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덤프버전 :
||
NBA의 서부 컨퍼런스 퍼시픽 디비전 소속 농구 팀. 연고지는 로스앤젤레스. 홈구장은 크립토닷컴 아레나. 약자는 LAL.[12]
NBA를 넘어 미국 프로 스포츠 최고의 명문 팀으로, NBA 역사에서 보스턴 셀틱스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양대 산맥. NBA 파이널 우승만 17회로 셀틱스와 공동 1위이며 3-peat을 두 차례 기록한 3팀 중 한 팀이다.[13] 라이벌 팀인 셀틱스의 경우에는 90년대와 00년대 암흑기라도 있었지, 레이커스는 팀 창단 이후 2013년까지 60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못 나간 적이 다섯 번밖에 없다. 그나마 90년대 초중반을 침체기라고도 하는데 그때도 플옵은 나갔다.
사실상 NBA 초기부터 최고의 인기팀이었고,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로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함께 NBA의 인기를 책임지는 구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해외 팬도 많고, 로스앤젤레스라는 글로벌 대도시를 연고로 두고 있어 관중 수익, 미디어 관심도 역시 엄청나다. 이는 선수 영입에도 강점으로 작용하는데, 선수들이 바라는 성적, 대도시 문화, 살기 좋은 날씨, 연예 사업 등을 대거 충족시킬 수 있는 구단이라 예전부터 거물급 선수 영입이 끊기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레이커스처럼 슈퍼스타들을 수월하게 수급한 팀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관련 사례는 수도 없이 많지만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사례만 언급하자면 2018년 FA를 통해 르브론 제임스를 영입한 것을 들 수 있겠다.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NBA의 서부 컨퍼런스 퍼시픽 디비전 소속 농구 팀. 연고지는 로스앤젤레스. 홈구장은 크립토닷컴 아레나. 약자는 LAL.[12]
NBA를 넘어 미국 프로 스포츠 최고의 명문 팀으로, NBA 역사에서 보스턴 셀틱스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양대 산맥. NBA 파이널 우승만 17회로 셀틱스와 공동 1위이며 3-peat을 두 차례 기록한 3팀 중 한 팀이다.[13] 라이벌 팀인 셀틱스의 경우에는 90년대와 00년대 암흑기라도 있었지, 레이커스는 팀 창단 이후 2013년까지 60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못 나간 적이 다섯 번밖에 없다. 그나마 90년대 초중반을 침체기라고도 하는데 그때도 플옵은 나갔다.
사실상 NBA 초기부터 최고의 인기팀이었고,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로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함께 NBA의 인기를 책임지는 구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해외 팬도 많고, 로스앤젤레스라는 글로벌 대도시를 연고로 두고 있어 관중 수익, 미디어 관심도 역시 엄청나다. 이는 선수 영입에도 강점으로 작용하는데, 선수들이 바라는 성적, 대도시 문화, 살기 좋은 날씨, 연예 사업 등을 대거 충족시킬 수 있는 구단이라 예전부터 거물급 선수 영입이 끊기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레이커스처럼 슈퍼스타들을 수월하게 수급한 팀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관련 사례는 수도 없이 많지만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사례만 언급하자면 2018년 FA를 통해 르브론 제임스를 영입한 것을 들 수 있겠다.
2. 역사[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3. 영구결번[편집]
- 6. 빌 러셀(Bill Russell)
전 구단 영구결번.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디르크 노비츠키와 함께 역대 최고의 원클럽맨으로 꼽힌다. 1996년부터 2016년까지 20년 동안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만 뛰면서 레이커스의 황금기를 주도했던 레이커스의 영원한 전설.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한 구단에서 두 개의 번호가 한 선수에게 동시에 영구 결번이 되었다. 그러나, 2020년 1월 26일, 헬리콥터 추락 사고에 휘말려 향년 41세로 세상을 떠났다.[15]
- 13. 윌트 체임벌린(Wilt Chamberlain / 1968~1973)
한 경기 최다 100득점 신기록으로 설명되는 코트 위의 괴물. NBA 역사상 최고의 센터 중 한 명으로, 레이커스의 오랜 콩라인 전설을 깨뜨린 인물이다. 다만 워리어스&세븐티식서스 프랜차이즈에서 더 오래 뛰며 전성기를 보냈던 만큼 필라델피아 레전드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16]
- 16. 파우 가솔(Pau Gasol / 2008~2014)
6시즌 동안 팀을 세컨팀 1회(2011) 서드팀 2회(2009, 2010), 올스타 3회(2009~2011)를 기록하며 두 번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 22. 엘진 베일러(Elgin Baylor / 1958~1971)
콩라인이라는 것만 빼면, 역대 최고의 포워드 중 한 명으로 레이커스의 1960년대를 이끈 득점 기계. 파이널 한 경기 최다 득점(61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25. 게일 굿리치(Gail Goodrich / 1965~1968, 1970~1976)
1970년대 레이커스를 진두지휘했던 명가드. 제리 웨스트와 당대 최고의 백코트 듀오를 형성했으며, 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영구결번 중 유일한 로스앤젤레스 출신이다.
