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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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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신라의 상대등이자 추존 국왕.
혜충태자 김인겸의 4남이며, 민애왕, 문목부인, 정교부인, 조명부인 4남매의 아버지이다. 아내는 여동생[4] 인 귀보부인이다.
봉암사지증대사탑비에 의하면 시호는 선강태자(宣康太子)이며, 흥덕왕(제42대)이 즉위하자 태자로서 감무를 보았다고 했다. 다만 822년 사망설을 생각하면 그것은 아니게 된다. 만약 835년 사망설이 맞다면 그는 흥덕왕 다음 왕위 계승자로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된다. 무엇이 되든 형인 흥덕왕보다도 일찍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흥덕왕 사후 그의 아들인 김명을 배제하고 김제륭과 김균정 사이에서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최종적으로 김제륭이 희강왕(제43대)으로 등극했다.
《삼국사기》 <본기>에는 제41대 헌덕왕 13년인 821년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듬해인 822년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데 참여하는 것은 물론 <녹진 열전>에서 822년 상대등에 임명된 것으로 나온다. 《삼국사절요》에서는 난이 끝난 822년 4월, 사망했다고 했는데 이는 상대등에 임명된 직후 병을 앓았다는 설명과 일치하므로 이게 옳은 것으로 보인다. 녹진의 말을 듣고 시름시름 앓던 병을 떨쳐내긴 했으나 결국 회광반조였던 모양.
2. 신라 하대 왕위 쟁탈전의 중심[편집]
특이점이라면 이 김충공의 자손들이 신라 하대 왕위 쟁탈전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 있다. 세 딸들이 김예영의 자손이 되는 희강왕과 김균정의 부인들로 들어가게 된다. 이는 김인겸계 왕실이 김예영계와 손을 잡으면서 혼인을 통해 돈독한 관계를 맺고자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래서 김예영의 장남 김헌정의 아들인 희강왕 김제륭이 혜충태자 김인겸의 양자가 되어 들어오게 되고, 희강왕에게 김충공의 딸 한 명이, 그리고 김예영의 차남인 김균정에게는 김충공의 딸 두 명이 동시에 시집을 가면서 두 집안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물론 왕위라는 것 하나에 그게 다 어그러저버린 것이지만...
또한 김충공의 아들 김명도 역시 이 왕위 쟁탈전에 끼어들어가서 기어코 왕위에 오르지만(제44대 민애왕) 얼마 못 가 죽임을 당하게 되면서 그의 직계는 사실상 끊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