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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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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아, 렘브란트, 1661~1669년, 262 × 205cm, 에르미타주 박물관


1. 개요
2. 줄거리
3. 원문
4. 교훈
5. 인용



1. 개요[편집]


루가의 복음서 15장 11-32절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

예수가 죄인과 세리를 모아 설교하자 바리사이들이 못마땅하며 '저 자는 죄인을 반기며 그들과 식사를 한다'고 말하자, '잃은 양을 찾은 목자'와 '동전을 찾은 여인' 이야기와 함께 한 이야기다.

번역에 따라 탕아가 탕자로 표기되기도 하며, 가톨릭에서는 "되찾은 아들"이라고도 한다.


2. 줄거리[편집]


어느 작은 마을에 한 부자가 두 아들을 두었다. 부자의 장남은 성실하고 부지런한데다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청년이었다. 반면 차남은 제멋대로여서 한 번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을 달라고 했다. 이에 아버지는 두 아들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각각 나누어주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장남은 성실히 일하여 아버지의 재산을 더욱 늘린 반면 차남은 다른 고장으로 가서 그 곳에 마구 재산을 탕진해 결국 알거지가 되었다. 게다가 그가 온 지역이 심한 흉년으로 인해 모두가 어려워 차남은 결국 돼지치기로 일을 해야 했지만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조차 먹을 수 없었다. 몰래 먹었다간 돼지 주인이 가만 있을까...

결국 차남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끝에 힘없이 고향에 돌아갔지만 차마 아버지에게 돌아왔다 얘기할 용기가 없었다.

그때, 아버지가 아들이 오는 걸 보고 서둘러 달려와 아들을 안아주었다. 차남은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며 "저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도 없는 놈입니다."[1]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너무 슬퍼하지도, 자책하지도 말거라. 누가 뭐라 하든, 넌 나의 소중한 아들이란다."라며 아들을 달래주었다.

그 다음 서둘러 하인들에게 "이 아이를 깨끗하게 씻겨주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힌 뒤 가장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자. 내 아들이 돌아온 기념잔치를 하세."라고 얘기했다. 하인들은 주인어른의 명을 받아들여 가장 통통한 송아지를 잡고 둘째 아들을 깨끗하게 씻긴 뒤 가장 좋은 비단옷을 입혀주었다.

한참 잔치가 무르익던 중, 밭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온 장남이 집이 떠들썩한 걸 보고 하인에게 물어보았다. 장남이 "집 안에 무슨 일이 있길래 이렇게 떠들썩한 것인가?"라고 하인에게 물어보자 하인은 "아참, 큰 도련님께선 밭일 하시느라 모르시겠군요. 타향에 가셨던 작은 도련님이 돌아오셨다고 주인어른께서 잔치를 벌이셨답니다."라고 답했다.

그 얘기를 듣자 장남은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으나 아버지는 자신과 친구들이 일을 잠깐 쉬며 즐길 작은 새끼양도 허락하지 않았는데 비해 왜 말썽많은 동생에게는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여는 건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장남이 서운함이 폭발해 집에 들어오지 않자 아버지는 걱정돼서 밖에 나갔다. 장남에게 같이 어울리자고 얘기하자 장남은 "아버지, 전 그동안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아버진 저와 친구들이 쉬며 즐길 작은 새끼양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말썽 많은 아우 녀석이 재산을 탕진 하고 왔는데도 아버진 그 애에게는 가장 귀한 걸 주시고 살찐 송아지도 잡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오라, 그동안의 일로 인해 네가 많이 서운했나 보구나. 허나 얘야, 너무 속상해 마렴. 넌 그동안 내 곁에 지내며 날 도와주었으니 이 모든 게 곧 너의 것이란다. 허나 네 아우는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왔잖니. 그렇기에 너무 기뻐서 잔치를 벌이는 것이란다."라며 달래주었다.[2]


3. 원문[편집]


11.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12.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으로 돌아 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 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 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14.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15. 하는 수 없이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하고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 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7. 그제야 제 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18. 어서 아버지께 돌아 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 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20.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 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 가 아들의 목을 끌어 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25.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 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26.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27. 하인이 아우님이 돌아 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 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 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29.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30.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 버린 동생이 돌아 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31.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32.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루가의 복음서 15장 11~32절 (공동번역 성서)



4. 교훈[편집]