- 32. 매직 존슨(Magic Johnson / 1979~1991, 1996)
MJ 이전의 MJ. 쇼타임 레이커스를 진두지휘했던 다재다능한 1980년대 농구의 아이콘이자 역대 최고의 포인트 가드.
- 33. 카림 압둘자바(Kareem Abdul-Jabbar / 1975~1989)
통산 38,387득점으로 역대 누적 득점 2위. 역대 최고의 센터와 선수를 논하는 데 빠지지 않는 선수.
- 34. 샤킬 오닐(Shaquille O'neal / 1996~2004)
2000~2002년 레이커스의 3연패를 이끈 역대 최고의 센터 중 하나.
- 42. 제임스 워디(James Worthy / 1982~1994)
"Big Game James". 19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 시절 스몰 포워드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다. 같이 뛰었던 압둘자바나 매직 존슨이 엄청난 레전드라 살짝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최고의 포워드 중 한 명이다.
- 44. 제리 웨스트(Jerry West / 1960~1974)
"Mr. Clutch". 공격과 수비에 모두 능했던 당대 최고의 듀얼 가드[17] 로 현역 시절 마이클 조던이 1:1로 대결해보고 싶은 상대로 꼽았던 선수이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레이커스의 전성 시대에 크게 기여했다. 은퇴 후 레이커스 단장으로 있으면서 샤킬 오닐을 FA로 붙잡고, 당시 주전 센터였던 블라디 디박을 내주면서까지 코비 브라이언트를 드래프트에서 선발하면서[18] 00년대 초반 쓰리핏 레이커스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멤피스 그리즐리스로 옮겨가서 밴쿠버 시절부터 약체였던 팀을 잠시나마 서부의 강호로 만들었다.[19] 참고로 이 사람은 NBA 로고(드리블하는 모습)의 모델이다. 그래서 요즘 새로 붙은 별명은 "The Logo".[20]
- 52. 자말 윌키스(Jamaal Wilkes / 1977~1985)
제임스 워디 이전의 레이커스의 주전 스몰 포워드로 레이커스의 세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 99. 조지 마이칸(George Mikan): 역대 최초의 '압도적인 빅맨'으로 MR. BASKETBALL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열쇠 모양으로 'key'라고 불리던 페인트존이 현재 형태로 확대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 외에 마이칸이 바꾸게 한 규칙이 여러 개 있는데 대표적인 게 골텐딩. 압도적인 사이즈로 마치 골키퍼처럼 슛을 쓱쓱 걷어내자 신설한 규칙이다. 또한 24초 샷 클락의 도입에도 영향을 줬다. 레이커스를 상대하던 포트웨인 피스톤즈가 마이칸을 두려워해 끝도 없이 시간을 끌어 19-18이란 점수차로 승리하는 허접한 경기가 나오자[21] 24초 샷 클락이 도입되었다.
레이커스 구단이 LA로 연고지를 이전한 이후 영구결번이 해제되었다가 2022년 10월 30일에 드디어 영구결번 되었다. #
- Microphone. 칙 헌(Chick Hearn / 1961~2002)
1965년부터 2002년까지 37년간 로스앤젤레스 지역 TV와 라디오의 레이커스 경기 중계를 담당한 전설적 아나운서로 현란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명성을 날렸다. 매직 존슨 등 70~80년대 레이커스 레전드들의 각종 커리어 하이라이트 동영상에서 이들의 플레이를 중계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거의 이분이라고 보면 된다. '슬램덩크', '에어볼', '노룩패스', '트리플 더블' 같은 농구에서 매우 많이 들을 수 있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칙 헌이고 Mr. 클러치 제리 웨스트 등의 별명도 칙 헌이 지었다.[22]
리그 라이벌인 보스턴 셀틱스에 비하면 영구결번의 기준이 높아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선수가 1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셀틱스는 단지 오래 활동했을 뿐 큰 활약이 없었던 선수나 시즌 중 갑자기 사망한 선수들까지 애도 차원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바람에 영구결번이 20개가 넘는다.
