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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우크라이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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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3. 중국과의 관계
3.1. 문화 교류
3.2. 대사관
4. 대만과의 관계
4.1. 문화 교류
4.2. 대표부
5. 관련 기사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중국우크라이나의 외교에 대한 문서이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 이후로 중국과 수교하면서 양국간 교류가 많아지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우크라이나인들과 중국인들의 교류 및 접촉은 중세 몽골 제국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1330년 원나라 투크 테무르 시절 연경으로 파견된 루스인들로 따로 케식 부대를 편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중세 말 원나라의 한족 민족주의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회회인들은 코가 무척 길고 털이 덥수룩하고, 킵차크 칸국에서 온 사람들은 머리색이 노랗고 눈 색이 파랗기 때문이 괴이한 외양으로 한족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중화주의적 사료의 옥시덴탈리즘은 제쳐두고라도 킵차크 칸국에 종속된 슬라브인들이 중국으로 다시 파견되어 정착한 경우가 적지 않았던 듯 하다.

이후 루스 차르국(제정 러시아의 전신)이 시베리아를 정복, 개척하여 시베리아를 넘어 청나라와 접촉한 이후 마찰을 빚게 된다. 당시 코사크들은 루스 차르국의 보조부대 및 탐험대로 활약하던 상황으로 이들 중 일부가 청나라 측의 포로로 붙잡혔다. 그 외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국경을 정했고 국경에서 청으로 넘어오는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도 있었다. 다만 이들 중에 러시아화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이들은 러시아인과 함께 중국에 동화되어 '아라사족'이라고 불렸다. 이는 제정 러시아, 소련 때도 마찬가지였다.

1898년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당시 청나라 영토였던 하얼빈에 설치된 것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제국 각지에서 하얼빈 철도를 중심으로 이주 정착 혹은 파견되었는데, 이 가운데 우크라이나인들이 적지 않았다. 하얼빈에 체류한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정교회 성당과 별개의 우크라이나어로 예배를 보는 정교회 성당을 건설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제정 러시아러시아 혁명으로 무너지고 소련은 만주 근처에 유대인 자치주를 건설하였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일대의 유대인 인구 일부가 유대인 자치주로 이주하였는데, 이들은 주변에 침엽수림에서 베어낸 나무를 가지고 가내수공업으로 가구를 만들어 하얼빈에 있는 러시아인들을 통해 수출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한다. 이렇듯 한 때 하얼빈을 중심으로 나름 번창했던 우크라이나인 공동체는 중일전쟁 등으로 흔적만 남겨놓고 소멸하였다. 중일전쟁 와중에 일본이 하얼빈을 장악하고 하얼빈의 러시아계나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을 탄압하면서, 상당수의 우크라이나계 이민자들 역시 상하이 항구로 넘어가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 재차 피신하였고, 하얼빈에 잔류를 선택한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은 소련의 만주 침공 이후 다시 소련으로 끌려갔다.


3. 중국과의 관계[편집]


본격적 관계는 1992년,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가 독립된 이후이다. 1992년에는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키이우베이징은 자매 도시이기도 하다.

2013년에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비핵국가에 대한 안전보장을 하기로 합의했다.#[1]

2015년에 돈바스 전쟁과 관련해서 주 중국 우크라이나 대사가 중국이 원한다면 중국의 평화유지군이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중국이 친러국가이고 러시아는 친중국가이니 우크라이나와 중국도 사이가 나쁘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2] 적어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지는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 시도를 불편해 하고,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이 대만을 병합하건 말건 관심 없어하는 상황 속에서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우크라이나 보건부에서 스푸트니크 V 백신은 절대 사용도 인정도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면서 대신 스푸트니크 V 백신보다 그닥 싸지도 않으면서 성능이 훨씬 더 안 좋은 게 확실한 중국산 백신을 수입한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3]

2021년에 우크라이나가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며 신장 지역 인권상황 성명에서 빠진 것에 대해 중국 측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2021년 7월 13일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를 하여 양국의 협력방안을 논의 하였다.#[4]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관련 러시아 침공 규탄 결의를 위해 UN 안보리가 소집되었으나 예상대로 결의안은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 중국이 기권하여 기각되었다.#[5]

중국측은 우크라이나 내 중국인들의 철수를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 침공 전까지는 의외로 중국에 매우 우호적이었고 국민들도 중국인과 국제결혼, 중국유학 등 친중 성향이 우세하였으나 전쟁 이후 중국의 태도로 인하여 우크라이나 내에서 반중 정서가 고조되었다.#

일부 중국인들, 중국인 교수들 사이에서도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중국 정부는 비판의 목소리들을 검열하였다.