기독교에서는 대부분 회개의 중요성과 죄 지은 사람에게도 내려지는 하느님의 조건없는 무한한 사랑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보통 이렇게 이 이야기를 '죄를 지었으나 회개한 자(동생)'에 중점을 두고 해석한다. 다만 가끔 가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이 집을 떠나 방황하다 돌아온 동생'과 '그저 의무감에 집을 지키다가, 회개한 동생이 찾아오니 이에 불만을 표하는 형'을 대비, 죄인을 영접하고 그들을 반갑게 맞아들이는 예수를 아버지로, 이를 비판하는 바리사이들을 형에 비유해 꾸짖는 내용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정주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은 이 교훈이 뭘 의미하는지가 의아할 것이다. 일단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자기 몫을 떼어달라는 이야기부터가 이해가 안될 것이다. 그래서 둘째를 매우 나쁜 사람처럼 인식하는데, 사실 둘째는 받아야할 것을 받아나간 것이고, 나가는게 본인 의지로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 그래야하는 것. 하지만 성경에는 분명히 둘째 아들이 방탕하게 생활했다는 언급이 있으므로 둘째가 잘못한 것을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다.

이 설화를 사실 예수의 의도 그대로 이해하려면, 유대인들의 생활사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예수도 생전에는 유대교인이었으므로, 유대교의 유목민적 특성이 예수의 발언에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유목민들은 몰빵 상속을 하지 않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 상속을 하지도 않았다. 데리고다니는 무리의 수가 크면 클수록, 초지와 물이 더 빨리 황폐화되고, 전염병에 매우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같은 유목 문화였던 몽골의 경우에는 아들이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시킨 후 그 부부에게 가축을 나눠주고 분가시켰고, 그렇게 장자부터 독립해나가다가 막내만 남아있다가 부모를 봉양하고 부모가 죽으면 모든 것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유대인은 일정 시점까지는 유지한 뒤 동시에 나눠주는 방식을 택했다. 따라서 이 설화는 탕자의 만행만 빼놓고 보면 이렇게 가축을 나눠받고 나간 형제가 적당한 초지나 물을 못찾거나 전염병에 모든 것을 잃었을때 아버지에게 빈손으로 돌아와도 아버지가 본인 재산으로 도와주는걸 고깝게 보지말라는 교훈이라 생각할 수 있다.

보통 망한 형제가 아버지에게 또 돈받아나갈때 대부분의 형제들이 그런 기분이 들테지만 혹시 형제가 무언가 큰 실수를 해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형제 자신이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실패하더라도, "용사는 화살 한방에, 부자는 한파 한번에 망한다."라는 말이 돌만큼 언제 가축들이 떼죽음 당할지 모르는 유목민의 생활상, 사실 누구라도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기에 형제가 어려움에 처해있으면 생활을 도와주고, 가축을 다시 떼어주라는 상호부조를 권하는 비유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놓지지 말아야 할 내용은 돈을 마음대로 사용하며, 창녀들에게 빠져 살았다는 둘째의 선택이다. 그렇게 가진 것을 허비하여 망한 것이기 때문에 유목민의 일반적인 특성을 이 유비 가운데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될 수 있다. 결국, 고생을 하게 된 원인과 그에 따른 책임은 바로 탕자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또한, 고생하며 겪은 것이 하필 돼지치기였는데, 레위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은 돼지를 극도로 혐오했다. 돼지와 양은 농경민족의 가축과 유목민족의 가축이라는 상반된 차이가 있었고, 그래서 더 혐오했던 것이었는데 그게 그대로 기록에 남아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재미있는 건 이 당시의 유대인들은 정주민족이었다. 그러나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나오는 농경, 곡물제사 혐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등에 나오는 정주민족의 산물인 대도시 혐오, 목자와 새끼양 비유의 반복적인 언급과 희생제물 나열, 정주민족의 가축인 돼지 혐오를 담은 레위기등, 유목민 사회에서 성립된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상속제도 역시 당시 유대인들의 상속제도는 농경민족들 처럼 부친의 사후, 장자나 강자에게 몰빵하는 상속의 형태가 아니라, 유목민들 처럼 "성장한 자식에게 가축 떼어줘서 독립시키기"라는 형태를 그대로 온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 설화에서도 돼지, 도시, 농장, 농작물에 대한 혐오가 나타나있다.[3] 이러한 본인들의 사회제도와 종교전통과의 모순 때문에 유대인들은 적지않은 혼란에 빠져있었다. 구약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금기가 누누히 써있었는데 정착생활을 하고 있었던 본인들의 생활이 교리와 충돌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도 유목을 하던 시골 유대인들 중심으로, 유목민적 전통 유대교 율법을 지키는 바리사이와 왕국을 이루고 도시에서 정주한 현실에 맞게 신관 중심의 새로운 해석을 하는 사두가이가 대립했고, 시골에 있지만 농경을 하는 처지인지라 구약을 곧이 곧대로 따를 수 없고, 그렇다고 신관이 구약에서 반복적으로 비난하는 도시생활을 정당화하는 것까지는 공감할 수도 없어, 이 둘과 동질성을 가질 수 없는, 그저 이 혼란을 정리해줄 메시아를 기대한 에쎄네등 다양한 분파가 등장해서 그 간격에 예수가 등장할 수 있었다. [4]