셀틱스나 다른 구단이었다면 마이클 쿠퍼(5회 우승), 바이런 스캇(3회 우승), 놈 닉슨(2회 우승) 등은 영구 결번을 해줬을 거라는 예측이 많다. 특히 쿠퍼의 경우 말년에 한 시즌 해외로 나간 것을 제외하면 레이커스에서만 12시즌을 활약하며 5회 우승에 공헌한 원 클럽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로스앤젤레스 출생의 홈타운 보이임은 물론 DPOY, 수많은 디펜시브 퍼스트~세컨 팀을 수상한 선수. 사실 이 정도면 영구결번이 아닌 게 너무도 의아할 정도의 조건이다 보니 "명전에 가지 못 한 선수는 절대 레이커스의 영구결번이 될 수 없다."라는 공식의 대표 격으로 남아 있다.
쿠퍼와 반대되는 사례가 바로 자말 윌키스. 쿠퍼에 비해 근속 기간이 짧으며 커리어 내내 올스타 3회 디펜시브 세컨 팀 2회 정도의 수상이력, 15000점을 못넘는 누적 등 흔히 말하는 '명전급'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선수였고, 때문에 은퇴 이후 30년 가까이 레이커스 영구결번과도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우승 이력이 많아 명전 입성에 있어선 동급 선수들에 비해 상당히 유리한 부분이 있고, 대학 무대인 NCAA에서 스타 플레이어로서 두 번 우승을 거머쥔 바가 있어[23] 은퇴 후 긴 시간이 흘러 2012년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아니나 다를까 레이커스는 그해에 윌키스를 영구결번으로 인정한다.
이렇듯 영결의 기준이 지극히 까다로우며 쿠퍼처럼 좀 너무하다 싶은 사례도 존재하지만, 특히나 레이커스가 비판받던 부분은 예전 연고지인 미니애폴리스 시절의 영구결번은 일괄적으로 리셋하고 기념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지 마이칸. 마이칸의 등번호 99번은 원래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의 영구결번이었지만, 레이커스가 미니애폴리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지를 변경한 이후 미니애폴리스 시절 선수들에 대해선 일괄적으로 영구결번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며 마이칸의 결번도 풀리고 말았다. 이렇게 미니애폴리스 시절의 우승 역사와 기록들은 받아들이면서 당시 선수들에 대한 존중은 해주지 않는다고 비판받곤 하나, 당시 미니애폴리스 레전드들이 LA 레이커스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선뜻 결번하기 어려웠던 측면도 있으니 판단은 알아서.
영구결번까지는 아니지만 현재 미니애폴리스에 연고를 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기념 배너로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시기의 선수들을 기념하고 있으며, 레이커스도 역사를 존중하자는 의견을 수렴한 건지 팀버울브스와 같은 형태의 배너로 6명의 미니애폴리스 영구결번들을 기념하게 되었다. 'NBA 명예의 전당 입성자'라고 이름 붙여 기념하고 있는데 이는 미니애폴리스 시절 6명의 영구결번들은 전원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기 때문. 물론 아너드 넘버가 아닌 정식 영구결번으로 대우하라는 지적이 없지는 않지만, 이에 대항하는 레이커스 옹호파들은 "남의 동네 전설을 굳이?" 하면서 맞선다. 2022년 10월 30일에 드디어 조지 마이칸 99번 영구 결번식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
현역 중에선 르브론 제임스가 레이커스 영구결번으로 유력하다. 르브론의 경우 막연하게 리핏 이상 하지 않으면 영구결번은 어렵지 않느냐고 오해하는 팬들이 적지 않은데, 레이커스 결번이 까다로운 궁극적인 이유는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인 만큼 진즉에 명전 입성이 확정되다시피 한 르브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과거 레이커스에서 5시즌 1× Champion 1× Finals MVP로 영구결번이 된 체임벌린의 사례를 보면, 이미 레이커스에서 체임벌린보다 길게 활약하며 NBA 우승 1회, 파이널 MVP 1회, 어시스트 리더 1회, NBA 퍼스트 팀 1회(이상 2020), 세컨팀 1회(2021), 서드팀 3회(2019, 2022, 2023), 올스타 5회(2019~2023)를 기록한 르브론이 배너에 오르지 않기란 쉽지 않다. 다만 중간에 번호를 23번에서 6번으로 변경하여 어느 번호가 영구 결번이 될지는 불분명. 그리고 6번은 빌 러셀 타계 후 전 구단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 선수가 두 번호로 영구결번이 된 것은 코비 브라이언트가 최초라 그것도 쉽지 않다.[24][25]
물론 르브론이 영구결번이 유력한 것과 별개로 명예의 전당 헌액만이 레이커스 영구결번의 조건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일단 81-82 시즌부터 84-85시즌까지 레이커스 소속으로 총 4시즌을 뛰며 두 차례 우승을 함께 한 밥 맥아두의 경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도 영구결번이 되지 않았다.[26] 또한 2019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던 블라디 디박은 8시즌이나 레이커스에서 뛰었음에도 영구결번 얘기가 전혀 없다. 선수로서 커리어는 위에 언급된 자말 윌크스와 큰 차이가 없지만 레이커스에서 우승 이력이 없고, 커리어 중 한 번뿐인 올스타 선정 역시 타 구단에서의 이력이기 때문에 명전 여부를 떠나 랄의 영구결번으로는 언급조차 전혀 안 되는 케이스.
