관계는 사소한 오해로 망가진다. 손절 이전에 본인이 먼저 화를 내려놓고 들어준다면 자신의 편을 지킬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