5. 인용[편집]


영어로는 Prodigal son이라고 한다. Prodigal은 '탕아(蕩兒)'라는 번역명이 암시하듯 '방탕하고 낭비하는'란 뜻이나 관용어구로 쓰일때는 성경 일화의 작은 아들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정도 뉘앙스를 준다.

이 뉘앙스대로 스타크래프트 캠페인에서 사미르 듀란혼종을 보고 경악하는 제라툴에게 자신보다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탕아(Prodigal)라 불렀다.

혁오와 정형돈이 해당 이야기를 바탕으로한 노래 '멋진 헛간'을 무한도전 2015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불렀다. 멋진 헛간은 탕아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전개로 내가 모으고 이룩한 재산등을 어느날 도둑이 들어 하루아침에 모두 잃고 이에 분노하여 도둑을 잡으려 하지만 오갔던 발자국은 오직 자신의 것뿐이었고 이에 도둑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것, 내가 모으고 이룩한것이 다 허튼짓이었음을 깨닫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자신이 성경 말씀속의 탕아였다고 한탄하고 아버지는 아니라고 다독여준다.

한국 판타지 소설이자 네이버 웹소설인 이계진입 리로디드의 프롤로그 이후 챕터 1 제목이 돌아온 탕자이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단편집인 벨킨 이야기 중 '역참지기'에서는 등장인물인 브이린이 이 내용을 묘사한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의 딸인 두냐의 행적이 이 돌아온 탕아와 연관된 클리셰와 연관된다. 하지만 결말에는 두냐가 귀부인이 되어 돌아오면서 이 클리셰가 깨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요하나 슈피리의 소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염소와 양들을 치는 목동인 것으로 나온다. 하이디가 클라라의 할머니 즉, 제제만 씨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그림책의 줄거리가 이 돌아온 탕아다. 하이디는 처음 이 책의 그림[5]을 보고 고향이 그리워 울음을 터뜨렸다. 또한 이 책의 내용을 알고싶어서 알 필요를 못느껴 배울 수 없었던 알파벳도 하룻밤 사이에 모두 깨우치게 되었다. 나중에 다시 할아버지에게 돌아가서는 하이디가 더 자세한 줄거리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하이디의 할아버지가 바로 돌아온 탕아인 셈이다.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2010년 빅뱅 패치 이후 이벤트로 휴면 유저가 복귀 했을 때 '돌아온탕아의 반지'[6]와 '돌아온탕아를 위한 축복'[7] 아이템을 줬었다.



[1] 뒤에 "절 아버지의 일꾼들 중 한 명으로 취급해주십시오."라고 한다.[2] 이 부분은 해석이 갈리는데, 대개 "네 동생은 유산을 받으면서 절연했다 돌아온 거고 넌 계속 나를 도왔으니 내가 너에게 니 동생에게 준 것보다 더 큰 것을 주겠다." 정도로 해석한다.[3] 도시로 갔다가 타락하여, 농장에서 유대교 율법상 닿는 것만으로도 부정하다 취급되는 돼지를 치는 돼지치기가 되며, 돌아와서 송아지로 보상을 받고 형은 염소를 거저 받은 적이 없다고 불평한다.[4] 예수는 에쎄네파 유대교 마을에서 태어났다.[5] 노을지는 태양빛에 산들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목동이 양과 염소들을 치는 그림이다.[6] 파일:돌아온탕아 이벤트.jpg[7] 1시간 동안 경험치가 1.5배 증가하는 쿠폰