영구결번자를 보면 로스엔젤레스 시절 최초의 슈퍼스타라 영결 안 해주는 게 절대 불가능한 베일러를 제외하면[27] 코비 브라이언트(5회 우승), 윌트 체임벌린(레이커스에서 1회 우승), 게일 굿리치(1회 우승), 매직 존슨(5회 우승), 카림 압둘자바(레이커스에서 5회 우승), 샤킬 오닐(레이커스에서 3회 우승), 제임스 워디(3회 우승), 제리 웨스트(1회 우승), 자말 윌크스(레이커스에서 3회 우승) 등 영구결번자들은 '레이커스 소속으로서' 개인의 수상 및 명예와 우승 이력을 가지고 있다. 가장 어워드가 달리는 윌크스조차 올스타 3회이다.
즉, 위 사항을 전부 감안해 보면 레이커스의 영구결번은,
(1) 상기하였듯이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시절 레전드들은 영구결번이 아닌 별도의 아너드 넘버로 분류.[28]
(2) 명예의 전당 입성자[29] , 혹은 당장은 명전 멤버가 아니더리도 훗날 확실하게 헌액이 될 만한[30] 실력과 업적을 달성.[31]
(3) 팀의 우승에 공헌하여 챔피언십 이력을 보유.[32]
(4) '레이커스 소속으로서' 굵직한 족적과 명예(MVP, 올스타, All-NBA Team, Finals MVP 등)를 획득.[33][34]
(5) 일정 수준의 근속 기간.[35]
'상기한 조건들을 모두 만족한 선수'라고 정리할 수 있다.
3.1.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시절 결번[편집]
- 17. 짐 폴라드(Jim Pollard): 1993년 1월 캘리포니아 주 스톡턴에서 70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통산 5762포인트, 2487리바운드, 1417어시스트, NBA 올스타 4회(1951~52,1954~55).
- 19. 번 미켈슨(Vern Mikkelsen): 2013년 미네소타 주 와이자타에서 85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통산 10063포인트, 5940리바운드, 1915어시스트, NBA 올스타 6회(1951~53,1955~57).
- 22. 슬레이터 마틴(Slater Martin): 2012년 10월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타계하였다. 통산 7337포인트, 2302리바운드, 3160어시스트, NBA 7년 연속 올스타(1953~59).
- 34. 클라이드 로벨레테(Clyde Lovellette): 2016년 3월 인디애나 주 노스 맨체스터에서 86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통산 11947포인트, 6663리바운드, 1165어시스트, NBA 올스타 4회(1956~57, 1960~61).
- 99. 조지 마이칸(George Mikan): 역대 최초의 '압도적인 빅맨'으로 MR. BASKETBALL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열쇠 모양으로 'key'라고 불리던 페인트존이 현재 형태로 확대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 외에 마이칸이 바꾸게 한 규칙이 여러 개 있는데 대표적인 게 골텐딩. 압도적인 사이즈로 마치 골키퍼처럼 슛을 쓱쓱 걷어내자 신설한 규칙이다. 또한 24초 샷 클락의 도입에도 영향을 줬다. 레이커스를 상대하던 포트웨인 피스톤즈가 마이칸을 두려워해 끝도 없이 시간을 끌어 19-18이란 점수차로 승리하는 허접한 경기가 나오자[36] 24초 샷 클락이 도입되었다.
- 존 쿤들라(John Kundla): 미니애폴리스 시절의 감독. 2017년 7월 23일 미니애폴리스에서 10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NBL 우승 1회(1948), NBA 우승 5회(1949~50, 195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