3월 1일에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중국 측에 전쟁을 중단하도록 설득을 요청했다.#

3월 7일에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을 할 의사를 밝혔다.#

3월 9일에 중국 적십자사가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우크라이나 적십자사에 10억원 상당의 구호 물품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3월 19일에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중국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비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3월 21일에 중국측이 우크라이나에 구호물품을 추가로 보내기로 했다.#

4월 4일에 왕이 외교부장은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화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5월 1일에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은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를 막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것이라고 밝혔다.#

6월 15일에 시진핑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협력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농지 9%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월 4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화상 인터뷰에서 중국과 대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은 매우 강력한 국가라며 러시아에 정치적, 경제적 압박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

9월 23일, 왕이 외교부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2023년 1월 17일 우크라이나의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키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르줄라 폰데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알랭 베르세 스위스 대통령과 함께 시진핑에게도 보내는 서한을 가지고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여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중국대표단에게 전달하였다. 이 서한에는 젤렌스키가 시진핑에게 양자회담을 제안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중국 측은 러시아, 이란과 공조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재자도 맡을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2월 24일, 중국 정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조기에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만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면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꿀 힘이 있지만, 신중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3월 28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AP통신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할 준비가 됐다며 시 주석을 우크라이나에 초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찾은 시 주석을 환대하며 정상회담을 나눴으나 중국의 무기 지원을 약속받지 못한 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중국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관련 각 측과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정상 간 소통에 대해선 "제공할 수 있는 소식이 없다"고 답하며 원론적인 입장만 유지했다.#

4월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처음으로 통화를 나눴다. 시 주석은 대화와 협상이 실행 가능한 유일한 출구라는 점을 강조했으며, 중국 정부의 유라시아업무 특별대표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하여 중재 외교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5월 16일, 리후이 특사가 우크라이나 등 유럽 5개국을 순방하기 시작했다.#

3.1. 문화 교류[편집]


중국과 우크라이나는 공식 수교를 하면서 문화 교류도 일부 있다. 전술했다시피 우크라이나도 중국과 교류가 있는 편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중국어를 배우는 경우가 있다. 우크라이나인 유학생들이 중국으로 유학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중국인의 우크라이나 유학도 많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여성 모델들은 평균적으로 3개월[6] 기준 5만 위안(한화 약 90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인민망 영어 뉴스 3개월 일하고 900만 원이면 나름 많아보이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중국으로 오가는 항공료 등등은 모델이 직접 내야 하므로 그렇게 엄청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3.2. 대사관[편집]


키이우시에 주 우크라이나 중국 대사관, 베이징시에 주 중국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존재한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상황을 예의주시한다고 밝혔고 대사관 철수에는 선을 그었다.#


4. 대만과의 관계[편집]


대만은 1990년대에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붕괴하면서 무실외교를 표방하던 리덩후이의 외교정책 일환으로 신생 우크라이나와의 정식 외교관계 수립을 시도하였다. 당시 대만측서는 외교관계 수립의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경제원조 의사를 표방하였고 이를 우크라이나 의원들 및 경제학자 일부가 지지하며 이를 수용하자고 주장하였으나 중국측에서 우크라이나와 수교하면서 이를 견제하였다. 이후에도 여러번 시도되었던 수교 노력은 실패하게 되었다.

2022년 1월 28일에 차이잉원 총통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대만에 비유하며 동질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대만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시위를 진행했다.# 대만산 드론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중이라고 대만 언론들이 보도했다.#

2022년 10월. 대만이 우크라이나 재건에 5천600만달러(약 792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11월 6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가했던 대만인이 사망한 사실이 알려졌다.#

4.1. 문화 교류[편집]


러시아-대만 관계처럼 양측간에 문화적으로 다양한 교류, 왕래, 행사 등이 활발하다. 서로 관광객들도 오고 가는 편이며, 대만에 사는 우크라이나인들도 있다. 소수지만, 우크라이나인 유학생들이 대만으로 오는 경우가 있다.

대만에 체류하는 대표적인 우크라이나인으로는 여성 모델이자 배우인 '라리사 안젤라 바쿠로바(Larisa Angela Bakurova, Лариса Бакурова, 李瑞莎)[7]'인스타그램 계정가 있다.


4.2. 대표부[편집]


상호 간에 대표부는 설치하지 않았다. 대만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대표부가 우크라이나를 관할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부터 대만은 러시아 모스크바 대표부와 폴란드 바르샤바 대표부 우크라이나를 공동 관할하고 있다.#

5. 관련 기사[편집]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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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 아이러니하게도, 9년후 러시아의 침략전쟁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에 발목을 잡게 됐다(...) 러시아는 핵폭격을 해서라도 우크라이나를 완전 장악하려 하는데, 그랬다가는 중국의 입장은 난처해진다.[2] 비슷한 예로 중국과 사이 나쁜 인도가 친중국가인 러시아와 우호적인것으로 들 수 있다.[3] 우크라이나라고 중국산 백신이 성능이 안 좋은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다르게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백신을 기부하는 데 소극적이었다.#[4] 가뜩이나 미국, NATO와 군사적 협력 때문에 러시아와의 긴장관계가 팽팽해지는 마당에 이제는 중국과 경제적 협력을 논의하였으니 러시아 입장으로서는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5]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중국이 기권했다는 것으로 기권은 반대와 같은 효력을 지니지 못한다. 예시로 한국전쟁 유엔군 파병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중화민국(당시엔 중공 대신에 거부권을 가졌다.)은 찬성, 소련은 기권했다. 이러한 이유는 아무래도 러시아의 침략명분이 너무 없어서 차마 러시아 편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미국 편은 들어줄 수 없으니 기권을 들어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6] 보통 모델 활동으로 비자를 받는 경우 3개월 단위로 나온다.[7] 1985년 2월 21일생으로 2012년 대만의 한족과 결혼하여 2016년에 딸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