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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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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9대 문교부 장관
김영식
金永植 | Kim Young-sik
파일:p5955.jpg
출생1930년 5월 4일
전라남도 제주도
사망2022년 7월 29일 (향년 92세)
본관김해 김씨
남주(南州)
재임기간제29대 문교부 장관
1988년 2월 25일 ~ 1988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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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홍창숙
자녀슬하 2남 1녀
학력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 / 학사)
밴더빌트 대학교 (교육행정학 / 석사)
밴더빌트 대학교 (교육행정학 / 박사)
약력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제29대 문교부장관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제5·6대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이사장
제주국제협의회 회장
제22대 교육학회장
제12대 한국 유네스코 사무총장
미국밴더빌트大 객원교수
제주대학 서울지역후원회장
상훈화랑무공훈장
청조근정훈장
국민훈장 모란장

1. 개요
2. 생애
3. 저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교육인으로, 제29대 문교부장관, 제5,6대 한국교육개발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 생애[편집]


1930년 5월 4일 전라남도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재학 중 6.25 전쟁에 참전하여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조지 피바디 대학교(현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행정학 석사 및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모교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1968년부터 1982년까지 교수를 지냈다.

문교부에서 교육정책실장과 장학편수실장·교육개혁 심의회위원·교육개발원장을 지내면서 정계에 진출하였다. 1988년 2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간 제29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하였다.[1]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전신) 출범으로 당국과 교사 간 대립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립학교장 임명 승인 취소권 폐지, 국·사립대학교 등록금 자율화, 중등학교 보충수업에 외부 인사 수업 허용 등 정책을 주도했다.[2]

2022년 7월 29일 오전 6시, 분당 보바스기념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3. 저서[편집]


  • 「교육제도의 이상과 현실」
  • 「교육의 우수성과 평등」
  • 「교육행정학」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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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원식국무총리와 상당히 비슷한 커리어를 걸어왔다. 정원식이 김영식의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학사 - 조지피바디대학교 석박사 선배이며, 둘 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와 문교부장관을 지냈었다. 심지어 김영식이 정원식의 문교부장관 전임자였다. 차이점이라면 김영식은 문교부장관이 정치 경력의 전부였으나 정원식은 국무총리를 거쳐 서울특별시장 선거까지 출마한 거물급 정치인이었다.[2] 후일 노 대통령으로부터 '개인의 존엄성 교육, 중학교 무상 의무교육 추진, 전교협과 민중교육론 대처 및 불법화 조치'를 하라는 지시를 받고 가슴이 답답해졌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